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녹색시선] 스마트도시 – 제러미 벤담의 파놉티콘

진양교 논설위원(㈜CA조경기술사사무소 대표)
라펜트l기사입력2019-03-03

 

스마트도시 – 제러미 벤담의 파놉티콘




_진양교(㈜CA조경기술사사무소 대표
홍익대 건축도시대학원 조경설계전공 교수)



제러미 벤담 Jeremy Bentham은 18, 9세기 영국의 유명한 철학자이자 법학자, 경제학자이고, ‘최대다수의 최대행복’라는 공리주의를 표방한 사람으로 우리에게 잘 알려져 있다. 최대다수의 최대행복이라는 캐치프레이즈 속에는 입법자 또는 조직의 리더는 일부의 특권적 이익이 아니라 국민 전체의 이익, 즉 ‘공적 효용public utility’를 위해 일해야 한다는 의미가 담겨있다.

파놉티콘 Panopticon은 벤담이 고안한 일종의 건축 양식인데 ‘소수의 관찰자가 자신을 드러내지 않고 모든 피관찰자를 감시할 수 있는 기능의 건축’을 말한다. 한마디로 감옥을 위해 고안된 건축양식으로 볼 수 있다. 파놉티콘의 pan은 판테온(pantheon; 만신전 萬神殿) 등의 이름에서 그 연원을 유추할 수 있듯이 ‘모두’ 또는 ‘다’를 뜻하는 그리스어이고, opticon은 ‘본다’라는 뜻의 어휘이다. 파놉티콘은 이미 단어 속에 ‘진행되는 모든 것을 한눈에 파악한다’라는 의미를 함축하고 있는 셈이다.

벤담은 파놉티콘을 이론으로만 제안한 것이 아니라 실제 건축물로 구현하려 했다. 벤담의 파놉티콘 설계를 보면, 감시자가 있는 곳의 중앙부 원형공간이나 원형탑을 중심으로 감옥의 모든 방은 원형경계로 배치된다. 따라서 감시자의 위치에서는 모든 방들의 모든 수형자 또는 피감시자가 어떻게 행동하는 지를 한눈에 파악할 수 있다. 반면 수형자는 감시자가 자기를 보는지 안 보는지 알 수 없고, 때문에 감시자가 없어도 수형자는 감시를 받고 있는 것으로 짐작할 수밖에 없는 구조이다. 이 배치는 복층으로도 가능하다. 각 층에서 중앙감시공간을 중심으로 원형감옥의 모든 방들을 한눈에 보는 구조는 동일하다.

파놉티콘은 벤담이 러시아에 있는 동생의 조선소 공장에 들렀을 때 착안한 것으로 알려진다. 벤담은 조선소에서 소수의 숙련된 노동자가 수많은 비숙련 초보 노동자의 작업을 효율적으로 감독하는 것을 보고 힌트를 얻었다. 숙련노동자는 소수이면서도 조선소내 공장의 독특한 내부 작업 공간 때문에 비숙련 노동자들을 쉽게 지도하고 관리하고 있었던 것이다. 벤담의 파놉티콘은 효율적 감시라는 목적 외에도 열악한 당시의 감옥의 구석구석을 제대로 들여다보고 위생적으로 관리한다는 공익적 목적도 담았다. 더 나아가서 벤담은 파놉티콘의 건축양식이 공장이나 감옥뿐 아니라 병원이나 학교 등 다른 환경에서도 통제와 관리를 필요로 하는 한, 얼마든지 적용이 가능하다고 보았다.

파놉티콘은 벤담의 열정에도 불구하고 벤담의 생전에는 실제로 구현되지 못했다. 하지만 시간에 꽤 지난 뒤에는 파놉티콘 개념이 곳곳의 공공건축물에 적용되었고 그 실효성을 인정받았다. 일부이긴 하지만 현대에도 파놉티콘의 양식이 아직 적용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서울 강북의 동숭동에 있는 서울대병원이나 분당서울대병원의 본관은 파놉티콘의 양식을 그대로 적용하고 있는 예이다. 중앙부에 간호실이 있고, 3개의 중복도 날개가 간호실을 중심으로 펼쳐져 있다. 중앙의 간호사실에서 병동을 수시로 모니터링할 수 있고 응급시에도 중복도를 통해 해당 병실에 빠르게 접근해 위기상황에 쉽게 대처할 수 있도록 되어있다. 간호사를 감시자로, 병동환자를 피감시자로 본다면 감옥의 구조나 병원의 구조는 동일하다.

파놉티콘은 격리와 관리를 요하는 특정의 그룹을⼀필요하다면, 선한 다수가 차지하는 사회로부터 떼어내어⼀효율적으로 감시, 감독, 관리하여 다수의 행복을 유지하겠다는 공리적인 목적에서 출발하고 있다. 언뜻 보면 파놉티콘의 본래 의미와 취지는 이렇듯 나쁘지 않다. 미셀 푸코가 [감시와 처벌: 감옥의 역사]에서 벤담의 파놉티콘을 다시 들여다보며 부정적인 면을 속속들이 까발리기 전까진.
글_진양교 대표 · CA조경기술사사무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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