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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보통의 디자인

월간 환경과조경20142310l환경과조경

이화외고에 대한 이야기는 채 절반도 되지 않는다. 만약 이 글에 부제목을 (아주 건조하게) 달았다면 “이화원 김이식 소장 인터뷰”란 문구가 제목 아래 자리를 차지했을 것이다. 그렇다고 이화원의 작품 세계 전반을 살피지도 못했다. 2009년도였던가? 나름 작심(?)하고 진행했던 “조경가 인터뷰”와 이 지면은 그 성격이 다르다. 최근 작품을 중심에 두고, 곁가지로 작품 경향을 넌지시 들여다보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기 때문이다. 차 한 잔 앞에 두고 밀린 이야기를 나누는 기분으로.

김이식 소장과의 만남은 이번이 두 번째였다. 첫 번째 만남을 둘 다 정확히 기억하지 못한 채 인터뷰가 시작되었고, 어느 지점에 이르러서야 흐릿해진 기억의 퍼즐을 맞출 수 있었다. 50여 명이 떼로 모였던 어느 술자리에서, 그와 나는 “안녕하세요” 정도의 가벼운 인사만 나눴었다. 그러니 이번 인터뷰가 실질적으로 첫 번째 ‘만남’인 셈이다.


편안한 보통 디자인

미리 합을 맞춘 것도 아닌데, 북서울미술관을 맡은 허대영 소장이 “가장 보통의 미술관”이란 제목을 보내왔다. 허대영 소장에게 따로 이야기하지 않았지만 첨부 파일을 클릭한 순간, 내심 많이 놀랐다. 북서울미술관을 둘러보며 행복의 건축, 알랭 드 보통, 언니네 이발관의 노래 “가장 보통의 존재”를 떠올렸다는데, 나는 “가장 보통의 존재”라는 노래는 들어본 적도 없다. 대신 이화원의 지명원과 이화외고, 북서울미술관, 당인리, 세종도서관 자료를 찬찬히 들여다보다, “보통의 연애”란 드라마를 떠올렸다. 재작년인가 방영된 4부작 드라마인데, 잔잔하지만 꽤 큰 울림이 있었다. 전주 한옥마을을 배경으로, 보통과는 거리가 먼 남녀의 이야기(한 남자가 형을 죽인 살인자의 딸과 미묘한 감정에 이르게 된다)를 아주 담담하게, 절제된 영상에 담아낸 작품이었다. 소박한 “보통의 연애”조차 사치처럼 느껴지는 극단적 상황에 처한 주인공의 심리 묘사가 탁월했기 때문이었을까? “보통의 연애”가 그렇게 소중해 보일 수가 없었다. ‘보통’이란 명사를 은연중에 폄훼하고 시시하게 여겼었건만, 누군가에게 ‘보통’이 그렇게 간절한 것이었다니!

이화원의 작품, 특히 이화외고의 장면을 머릿속에 그려보다 “보통의 연애”가 떠오른 것은 화려하고 눈에 띄는 조형적 요소보다 실제 공간을 이용할 사람들이 ‘편안’하게 이용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하기 위한 그들의 노력이 느껴졌기 때문이었을지도 모르겠다. 보통 사람들이 이용하는 공공 공간을 다루는 이들이 가장 신경 써야 할 것은 어쩌면 ‘보통’일지도 모르겠다는 데에 생각이 미치자, 그저 그렇게 보이던 ‘보통’이란 단어가 전혀 달리 보이기 시작했다. 자연스럽게 김이식 소장과의 대화는 ‘편안한 이용’에서부터 시작되었다.


남기준(이하 남): 이화외고의 경우, 고등학교 캠퍼스임을 감안하면 무척 세련되어 보이지만, 설계 공모(이화학원 주최) 당선작이라는 관점에서 보면, 설계안부터 완공된 실제 공간에 이르기까지 아주 화려하거나 시각적으로 도드라져 보이는 요소가 그리 눈에띄지 않는다. 대신 설계 설명서를 가득 채우고 있는 것들은 대상지의 불편하고 불리한 조건(배수, 지형,토양 개선 등)에 대한 개선 방안이었다. 클라이언트의 가장 큰 요구 사항이었기 때문이겠지만, 크게 눈에 띄지는 않으나 이용자에게 정작 중요하고 필요한 것들에 집중했다는 느낌을 받았다.


김이식(이하 김): 공간을 만드는 사람의 ‘시선’이 아니라, 이용하는 사람의 ‘입장’에서 과연 무엇이 필요한지를 고민하고 있다. 더구나 이화외고 프로젝트는 공원과는 성격이 완전히 달랐다. 캠퍼스 외부 공간은 마치 주택 정원처럼, 같은 공간을 일상적으로 매일 이용하는 학생들과 교직원이 있다. 보기에 아름다운 것도 중요하지만, 무엇보다 이용하기에 불편함이 없어야 한다. 특히나 생활공간이라면 편안한 이용은 그 자체로 큰 미덕이 될 수 있다.

남기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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