품위를 지키는 문화재 건물을 보고 싶다

[조경명사특강] 임승빈 교수의 도시사용설명서_14회
라펜트l기사입력2014-01-29

 

도시에 산재된 문화재 건물, 구조물들은 도시의 역사를 말해주는 중요한 경관요소이다. 이들 문화재는 도시 혹은 국가의 역사를 말해줄 뿐 아니라 도시인에게 소속감과 자부심을 느끼게 해준다.

 

오늘날 우리나라 도시의 문화재 건물들은 개발과 함께 점점 사라져 도시 내에 섬 혹은 점경물로 남아있으며, 남아있는 문화재마저도 주변에 들어서는 화려한 고층건물, 종교건물, 아파트 등으로 인해 점점 왜소해지고 초라해져 과거시대의 위엄이나 품위를 잃어가고 있다. 이는 문화재 건물의 배경이 되는 건물들이 높이, 형태, 색채 등에서 문화재와 이질적이어서 축조당시의 배경과 전혀 다른 경관을 연출하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 보물 제1호인 흥인지문(동대문)은 최근 건물보수를 마쳤으나 난개발로 들어선 주변 건물들로 인해 흥인지문 본래의 위엄과 품위는 찾아볼 수가 없다. 흥인지문과 인접한 성벽자리에 있던 이화여대병원은 철거되었으나 동대문교회 등은 아직 그대로 있어 문화재 보호의 한계를 보여주고 있는 좋은 예라 할 수 있다.

 


보물 제1호 흥인지문_ 주변의 난개발 건물들로 인해 역사적 건물의 위엄과 품위를 잃고 있다. 주변 건물의 높이, 형태, 색채 등에 관한 보다 철저한 관리가 필요하다.


국보 제1호인 숭례문(남대문) 역시 최근 보수를 마치고 성벽도 일부 복원하였으나 고층빌딩에 눌려 조선시대의 위엄을 잃고 있다. 흥인지문보다는 인접도로 폭이 넓고 주변 건물들이 어느 정도 정비되어 상대적으로 양호한 편이나 여전히 박물관에 있는 박제된 표본을 크게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문화재보호법에서는 문화재건물 외곽경계(보호구역이 지정되어있는 경우에는 보호구역경계)로부터 500m 범위 내에서 건설공사 인허가시 영향을 검토해야하는 지역을 시도지사가 정하도록 하고 있는데, 서울시 조례에서는 국가지정문화재의 경우 100m (시지정 문화재의 경우는 50m) 이내만 검토지역으로 정하여 인접건물을 관리하고 있다. 이는 문화재건물 보호를 위하여 턱없이 부족한 수치로서 검토지역 범위를 넓히는 것이 필요하다. 서울은 토지가격이 높아 개인 재산권을 제약할 수 있는 검토지역 확대 설정에 어려움이 있으나 숭례문, 흥인지문과 같은 중요한 문화재에 대하여는 특단의 대책이 마련되어야겠다.

 


국보 제1호 숭례문_ 위압적인 주변 고층건물로 인해 숭례문 본래의 위엄과 품위를 상실하고 있다. 조선시대에는 숭례문이 주변에서 제일 높은 건물이었다. 주변 지역 건물의 높이, 형태, 색채 등에 관한 보다 철저한 관리가 필요하다.

 

북악산 아래 광화문에서 시작하여 세종로 사거리, 시청, 숭례문, 남산에 이르는 길은 일찍부터 우리나라 국가중심축으로 불리는 상징성 높은 가로이다. 이 가로에서 중심이 되는 요소는 북악산, 광화문, 숭례문, 남산이다. 북악산과 남산은 조선시대 한양을 둘러싸는 내사산(內四山) 가운데 북과 남에 위치한 두 개의 중요한 산이다. 그리고 광화문과 숭례문은 북악산과 남산을 잇는 축 상에 위치한 중요한 문화재이므로 문화재 건물 중에서도 그 위상이 특히 높다고 할 수 있으며, 따라서 조선시대에 지녔던 위엄과 품위를 최대한 유지시키는 방향으로 주변 건물관리가 이루어져야 한다.

 

서울 서대문구 독립공원내에 위치한 독립문은 구한말 청나라의 간섭으로부터 주권을 회복한다는 의미로 청나라 사신을 맞이하던 영은문을 허문 자리에 세워졌다. 당시 서재필 등이 이끄는 독립협회가 주도한 국민모금운동을 통해 건립기금을 모금하여 대한제국이 시작되던 해(1897)에 준공되었으며 현재는 사적 32호로 지정되어있다.

 

구한말의 자주독립 노력이 서려있는 독립문의 현재 모습은 서대문형무소를 포함한 독립공원조성 등의 노력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초라한 모습이다. 독립문 좌우측으로 고층아파트가 들어서서 독립문은 왜소해 보이고, 남측으로는 고가도로인 성산대로가 지나가고 있어 독립문 경관에 대한 저해가 심각한 실정이다. 문화재 인접하여 고가도로를 건설하는 잘못을 반복하지 말아야겠다.

 


독립문_ 구한말 자주독립노력의 상징이라 할 수 있는 독립문이 주변의 무분별한 개발로 인해 왜소해 보이고 상징성이 약화되고 있다.


문화재 건물의 보존은 해당 건물 자체만을 보존하는 것이 아니라 건물 주변의 일정 범위를 함께 보존‧관리하는 것이 진정한 의미의 보존이다. 이러한 점에서 구총독부 건물 해체와 광화문 복원은 바람직한 문화재보호 사례라 할 수 있으며, 우리나라의 정체성과 자존심을 회복하는데 크게 기여하였다. 구총독부 건물의 해체에 대해 아쉬워하는 의견도 있으나 광화문 복원이 갖는 긍정적 효과는 해체의 아쉬움을 충분히 보상하고도 남는다 하겠다. 구총독부 건물의 해체로 광화문의 배경인 북악산이 다시 모습을 드러내 조선시대 광화문의 역사경관을 회복할 수 있게 되었으며 더불어 조선시대 광화문의 위엄을 되찾을 수 있게 되었다.

 


조선시대 왕궁인 경복궁과 경복궁의 배경인 북악산을 가로막고 들어선 구총독부 건물

 

광화문_ 구총독부 건물의 해체로 북악산이 드러나 조선시대 배경경관을 회복하였으며 광화문의 위엄과 품위를 지킬 수 있게 되었다. 광화문 좌측으로는 청와대, 우측으로는 국립민속박물관 지붕이 보인다.

 

구 총독부 건물의 철거로 광화문과 배경이 되는 북악산이 함께 조망되어 조선시대 원형경관이 복원되었으며, 광화문 주변에 들어선 고층 건물들은 광화문으로부터 상당한 거리를 두고 있어 시각적 간섭이 최소화 되었다. 그러나 좌측의 정부청사 건물은 현재 높이의 절반 정도로 줄여 우측의 역사박물관, 미국대사관 높이와 균형을 맞추는 것이 바람직하다.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된 수원의 화성은 조선시대 정조대왕이 한양의 천도까지 생각하고 만든 성으로서 1997년 세계문화유산 등재를 전후하여 성곽 주변 정비가 활발하게 이루어졌다. 특히 화성 내부 시가지는 건물높이를 4층 이하로 제한하여 장안문(북문)과 팔달문(남문), 그리고 팔달산이 시각적으로 드러나 축조 당시의 위엄과 품위를 지키도록 하였다. 또한 둘레가 약 5.7Km에 이르는 성곽주변도 성곽경계부터 50미터까지는 문화재 보호구역으로 지정하고 성곽인근에 높은 건물을 지을 수 없도록 함으로써 성곽을 시각적으로 개방하고 있다. 수원시는 현대도시의 기능을 수행하면서도 동시에 문화재를 품위있게 보존하는 모범적인 사례라 할 수 있다.

수원 화성의 팔달문(남문/좌)_ 팔달문 왼쪽의 주변 건물이 4층으로 관리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이를 통하여 팔달문의 품위를 유지하고 있다. 장안문(북문/우): 현대식 건물 없이 푸른 하늘을 배경으로 서있어 축조 당시의 역사 경관을 유지하고 있다. 

 


장안문(북문)에서 바라본 화성 내부(좌/동남측 조망, 우/서남측 조망)_ 수원시 도심부 스카이라인이 고층 건물 없이 수평으로 잘 관리되고 있음을 볼 수 있다. 고층건물 수요를 화성과 거리가 있는 수원 외곽지역에 수용하고 화성내부는 저층으로 유지하고 있는 모범적 역사도시보전 사례로 들 수 있다.

 

파리에는 프랑스를 대표하는 상징물로서 에펠탑과 더불어 개선문이 있다. 개선문이 세계인들의 사랑을 받는 이유는 개선문 자체의 독특한 형태와 의미에 기인하는 점도 있으나, 이에 못지않게 중요한 이유는 개선문이 휴먼스케일을 훨씬 넘는 거대 규모라는 점과 개선문이 다른 구조물에 의한 시야 방해 없이 파란 하늘을 배경으로 하늘 높이 솟아 있다는 점이다. 이를 위하여 파리시에서는 개선문 주변에 8층 이상의 고층 건물을 엄격하게 제한하여 개선문으로의 조망을 가리지 않도록 함과 동시에 어느 방향에서 보더라도 개선문 배경으로는 파란 하늘만 보이도록 하였다. 즉 개선문이 돋보이도록 주변 건물을 엄격하게 관리하고 있는 것이다.

 

개인의 자유와 시민의 권리를 최대한 보장하는 것으로 잘 알려진 프랑스에서 철저한 건물규제가 시민 저항없이 이루어지고 있음은 문화재에 대한 높은 시민의식에 기인한다고 볼 수 있다. 우리나라도 최근 민주주의가 성숙되어가고 있으며 문화의식이 높아지고 있어 우리의 소중한 문화재가 제대로 대접 받는 시대가 올 것으로 기대된다. 

 

프랑스 파리의 개선문_ 프랑스인의 자부심이자 상징물인 개선문은 나폴레옹시대의 역사를 말해주고 있으며, 인간 척도를 훨씬 넘는 거대 규모를 지니고 있다. 주변 건물을 저층으로 관리해 시각적으로 두드러져 보이게 함으로써 건축당시의 위엄과 품위를 잃지 않고 있다. 관광객들이 정면에서 사진 찍을 수 있도록 도로 중앙분리대에 포토존을 만들어 보행자 진입을 허용하고 있다.

 

루마니아 부카레스트의 개선문, 그리고 독일 베를린 동서독 분단의 상징물인 브란덴부르크문 역시 주변 건물이 낮게 관리되어 랜드마크 역할을 하고 있으며 상징성을 전달하는 역할을 충실히 하고 있다.

루마니아 부카레스트의 개선문(좌)_ 파리 도시계획의 영향을 받아 도로축 교차점에 개선문을 두어 초점경관을 형성하고 있다. 베를린 브란덴부르크문(우): 과거의 동서독간 경계를 상징하는 브란덴부르크문은 현재 많은 관광객이 찾고 있다.

 

도시에 산재되어있는 문화재 건물은 도시의 오래된 역사를 대변해주고, 도시인에게는 자부심의 원천이 되며, 방문객에게는 새로운 문화를 접하고 이해하는 매개물이 된다. 문화재 건물의 보존은 해당 문화재와 더불어 축조 당시의 주변 경관을 함께 보존하는 확대된 개념이 정착되어야 진정한 의미의 보존이 될 수 있다.

 

축조 당시의 품위와 위엄을 지니고 있는 문화재를 보고 싶다.
문화재건물과 함께 주변 역사경관을 보존하자!

연재필자_임승빈 명예교수 · 서울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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