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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산업으로 피운 가장 아름다운 꽃, 환경조경-②

오휘영·정영선의 ‘영원한 동행’
라펜트l기사입력2024-05-31

  

 

(①편에 이어) 이날 오휘영과 정영선은 전시장을 찬찬히 둘러보며 지난 조경의 발자취들을 다시 한 번 되새기는 시간을 가졌다. 이따금씩 사진 속에서 서로의 얼굴을 찾기도 하고, 함께 했던 추억을 나누기도 했다. 정영선은 “우리나라에 공원묘지 제도가 생기고, 장관 보고를 해야 할 일이 생겼을 때도, 어떻게 발표해야 하는지, 말의 속도는 어떠한지 등 하나부터 열까지 세심하게 연습시키셨다”고 기자에게 일러주기도 했다. 

 

전시된 작업물들에는 땅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고 미래세대를 위한 자연을 지키기 위해 치열하게 노력했던 조경가의 인생을 고스란히 느낄 수 있다. 아름다운 공간 그 너머에 있는 조경가의 태도와 철학이 관람객들에게 그대로 전달됐다.

 

그는 이 모든 유산 앞에서 “우리나라는 전부 산이고, 우리 국토는 하나의 정원이라는 시각을 갖게 되면서 국토를 잘 가꿀 수 있는 방안을 찾아가기 시작한 것이 지금까지 이어진 것”이라 소회했다.

 

국가제도로 피어난 꽃, 사람의 마음을 열다

 

정영선에게 에버랜드의 전신인 자연농원을 비롯해 희원, 승지원 등을 조성하면서 있었던 故이건희 삼성 회장과의 에피소드도 들을 수 있었다.

 

“워낙에 기인이셨다. 어떤 문제가 있으면 완벽한 답이 나올 때까지 방에서 나오시지를 않으셨다. 보고를 할 일이 생기면 누구든 그 방에서 독대를 해야 했고, 여러 질문들에 대답을 해야 했다. 그런데 조경하는 사람은 사방팔방 안 건드리는 것이 없기에 조목조목 대답을 하니 참 아껴주셨다. 내 별명이 ‘인간 컴퓨터’였다”

 

360만 평 땅을 두고 직원들에게 어떻게 했으면 좋겠다는 어록들만 남아있을 뿐 해결을 하지 못한 채 몇 년째 답보상태에 있던 자연농원에 대한 해답은 정영선의 입을 통해 나왔다. 헬기를 줄 테니 위에서 보고, 밑에서 보고, 옆에서 보면서 전체 면적에 대한 기본계획을 세워달라 한 것이 지금 에버랜드의 방향성을 결정했다.

 

삼성그룹의 핵심 의사결정이 이루어지는 ‘승지원’을 조성할 때의 일화도 있다. 한국에 조경분야가 만들어지기 전, 일본인에 의해 일본식 정원으로 조성돼 있었고, 이를 고치는 작업을 할 때였다. 故이건희 회장이 밤샘 근무를 하고 새벽 4-5시쯤 공사가 얼마나 진행이 됐는지 보기 위해 몰래 찾아갔다가 그 시간에 작업을 하고 있는 조경팀을 보고 놀랐다고 한다. 전통 담을 만드는 작업이었는데, 대상지가 도심지에 위치해 있었기에 낮시간에 공사하느라 통행에 방해가 되면 시민들에게 삼성이 불편을 준다. 이에 사람이 없는 새벽 3~5시에 공사를 한다는 답변을 듣고부터는 정영선의 제안이라면 무엇이든 수락했다고 한다. 정원이 완성되고 정원에 대한 설명을 하며, 승지원에는 국내외 다양한 손님들이 오는 만큼 정원에 대한 소개를 영어, 독어, 불어, 일어, 중국어로 전부 작성했다. 정원 가이드라인을 제공하며 한국정원에 대한 설명을 하자는 정영선의 의견에 반색을 띠었고, 그대로 실천됐다. ‘우리 문화’에 조예가 깊고 ‘우리 문화’를 사랑하는 두 사람의 뜻이 맞은 것이다.

 

조경이 국가 프로젝트로 진행되다 민간 프로젝트로 처음 시작된 것이 한국 전통정원의 정수를 보여주는 호암미술관 희원이다. 희원 이후 정영선에게 ‘한국정원’을 만들어달라는 요청이 끊이질 않았다. “서양식 정원을 만들어달라는 소리가 끊기고 한결같이 한국적인 것을 찾았다. 거기에 큰 감동이 있었다”

 

조경가 정영선의 손톱 사이에는 때가 빠질 일이 없다. 그가 끊임없이 현장을 찾는 이유는 그를 믿고 일을 맡긴 사람들에게 믿음을 주기 위함이다. 현장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으면 클라이언트가 마음을 놓을 수 없기 때문에 어떤 현장에서는 혼자 조용히 앉아 느릿느릿 식재를 하기도 했다고 한다.

 

“조경가는 자기 고집을 부리면 안 된다. 그 공간에서 살아갈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어야 한다”는 그는, 꼬마 아이들이 있다면 아이들의 이야기부터 듣는다. 정원에서 무엇을 하고 싶은지 물으면, 어떤 애는 상추밭을 만들어달라고 하고, 어떤 애는 버드나무를 심어달라고 한다. 그러면 그 아이들부터 설득한다. ‘그 버드나무 굉장히 좋은 의견이다. 그러나 이 정원에 버드나무를 심는다면 이러한 문제가 있는데, 버드나무와 비슷한 이 나무로 바꾸면 어떻겠니?’ 이러한 방식으로 아이부터 어른까지 확장해 모든 사람이 충족하는 답이 나올 때까지 연구해 최적안을 도출하는 것이 조경가의 태도라는 설명이다.

 

특히 어린 아이와 의견을 주고받는 것에 대해 “미래 세대에게 우리가 조경을 가르치지 않으면 누가 가르치겠는가. 아이들에게 조경을 가르칠 만한 자리가 있다면 무조건 베풀고 무료로 봉사한다. 그만큼 중요한 일”이라고 말한다. 그가 만난 아이들 중에는 커서 조경가가 된 사례도 있다. ♣(3편 계속)

 

 

 

  

 

 

글·사진 _ 전지은 기자  ·  라펜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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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j870904@nat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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