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녹색시선] 진정 배워야 할 것

글_안영애 논설위원(안스디자인 대표)
라펜트l기사입력2018-07-31

 

진정 배워야 할 것


_안영애(안스디자인 대표)



따라하면 잘해야 2등

우리나라는 전쟁 후 빠르게 선진국의 기술을 배워 발전해 왔는데 이것이 단지 기술뿐이겠는가? 사회 전반에 걸쳐 남의 것을 배웠지만 이제 우리 분야에서도 우리만의 독자적인 기술, 디자인이 필요한 시점이다.

얼마 전 바르셀로나와 빌바오 그리고 두바이를 다녀왔다. 출발하기 전 바르셀로나 시민들은 더 이상 관광객이 오는 것을 반대한다는 신문기사를 보고 얼마나 관광객이 오면 그럴까, 배부른 소리가 아닐까, 반기지도 않는 곳에 굳이 가야할까 하는 생각을 하고 떠났다. 도시디자인에 종사하는 많은 분들이 다녀와서 그 시의 공공디자인, 도시재생에 대한 좋은 평가를 내린 것들을 보았고, 관련 책자도 많이 나와서 읽었지만, 현장에서의 느낌을 보고자 어수선한 분위기를 뒤로 한 채 짧은 기간 다녀왔기에 내 의견에는 한계가 있을 것이다.

20년 전에 설계를 위해 해외를 다녀온 후 느낀 것은 아무리 좋아도 우리 여건과는 맞지 않아 적용이 어렵다는 것이었다. 따라서 근래 해외답사시 ‘어떤 부분을 어떻게 적용할 것인가’에 주로 초점을 맞추고 있다. 다녀보니 더욱 우리에게 맞는 환경디자인은 무엇일까 하는 고민이 생긴다.

최근 우리나라에서 조성되는 단지에 지중해 스타일로 가로변 경관계획을 해달라는 얘기를 들었다. 그것이야말로 우리 경관을 해치는 첫 걸음인데 말이다. 그렇게 요구하는 사람들에게 묻고 싶다. 지중해 스타일은 입지가 지중해이고, 지중해 기후이고, 그 공간을 이용하는 사람들은 유러피언이 많다. 기본적으로 차도는 좁은 편이거나 없는 경우가 다반사이고, 대부분 1층은 상가이며, 2층 이상은 업무와 주거인 경우가 많은 듯 했다. 그렇게 만들고자 하는 곳의 공간 환경과 그 공간을 이용하는 사람이 같은지 묻고 싶다. 상가 앞은 차도, 넓지 않은 보도, 2, 3층도 상가로 사용하고, 그곳에서 에스프레소나 브런치가 아닌 된장찌개, 김치찌개, 삼겹살을 구워먹는다면?


우리 도시구조

도시는 큰 골격을 바탕으로 만드는 것이 아니고 오랜 시간 가장 적합하게 만들어지는 것이다. 지형, 기후, 시간, 사람들이 만든 많은 사건들이 오래 축척된 역사와 그리고 현재를 사는 사람들이 만들어내는 것이다. 무엇보다 도시의 뼈대가 되는 도시구조가 중요하다. 서울의 도시구조는 1392년 잘 만든 도시구조에서 일본에 의해 훼손되고, 6·25 전쟁으로 대부분 파괴되고, 복구할 틈도 없이 빠른 속도로 변화되어 도시구조에 문제가 있다. 그러나 이제라도 차근차근 해가면 우리 시대가 아니라도 우리 후손들이 그 혜택을 누린다면 좋은 일 아닌가 생각한다.

19세기 세르다의 도시계획이 있었기에 오늘의 바르셀로나가 만들어졌다고 생각한다. 지중해와 접하는 입지, 온화한 기후, 잘 짜인 도시구조, 오랫동안 아름다운 건축물이 채워지고 상대적으로 물가가 싸서 많은 사람들이 가고 싶은 도시이다. 건물을 신축한지 최소 100년 이상 된 아름다운 건축물이 합벽으로 섬세하면서 조화로운 연속된 가로경관과 탁월한 천재 건축가가 온 일생을 바쳐 만든 유네스코 지정문화재가 도시 곳곳에 있는 반면 과연 우리 도시는 어떠한가? 차도보다 넓은 보도로 관광객이 보기에는 여유롭게 보이는 노천카페? 사실 관광객이 자기 차를 가지고 온다는 것은 불가능하고 대부분 전세 버스, 렌트차량, 보행이 주라면 우리의 보행여건은 어떠한가? 서울의 길은 사람을 위한 길보다는 차를 위한 길이 대부분이다. 어떤 때 사람보다 위에 차가 군림하는 듯하다. 보도에 걸쳐 주차된 차량, 수많은 나팔구로 사람들은 이리저리 차 피해 다니고… 그것이 현재 우리 도시의 모습이다. 비교적 넓은 보도가 있는 곳은 역설적으로 보도보다 더 넓은 차도가 이곳과 저곳을 완전히 양분하고 양측으로 높은 고층빌딩이 위압적으로 있는 가로에서 우린 무엇을 보여주면서 서울이라는 상품을 팔수 있을까? 바르셀로나에서 본 곡선가로등, 멋진 공공디자인을 만들기보다는 걷기 편한 도시에 ‘우리만의 독특한 것’을 만드는 것이 필요할 것이다. 왜 굳이 외국의 디자인과 비슷해야 하는가?


우리의 강점

다양한 목적을 가지고 관광을 가지만 근본적으로는 인간이 지닌 본능인 호기심, 이를 실행할 수 있는 경제력, 관광지 물가, 시간, 환경이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그 호기심은 무엇인가? 그것은 내가 경험한 것, 내가 살고 있는 것과 ‘다른 것’이다. 우리가 늘 보는 직선 가로등에서 바로셀로나의 아름다운 곡선가로등에 매료되었듯이 자기 나라에서는 경험하지 못한 색다른 것을 발굴해야 한다. 그것은 서울의 산재한 궁과 한옥, 음식, 서울을 둘러싼 산, 지하철을 타고 갈 수 있는 국립공원 등이 아닐까 생각한다.

서울시에선 서울의 미래를 이끌 고부가가치 성장엔진으로 관광객 2,000만 명을 목표로 25개 전략거점과 422동별 이야기를 발굴하여 외국인 관광객이 동네 구석구석 방문하고픈 서울을 만든다고 한다. 25개 거점과 422동이라는 숫자에 집착한 방향설정은 좀 아닌 듯하다. 우리는 늘 수치로 보여주고 싶어 한다. 장기적으로는 관광객의 수보다는 시민과 공존하는 삶이 되어야 할 것이다. 25개, 422라는 숫자보다 선택과 집중이 필요하다. 무엇보다 천천히 하면 좋지 않을까 한다. 중요한 것은 서울의 주인은 시민이지 관광객은 아니기에 가장 한국다움을 나타낼 수 있는 곳을 중점적으로 맞춘 관광으로 하여야 하지 않을까? 현재 3선에 성공한 서울시 입장에서 소신껏 추진할 수 있을 것이다. 서울은 우리나라에서 절대적인 비중을 차지하고 여타 도시에 비해 선도적, 모범적인 사례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내 의견은 단편적이고 편향될 수도 있겠지만 많은 사람들의 편향과 단편들이 다 모이면 교집합이 생기지 않을까 한다.


서울의 녹지

싱가포르나 바르셀로나나 모두 관수시설을 설치하여 녹지를 관리하고 있다. 바르셀로나의 경우 강우량이 적어서 그럴 수 있다 하지만 우리 기후도 건기에 문제가 있다. 두 도시 모두 녹음이 풍부하여 도시환경이 쾌적한데 우리의 도시환경은 어떠한가? 녹지는 부족하고 그나마 있는 녹지도 교통난을 이유로 슬그머니 축소되었다. 초기 서울시 도시계획에서 조성되었던 가로의 중앙분리대는 얼마나 많이 소리 소문도 없이 사라졌는지 안타까운 일이다. 녹지관리도 오로지 인력에 의해서 되고 있어 관리에 한계가 있다. 하여 기계관리가 가능한 곳은 최대한 이를 활용해야 하는데 첫 번째가 관수이다. 시민들이 먹다 버린 커피라도 마시면서 사는 가로수가 그래도 성장이 낫다는 얘기를 하는 것은 슬프다. 싱가포르의 그 성공적인 입면녹화를 우리 기후에 적용하는 것은 충분한가? 싱가포르의 기온과 우리 기온은 다르며 우리 기후는 그 중 온도편차는 커서 우리 환경에 적응할 수 있는 식물소재, 기술, 기법 등을 감안하여 만들어야 한다. 환경 특히 미세먼지가 문제가 될 때는 사실 어느 것보다도 도시녹화가 필요하기에 옥상녹화, 입면녹화가 절실하다. 그러나 옥상녹화는 태양광에 밀리고, 입면녹화에는 환경, 기술, 채광문제가 있다. 태양광도 중요하지만 녹화도 중요하므로 이를 총체적 조정할 수 있는 컨트롤 타워가 없어 아쉽다.


조정과 협조

바로셀로나의 도시디자인은 어떠한가? 차도보다 보도 폭이 더 넓고, 가로변은 대부분 5-6층 정도의 합벽된 건물로 한 블록에서 조화되고, 전체적으로 스카이라인은 정돈되어 있다. 가로변으로는 수백 년 된 건축물, 그것도 화려한 장식이 있는 건축입면으로 가로경관을 구성하고 있고, 1층은 상가 그 이상은 대부분 사무실 주거공간이다. 이에 반해 우리 서울은 어떠한가? 가로변 상가건물은 세계 어디서나 볼 수 있는 건축입면으로 건물주의 자긍심보다는 경제적 이익을 최우선으로 한 건물이 주로 가로경관을 구성하고 있다. 거의 전 층이 상가로 아직도 정비되지 않고 혼잡스럽거나 정비된 곳은 너무 획일적인 간판으로 건물입면을 덮고 있다. 정돈되지 않은 스카이라인은 가로경관은 악화시킨다.

만약 1층만 상가를 할 수 있다면? 규제는 확실하게 하면서 나머지는 개인이 할 수 있도록 한다면 아마도 최소한 나아질 것으로 확신한다. 도시혼잡을 피하기 위해 과감히 차도를 줄이고 지금처럼 보도를 확대하는 것으로 추진하려고 하는데 다른 부처의 협조가 상당히 어려워 정책사업 외에 일상 사업으로는 추진할 엄두를 내지 못하는 듯하다. 서울 자체가 광대하여 전면적인 도로 축소는 어려운 점이 있지만 대중교통이 잘 되어 있으니 일부 제한적인 공간이라도 차를 위한 도시가 아닌 사람을 위한 도시로 만들기를 바란다. 이는 단지 서울시만의 노력이 아닌 타 부처의 협조가 절실히 필요하다. 수년 전 시에 업무를 보러 가면 주차가 가능하였지만 현재는 불가피한 경우가 아니라면 대중교통을 이용하여 시내를 들어간다. 그 효과가 천천히 나타나는 것이다. 서울시의 정책에 대해 다른 부처에서 도와주어야 서울시민 나아가 국가가 잘 살 수 있기에 다른 부처의 적극적인 협조가 필요하다.

0언제부터 우리가 그렇게 차만 타고 다녔는가? 어지간한 거리는 걸어서 다닌 것이 불과 몇 십 년도 되지 않았다. 바르셀로나가 수많은 관광객이 오는 것은 어쩌면 비교적 온화하한 기후, 깨끗한 환경, 녹지 외에 ‘다름’과 ‘물가’가 아닌가 한다. ‘다름’의 경우 유럽이 아닌 아시아 등 다른 내륙권 국가에서, ‘물가’는 유럽국가에서 매력을 느끼는 것은 아닐까 한다. 좋은 정책을 수립하여도 많은 이해관계로 추진이 어려운데 이를 종합적으로 조정할 수 있는 것이 있어야 할 것이다.


진정 배워야 할 것

수년 전 두바이는 우리에게 정말 가보아야 할 곳이라며 너도나도 앞 다투어 두바이를 갔지만 두바이의 모델이 정답이라고 할 수 있을까? 기록갱신은 더 이상 자랑인 시대는 지났는데도 아직도 우리 주변에서는 높은 타워를 세우고자 한다. 초고층빌딩, 모래먼지로 온통 황색인 도시, 아무도 걷는 텅 빈 가로, 더워서 에어컨에 기대어 문도 못 연채 도시를 다니고, 차량소음도 전혀 느끼지 못하며, 가로에는 차량만 움직이는 마치 SF 영화의 한 장면 같은 도시. 사막에서 그런 도시를 만들 수 있는 것은 풍부한 재정, 정치제도이기에 가능한 것이다. 우리의 재정은 그 만큼에 미치지 못하고 우리의 제도 역시 다르다. 우리가 두바이에서 배워야 할 것은 고층빌딩, 그 엄청난 규모의 건물이 아닌 사막에서 그런 것을 하고자 하는 도전정신, 창의성, 추진력이다.

바르셀로나가 배출한 걸출한 건축가 가우디가 관광객에게 볼거리를 제공하지만 우리에게는 장인과 이름 모를 수많은 목공의 손을 거쳐 통일된 듯 보이나 조금씩 다른 다양한 한옥이 있고, 도시설계가 정도전과 많은 장인들이 만든 자연과 완벽하게 하나 되어 그 자체가 조형물인 궁, 결코 지구가 있기 전에 있을 수 없는 4계절, 그리고 오묘한 음식이 있기에 이러한 우리의 강점을 살린 쪽으로 방향을 잡았으면 한다. 밖에서 우리를 보면 우리가 가진 것은 참으로 많은 것을 알 수 있다.

현재 바르셀로나는 인구 160만의 18배가 넘은 3,000만 관광객으로 인해 상하수도, 쓰레기, 경제논리에 의한 시민들의 외곽이주 등 예기치 도시문제로 몸살을 앓고 있다. 서울 또한 2,000만 명 목표가 아닌 시 인구의 18배, 그러니까 서울인구의 10배인 1억 명 정도가 온다면, 우리도 바르셀로나처럼 관광객이 더 이상 오지 않았으면 하는 사건이 일어나길 바라는 날이 올지도 모른다. 이제부터 차근차근 시작하면 된다.
글_안영애 대표 · 안스디자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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