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녹색시선] 바나나우유의 본질은...

김수봉 논설위원(계명대학교 생태조경학전공 교수)
라펜트l기사입력2019-02-27

 

바나나우유의 본질은...




_김수봉(계명대학교 생태조경학전공 교수)



대학에서 논문심사의 계절이 끝났다. 최근 조경학관련 학위 논문심사를 하면서 늘 아쉬운 점은 논문 어디에도 조경에 대한 언급이 없다. ‘조경이 무엇이라고 생각합니까’라고 질문을 해도 너무 쉬운 질문이어서인지 묵묵부답이다. 예를 들어 생태조경을 연구한 논문에 생태는 가득한데 조경이 없다. 바나나우유에 우유는 없고 바나나뿐이라는 말이다. 바나나우유의 본질은 바나나가 아니라 우유다. 요즘 논문에는 주인은 없고 객만 가득하다. 과연 우리 학생들이 조경이 무엇인지는 알고 있는지 궁금하다. 조경의 근간이 흔들리고 있다고 필자는 느낀다. 조경의 정의나 생각은 일식집 초밥만큼 다양하고 많지만 필자의 마음에 가장 와 닿는 조경의 본질에 대하여 소개해 볼까한다.

필자가 군복무 중이던 1984년 가을 한국조경학회는 모교인 경북대학교에서 열렸다는 것을 1986년 6월 전역 후 대학원에 복학하고 나서 알았다. 복학 후에 우연히 읽은 1985년 조경학회지에 실린 4페이지 분량의 <축소와 자연미>라는 교토대학 나카무라 마고토 교수의 강연 내용은 초보 대학원생에겐 신선한 충격이었다. 일단 무슨 뜻인지 잘 몰랐지만 몇 번을 다시 읽은 후 필자는 조경공부를 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던 것 같다. 이전까지 이런 내용의 강의나 책을 접한 적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세월이 흘러 다시 그 논문을 읽으니 예전과 달리 조금 더 이해가 되었다.

나카무라 교수에 따르면 조경의 가장 중요한 주제는 자연이며 이 사실이 다른 건축이나 토목과 같은 건설업과 구분되는 특징이라고 했다. 아울러 그는 조경의 가장 큰 목적은 자연재료를 사용하여 자연미를 표현하는 것이며, 자연미를 연구하는 것이 조경의 본질을 연구하는 것이라고 했다. 한편 헤겔은 미를 자연미와 예술미로 구분하면서 예술미를 고급미라하고 자연미를 저급미라고 주장했다. 이에 대하여 나카무라 교수는 미를 저급과 고급으로 구분하면 마치 자연미가 가벼운 미처럼 취급될 우려가 있기 때문에 대신 초급과 고급으로 구분할 것을 제안하였다. 이렇게 해야 초급이 결코 가볍지 않은 서로 대등한 관계로 느껴진다고 하였다. 그는 조경이 추구하는 자연미는 고급의 미인 예술미에 이르기 위해 꼭 필요한 초급의 미로서 초급이 없으면 고급도 존재할 수 없음을 강조했다. 그는 자연미를 가공의 적은 대상의 미, 즉 손을 직접 사용하는 수공의 미를 의미한다고 하였다. 조경은 건축이나 토목에 비하여 손을 직접 사용하는 일이 훨씬 많으며 손으로 하는 작업의 장점을 계속 살리는 것이 자연미를 키워나가는 것이라고 하였다. 매개를 수단이라고 생각한다면 복잡한 기계를 사용하는 것보다 간단한 원예도구를 시용하는 것이 자연미를 더 잘 표현할 수 있다고 하였다. 그는 손을 직접 사용하는 원예작업은 인간과 대상사이의 매개가 적다는 의미하며 이것을 일본문화의 특징 중 하나인 축소로 해석하였다. 그러나 경주의 월지를 보면 축소가 꼭 일본 조경문화의 특징만은 아닌 듯하다. 그는 축소를 대상과 관계의 축소로 나누고 각 3가지의 유형을 제시하였다. 즉 대상의 축소 유형으로는 도구화(진), 소형화(선), 상징화(미)를, 관계의 축소 유형으로는 형식화(진), 집단화(선) 그리고 구상화(미) 등을 말한다.


관계의 축소 매개 : 조경디자인


대상의 축소의 예

나카무라 교수는 대상의 축소가 가진 미의 특징인 상징화는 일본정원에 자주 나타나는 신이 아닌 사람이 사는 섬을 예로 들었다. 그는 이러한 일본의 원시적 상징주의 기법인 특징인 축경이 바로 대상의 축소에 해당된다고 하였다. 이러한 축경은 좁은 공간에 자연미를 끌어들이기 위한 상징화의 한 형태라고 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관계의 축소란 대상과의 거리를 줄이는 것을 말하며 복잡하고 간접적인 관계에서 단순하고 직접적인 관계로 축소되는 것을 의미한다고 하였다. 여기에서 주의해야 할 것은 거리가 가까워지는 것으로 자연미가 발견되는 것은 아니며 여기에는 반드시 매개가 있어야 함을 나카무라 교수는 강조했다. 그는 매개의 예로 일본의 문학 장르인 하이쿠를 예로 들었다. 하이쿠는 5-7-5형식의 17자로 이루어진 세상에서 가장 짧은 정형시다. 하이쿠로 자연미를 포착한 유명한 시로는 바쇼의 “오래된 연못 / 개구리 뛰어드는 / 물소리 퐁당”이 있다. 이처럼 민중의 삶과 애환을 담고 있는 하이쿠에서처럼 구상화된 자연미를 찾는 매개도 철저히 근대적 의도가 숨어있어야 함을 나카무라 교수는 강조했다. 오래된 연못이라는 자연이 존재해도 하이쿠라는 매개가 없으면 자연미를 찾을 수 없으며 그 반대로 하이쿠라는 매개가 있어도 오래된 연못이 없다면 이때도 자연미는 포착되지 않는다. 자연미를 얻기 위해서는 대상인 자연과 매개인 하이쿠 모두가 존재해야 함을 말한다. 조경이 자연미를 구체적으로 얻기 위해서는 도시인근의 자연이 잘 지켜져야 하며 아울러 조경디자인이라는 근대적인 매개가 반드시 공존해야한다.

지금까지 누구나 알고 있는 조경의 기초적인 개념에 대해서 나카무라 교수의 예전 강의를 중심으로 간단하고 쉽게 설명해 보았다. 이런 마음을 움직이는 조경의 본질이 앞으로의 조경학 석사학위나 박사학위 논문에 어느 정도는 반드시 언급되기를 바란다. 필자도 꼭 그렇게 학생들에게 논문지도를 할 것이다. 그래서 바나나우유의 본질은 바나나가 아니고 우유임을, 생태조경의 본질은 조경임을 우리 모두 잊지 말고 기억하자.
글_김수봉 교수 · 계명대학교 생태조경학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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