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이 흐르는 거리를 걷고 싶다

[조경명사특강] 임승빈 교수의 도시사용설명서_21회
라펜트l기사입력2014-09-03

 

최근 우리나라 도시 가로에서 행인을 대상으로 자유롭게 연주하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유럽 등 서구에서는 관광객이 많이 다니는 가로나 광장에서 거리의 악사들을 흔히 볼 수 있지만, 과거 우리나라에서는 보기 어려웠던 풍경이었다.


우리나라에서의 길거리 연주는 전통적으로 마을행사나 축제 때에 하는 농악이나 사물놀이 등이 전부였으나, 해방 후 서양문화의 영향을 받으면서 주로 기타, 바이올린 등 서양악기를 연주하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길거리 연주는 가로에 청각요소를 도입하여 보행자들의 주의를 끌고 흥미를 높이는 긍정적 역할을 하지만, 복잡한 가로에서는 통행에 불편을 줄 수 있다.


서울 인사동, 대학로 처럼 많은 사람이 모이는 곳에서 볼 수 있는데, CD를 팔거나 여행비용을 모으기 위한  연주가 대부분이다. 광장에서는 색소폰 등 음악 동호인 모임의 연주도 볼 수 있으며, 축제장에서는 우리나라의 독특한 즉석 노래자랑대회가 열려 축제 분위기를 한층 고조시키기도 한다. 백화점 등 여러 사람 모이는 장소에 조용한 음악을 틀어주어 친근하고 안정된 분위기를 만드는 것처럼, 옥외공간인 가로에서도 분위기에 맞는 음악이 도입된다면 보행자들이 더욱 장소의 분위기에 젖어들어 즐거운 시간을 보낼 수 있을 것이다.



서울 인사동에서의 기타 연주. 자유로운 분위기에서 연주를 보고 들을 수 있어 항상 많은 청중이 모인다. 통행에 지장을 줄 수도 있어 간혹 인근 상인의 항의를 받는다.



뚝섬 한강공원 교각아래의 색소폰클럽 연주. 색소폰 클럽회원들의 재능기부형식으로 연주되는 음악은 삭막한 콘크리트 교각하부 공간을 음악공연장으로 탈바꿈시킨다.



금산인삼축제행사의 일환인 노래자랑 프로그램은 축제장의 흥을 한층 더 돋우는 역할을 한다.


가로에서 피아노 연주를 들을 수 있는 ‘달려라 피아노’라는 이름의 새로운 형식의 프로그램이 작년부터 서울에서 시작되어 보행자들의 흥미를 끌고 있다. 이 프로그램은 원래 2008년 영국의 설치미술가가 공공장소에서의 소통과 즐거움을 주기위해 가로에 피아노를 설치하면서 시작됐으며, 이어서 미국에서도 이 프로그램이 진행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더하모니’라는 비영리단체에서 진행하고 있는데 작년에 선유도공원에서 처음 시작하였고, 금년에는 신촌에 새로이 조성된 ‘문학의 거리’에 위치한 홍익문고 앞에 설치하였다. 이 프로젝트는 피아노 기증자, 페인팅 작가, 새로운 소유자(관리자), 연주자의 네 유형의 기부자가 필요하며 전 과정이 재능기부와 봉사로 이루어진다. 피아노를 입양한 상점의 주인은 피아노를 공공장소에 내놓아 일반인에게 개방하며 주야간, 그리고 계절별 관리를 약속해야 한다.


소음이 있는 가로에서의 피아노 연주는 상상하기 어려웠으나, 고정관념을 뛰어 넘은 발상의 전환이 가로에 음악을 선물하고 있으며 보행자들을 즐겁게 하고 있다. 피아노 연주와 함께 노래를 부르거나 춤을 추는 행인들도 간혹 등장하며, 피아노가 비어있을 때는 건반을 한 두개 두드려보고 지나가는 보행자들도 많이 있다.



신촌 연세대 입구에 ‘문학의거리’가 새롭게 조성되어 버스만 통행이 허용되고 있으며, 주말에는 모든 차량통행이 제한된다. 우측 멀리 홍익문고 앞에 누구나 연주할 수 있는 하늘색의 피아노가 보인다.



달려라 피아노 (Run Piano)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신촌 ‘문학의 거리’ 홍익문고 앞에 피아노가 설치되어 있다. 원하는 사람 누구나 연주를 할 수 있으며 미리 시간을 예약하고 연주할 수 있다. 지나는 행인이 잠시 연주를 감상하기도 하고 연주자가 없을 때는 몇 개의 건반을 눌러보기도 한다. 보행가로에 새로운 볼거리인 동시에 들을거리가 등장했다.


유럽에서는 많은 사람 모이는 곳이면 거리의 악사들을 쉽게 볼 수 있는데 대부분 나이 지긋한 사람들이다. 우리나라에서도 간혹 음악 동호인들의 연주에서는 나이 많은 사람들을 볼 수 있으나 일반적으로는 젊은 사람들의 연주가 대부분이다. 우리나라는 최근 중장년 층에서 악기를 배우는 사람들이 늘고있어 앞으로는 거리연주에서도 나이든 사람들의 연주를 빈번하게 볼 수 있을 것이다.



독일 프라이부르크 보행전용 가로에서의 연주. 아코디언, 첼로, 트럼펫 과 전통악기 등 다양한 악기의 연주를 들을 수 있다. 중장년 층의 연주자가 대부분이다. 기부와 팁 문화가 보편화돼있어 많은 사람들이 모금에 동참하고 있다.


서구에서는 개인들의 연주이외에도 음악협회 등 사회단체에서 주최하는 재능기부형식의 연주도 볼 수 있다. 일반인들이 비싼 입장료를 지불하지 않고도 높은 수준의 음악을 감상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여 음악의 대중화에 기여 하고 있다.



프라이부르크 음악협회에서 주최하는 관현악 연주. 프라이부르크 광장 나무그늘 아래에서 연주하고 있어 누구나 들을 수 있다. 개인연주와 달리 시민에게 봉사하는 재능기부 형식으로서 수준 높은 연주가 이루어진다.


서구에서는 음악 이외에도 퍼포먼스나, 전통의상, 캐릭터분장 등 다양한 볼거리가 보행자의 귀와 눈을 즐겁게 하고 있다. 이들은 대부분 모금을 목적으로 하는데 과도한 요구로 물의를 빚기도 한다.



동서독 분단의 상징인 베를린 브란덴부르크 문 앞에서 관광객을 상대로한 사진 찍어주기. 미국 뉴욕에서는 최근 사진 촬영 후 돈을 심하게 요구하는 일이 발생해 이와 같은 상행위 금지를 검토하고 있다.



바르셀로나 람블라스거리의 캐릭터 분장가. 언뜻 보면 조각같지만 사람이 분장을 하고 서 있다.


거리의 악사는 가로가 소통과 문화의 장소역할을 하는데 큰 역할을 한다. 우리나라 도시의 가로들도 시민들이 서로 만나고 함께 문화를 향유하며 여가를 즐기는 장소로 탈바꿈하고 있다. 음악뿐 아니라 마술 등 공연, 미술전시, 이동식 먹거리 가판대 등 다양한 볼거리, 들을거리, 먹을거리가 점점 더 많이 등장하여 흥겨운 공간으로 만들어지고 있다.


우리나라에서 거리의 악사들이 느는 것은 바람직한 현상이다. 그러나 서구의 흉내만 낼 것이 아니라 한국 문화가 배어있는 음악을 연주하면 더욱 좋을 것이다. 인사동 같은 곳에서 피리나 사물놀이 같은 전통음악이 연주된다면 장소의 분위기가 더욱 살아날 것이며 이곳을 찾는 외국인들은 한국의 문화를 경험하는 좋은 기회가 될 수도 있다. 더불어 ‘달려라 피아노’와 같은 창의적인 가로연주 프로그램을 많이 개발하여 다양한 계층의 사람들이 참여할 수 있도록 하는 방법을 강구해야 한다.


전통음악이 흐르는 가로를 걷고 싶다.
다양한 계층의 사람들이 거리음악에 참여할 수 있는 프로그램을 개발해

분위기 있고 활기찬 가로를 만들자!

연재필자_임승빈 명예교수 · 서울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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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eungbin@sn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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