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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 장면으로 재구성한 조경사 #3 : 생태파시즘 - “철쭉은 뽑아버려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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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 생태파시즘 - “철쭉은 뽑아버려라!”

1990년대의 조경가들이 에른스트 크라머의 “시인의 정원”을 ‘재발견’했다는 사실은 다시 말하면 그동안 잊고 있었다는 뜻이 된다. 그가 1957년에 제시했던 소위 ‘좋은 형태’가 사람들의 기억에서 사라지는 데 그리 오랜 세월이 소요되지 않았다.

1970년대 초에서 1980년대 말까지는 ‘환경 생태’라는 새로운 키워드가 세상을 점령해 나간 시대였다. 이와 더불어 ‘좋은 형태’를 추구하던 조경가들은 점차 궁지에 몰리게 되었다. 정원과는 달리 환경 생태는 ‘사회 정의’로 무장하였으므로 범사회적 관심을 얻어 빠른 시간 내에 막강한 영향력을 펼칠 수 있었다. 환경은 정치적인 이슈가 되었고 정원과 조경 역시 자연적이고 생태적이어야 한다는 과격파들이 등장했다. 흥미로운 것은 이런 과격파들이 모두 아마추어 출신이었다는 사실이다. 이들은 생물학, 교육계, 예술계로 확산되었으며 건축, 언론을 장악했다. 1986년 라인하르트 비트Reinhard Witt라는 이름을 가진 생물학자가 “철쭉은 모두 뽑아버려라”는 제목의 기사를 발표한 바 있다. 외래종을 정원에서 모두 몰아내야 한다는 다분히 선동적인 외침이었다. 이와 더불어 토착 정원, 자연 정원, 생태 정원, 비오톱 정원 등의 개념들이 생겨났다.

지금은 환경 생태와 조경과의 관계가 사뭇 평화롭지만 처음부터 그랬던 것은 아니다. 조금 과장해서 표현하자면 거의 종교전쟁의 수준으로까지 번졌었다. 물론 생태의 중요성을 부정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다만 생태와 설계는 별개의 문제였다. 아마추어 자연정원론자들이 모여 자연정원협회를 만들고 자연 정원 잡지를 발간하고 자연 정원에 대한 서적을 집필한 것까지는 좋은데 자연 정원이 개인 정원의 영역에 머물지 않고 사회적 이슈로 확산되면서 자연 정원에 대한 요구는 결국 사회적 요구가 되었고 전문가들의 영역을 잠입해 들어갔다. 이제 전문가들 중에서도 생태과격파가 나오기 시작했다. ‘생태적인 것만이 아름답다’라는 이슈가 형성되었고 ‘좋은 형태’를 찾는 것은 퇴폐주의에 버금가는 것으로 여겨졌다. 자연스럽거나 생태적인 것만이 존재 의미가 있었다. 대학에 환경생태학과가 설치된 후로는 조경학과의 불필요성에 대한 논의가 나오기도 했다. ‘형태적 조경’을 계속하려면 차라리 건축학과로 가라는 소리도 들어야 했다. 설계공모에서도 생태적인 것이 요구되었고 연구 프로젝트도 환경 생태를 주제로 하지 않으면 연구비를 받기 어려워졌으며 공원 설계는 곧 비오톱 설계라는 등식이 만들어졌다. 인위적으로 만든 비오톱이 과연 얼마나 생태적인가라는 반발도 있었지만 비오톱 공원의 확산은 걷잡을 수 없었다. 1990년 초에 절정을 이루었던 이 시기를 ‘생태파시즘Ecofascism’의 시대라고 부르기도 한다.


고정희  ·  칼 푀르스터 재단 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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