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 주상절리대 경관설계공모로 본 조경설계의 방향성

조경이상 비평토크쇼 ‘조경난상’ 개최
라펜트l기사입력2019-03-05

 


이호영·이해인 HLD 소장, 정해준 계명대 교수, 김아연 서울시립대 교수, 이수학 아뜰리에 나무 대표, 송민원 엠버블유디랩 소장, 최영준 랩디에이치 소장


다양한 비전, 지식, 희망을 공유하는 열린 조경전문가들이 모인 ‘조경이상’의 비평 토크쇼 조경난상이 지난 26일(화) 동심원 갤러리에서 열렸다.


이번 토크쇼는 지난해 9월에 있던 ‘제주 중문대포해안 주상절리대 경관설계 국제공모’를 주제로 작품을 소개하고 비평하는 시간을 가졌다.


행사에 참석하지 못한 김영민 서울시립대 교수는 영상을 통해 “현상설계공모 이후 당선자와 당선자에 대한 담론만 있을 뿐이다. 공모전의 역사를 보면 당선작뿐만 아니라 당선이 되지 않은 작품이 큰 영향을 미치는 경우가 많다. 이 자리는 당선작과 함께 당선되지 못한 작품들에 대한 이야기들을 통해 가능성을 발견하기 위해 마련된 자리”라고 소개했다.


이날 토론참여자는 ▲김아연 서울시립대 교수, 이수학 아뜰리에 나무 대표, 송민원 엠버블유디랩 소장(당선작 수평적 깊이와 트멍 경관(Thickened Horizon and Landscape of Crevice)) ▲이해인·이호영 HLD 소장, 정해준 계명대 교수(가작 LIVING Heritage, 인건이 기정의 기억과 조망) ▲최영준 랩디에이치 소장(기둥위의 여정(A Discovering Journey Across Authentic Landscape))이다.


패널로는 안동혁 대림산업 차장, 이남진 (주)동심원조경기술사사무소 실장, 조용준 (주)CA조경기술사사무소 소장이 참여했으며 백종현 (주)에이치이에이 대표가 사회를 맡았다. 참석자들은 개설된 오픈채팅을 통해 질문하는 방식으로 진행됐다.



이남진 (주)동심원조경기술사사무소 실장, 조용준 (주)CA조경기술사사무소 소장, 안동혁 대림산업 차장


원칙과 철학을 세운 디자인


당선작 ‘수평적 깊이와 트멍 경관’은 당선작은 제주 고유의 지질경관을 재구성하는 새로운 문명의 과정을 통해 수평적 깊이로서 공원을 제안한다. 부지를 덮고 있는 흙을 걷어내 응고된 지구의 속살을 수평적으로 드러냈으며, 용암이 흘러내린 방향으로 주상절리의 수평과 수직면을 연결해 하나의 덩어리로 드러냈다.


이수학 대표는 설계시 세운 두 가지 원칙을 소개했다. 우선, 주상절리의 수직과 수평이 만나는 지점을 파 길게 이어진 주상절리의 굴곡을 드러내는 것이다. 인간의 스케일감각으로 전부 드러낸다 하더라도 실은 제한적으로 보일 수밖에 없지만 그럼에도 이 굴곡이 “대상지 안에서 이것이 가장 강력하게 보여줄 수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드러난 돌의 지평선과 바다의 수평선이 만나게 하려는 의도도 담겨져 있다. 두 번째는 흘러내리는 것을 드러내는 것이다. 용암이 흘러내린 방향성을 드러내기 위해 주차장 쪽의 일부 포장을 들어내기도 했다. 그리고 드러낸 것들의 틈(트멍)에서 자라는 식생의 변화를 전략으로 내세웠다.


“땅 속에 감추어진 클링커층을 어떻게 드러내느냐에 따라 디자인이 변경될 수 있을 텐데 어떻게 풀어나갈 계획인가?”에 대한 질문에 김아연 교수는 지질학자와의 협업을 통해 땅을 파면 오차범위 3m 안에서 무조건 클링커층이 드러날 수 있다는 확신이 있었음을 밝히며 “디자인이 디테일하지 않기 때문에 측량과정에서 설계안의 철학과 원칙, 그리고 방향성을 잃지 않는다면 본질이 사라지지 않을 것이라 생각했다”고 전했다.


조용준 실장은 “현상공모를 통해 기대하던 그림들을 실제 현장에서 볼 수 없을 때의 실망감이 있기 마련인데 먼저 원칙을 정하고 이를 디자인으로 풀어내는 방식이 전략적인 것 같다”고 평했다.



덜어낸 설계, 촘촘한 설계


거대한 시간을 거대한 스케일로 표현해 자연이 주는 숭고미를 드러내기 위해 많은 것을 덜어낸 당선작과 달리 다른 안들은 촘촘한 설계를 했다. ‘LIVING Heritage’는 제주도 대포마을만이 가지고 있는 인문학적 내용을 담아 그곳만의 유일한 주상절리를 표현한 설계안이다. ‘기둥위의 여정’은 주상절리뿐만 아니라 다양한 경관들을 경험들을 할 수 있도록 지형을 조작하고 형태가 확실한 설계를 도입했다. 이러한 차이는 곧 조경설계의 방향성에 대한 고민으로 이어졌다.


이수학 대표는 “보통 설계할 때 스스로가 어떤 설계를 했다라는 것을 이야기하려고 한다. 어떤 경우에는 꼭 필요하지만 어떤 경우에는 드러내지 않는 것도 설계방법일 수 있다”고 말했다. 예를 들어 당선작에서 큰 논을 도입했다. 설계에서는 넓은 부지에 들어간 논이지만 농부들이 1년 내내 일하며 만들어내는 풍경의 변화를 유도하는 것이다.


당선작은 지구가 처음 만들어지던 때로 돌아가서 그 시간을 드러내자는 것으로 “아주 긴 시간, 도저히 우리가 감각할 수 없는 시간까지 가보자라는 것이 우리의 전략이었고 그 시간의 길이나 깊이가 컸기 때문에 형태적인 것은 그렇게 중요하지 않았다”고 전했다.


김아연 교수도 “무엇을 하는 것보다 안 할 수 있는 용기가 더 크다. 무언가를 더하는 것에 비해서 무언가를 빼는 것을 조경에서 많이 못했기 때문에 설계가 과해지는 경향이 있다. 결국 디자인이 무엇인가에 문제로 귀결이 될 텐데 우리는 디자인의 지평을 넓히는 방향으로 소거하는 방법을 사용해 설계를 했다는 생각이 든다. 이 대상지는 철학적 생각이 필요하다고 생각했고, 사유를 공유할 수 있는 파트너와 이 기회를 통해 제주도에 대해 어떻게 질문을 던질 수 있는가가 훨씬 더 중요한 과정이었다”고 설명했다.


반면 이해인 소장은 “인문학적 이야기들에 집중했던 이유는 서사를 풀어내기 위한 것이 아닌 본질적이고 실제적이지 않은 것들을 다루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라며 “사람들이 즉각적으로 느끼는 것들이 중요하지만 그것이 사회적으로 어떠한 효용이 있는가도 중요하다. 따라서 실제적 관계에 주목하는 것이 지나치게 순수해진 숭고미를 쫒는 것보다 중요할 수 있다”고 말했다.


조용준 소장도 “조경디자인의 역할이 형태를 만들고, 공론화 시키고, 사람들에게 경험하게끔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결론적으로 우리는 무언가를 만들어야 하는데, 철학적으로, 하나의 글처럼 정리되는 경향이 많이 보인다”고 덧붙였다.


이에 대해 김아연 교수는 “디자이너의 중요한 역할은 가장 최적의 형태를 만드는 것이겠지만 형태가 얼마나 고정적이어야 하느냐에 대한 것은 또 다른 문제”라고 피력했다.


이수학 대표는 “조경설계는 ‘디자인의 극한’ 또는 ‘디자인을 어떻게 해석하느냐’ 두 가지 방향으로 가고 있는 것 같다. 우리가 선택한 것은 후자”라며 “사람들은 편리함을 이유로 감각을 점점 퇴화시키는 방향으로 가고 있다. 그러나 조경설계는 자연과 붙어있기 때문에 감각을 극대화시키는 방향을 지향해야 되지 않을까”라고 의견을 내놨다.


안동혁 차장은 “덜어내야 한다는 콘셉트나 방향에 공감하지만 실제설계를 하다보면 덜어낸 설계안으로 추후 조성하기가 더 어렵고 비용이 많이 든다. 이러한 설계안을 행정에서 받는다면 똑같은 안전난간과 포토 스팟이 생길 것이다. 이러한 것에 대해 설계적인 부분에서 방지할 수 있는 방안이나 어떻게 소통해 디테일한 디자인으로 풀어낼 것인가에 대한 내용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아울러 “한국적 특수성으로 감성적인 부분을 건드려야 이긴다는 공감대가 있다. 여기에 맞춰가면서 조경의 수동성을 우리 스스로가 굳혀가고 있는 것이 아닌가에 대한 고민도 필요하다”고 말했다.


조경설계의 인문학적 접근


한편 ‘LIVING Heritage’는 이호영 소장은 인문학적 접근방식과 설계안 대한 다양한 의견들을 물었다.


정해준 계명대 교수는 “경관은 스펙트럼이 넓다. 경관이란 인간, 환경, 자연과의 상호작용에 대한 결과물이다. 인간이 장소에 있으면서 역사, 자연, 생태적 자연이 어떻게 공생해왔느냐에 대한 이야기가 있다. 이 기억들을 미래세대로 공유할 수 있도록 할 것인가에 대한 고민이 인문학적 접근을 가능케 했다”고 설명했다.


이남진 실장은 “조경설계하면서 역사적 공간이나 시간상 의미 있는 공간을 다룰 때 인색한 것 중 하나가 콘텐츠를 설명하는 것”이라며 “당연히 해야 하는 인문학적 스터디를 충실히 하고, 이를 설계에 반영해 일반인들에게 직접적으로 설명된 점이 좋았다”고 말했다. 뿐만 아니라 HLD의 안은 인문학적 접근으로 얻은 제주도만의 색, 마을만의 색깔을 물성으로 표현하려고 한 것이 의미있다고 덧붙였다. 아울러 당선작이 한 편의 시나 산문을 보는 것 같아 좋은 면도 있으나 물성으로 드러나는 측면에서 실질적으로 보여주는 것이 없어 아쉽다고 전했다.


최영준 소장은 “인문학적 배경이 조경설계의 소스가 되어 물리적으로 드러내는 것은 좋지만, 주객이 전도된다면 백과사전 같은 안이 될 수 있다”고 덧붙였다.




글_전지은 기자 · 라펜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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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사진_정남수 기자 · 라펜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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