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에 여의도에서 김포가도를 통해 김포공항 쪽으로 가다 보면 양화교 가기 직전에 인공폭포가 하나 있었다. 이 인공폭포는 서울시에서 조성하여 1979년 7월 27일 시민들에게 개방된 것으로, 그 당시로서는 서울의 명물 중의 명물이었다. 김포공항으로 비행기를 타러 가던 신혼부부들은 너나할 것 없이 이 인공폭포 앞에 차를 세우고 기념사진을 촬영했으며, 웬만한 서울시민들도 이곳을 찾지 않은 사람이 없을 정도로 인기몰이를 하였다. 당시 매스컴에서는 이 인공폭포에 대한 기사가 넘쳐났으며, 텔레비전 방송국에서는 이곳에 와서 프로그램을 진행하기도 하였다.
양화인공폭포는 높이가 18m, 너비가 15m인 주 폭포를 비롯하여 6개의 폭포로 조성된 총 길이 98m 규모의 초대형 폭포였다. 그런데 서울시민들의 사랑을 받던 양화인공폭포가 노후와 누수로 인한 안전문제 때문에 2010년 이후 가동을 멈춘 채 10여 년 동안 방치되다가 급기야 철거되고 말았다. 올해 초 영등포구는 이 양화인공폭포가 월드컵대교 남단 접속도로에 저촉되어 다른 쓰임새로 전환하려고 했으나, 그것이 가진 상징성 등을 고려하여 새롭게 재조성한 후 시민들에게 돌려주겠다고 밝힌바있다.
영등포구에 따르면 새로 조성되는 양화인공폭포는 예전의 폭포보다 약간 뒤쪽으로 물려서 설치하고 폭포의 규모를 예전보다 확대하기로 하였으며, 폭포 상단부에는 전망대를 건축하고 산책로를 신설할 계획이라고 한다. 게다가 인공암에는 다양한 수목과 초화를 식재하여 경관성을 높이고, 폭포 아래쪽은 녹지대와 광장을 조성하여 시민들이 보고 즐길 수 있는 공간을 만들기로 했다는 계획도 밝혔다. 이에 많은 시민들은 과연 새롭게 조성될 양화인공폭포가 어떠한 모습으로 조성될 것인지에 대해서 기대가 크다.
한국의 정원에서 폭포를 조성한 예는 많지 않았다. 있다고 해도 규모가 크지 않은 작은 폭포가 대부분이었는데, 이것은 물을 끌어들이고 돌을 옮겨와 폭포를 만드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천연적으로 흘러내리는 폭포를 정원요소로 활용한 사례가 여러 곳에서 발견되는 것을 보면, 우리나라에서는 폭포를 인공적으로 조성하여 정원의 요소로 쓰기 보다는 자연적으로 형성된 폭포에 어울리는 정원을 만드는데 공을 들였던 것으로 보인다.
폭포에 맞추어 정원을 만든 가장 훌륭한 사례는 역시 창덕궁 후원의 옥류천정원일 것이다. 옥류천정원은 커다란 암반을 잘라낸 자리에 곡수거를 만들고, 곡수거를 지난 물길이 수직의 암벽을 타고 흘러내리도록 만들어 놓았다. 지금 보면 별 것 아니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 정원을 조성했을 당시의 눈으로 보면 제법 멋진 폭포정원이었을 것이라 생각된다. 숙종임금은 이 옥류천 폭포를 보고 오언절구의 시를 지었는데, 그 내용을 보면 옥류천 폭포가 당시 사람들에게 얼마나 감동을 주었는지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비류삼백척飛流三百尺/요락구천래遙落九天來/간시백홍기看是白虹起/번성만학뢰飜成萬壑雷
흩날리는 물 삼백척이니, 멀리 구천에서 떨어지는구나. 보고 있자니 흰 무지개가 일고, 골짜기마다 천둥소리 가득하다.
겨우 2m 내외의 폭포를 두고 삼백척이라 하였으니 과장이 심해도 너무 심하다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당시 이 폭포정원을 본 숙종임금이 얼마나 감탄을 하였으면 이러한 시를 읊었을 것인지 이해가 가고도 남음이 있다.
조선조 선비들이 조성했던 석가산폭포는 우리나라 정원에서는 일찍이 볼 수 없었던 새로운 유형의 폭포였다. 나재(懶齋) 채수(蔡壽)의 문집인 『나재집』에 실린 ‘석가산폭포기石假山瀑布記’를 보면 산수유람을 좋아했던 채수의 행적이 고스란히 적혀있다. 채수는 나이가 들어 거동이 불편하자 이름난 화가들이 그린 산수화를 방에 걸어두고 와유강산臥遊江山하는 낙에 살았는데, 얼마 지나지 않아 화가가 그린 죽은 풍경이 아니라 살아있는 자연의 모습을 보고 싶은 마음이 간절해졌던 모양이다. 노심초사하던 채수는 종남(終南: 전북 김제시 죽산면 죽산리)에 있던 별서의 못 가운데에 석가산을 만들고, 담장 밖의 돌 틈에 솟는 맑은 물을 대통으로 끌어들여 석가산에서 자연폭포가 흘러내리는 것과 같은 광경을 연출하고, 오감을 통해서 폭포의 아름다움을 즐겼다고 한다. 그 당시 채수의 별서를 찾았던 사람들이 석가산에서 흘러내리는 폭포를 보고 입이 떡하니 벌어졌을 것을 생각하니 절로 웃음이 난다.
최근에 아파트단지에 특화정원을 조성하는 경우가 많아지고 있다. 건축법의 규정에 맞추어 대강 조경을 하는 것이 아니라 아파트에 자연의 모습을 연출하여 주민들이 그것을 보고 즐기며 휴식할 수 있도록 만들고자 함이다. 이러한 특화정원 가운데에서도 석가산을 만들고 그곳에 물줄기가 힘차게 혹은 아름답게 내려오도록 연출한 폭포정원이 주민들에게 인기를 얻고 있다고 한다. 지난날 채수가 만들었던 축소된 폭포가 아니라 깊은 산속에서나 볼 수 있을 법한 수준의 폭포가 우리 눈앞에 그 모습을 보이고 있는 것이다. 석가산을 쌓는 재료도 GRC, FRP를 사용하여 자연석의 질감을 그대로 전달하고 있으며, 실제로 자연석을 사용하여 시공하는 경우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그야말로 예전에 보던 것과는 아주 다른 새로운 시도를 하고 있는 것이다.
1970년대 후반 서울시민들에게 많은 사랑을 받았던 양화인공폭포는 그 당시로서는 신기술, 신공법이 동원되었던 최고의 조경작품이었다. 그렇다면 2020년에 완성될 것이라고 하는 새로운 양화인공폭포 역시 전에는 볼 수 없었던 신기술과 신공법을 탑재한 명물이 될 것인가? 그것이 처음 만들어졌던 1979년처럼 많은 시민들이 죽기 전에 한번 가보기를 희구했던 그러한 작품이 될 수 있을 것인가? 그 질문에 대한 답은 정해져 있다. 그렇게 되려면 새롭게 조성될 양화인공폭포가 지금 이곳저곳에 유행처럼 조성해놓은 인공폭포와는 형식이나 내용에서 차별화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렇게 될 때, 새롭게 조성될 양화인공폭포는 그동안 성장한 조경분야의 수준을 많은 시민들에게 알리는 바로미터가 될 것이며, 그것을 통해서 조경의 위력이 무엇인지를 알리는 수단으로 작동할 수 있을 것이다.
조경분야는 지금까지 50여년 가까운 세월을 보내면서 끊임없이 새로운 기술과 공법을 개발해왔기 때문에 그 명맥을 유지할 수 있었다. 그런데 지금 우리는 새롭게 등장한 분야와 옷을 갈아입고 또 다른 모습을 갖춘 분야로부터 너무나 많은 도전을 받고 있다. 이러한 도전을 물리치고 이길 수 있는 것은 매너리즘에서 벗어나 새로운 경쟁력을 갖추는 것 말고는 다른 방법이 없다. 황하 용문의 거친 물결을 헤치고 솟아올라 용이 되는 잉어처럼 새로운 도전에 몸을 던지는 젊은 조경인들을 기대해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