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레이시아 수도를 책임지는 총괄조경가

[인터뷰]쿠알라룸푸르 시청 조경부서 수장 '푸트리'
라펜트l기사입력2014-10-23

 연중 33도씨, 열대성 기후로 우리와 전혀 다른 환경을 가진 말레이시아. 그리고 그곳의 수도 쿠알라룸푸르. 이 곳이 관광지로서 각광받고 세계 각국에서의 관광객들이 끊이지 않는 데는 지리, 자연환경과 같은 복합적인 요인이 작용했지만 아름다운 도시를 만들기 위한 조경가들의 노력이 없었다면 지금같은 결과는 없었을 것이다.


쿠알라룸푸르 시청 조경부서의 수장 '푸트리'와의 인터뷰를 통해 말레이시아의 조경과 진행 중인 프로젝트, 한국에 대한 인식을 들어보고자 한다.

 


공직에서 조경가로서 오를 수 있는 가장 높은 자리에 있다. 이 자리에 오르기까지 어려움은 없었나? 특히 이슬람 국가인 말레이시아에선 여성이라는 것이 제약일 수 있었을텐데

 
남자, 여자로 구분짓는 건 중요한 문제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이 자리까지 오를 수 있었던 주된 요인은 '긴장과 집중' 이 두 단어로 설명할 수 있을 것 같네요. 사실 업무태도 면에선 여자가 더 나을 때가 많죠?(웃음) 
 

직장생활과 집안일 어느 것 하나 놓치지 않기위해, 항상 도전의식을 갖고 생활해 왔어요. 맡겨진 프로젝트에 최선을 다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관리자들로부터 존중받게 된 것 같아요. 단순히 승진을 위해 노력했던 것이 아니기 때문에 장벽이라고 느끼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관리자가 돼서야, 프로젝트가 잘 돌아가도록 균형을 맞추는데 어려움을 느낍니다. 혼자 일하는 걸 선호하는 직원들을 먼저 하나의 조직으로 묶고, 플랜팀, 디자인팀, 오픈 스페이스 유닛 팀 등에게서  협업을 이끌어 내는 일련의 과정, 여기에 시장으로 부터 허가를 받고 프로젝트를 진행하기까지, 이 모든 프로세스마다 지극한 관심을 필요로 하거든요.



쿠알라룸푸르시청조경부서담당자 Puteri Khairul Fathiah bt. Fahimudin



지역 매체의 보도를 보니 2020년 까지 쿠알라룸푸르를 세계 일류도시로 만들기 위한 다양한 프로젝트가 진행 중이라고 하던데 어디에 포커스를 맞추고 추진하고 있는가?
 
대부분 사람들은 뭔가를 당장 보여줄 수 있는 인프라스트럭처나 공간을 만드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하지만 그런 형태적인 것보단 시민들의 의식이 먼저 달라져야 합니다. 이를 위해선 충분한 교육이 이루어져야 하고 각자  일한 만큼의 만족감을 얻을 수 있어야 해요.

반달리즘 같은 도시문제들도 서서히 대두되고 있습니다. 이것은 사회에 대한 불만과 교육의 부재가 빚어낸 직접적인 현상이라고 생각해요. 저는 개발 보단 충분한 교육기회 제공에 그 답이 있다고 봅니다.

 


현재 쿠알라 룸푸르를 세계 일류도시로 만들어 내기 위한 일환으로 River of Life란 프로젝트가 진행 중에 있는 줄 안다.


River of Life(RoL)는 국가 주도의 프로젝트로, 쿠알라 룸푸르를 가로질러 흐르는 Kelang강과 Gombak강을 정화하고 개발하여 수변공간을 조성하는 40억 RM(약 1조 3000억 원)규모의 대형 프로젝트에요. 이 사업을 통해 시민들의 삶의 질은 높아질 것이고 경제적으로 막대한 이익을 가져올 것이라 평가되고 있어요. 사례를 조사하다 보니 한국의 한강 르네상스와 청계천 복원사업 등도 알게 됐어요. 프로젝트를 구상하는데 좋은 스터디 모델이 됐죠. 결과적으로 RoL이 성공적으로 진행 되려면 수량 등의 자연조건에 대한 정확한 분석과 물리적인 구조, 생태환경 조성, 식재 등의 확실한 조화가 기초가 돼야 해요. 개발이후의 관리도 중요하게 고려할 사항 입니다.



River of Life 청사진



사실 한국 사람들에겐 말레이시아의 조경이라면 조금 생소하게 다가올 것 같다. 말레이시아만의 조경스타일이 있다면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사실 '이것이 말레이시아 조경 스타일이다!' 라고 말할만한 강한 아이덴티티는 없는 것 같아요. 전통 주거 양식인 캄풍(Kampung)스타일에 열대우림의 자연환경이 기초가 되는 것은 사실입니다. 우리는 유니버셜 랜드스케이프를 추구해요. 아시다시피 말레이시아에는 3대 민족이 있잖아요? 말레이계, 중국계, 인도계 모두가 조화롭게 공존하여 살아가는 만큼 조경 양식에서도 그 문화들을 모두 조화롭게 담아내는 것을 추구합니다. 어느 하나를 택하기 보단 시너지를 내도록 조화를 추구하는 것, 이게 우리의 조경 양식입니다.

 


말레이시아의 국교인 이슬람교의 사원, 중국식 사찰, 힌두교 사원, 캄풍양식의 정원(좌측상단부터 시계방향)



가장 기억에 남는 프로젝트 하나를 꼽으라면?


답변에 앞서 한 가지 말하고 싶은 것이 있어요. 어떤 프로젝트를 진행하던 저 혼자서 이뤄낸 것이 아니라는 점 입니다. 함께한 동료들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죠. 단지 그들을 대표해서 말할 수 있는 순간인 것 같네요.

 
가장 기억에 남는 프로젝트는 아무래도 보타니컬가든 조성사업인 것 같아요. 기존의 레크레이션의 성향이 강했던 KL Lake Garden을 페르다나 보타니컬 가든으로 재조성하는 사업인데 현재 10년 넘게 진행 중에 있습니다. 보타니컬가든이란 개념자체가 기존의 공원과는 전혀 다른 개념이거든요. 다들 용어를 들으면 머릿속으로 그 이미지를 떠올릴 수는 있지만 구체적으로 어떻게 조성해야 하는지 막연할 거에요.


단순히 미적으로 완성도가 높다거나 식재를 많이 한다고 해서 보타니컬 가든이 되는 건 아니니까요. 제가 생각하는 보타니컬가든은 리빙뮤지엄이에요. 교육과 연구 장소 그리고 축제의 마당이 되기도 하는 곳이죠. 하지만 이 곳은 이용에 대한 색을 옅게 하고 리서치와 교육의 색을 강하게 입히고 있어요. 또한 이곳을 다양한 식물들의 표본전시장에 그치는 것이 아닌, 서식처로 만들기 위해 각각의 종마다 주의를 기울이고 있습니다.

 
보타니컬가든이란 개념은 이젠 선진국을 의미하는 지표가 된 것 같아요. 보타니컬가든을 생태적으로 유지관리 한다라는 것은 어느 정도 수준을 넘는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성공적인 보타니컬가든의 조성은 지속가능한 개발의 가능성을 보여주는 하나의 지표와도 같습니다.



지금 한국에선 조경가의 역할과 범위에 대한 논의가 지속되고 있다. 이에 대한 생각은? 
 
현대의 개발사업은 과거처럼 단순히 조성만하고 끝나지 않습니다. 지속가능한 도시를 만들어야 합니다. 말레이시아 사람들의 인식이 달라지고 있지만 개발 프로세스는 여전히 제자리 걸음입니다. 엔지니어에 의해 도시개발사업이 주도되고 있어요. 좋은 결과나 변화가 나타날 수 없죠. 주어진 자연환경을 조사하고 그 환경과 균형을 이룬 결과물을 만드는데, 조경가 만한 전문가가 어디 있겠어요? 그래서 개발의 계획단계부터 조경가가 참여하여 프로젝트를 진행해야한다고 생각해요. 우리의 역할은 단순히 공원개발에만 국한 되지 않습니다. 도시의 개발이나 도시 디자인 전반에 관여하고 생태관광까지 손을 대는 것이 맞습니다. 결과만을 놓고 보더라도, 엔지니어와 조경가의 차이는 더욱 명확해질 거에요. 단순한 비교로도 일반적인 프로세스의 주거단지와 조경이 기반이 된 주거단지가 근본적으로 같을 수가 없단 걸 알 수 있죠.



한국에 대해 어떤 이미지를 갖고 있나? 그리고 한국의 조경에 대해 알고 있는 것은 무엇인가?


 Winter sonata라고 아시나요?(Winter sonata는 ‘겨울연가’의 현지 제목) 그 한 편의 드라마가 말레이시아에서 선풍적인 인기를 끌면서 정말 많은 사람들이 한국에 대한 환상을 갖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저도 한국을 생각하면 그 드라마 속 풍경이 제일 먼저 떠오릅니다.

 
한국의 조경에 대해 잘 알지는 못하지만 RoL를 통해 한국의 한강이나 청계천 등의 프로젝트를 접해 알고 있어요. 또한 사계절을 가졌기에 조경가로서 재밌는 시도를 많이 해 볼 수 있을 것 같은 나라라고 생각합니다. 컨셉도 강할 것 같고.

하지만 일본, 중국의 조경작품과 비슷하게 보여서 저에게 그들 가운데 구분하라고 하면 어려울 것 같아요.

조경 산업은 정책에 영향을 많이 받습니다. 한국 조경은 어떤 정책을 갖고 있는지도 궁금하네요. 기회가 있으면 꼭 한번 가보고 싶습니다.


인터뷰에 협조해 주신 Puteri에 감사를 전합니다.

글·사진 _ 김승태 녹색기자  ·  서울시립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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