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을숲, 명승”, 전통조경 가치향상 1등 공신

[대학조경학과 연구실 탐방⑦] 한경대 김학범 교수
라펜트l기사입력2010-07-09

문화재청에서는 명승의 정의를 “역사적·예술적·경관적 가치가 크며, 자연미가 빼어나게 아름다울 뿐만 아니라 그 형성과정에서 비롯된 고유성·희귀성·특수성이 큰 곳”이라고 일컫는다. 문화재적 가치가 상당함에도 불구하고 “명승”은 전통조경에 관한 그리고 문화재조경에 관한 깊은 공부를 하지 않은 학생이나 신입 기술자들에게 낯설다고 치면 낯설 수도 있는 분야이다. 왜일까. 아마 “명승”이란 분야를 조경의 범주로 인식하지 못했다는 데에서 그 원인을 찾을 수 있지 않을까.

2009년 12월 2일, 한경대 조경학과 김학범 교수는 “문화유산의 학술․연구 공로”를 인정받아 정부로부터 옥관문화훈장을 수여받았다. 대내외적으로 인정받은 그의 연구는 오랜 기간 “마을숲”의 문화적 의미를 밝히고, 문화재의 범주에 속하면서도 문화재로서 가치를 인정받지 못하고 있던 “명승”의 가치를 재발견하는데 결정적으로 기여하였다. 이를 통해 지난 7년여에 걸쳐 마을숲 10여 건이 천연기념물로 지정되었으며 5건은 명승으로 지정된 바 있다. 또한 2003년 이후로 50개가 넘는 명승을 추가 지정하는데 기여함과 동시에 명승의 개념을 확장하여 고정원을 명승의 범주로 끌어들인 점이 높이 평가되었다.

“마을숲”과 “명승”에 대한 새로운 연구로 전통경관에서 조경의 가치를 발견하고 그 지위를 높였다는 점에 있어 김 교수의 연구는 큰 학문적 발전을 가져온 것임에 틀림없다. 김 교수의 연구실을 찾아가 그의 연구에 대한 자세한 이야기를 들어봤다.

▲ 김학범 교수

연구실 소개를 해달라
한경대학교 조경학과의 연구실은 공동으로 대학원 학생들의 연구를 지도하고 있다. 그중 내가 연구하는 분야는 역사경관, 전통경관, 전통조경 등의 분야로, 특히 “한국의 마을원림에 관한 연구 (韓國의 마을園林에 關한 연구)”란 박사학위논문을 발표하고 “마을숲”이라는 저서를 발간하고 난 이후 문화재청과 연결되어 문화재전문위원으로 활동한 바 있으며, 2003년 이후에는 문화재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1990년 이후 20여 년간 마을숲에 대한 연구를 주로 했으며, 근래에는 특히 명승 부문에 주로 관심을 두어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명승의 개념이 궁금하다
문화재보호법에 의하면 크게 문화재는 문화유산과 자연유산으로 분류된다. 문화유산은 사적, 건조물, 매장문화재 등 주로 사람의 손이 닿아 인위적으로 만들어진 것들을 말하며, 자연유산은 자연적으로 형성된 것들로 천연기념물, 명승으로 분류된다. 명승은 천연기념물과 동일한 위계를 지니고 있는 문화재이다. 명승은 이런 위계를 가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동안 우리나라에서는 상당히 소홀히 다루어져온 분야이기도 하다.
 
1962년도 문화재보호법이 제정된 이래 1970년도에 우리나라 제1호 명승으로 "명주 청학동 소금강"이 지정되었다. 하지만 이후 33년간 9호의 명승만이 지정되었을 뿐이다. 사실 이웃나라인 일본은 355개의 명승을, 북한의 경우에는 320개의 명승을 지정하고 있다. 수치적인 통계만을 보아도 우리나라 문화재 행정관계자나 전문가가 명승 연구에 관해 소홀했다고 밖에 볼 수 없다.
그러나 2003년부터 본격적으로 명승에 관한 연구를 한 결과, 2010년 2월 "제70호 춘천 청평사 고려선원" 명승까지 7년간 약 60여개의 명승을 지정하는 성과를 일궈냈다. 문화재청 입장에서는 이런 연구 자료를 통해 명승을 지정하고 있으며, 향후 머지않아 상당한 수의 명승이 발굴될 것으로 보인다.

▲ 1994년 발간된『마을숲-韓國傳統部落의 堂숲과 水口막이-』(열화당). 당시 “마을숲”은 우리나라에서 누구도 연구하지 않았던 제일 최초의 연구 분야였기에 김 교수가 긍지를 가지고 있는 책이기도 하다.  
 
명승, 무엇이 다른가
과거에는 아주 커다란 자연경관 지역만을 명승이라고 생각해서 명승지정을 소홀히 했다. 그리고 문화재 명승 분야에 있어 전통경관 관련 전공자가 담당 연구나 문화재 지정 등에 거의 참여하지도 않았으며 문화재행정조직 내에도 명승과 관련된 조직과 인력이 전무한 상태였다.
"명승"으로 지정되어야만 하는 대상임에도 불구하고 식물이나 지질분야 등의 자연과학 분야 연구가 우선시되어서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경우도 상당했다. 그래서 현재 그렇게 지정된 천연기념물도 상당하다. 특히 설악산, 한라산 등의 천연보호구역은 천연기념물 중의 하나로 산 전체가 천연보호구역으로 지정되어 있지만 그 안에는 상당수의 명승지정 대상이 존재하고 있다. 그동안 우리가 명승을 주목하지 않았기 때문에 발생된 이런 상황은 비일비재하다. 

주목할 만 한 점은 일본의 경우 명승으로 지정된 355호 중 약 200호가 고정원이다. 이렇게 많은 고정원이 명승으로 지정된 데 반하여, 우리나라 대부분의 고정원은 사적으로 지정되어 있을 뿐이다.
특히 조경과 관계 지어 생각하면 광한루원, 소쇄원, 보길도 윤선도 원림, 성락원 등은 원래 사적으로 지정되어있었는데 국제적으로 통용되는 문화재의 지위를 봤을 때 이들 또한 명승으로 변경·지정해야 된다는 의견을 피력했고 이 의견이 문화재청에 받아들여져 2008년 이들 문화재는 재분류되어 명승으로 지정되었다. 이어 식영정 일원, 명옥헌 원림, 봉화 청암정 등의 별서 및 고정원이 명승으로 지정되기 시작했다. 

"명승"은 자연경승에 국한된 것이 아니라 고정원 등의 전통경관, 즉 조경 분야에 아주 밀접한 내용들이 명승의 개념 속에 포함되어 있다는 것을 인지해야한다. 이런 부분을 인식하고 있다면 "명승"은 향후 조경분야의 아주 중요한 대상이 될 것으로 보인다.
 

▲ 광한루원(출처 _ 문화재청)

▲ 담양 소쇄원 광풍각(출처 _ 문화재청)

타국에 비해 한국의 명승이 적은 것은 우리나라가 덜 아름다워서가 아니라 우리가 그 아름다움을 간과해오고 있었다는 반증이라고 말하는 김 교수. 명승 지정에 있어 조경가가 앞장선다면 명승의 개념을 확장할 수 있고 조경분야의 저변 확대에도 큰 기여를 할 것이라고 조언한다.

▲ 옥관문화훈장 수상식 때

전통경관에 관심을 가지게 된 계기가 있나
1986년도 한국종합조경에서 설계부장을 맡고 있을 당시, 88서울올림픽을 대비하여 "한국의 명원 100선"이란 책을 제작하는 과정에 참여했다. 국내 고정원 100개를 선별하기 위해 전국으로 조사를 다니면서 보니 각 마을마다 마을숲이 있고 마을숲에 존재하고 있는 장승, 솟대, 돌탑 등 우리 문화를 상징하는 것들을 보고 재미있는 대상이란 생각이 들었다. 이후 마을숲에 대한 연구를 진행하면서 박사학위논문과 "마을숲" 관련 도서의 발간, 15편 정도의 단편 논문을 써냈다. 문화재청과는 이런 연구 활동을 통해 연결이 되었고 현재까지 문화재위원을 맡고 있다.

내 인생에 있어 중요한 사람이 있다면
지금은 고인이 되셨지만 고려대학교 윤국병 교수님을 비롯해 오휘영 교수님, 이규목 교수님, 변우혁 교수님을 꼽을 수 있다. 그래도 가장 많은 영향을 주신 분을 꼽으라면 윤국병 교수님이시다. 1985~86년 2년간 "한국의 명원100선" 작업을 할 때 윤 교수님을 모시고 전국답사를 다녔다. 마을숲에 관련해서는 내가, 별서에 관련해서는 이재근 교수(당시 한국종합조경 설계부 차장)가 윤 교수님과 답사를 함께 했다. 당시에 윤 교수님께서는 상당한 연세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답사 이후의 자료 정리를 신속하게 해내셨다. 이렇게 학문에 매진하는 모습을 보고 많이 배운 듯하다. 특히 윤 교수님께서 마을숲 연구를 하려는 나에게 풍수지리와 우리 문화생활 등이 밀접하게 연결된 대상이므로 연구를 해보는 것이 좋겠다는 의견을 주시기도 한 분이다.

▲ 올 4월, 선작지왓 기초조사 때 연구진과 한라산 국립공원 보호관리과 직원들

▲ 정밀조사 때 선작지왓에서 문화재 위원장 및 위원들과 함께

▲ 사라오름에서 연구진, 문화재 위원장 및 위원들, 문화재청 천기과 직원들

학생들과 기억에 남는 사건
조사에 한참 빠져있을 때 학생들과 일주일, 심지어 20일 이상 조사를 다닌 적이 있었다. 조사장비가 꽤 많다보니 조사에 참여하는 기본 인원이 4명, 차량은 봉고차로 구비가 된다. 어느 해인가 차량 구비가 여의치 않아 더블캡 트럭을 타고 조사를 간 적이 있었다. 장비는 짐칸에 고무대야로 덮어씌우고 다녔는데 시골에 사는 아주머니들이 장사치인줄 알고 트럭으로 몰려와 구경하고 가는 해프닝도 있었다.

학생들에게 강조하는 부분이 있다면
조경은 아무리 뛰어난 사람이라 하더라도 금방 결과가 나타나는 분야가 아니기 때문에 학업이나 직장생활에서, 여러 가지 어려움이 있더라도 꾸준히 참고 인내하라는 말을 해주고 싶다. 끈기 있게 5년, 10년 매진하다 보면 품은 뜻을 잘 성취할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한다.
 
마지막으로
조경분야가 어렵다고는 하지만 나는 계속해서 발전하고 좋아질 것이라는 강한 믿음이 있다. 다만 분야가 점차 발전해가는 과정에서 우리가 해야 할 일들이 있다. 그것은 우리의 영역을 확실하게 지키고, 또 개척해 나가는 기틀을 확실히 다져야 한다는 것이다. 현재로서는 조경법 관련된 사항이 가장 중요하고 시급한 사항이 아닐까 한다. 더불어 중앙 행정부에서 우리 분야를 지원해주는 조직이 생기고, 중앙직 조경공무원 직제 설치를 위해 조경분야의 학자, 기술자, 기업이나 학생들이 모두 힘을 합치는 것이 가장 중요한 사안이다.

“학생들이 우리 분야에 대한 확고한 믿음과 확신을 가졌으면 좋겠습니다. 그런 믿음이 우리 분야 발전에 큰 성장 동력이 될 것입니다. 10년을 투자한다는 마음가짐으로 최선을 다하길 바랍니다.” 마지막까지 학생들에게 끈기의 중요성을 거듭 강조하는 김 교수였다.

한국조경학회 회장, 환경조경발전재단 이사장 역임, <올해의조경인상>, <자랑스러운조경인상>, <옥관문화훈장> 수여, 한국조경백서 발간, 조경법 제정을 위한 기반 마련 등 화려한 김 교수의 이력 뒤에는 우직한 그의 성품이 바탕이 된 건 아닐까. 

강진솔  ·  라펜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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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키워드l조경지식의 산실, 연구실탐방, 연구실탐방, 김학범, 한경대, 조경연구실, 명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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