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녹색시선] Better life through landscape architecture!

진승범 논설위원(이우환경디자인(주) 대표)
라펜트l기사입력2017-12-17

 

Better life through landscape architecture!



글_진승범 대표(이우환경디자인(주))


이쯤 되면 ‘화학산업의 역습’이라 불러도 무리가 아닐 듯싶다. 생활에 편의를 더하기 위해 야심차게(?) 개발되어 각광을 받던 생활화학제품이 도리어 건강과 안전을 위협하는 대상이 되어버린 현실을 우리는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난감하기만 하다.
2011년 가습기살균제(세정제)로 인한 폐손상증후군(기도 손상, 호흡 곤란, 기침, 급속한 폐섬유화) 등의 증상이 일어나 주로 영유아, 아동, 임산부, 노인 등이 사망한 사건을 우리는 기억한다. 간편하고 안전하게 가습기 사용수를 살균, 세척할 수 있다는 제조회사의 감언과는 달리 위에 열거한 증상을 유발하는 무서운 독성을 가진 폴리헥사메틸렌구아니딘(PHMG, polyhexamethylen guanidine)과 염화에톡시에틸구아니딘(PGH, ethoxyethyl guanidine chloride)이 검출되어 온 나라를 공포로 몰아치지 않았던가.

이러한 공포의 기억에서 채 벗어나지도 못하고 올해에도 살충제 계란에 이어 불량 생리대 파동까지 연이은 화학제품의 공습에 흔들리고 있는 것이다. 가습기 살균제 사건이후 한 시민단체의 설문조사 결과, 85% 이상이 생활화학제품의 사용을 꺼리거나 안전성에 불신을 하고 있다고 한다. 일상생활에서 화학제품 사용을 극구 기피하는 ‘노케미(no-chemi)족’까지 등장하는 등 지금 우리 사회는 ‘케미포비아(chemiphobia)’시대라는 말이 회자될 정도로 화학물질에 대한 공포가 만성적으로 번지고 있음을 느낀다.

1802년 설립되어 나일론을 발명하는 등 화학섬유, 합성고무, 염료, 플라스틱 등 다양한 생활용·산업용 제품을 만드는 다국적 화학회사 듀폰(Du Pont)사에서 1935년부터 1982년까지 사용했던 유명한 광고 카피가 ‘better life through chemistry’ 즉, ‘화학을 통한 보다 나은 삶’이었음을 생각하면 격세지감(隔世之感)이란 표현으로도 부족할 듯하다.

결론부터 이야기하면 듀폰은 틀렸다. 풍요(대량 공급)와 편리함은 결코 인류를 보다 나은 삶으로 인도할 수 없다. 그것이 안전과 건강을 담보하지 못한 채 지속된다면 그 결과는 너무 끔찍하다. 특히 생활화학제품에 대한 상시적인 안전관리 체계가 마련돼 있지 않은 우리나라는 그 후유증이 매우 심각하다. 정부는 사고가 터진 다음에야 급작스럽게 조사에 착수하고 대책을 마련한다고 허둥대는 일을 반복하고 있다. 물론 국내에 유통되는 화학물질의 종류가 1만 6000여종에 이르고 그중 고위험물질은 1300여종으로 추정되는 현실에서 완벽한 대책을 마련하기란 불가능한 일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그렇다고 이제까지의 화학제품을 전부 폐기하고 인류를 야생의 생활로 되돌릴 수는 더욱 없을 터. 지금은 21세기다. 4차 산업혁명을 이야기하는.
답은 무엇일까? 그것은 ‘인류의 본질’에 대한 사고에서 출발해야 한다. 선사시대부터 이어져온 인간 삶의 조건은 ‘자연과 더불어 사는 삶’이었다는 것을 기억하자. 태초의 야생(자연)으로 돌아갈 수는 없어도 도시공간 속에서 자연에의 욕구를 채우고 접하는 기회를 충분히 제공하는 것이야 말로 우리를 보다 나은 삶으로 이끌어주는 수단이 아닐까?

네덜란드 흐로닝언대학(University of Groningen)의 자연경관학부 교수 아그네스 반 덴 베르크(Agnes van den Berg)는 여러 도시에서 행해진 실험을 통해 거주지 근처에 있는 공원녹지가 사람들이 받는 스트레스의 영향력을 감소시킨다는 사실을 밝혀낸 바 있다. 그에 따르면 공원녹지는 신체활동을 자극하고 사회적 결속을 촉진시킨다. 자연 속에 머무르는 것이 스트레스를 누그러뜨리는 가장 강력한 수단 중 하나라는 사실을 일관되게 주장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의 생활 주변, 나아가서 도시에 풍부한 공원녹지를 제공하고 건강하고 안전한 삶의 터전을 만드는 학문과 기술이 바로 ‘조경’이다. 조경은 자연과 인간을 조화롭게 이어주는 통로다. 지금의 인류가 지니고 있는 문명 중에 이런 역할을 감당할 수 있는 유일한 문명이 조경인 것이다.

의학과 심리학 전공을 기초로 건축공간에 대한 집요한 연구 성과를 내고 있는 폴 키드웰(Paul Keedwell)은 자연을 품은 도시들이 하나같이 세계에서 가장 사랑 받는 도시가 된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며, 건강한 공간은 사람을 치유한다고 말한다. 화학제품이 넘쳐나는 곳은 건강한 공간이 아니다.

자연 속에서 인간과 인간을 이어주는 ‘보다 나은 삶’으로 이끌어 주는 장소, 과연 누가 만드는가?
글·사진_진승범 대표이사 · 이우환경디자인(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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