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의 색’ 벽도 화단이다

그림 그리는 조경가_9회
라펜트l기사입력2013-11-17

사회구조상 오늘을 살아가는 방법으로 도시를 외면하기란 쉽지 않다. 그래서 도심곳곳에 자연을 활용한 조경공간을 넓혀 더 나은 환경을 만드는 일에 적극적이어야 한다. 자동차도로와 인도를 경계하는 곳에 식재되어 있는 가로수 또는 그 사이를 이어주는 관목류, 도심의 공원과 그 틈새를 이어주는 쌈지 공원들, 건물의 조경 공간, 그리고 더 적극적인 조경방법으로 옥상녹화 등이 있다. 나아가 도심의 자동차 전용도로의 방음벽을 활용하여 녹음의 느낌을 조성한 것과 같이 벽을 활용하는 방법으로 조경면적을 확보할 필요가 있다.

 

벽도 화단이다

벽면에 덩굴식물을 붙여 올리기 위해서는 심겨진 덩굴식물의 뿌리 안정을 위한 최소의 화단이 필요하다. 표면 바닥이 포장되어 있지 않다면 넓이가 100mm 크기로도 땅속 깊이 뿌리를 내릴 수 있어서 식생이 가능할 것이다. 그러나 지표면이 콘크리트나 아스콘 등 건축자재로 포장되어 있다면 500mm의 내경과 500mm 정도의 규격을 가진 최소한의 화단을 필요로 한다. 고속도로를 포함한 자동차전용도로에는 이와 같은 화단을 만들어 담쟁이, 능소화, 붉은 인동 등을 식재하여, 국내는 물론 외국인들로부터 찬사를 받고 있다.  담쟁이와 능소화는 줄기에 덩굴손이 변형된 부착근인 발과 빨판을 이용해 벽에 붙어 오르는 기능을 갖고 있다. 한여름 밤 시골집에는 벌레를 잡기 위해 불빛을 찾아온 청개구리가 유리창에 붙어 있는 것을 보았던 기억이 있다.

 


필자의 집 창문이다. 흰 벽과 파랑색 창틀 속의 창문은 담쟁이가 물드는 가을이나 새순이 올라오는 봄에도 아름답게 보인다. 그 이유는 흰색바탕위에 청색ㆍ녹색ㆍ붉은색의 어울림이다.

담쟁이가 벽면 전체를 덮지 않도록 1년에 한번 씩 줄기를 전정을 해주어야 하는데, 여기서 주의할 점은 여백있는 벽면에 붙어 있는 담쟁이의 새줄기와 새순이 그림을 만들게 해야 한다는 것이다.

 

새끼손가락 한마디만한 작은 청개구리의 발가락 끝에 붙은 빨판의 모습이 담쟁이의 발에 붙은 빨판과 크기와 모양이 똑같음에 신기하다. 담쟁이와 능소화는 벽에 붙을 수 있는 발을 갖고 있는 반면에 붉은 인동은 스스로 벽에 붙을 수 있는 기능의 발을 갖고 있지 않다. 이러한 기능이 없다는 것은 벽이 있는 환경을 좋아하지 않는다고 판단해야 한다. 인간중심적 사고로부터 벗어나 식물중심의 사고로 변해야 생태를 쉽게 이해할 수 있다는 것을 다시 한 번 강조하고 싶다. 그렇다면 벽면에 와이어를 설치해서 붉은 인동에게그 곳 이외에는 오를 곳이 없으니 거기서 살아라.” 라고 강요한다면, 1년에 4~5번 만개하는 붉은 인동의 화려한 장점을 기대할 수 없게 된다. 실제로도 도로변에 있는 붉은 인동의 꽃은 보았으되 가득 차도록 만개한 꽃을 본 기억은 없을 것이다. 이렇듯 덩굴식물이라도 모두 벽에 올릴 수 있다고 생각하고 실천에 옮겨서는 안 된다.

 

 

담쟁이가 제 몸을 벽에 부착하기 위해 만들어낸 대단한 디자인이다. 이렇듯 기능이 형태를 만들어 내는 것이며 설명하지 않기 위해서 찍어둔 사진이다. 

 

덩굴과 덩굴손

덩굴식물 중에는 씨만 맺히는 나팔꽃이 있는가 하면, 열매가 맺히는 시계꽃도 있다(물론, 호박, 오이, 수세미 등도 있지만). 씨만 맺는 식물은 덩굴만 있고, 그 씨앗의 무게가 무겁지 않기에 덩굴손을 갖지 않는다. 덩굴손은 스프링과 같은 형태와 기능을 갖고 있어서 열매가 매달려 흔들려도 그 무게를 지탱할 수 있는 구조로 만들어져 있다. 그러나 모든 것을 겉만 보고 판단하는 일부 사람 중에는 이러한 식물을 믿지 못하고 행여 호박이 떨어져 깨어질세라, 호박을 받쳐 놓는다거나 줄을 이용해 매달아 놓은 일에 수고를 아끼지 않고는 안심을 한다.

 

부모들의 자녀들에 대한 교육이나 선생님들의 제자에 대한 교육도 믿고 기다려 주지 못하고 어른의 입장에서만 생각한 결과로 인해, 호박과 같이 붙들어 매 놓은 방법을 선택하고 안심을 한다. 물질에 눈을 돌려 보려는 마음보다는 식물의 생태를 관찰하고 사랑한다면 식물생태에 관한 실패를 줄일 수 있을 것이다.

 


선운사 입구에 있는 송악은 바위벽에 붙어서 높이는 물론 아름드리 굵기를 자랑한다. 사람들이 간섭하지만 않는다면 많은 식물들이 이렇듯 평화롭게 자신의 나이를 다하도록 성장하고 죽을 텐데, 대개가 이렇지 못한 것을 보면 이것은 매우 행복한 덩굴임에 분명하다.

 

덩굴식물이라고 모두가 덩굴줄기나 덩굴손을 갖고 있는 것은 아니다. 꽃이 만개할 때의 모습이 장관인 클레마티스는 덩굴줄기를 가지고 있지 않지만 잎자루가 그 역할을 대신한다. 어린잎이 펼쳐지기 전에 잎자루는 기댈 수 있는 것에 잎자루를 돌려 감은 다음 잎을 펼친다. 감아 붙들 수 있는 대상을 발견하지 못한 잎자루는 잎만을 떨군 후 함께 떨어지지 않고 기다란 가시처럼 붙어 있다가, 줄기를 떨어뜨리지 않기 위해 걸칠 만한 것이 있을 때는 바위를 타고 올라가는 암벽등반가처럼 한 손으로 다른 줄기에 매달려 있다.

 

덩굴식물은 아니지만 구근식물인 현호색처럼 봄에 가는 줄기로 자라는 패모는 혼자 서 있을 수 없으므로 서로에게 기대는데, 그것만으로는 불안한지 좁고 기다란 잎사귀의 끝으로 상대를 돌돌 감아 고정시킨다. 그 잎새의 모습이 마치 미술에 있어서 아르누보 양식의 곡선처럼 아름다워서 아르누보 양식의 곡선이 식물의 형태를 많이 빌렸음을 보여주고 있다(최근 국내에서는 아르누보의 거장 알폰소 무하의 전시가 대대적으로 성황리에 열렸다).

 

덩굴식물을 식재할 때 이와 같이 식물들 각자의 특성을 존중해서 막힌 벽 또는 격자형태의 가담에 각각 어울리는 것을 선택해야 그들의 아름다움을 전해 받을 수 있게 된다. 덩굴식물의 특성상 오를 수 있는 곳을 찾기까지는 지면을 기어가지만 그 후로는 위를 향하면서 자라기 때문에 화단면적의 대부분이 원하지 않는 잡초로 채워진다. 대개는 정리되어지지 않은 이런 모습을 보는 것이 불편해서 참지 못하고 예초기를 사용해서 잡초를 제거하게 되는데, 그 과정에서 덩굴식물까지 베어 버리는 예가 태반이다.

 

이러한 문제점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이곳에 잡초가 자랄 틈이 없을 만큼 성장이 빠르고 피복력이 좋은 지피를 사용하기를 권하고 싶다. 이럴 경우 2~3종류 정도는 추천해야겠지만 개인적 사정으로 그 종류를 예시하지 못하는 것에 이해를 구한다.

 


(좌)패모를 우리나라에서 야생상태로 발견하기란 매우 어렵다. 매우 특이한 형태를 갖고 있으며 이른 봄에 잠깐 모습을 보여주니 그 귀함에 가치가 한이 없다. 외국에는 진한 붉은색이거나 노란색의 패모가 강한 점을 여러 개 찍은 상태로 제 모습을 빛내기도 한다.

 

(우)식물을 붙여 키우기 위해 파주에 작업한 Stone Wall 이다. 이것을 만든 석재는 파주석인데 이 파주석 광산을 찾기 위해 3일을 헤매었던 기억이 있다.

파주석은 광산이 따로 있지 않고 다른 석산의 채석과정에서 우연히 1m전후 폭을 가진 맥이 발견된다. 그러니 이것을 챙겨놓으면 다행이지만, 그 가격과 양이 대수롭지 않다면 그냥 잡석처럼 없어지기도 한다

 

가을의 색

삼천리가 금수강산인 우리나라에서 살아가고 있는 많은 생명체들의 색을 살펴보면 한마디로 고동색이다. 동남아 등 열대지방에서 자라고 있는 소라류(복족류)의 색이 화려하다는 것은 설명할 필요도 없는 것이지만, 우리나라에는 참소라를 포함해 대부분의 복족류와 두족류(문어, 오징어), 패류(바지락, 모시조개 등)또한 고동색들이다. 계곡에서 볼 수 있는 고둥(올갱이)이 고동색임은 말 할 나위가 없다. 또한 화려한 열대어에 비해 잉어나 송사리 또한 고동색에 비해 별 특별한 색이 아니다. 육지동물 또한 나라를 대표하는 진돗개, 한우도 누렁이 일뿐이고 하늘을 나는 새 또한 참새, 부엉이, 독수리, 소쩍새 등 모두가 딱 짚어서 색이 있다고 말하기는 무리가 있을 정도로 그렇고 그렇다.

 

그래서 우리는 한마디로 자연의 색이 없는 나라이다. 이렇게 말하면 이 글을 읽는 독자들의 가슴에는 반발 일어날 것이다. 그렇다! 우리나라는 지금 가을의 절정이며 삼천리금수강산이 오색찬란하게 불타고 있다. 그러나 지금뿐이다. 신이 있다면 매우 공평해서 1년의 90% 이상의 시간을 별 다른 색을 보여 주지 않다가 가을에 한꺼번에 불타는 색을 보여주는 것이 우리나라 산천의 특징이다. 한동안 색을 느끼지 못하다가 한꺼번에 보여주니 나라전체가 단풍에 열광한다. 동남아의 소라, 열대어, 새 종류들이 화려함을 자랑하지만, 그들이 경작하고 있는 논에서는 황금물결이란 것은 상상할 수조차 없다. 오히려 다모작을 하다 보니 벼들의 성장속도가 논주인의 사정에 따라 각각 달라 나쁜 표현으로 털갈이 할 때의 개털처럼 일정치 못하다. 그들에게 우리나라 가을의 황금물결을 보여준다면 그 감동의 물결 또한 황금물결 못지않을 것이다.

 

열대지방의 수목들 역시 아무 때나 잎이 떨어지고 다시 나기 때문에, 흰 눈이 내리는 것을 볼 수 없는 것처럼 단풍을 이해하지 못한다. 사람들의 마음에는 누구나 갖고 있는 것에 대한 소중함을 잊어버린 채 갖지 않은 것에 대한 욕심을 갖는 것이 인지상정이다.

 

우리의 가을이 관광 상품으로 개발되기를 희망하며 조경공간의 수목배치에 대해서도 변화 없는 상록수만을 고집하지 말고 낙엽수의 비율이 높아져서, 색깔을 느낄 수 있는 세상을 만드는데 함께 하기를 희망한다.

 

연재필자 _ 정정수 소장  ·  환경조경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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