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마트시대 공원은 ‘창의’가 더해진 공간이어야 한다”

[인터뷰] 이두열 EM디자인 대표
라펜트l기사입력2021-09-28

 


EM디자인 이두열 대표와 이윤서 사원

스마트시티의 새로운 지평 ‘제5회 월드 스마트시티 엑스포’가 지난 8일부터 10일까지 고양 킨텍스에서 개최됐다.

특히 이번 엑스포 LH관에서는 메인전시로 EM디자인(대표 이두열)이 ‘메타버스 자전거’를 선보여 관람객들에게 인기였다. 메타버스 자전거는 동탄2(5-1공구)지구의 도로를 주행하는 것뿐만 아니라 하천변, 산지, 노을, 강우 등 다양한 환경을 구현해 현실감을 높였다.

또한, 다른 사용자들과 함께 레이싱에서 펼칠 수 있어 더 높은 운동효과를 얻을 수 있다. 가상쇼핑몰을 방문하거나 역사, 문화, 영화 등의 콘텐츠와 융합해 더 많은 재미를 얻을 수 있었다.


메타버스 자전거의 탄생

사실 이번 메타버스 자전거는 ‘재미’로 탄생했다. 처음에는 BIM 설계 검토과정에서 설계 안을 보여주기 위한 방법이었다. 드론이 동탄 곳곳을 날아다니는 방식으로 선보였고, 이후 자전거로 바꾸며 게임적 요소를 더한 것이 LH스마트기술부서의 선택에 의해 전시까지 이어진 것이다.

“설계를 한 사람은 본능적으로 그 공간 안에 들어가 보고 싶어하며 자전거가 최적이었다. 스스로 자전거 페달을 밟으면서 달리니 운동도 되고 재미도 있다”

메타버스 자전거는 BIM 단계(설계), 디지털트윈 단계(관리), 메타버스 단계(이용)를 거쳐 탄생했다.

우선 ‘BIM 단계’에서는 동탄2지구를 드론으로 측량하고, GIS로 지형, 지맥, 우수, 식재지반, 관로 등 각종 환경정보를 분석·설계하고, 이후 시설물과 수목 모델을 제작해 건축, 구조물, 시설물, 수목 등을 설계했다.

‘디지털트윈 단계’에서는 우선 BIM 검토용 뷰어를 제작해 드론뷰, 스텔스 시점, 아이레벨, 차량시점 등에서 공간의 곳곳을 검토하고, 충격센서(안전성 검토), 수량센서(물 절약), 소음센서(범죄예방), 습도센서(자동관수), 조도센서(음영분석), 적외선센서(공원 이용자수 및 동선 파악) 등 외부공간에 설치된 각종 환경센서과 BIM을 연동해 통합적이고 효율적인 관리시스템을 실험해보았다.

마지막 ‘메타버스 단계’에서는 사실적 디지털트윈과 실험적 가상공간을 융합한 공간을 탄생시켰다. 이용자는 자전거로 동탄2지구의 하천변, 도로, 공원 내부, 산지형 MTB 코스 등 다양한 공간을 체험할 수 있고, 시간과 기후에 따라 노을경관, 야간경관, 강우경관, 겨울경관 등을 느낄 수 있다. 비가 오면 빗소리가 들리고 빠르게 달리면 바람이 나온다. 숲으로 들어가면 피톤치드액을 방출하는 것도 가능하다. 자전거 곳곳에 노출되지 않게 센서가 달려 모든 상황을 감지한다.

다양한 자전거 레포츠 체험도 가능하다. 인공지능 자전거와 경쟁과 자율주행, 서버를 통한 참가자들과의 자전거 레이싱도 가능하며, MTB 기본기술인 버니 훕 점프나 현실에서는 어려운 백플립 등 다양한 기술도 해볼 수 있다. 가장 자전거 X-게임 공간에서는 점프대, 고공 점프대, 장애물 등이 있어 고난도의 도전을 할 수 있다.

캐릭터 특수효과를 이용해 역사, 문학, 영화의 간접 체험도 할 수 있다. 선보인 공간의 제목은 ‘스크루지의 크리스마스 캐럴’로, 스크루지 이야기 속 마을의 우유배달부가 되어 곳곳을 다니며 동화 속 마을을 체험할 수 있도록 했다. 

기업 소개와 판매, 학습, 체험기능도 탑재돼 있다. 메타버스 가상회사를 방문해 견학을 하고 교재를 구입하는 등 가장 경제활동을 체험할 수 있고, Flock AI 기초이론을 통한 물고기와 조류 체험도 할 수 있다.

‘제5회 월드 스마트시티 엑스포’에 전시된 메타버스 자전거


사람들이 ‘호감’을 갖는 조경공간

스마트시티 엑스포 행사장을 둘러보면 건설업체가 하나도 없었다. 전부 IT업체였다. 그런데 건설업체가 선보인 메타버스 자전거가 단연 인기였던 이유는 무엇일까?

이두열 대표는 그 이유가 ‘조경’에 있다고 말한다. 지형을 만들었고 나무가 있으며 거리를 누비는 주변의 사람들이 호응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심지어 전시를 하고 있던 다른 IT 업체들이 방문해 지형과 나무를 어떻게 구현했느냐고 물어봤다고 한다. 

“자연과 IT가 융합되어 빛이 날 수 있었던 것이지, 아이디어 없는 IT기술만으로는 부족하다”

사람들은 자연공간에 호감을 갖는다. 그것이 가상공간일지라도 마찬가지이다. 그러나 현재 스마트 공원을 이끌어나가는 것은 IT업체이고, 기술전시장이라는 비판도 있다. 중요한 것은 기술만이 아닌 아이디어이고, 아이디어는 철학에서 나온다. 결국은 ‘공원의 목적은 무엇인가’에 대한 질문에서 시작하는 것이고, 이것을 구현하기 위해서는 융복합적 사고가 필요하다.

그렇다면 조경가들은 신기술을 활용해 현실, 혹은 가상공간에 무엇을 구현할 수 있는지를 생각해야 한다. 그리고 그것은 ‘사람들이 좋아하는 것’이어야 한다.

이 대표가 만든 프로토타입 중에는 인공지능이 사람의 움직임에 반응하는 기술을 적용해 꽃이 사람을 따라다니도록 한 것이 있다. 이런 것들은 정원의 오브제로 충분히 사용할 수 있다. DDP에서 했던 전시처럼 꽃에 불만 들어와도 하나의 야간경관을 형성하며 사람들에게 인기가 좋다. 그런데 이것이 사람에게 반응하거나 바람에 일렁인다면 더욱 재미있을 것이다.

경춘선숲길 3단계 구간은 야간 이용객으로 북적인다. 사람들은 낮에 식물만 보는 것보다 밤에 불빛과 조화되는 것을 더 좋아하고, 그것이 현실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그런 현상을 IT분야에 넘겨주고 포기하면 안 된다. 공원이지만 조명경관은 우리 영역이 아니야, 라고 할 것이 아니라 여기에 IT기술을 더해서 우리 것으로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요즘은 영역이 한정되기보다는 잘하면 다 자기 분야가 되는 것이다.

메타버스 자전거도 마찬가지다. 사람들이 호감을 갖는 요소들이 있다. 노을을 좋아하고, 점프나 턴을 했을 때 좋아하고, 비나 눈의 감성경관을 좋아한다. 이를 파악하고 적용하면 사람들의 ‘호감’을 얻는다.

싱가포르는 건물 하나를 지을 때에도 시범적으로 BIM으로 여러 개의 안을 낸 후 전시회를 열고 대중의 의견을 받아 가장 선호하는 안으로 시공한다. 이 대표의 조카가 다니는 대학교는 수업과목을 교수가 아닌 학생들의 의견으로 정한다고 한다. 필요한 과목은 신설하고, 동영상으로 대체가능한 전통적 과목은 폐강된다. 즉, 더 좋은 안을 선택하는 것은 전문가가 아닌 이제 ‘대중’인 것이다. 그렇다면 조경가는 어떤 설계를 해야 하는 걸까?
 

이성적 사고를 현실화 하는 측량과 코딩

‘모든 사람이 모터사이클 관리라고 하는 이 작업이 얼마나 철저하게 합리적 절차 속에 이루어지는 것인지를 이해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그들은 이런 작업은 일종의 “숙련된 기술”을 발휘하는 것이라거나 “기계에 대한 호감”이 발동하여 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맞는 말이긴 하다. 하지만 숙련된 기술이란 거의 순전히 합리적 이성의 운용 과정에서 나오는 것이다.’ 선과 모터사이클 관리술이라는 책의 한 구절이다. 모터사이클 운전은 ‘낭만적인 일’이지만 모터사이클 관리는 ‘시커먼 먼지, 끈적끈적한 윤활유, 근본적 현상을 꿰뚫고 있어야 하는 일 모두가 낭만적 관점에서 보면 너무도 매력이 없는 혐오스러운 것’이다. 그러나 낭만적인 일을 위해서는 합리적 이성의 운용과정인 모터사이클 관리를 해야 한다. 둘은 서로를 배제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호감이 가는 공간. 우리는 ‘감성’을 이야기하고 있지만 감성조차도 동물적인 감각에서 이성적 실험을 통해 찾아낸 이론들이 이미 나와 있다. 자기 유사성을 갖는 기하학적 구조인 프랙탈 구조나 평면을 특정 점까지의 거리가 가장 가까운 점의 집합으로 분할한 보로노이 다이어그램, 피보나치 수열, 레이놀즈 박사의 동물과 곤충의 움직임을 조사해 만든 보이드 공식 등. 이 이론들을 적용하면 사람들은 자연과 같은 호감을 갖는다. 이제 생명을 가두고 환경오염과 비용이 발생하는 인공적인 동물원과 수족관 등도 IT기술로 대체할 수 있는 시대에 살고 있다. 이것이 현상 이면에 숨은 원리 등을 논리적으로 이해하는 ‘이성적 사고’이며 현대의 조경이 과거의 조경과 달라져야 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스마트시대에 사람들이 좋아하는 조경공간을 만들기 위해서는 ‘공학적 사고’가 기초가 되어야 한다는 것이 이 대표의 생각이다.

“급한 마음에 학교에서 설계 시간에 BIM을 가르친다고 하면 레빗부터 가르치는데, 결국은 중간에 한계에 부딪혀 멈춰지는 것을 많이 봤다. 기본적인 공학과 코딩 이론이 없기 때문이다.”

이성적 사고를 위해 이 대표가 강조하는 것은 공학적 지식이다. 기본은 토목공학이고, 그 다음이 전자공학이다. 깊이 있게 파고들지 않아도 된다. 얕고 넓게 기초지식만 이해하고 있어도 된다.

토목공학을 알면 어떤 면에서 조경이 보인다. 지반조사를 해보면 척박한 암반지역에서는 콩과식물이 자라고, 토심이 깊은 퇴적부에는 심근성 식물이 자란다. 공학을 알고 나무를 알면 훨씬 더 많이 보인다는 것이다. ‘이것은 조경이 아니야’라고 할 것이 아니다. 결국 과학은 다 이어져 있고, 알면 알수록 새로운 것이 보인다.

요즘 많은 대학에서는 측량과목이 축소된 지 오래다. 조경기사 시험 중 공학부분은 대부분 포기한다. 공학을 없애야 한다는 이야기도 들린다. 그러나 이 대표는 “측량에 대한 기본지식이 있어야 GPS, 드론, 라이다 등 모든 것들을 다 다룰 수가 있다”고 강조한다. 모든 컴퓨터 설계는 좌표로 움직이고, 설계자에겐 공간지각능력이 요구되기 때문이다. 측량이 기초인 것이다.

또 하나의 핵심은 ‘코딩’에 있다. 학교에서는 드론, 레빗을 사는 등 많은 비용을 들이고 있지만 결국 코딩에서 막혀 포기한다고 한다. 그러나 “앞으로는 조경전공을 살리든 그렇지 않든 대학교육에서 코딩은 필수”라고 이 대표는 말한다.

메타버스 자전거의 배경이 되는 동탄2지구에는 교목 및 관목류가 10만 주가 넘는다. 그런데 이를 동시에 입체지형에 맞춰서 올리는 것은 불가능하기에 인공지능이 이를 대신 수행했다. 자전거가 가까이 다가갔을 때 보이는 나무와 멀리 있을 때 보이는 나무는 크기와 색이 다르게 보여야 한다. 이를 표현할 수 있었던 것도 LOD를 판단하는 코딩기술 덕분이다.

메타버스 자전거에는 자율주행기술이 들어갔다. 자전거의 자율주행은 공개된 오픈소스를 변형한 것이다. 자전거에 대한 자율주행 코드는 없어서 균형을 맞추는 등의 기능을 첨가했고 자전거가 점프하고, 뒤로 돌고, 넘어지는 기능들도 추가했다. 도시의 하늘을 나는 새도, 물고기도 호감기재를 부여해 스스로 판단해 움직이게끔(자율주행) 했다. 기초 지식이 없다면 공개된 지식의 활용과 융합이 불가능하고 더욱 폐쇄적이고 보수적으로 변해 간다.

윌리엄 켄트는 ‘자연은 직선을 싫어한다’는 말을 남겼다. 자연은 직선을 싫어할지언정 컴퓨터는 직선이 효율적이다. 이 대표는 직선만 쓴다. 이유는 간단하다. 곡선이 직선보다 100배이상의 용량을 필요로 하기 때문이다. 이 대표는 곡선을 표현해야 할 때 곡선을 미분해 직선을 만들고, 그 직선을 DB화한다. 설계 도구가 컴퓨터라면 그에 맞도록 활용해 자연을 표현할 수가 있어야 한다.

요즘은 미대에서도 코딩을 가르치고 있다. 파도가 치면 물보라가 일고 불을 피우면 화염이 일어나는 것은 인공지능이 그리는 것들이다. 이를 ‘Shader’라고 하는데, 표면상으로 무한해 보이는 효과를 만들기 위해 영화 후처리, CGI, 비디오 게임에 널리 쓰인다. 코딩 없이는 미술도 어려운 시대인 것이다. 그러나 조경은 아직도 제자리걸음이다.

이 대표는 메타버스 자전거를 구현하기 위해 컴퓨터 코딩언어 7개를 사용했다. 캐드, BIM, DB, Server, Unity, IoT 등 프로그램마다 사용언어가 전부 다르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모든 코드를 직접 만들진 않았다. 대신 프로그램끼리 대화가 가능하도록 서로의 언어를 연결시켜주었다. 그러면 사람은 일하지 않고 프로그램끼리 서로의 언어로 코드를 작성해준다. 컴퓨터 언어를 얕게라도 많이 알면 알수록 컴퓨터끼리 소통하도록 하는 것에 유리하다. 결국 IT기술의 목적은 효율적으로 일하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레빗은 캐드를 3D로 구현하는 것일 뿐 여전히 사람의 품이 많이 든다. BIM설계를 함으로써 이전보다 노동력이 더 소요된다면 그건 스마트기술이 아니다. 일이 줄어야 다른 창조적인 일을 배울 수 있다.

EM디자인은 수업성적과 기사자격증 유무에 상관없이 이 일을 진짜 좋아하는 사람을 채용한다. 가능성을 보고 투자를 한다. 야근은 거의 없다. 차라리 그 시간에 신기술을 배울 것을 독려한다. 이것이 가능한 것은 IT기술이 일을 대체하기 때문이다.

조경분야는 IT기술 교육에 상당히 뒤처져 있다. 전국의 모든 조경학과가 몸값이 오른 IT전문가를 채용하기도 어려운 상황이다. 따라서 이 대표는 “온라인을 통한 전국 조경학과의 통합 IT교육을 실시하는 것이 가장 현실적”이라고 말한다. 그렇다면 조경과 기술이 결합한 새로운 공간이 창조될 수 있고, 학생들의 취업도 훨씬 유리해진다.

IT기술교육에 가장 좋은 곳은 대학과 대학원이다. 필요한 소프트웨어가 일부 대학에게는 무료로 제공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실습을 위한 공간을 어떤 한 대학과 대학원을 통해 만들어지고, 그곳에서 이루어지는 교육은 주로 온라인으로 각 교육기관에 공유돼야 한다는 설명이다.

“이제는 인접 분야도 공원을 넘보고 있고, 그들과 경쟁해야 하는 것이 현실이라면, 그렇다면 조경도 변화를 해야만 한다”

타 분야와의 협업도 기초기술이 있어야 가능하다. 조경시설물 회사들이 IoT를 적용하려고 IT기술자와 융합하고 이후 헤어지게 될 경우, 조경시설물에 대한 정보는 IT기술자가 다 가져가고 결과물은 해석조차 할 수 없는 상황들이 생겨나며 이것이 무분별한 외주의 한계인 것이다. 측량을 몇 십 년간 외주로 내보내고 있지만 그 기술을 얻지 못하는 것과 같다고 생각하면 된다.

이 대표도 실제로 느끼는 것이, 누군가와 무언가를 같이 할 때마다 익숙하지 않다는 이유로 반대에 막히게 되면 차라리 스스로 학습해 융합하는 것이 무언가를 구현하는데 있어 더욱 효과적인 길이라고 한다. 구글 기술의 절반이라고 말하는 엔지니어링의 신 제프 딘도 개인으로 일할 때 팀보다 높은 성과를 나타낸다고 한다. 이제는 학교에서도 팀 작업이 아닌 개인위주로 서서히 변해가야 하는 시점인지 모른다. 협업이든, 혼자서 융합하든 기술을 이해하고 다양한 분야 기술을 겸허히 수용하는 마음가짐을 우선 가져야 할 것이다.


창의적 영감을 주는 조경

IT가 발달한 이후로 디지털 유목민이 늘고 있다. 사무실 대신 휴양지에서 근무하고 도서관 대신 카페 창가를 선호한다. 스크린 골프보다 필드에 나가는 것이 훨씬 좋다. 자연의 대안으로 실내공간이 만들어졌지만 사람들은 밖으로 나가려고 하고 자연을 갈망하고 있다. 그렇다면 조경은 자연을 다루는 만큼 자연의 이점을 살려 조경공간 자체를 변화시켜야 한다는 게 이 대표의 생각이다.

“조경공간은 ‘휴식’의 기능만 하는 것이 아니다. 과거 정자가 있는 곳에서는 공부를 하고 글을 창작 했다. 오래전부터 작물을 기르고 창조하던 야외공간이 어느 순간 ‘휴게만을’ 위한 공간으로 전락해 버렸다.”

독일 하이델베르크에는 ‘철학자의 길(Philosophenweg)’이 있다. 걷기는 단순한 운동이 아닌 사색의 한 방법임을 방증하듯 철학자들은 산책과 창의적 생각을 즐겼다. 칼리코라는 인류의 생명연장을 연구하는 기업의 레이 커즈와일(Ray Kurzweil)이라는 세계적인 천재도 어릴 적 어머니와의 보스턴의 공원 산책과 대화를 통해 창의력을 길렀다고 말한다. 이렇듯 ‘창의적 영감을 주는 공간’에 가장 적합한 것이 조경공간이라는 것이다.

상상하는 사람은 창의적인 영감을 얻기 위해 이런저런 시도를 해보고, 설계시 대중이 선호하는 것을 찾는다. “공원 안에 목공체험소를 짓고 목공을 가르쳐주는 것처럼 IT를 가르치고 실험해볼 수 있는 공간이 들어간다면 어떨까? 그렇게 되면 자연이 곧 배움이 될 수 있다. 야외공간은 GPS에 최적의 공간이고 자연과학을 공부하기에 적합하다. 조경은 이러한 공간을 왜 만들어줄 수 없는가? 조경이 할 수 있어야 한다는 이 대표. 도시내 값비싼 토지에 공원이 들어선 만큼 보다 창의적으로 효율적으로 활용돼야 한다고 말한다.

“아직도 조경이 스마트 기술을 저지하는 역할을 해야하고 기술도입은 시기상조라는 말을 하는 사람이 있다. 그러나 이미 사회는 변화하고 있고 다른 분야도 빠르게 수용하고 있다. 그렇다면 조경도 이제는 문호를 열고 IT를 받아들여야 한다. 조경공간은 자연성만 있어야 한다고 주장할 것이 아니라 더욱 낮은 자세로 배워나가고 개혁적으로 앞서나가야 한다”

은둔하고 몰두하는 것을 좋아하는 이 대표는 학교 다닐 때부터 좋아하는 과목인 수학과 과학만 공부했다. 두 과목만 잘하니 일류대학에 가기 어려워졌고, 선생님들은 전공을 살려 수학이나 과학으로 선택하라고 제안했다. 그러나 잘하는 것보다는 이과 내에 특이한 과에 가보고 싶다는 생각으로 택한 것이 조경학과였다. 조경공간이라면 재미있는 일들이 많이 일어날 수 있을 것 같았다고.

대학 1학년 때 3D설계를 처음 이야기했다. 그때는 BIM이라는 용어가 있기 전이었다. 회사이름인 EM디자인도 Ecological Model Design의 줄임말이다. 디자인이 모델로 돼야 한다는 것이다. 앞으로는 BIM 모델로 설계를 하고 유지관리는 디지털 트윈으로 하며, 이용시설은 메타버스가 하게 된다. 설계부터 시공, 관리를 구분할 필요가 없어진다는 전망이다.

“그런데 아무리 이야기하고 보여줘도 조경은 너무 ‘자연’에만 초점을 두고 있었다. 자연이 너무나도 중요하다는 것은 모든 이가 알고 있지만, 나무가 주는 따뜻함과 열매에만 머물러 있어서는 안 된다. 나무에서 내려와 걸어야 진화가 시작된다”

설계심의과정에서도 결국은 심의위원들에게 익숙한 것들이 선택되고 틀에 박힌 공간을 만들어낸다. 조경공간이 다양한 이용자들에 선택받기 위해서는 어떤 면에서는 익사이팅해져야 하고 행동에 반응해 줘야 하며 그러기 위해서는 경력과 학력, 자격을 버리고 실력을 갖추어 도전하는 방향으로 과감히 선회할 수도 있어야 한다. 업역이 사라진 이후에 그런 것들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심각하게 생각해 보아야 한다.

조경학과를 졸업 후 토목공학과로 편입할 때 모두가 반대했다. 대학원에서는 전자공학과 산업디자인을 공부하겠다 했을 때도 마찬가지다. 모든 선택의 기로 앞에서 모두가 반대했다. 그러나 지금 돌이켜보면 너무 잘한 선택이었다고 이 대표는 회고한다. 이후 골프장 설계, 기계, 전자, 정보통신, 상하수도 등 다양한 분야의 직장 열두 군데를 다녔고, 이제는 그 경험들을 가지고 궁극적으로 본인이 하고자 하는 것을 향해 달려간다.

“모든 예술, 과학, 철학의 한 가지 목표가 있다. 사람들에게 꿈을 주는 것이다”

이 대표가 궁극적으로 추구하는 것은 꿈을 만들어주는 공간을 만드는 것이고, 그 공간은 ‘공원’이다. 자연과학과 기술은 효과적인 수단에 지나지 않는다.
글·동영상_전지은 기자 · 라펜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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