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12월, 한국판 에덴 프로젝트 [국립생태원] 개관
1989년 8월 국가장항사업단지 조성 발표 후 2007년 9월 국립생태원 조성 기본 계획 수립 1단계연구가 시작되고, 2009년 10월 국립 생태원 건립 마스터플랜 실시설계 완료 후 2013년 12월 개관식 행사를 하였다.
국립생태원은 2009년 10월 마스터플랜 발표이후 국내 주요잡지인 주간 한겨레21이 2009년 10월 27일자에 [한국판 에덴 프로젝트 ‘서천 국립생태원’ 생명의 놀이공원을 꿈꾼다], 월간 신동아 2009년 12월 3호가 [현대판 세계 각지 식물이 다 모인 ‘노아의 방주’]를 특집으로 다룰 만큼 조성 전부터 한국판 [에덴 프로젝트]를 꿈꾸어 왔다. 그 당시 전국의 식물원 정원사들도 원대한 꿈을 가지고 여러 가지 형태로 개관 전부터 참여하였다. 혼자 꾸면 꿈이지만 함께 꾸면 현실이 된다는 말이 무색할 정도로 퇴색된 불편한 진실은 국립생태원 홈페이지를 항해하다보면 드러난다. “생태연구를 선도하고 생태가치를 확산하는 생태연구・보전・교육・전시 기능의 생태종합기관”을 표방하는 국립생태원과는 달리 [에덴 프로젝트]가 매년 제작하는 안내책자(The Guide)와 연례보고서(Annual Review)를 보면 “사람과 식물이 더불어 살아 움직이는 콘서트 홀. 에덴 식물원이라는 자연 상태의 장소를 탐험하고, 미래가 어떠한 모습을 닮아 가는지를 알고자하는 공익 자선단체”이라고 이야기할 정도로 그 방향이 다르다.
2001년 [에덴 프로젝트] 개원시 5월 22일자(한겨레21)의 관련 기사의 제목은 [에덴 동산은 상술이었나]의 다소 비판적인 내용들이었다. 그러나 10년이 지난 2009년 10월 27일자(한겨레21)의 특집의 내용들을 보면 성공적인 프로젝트로 칭찬하였다. 에덴 프로젝트의 공동설립자이자 최고경영자는 프로젝트에 대해 “주민이 행복하지 않은 프로젝트는 성공할 수 없다”고 말했다. 국립생태원이 연구자들을 위한 연구 기능이 상당한 비중을 차지하는 것에 대해서는 “재미있는 과학센터를 본적이 있나? 그들은 대중과 이야기하는 방법부터 배워야 한다. 과학을 재미있는 것으로 만들고 싶다면, 대중에게 설명하는 일을 과학자들에게 맡겨두어서는 안 된다. 과학은 너무나 중요하다.”라고 답변하기도 했다. 그리고 에덴 프로젝트의 경험 속에서 “우리가 100% 정답을 가지고 있다고 말할 수 없다. 다만 모든 일의 대전제는 지역사회의 참여이다. 지역사회가 함께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아무 일도 할 수 없다. 대자연의 세계를 이해하는 것은 앞으로 50년간 인류에게 가장 큰 도전이 될 것이다. 이 말만은 꼭 하고 싶다. 제발 평범한 생태원을 짓지 마라. 한국의 멋진 야망에 어울리게, 새로 태어날 생태원은 정말로 최고가 되어야 할 것이다. 새로운 한국의 상징물로 태어나기를 기대한다.”며 인터뷰를 마무리하였다. 그렇다면 에덴 프로젝트의 팀 스미트(Tim Smit)는 누구인가?
출처: 국립수목원
헬리건의 잃어버린 정원 (The Lost Gardens of Heligan)
팀 스미트(Tim Smit)는 에덴 프로젝트의 공동설립자이자 최고경영자이다.
지금으로부터 40년이 조금 못되는 1984년, 라디오에서 흘러나온 “깊은 밤의 고독, 그대 없는 밤이 너무도 외로워요. 추억을 생각하게 하는 꿈들. 오, 음악을 들려주세요.”라는 노래가 사춘기 소년의 마음을 설레게 하였다. 영국 오페라가수 출신인 루이스 터커(Louise Tucker)의 Midnight Blue(1982년)라는 노래다. 지금이야 대중음악에 클래식 음악의 일부 구간을 잘라서 편곡하는 샘플링(Sampling)이 진부하지만 그 시대에는 아주 획기적인 편곡 방식이었다. 베토벤의 32개 피아노 소나타 중 [비창] 제2악장의 멜로디에 가사를 얹은 ‘Midnight Blue’라는 곡을 찰리 스카벡(Charlie Skarbek)와 공동 프로듀서한 사람이 바로 키보드 주자인 팀 스미트(Tim Smit)이다.
몇 년 전부터 국내의 정원사들은 영국의 풍경식 정원에 많은 관심을 보이고 있다. 그래서 그라스 및 겨울정원 답사를 위해 Kew라는 세계 최고의 식물원을 필두로 수많은 정원들을 보기 위해 영국으로 가곤 한다. 아직까지 국내에서는 이끼정원(Moss Garden)과 양치식물원에 대한 인기가 없어 주제원에 대한 답사는 영국보다는 미국 동부에 있는 세계 최상위 26개 대학중 하나인 유펜(U Penn / University of Pennsylvania)에서 운영하는 모리스 수목원(Morris Arboretum)의 주제원 [The Fernery]에 가서 열광하곤 한다. 하지만 개인적으로는 우리나라에서 온실에 양치식물원을 도입하고자 한다면 미국 시카고의 Garfield Park conservatory 의 조성 방식을 권한다. 미국의 두 곳을 비교해서 이야기할 기회가 있으면 좋겠지만 이정도만 하고자 한다.
인터넷에서 이끼정원(Moss Gargen)과 결합된 Show 경관 연출을 위한 자료를 검색해보면 아래의 사진들을 자주 볼 수 있다. 이곳이 팀 스미트가 아티스트 슈 힐(Sue Hill)과 피터 힐(Peter Hill)과 함께한 복원한 프로젝트! 바로 헬리건의 잃어버린 정원(The Lost Gardens of Heligan)이다.
헬리건의 잃어버린 정원(The Lost Gardens of Heligan)
에덴 프로젝트를 총괄하기전 팀 스미트는 영국 콘월에 위치한 400여년 넘게 이어온 트레마인 가문의 18세기에 만들어진 정원의 복원에 관심을 가졌다. 트레마인 가문의 20여명의 정원사들이 제1차 세계대전의 참전하고 그 과정에서 죽음으로 인해 돌아오지 못하자 정원사 없는 정원은 잡초 속에서 폐허가 되었다. 1990년부터 시작된 복원 프로젝트는 1992년 4월 17일에 일반인에게 공개되었다. 헬리건의 잃어버린 정원은 빅토리아 시대의 정원사들이 남긴 기록과 사용하는 도구와 기법으로 복원된 작업이 매우 인상적이다. 이곳은 유럽에 남아있는 유일한 파인애플 재배지로도 유명하다. 이곳에서 생산되는 파인애플은 190만원이라는 거액으로 판매되고 있다.
Oldest Botanical Gardens in The World 기록을 통해 본 식물원의 역사와 현황
www.oldest.org라는 사이트가 있다. 여기에서는 [9 Oldest Botanical Gardens in The World]라는 세계 식물원의 역사를 볼 수 있다. 그것들을 정리하여 아래와 같이 간단하게 표로 만들어 보았다.
위의 표에서 보듯이 식물원의 역사는 의사가 되기 위한, 피사 식물원(1544년), 파도바 식물원(1545년), 몽펠리에 식물원(1593년)은 약학과 의학 대학생의 실습용 정원이었던 16세기 이후의 이야기부터 시작할 수 있다. 최근의 공식적인 통계는 전 세계적으로 수목원을 포함해 2,122개의 식물원이 있다. 우리나라의 경우 (사)한국식물원수목협회에 가입된 회원사들은 국공립은 28개, 사립은 19개, 학교는 3개, 기타 3개 등 총 50개이며, 조성중이나 아직 가입하지 않은 국공립식물원들과 사립수목원들이 그 숫자는 더 많다. 몇 년째 우리나라는 정원 열풍이 뜨겁게 뒤흔들고 있다. 국가정원 2개, 지방정원 1개소 외 16개 설계 및 조성, 민간정원 25개, 공동체정원 4개 등 수목원정원법에 의한 정원의 분류로 볼 때 총 46개의 정원이 등록되었거나 조성중이고, 산림청의 정원사업이 확대되고 있기에 앞으로 더 늘어날 것으로 본다.
세계 식물원의 역사를 보면 이탈리아의 피사 식물원(Orto botanico di Pisa)이 1544년에 설립되었고 올해로 476년의 세월을 이어오고 있다. 우리나라 식물원의 역사를 보면 창경원 식물원이 1909년에 개원하였고, 1962년 첫 삽을 떠서 2010년에 일반인에게도 개방한 국내 1호 식물원이라는 천리포수목원의 경우를 보면 올해로 59년째이다. 전 세계 식물원 역사의 10분의 1의 정도의 세월 속에서 자리잡아가고 있으니 우리나라 식물원 역사는 아주 짧다고 볼 수 있다. 최근 자료인 도널드 A. 락코우(미국 코넬대학교 원예학과) 교수의 [공공정원이란 무엇인가?]에서 공공정원의 개념을 보면 식물원(Botanical Garden), 수목원(Arboretum), 전시정원(Gardens), 역사적인 경관들, 동물원, 영리목적의 관광지(월트디즈니월드, 벨라지오 호텔) 등 여섯 가지로 구분하였고, 공공정원을 “교육, 연구, 보존 및 공공 전시를 위해 식물을 수집, 유지하는 사명을 가지고 있는 기관”으로 정의하면서 그 경계의 교집합에서 정원이라는 단어를 끄집어내었다.
공공 예술가 Tim Smit 의 상상력을 통해 본 식물원의 역할들
나는 에덴 프로젝트를 방문한 적은 없지만 그곳에 대한 무한한 애정을 가지고 있다.
세미원 프로젝트에 참여하면서 2007년 말 이런저런 이유로 인해 조성중인 세미원의 향해를 점검하고 그 비행의 안전한 착륙을 위해 고민들을 해야 했다. 그리고 주변 분에게 에덴 프로젝트에서 그간 매년 발행된 안내책자(The Guide)와 연례보고서(Annual Review) 번역을 부탁하였다. 2005년부터 2009년까지 발행된 공식 자료들을 보면서 느낀점이 매우 많았다.
안타깝게도 에덴 프로젝트에 대한 외형적인 면은 그다지 관심의 대상이 아니었다. 아니 막대한 예산과 고급인력이 투입된다면 나도 할 수 있다는 자만심이 있었던 객기 많은 젊은 시절이었다. 번역자가 매주 이메일로 보내주는 안내 책자와 연례 보고서의 번역 결과물을 한 줄 한 줄 읽어 내려가면서 느꼈던 그 수치심은 아직도 얼굴이 화끈거린다.
2008년-2009년 에덴 프로젝트의 한해 수익은 한화로 390억 원이었다.
총지출은 380억 원으로 위의 표를 보면 [자선사업과 공공교육]에 72%인 273억을 지출하였다. 정말 이것이 가능한 일인가? 프로젝트 사업의 수입을 기초로 연중 특정일에 16세 이하 학생들을 무료로 초대하여 식물의 기능과 역할을 설명하는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자연과 환경에 대한 경외심과 애정을 일깨워주는 환경교육을 한다. 식물원도 연구/보전/전시/교육의 기능을 뛰어넘는 공익 자선단체로 확대될 수 있다는 것이다.
에덴 프로젝트는 조성 과정부터 대부분의 공정을 지역 주민들을 훈련시켜 일을 진척시켰다. 식자재 구입 원칙은 지역 구매 비율이 82%일 정도로 일순위이다. 그 다음이 품질이다. 지역에서 구할 수 없는 것들만 다른 지역의 생산물을 구입한다. 또한 직원의 대다수가 지역 주민이다. 식물원도 이러한 지역의 가치와 1년 수입이 390억 원이라는 영리를 추구하는 사회적 기업으로 확대될 수 있다는 것이다.
에덴 프로젝트는 식물의 명찰이나 설명판이 없다고 한다. 설립 근거 자체가 사람과 식물이 더불어 살아 움직이는 콘서트홀이기에 명찰이나 설명판을 해서는 안 된다고 말한다. 담당 직원인 해설가들이 직접 설명하고 이야기하는 전 과정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식물원과 수목원을 이야기하면 식물의 동정을 위해 명찰 표기만 강조하고 관람객들과 대화를 등한시하는 우리의 현실과는 너무 다르다.
그러한 현실은 어디에서 기인한 것인가? 공공 예술가 Tim Smit 의 상상력을 통해 현실이 된 에덴 프로젝트를 통해 본 식물원의 역할들은 공익 자선단체와 사회적 기업으로 나아가야 한다고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