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으로 보는 제주의 문화경관

해녀박물관, 돌문화공원 답사
라펜트l기사입력2015-11-18

제주 섬 한가운데 있는 한라산. 지금은 화산활동이 휴식기에 들어갔지만 한라산의 화산활동으로 인해 형성된 제주는 해안과 맞닿아 아주 특별한 문화경관을 갖고 있다. 월초 ICOMOS-IFLA ISCCL을 계기로 방문한 해녀박물관과 돌문화공원의 경관을 통해 제주의 문화경관에 대해 알아보자.



해녀문화


불턱


제주해녀는 조선시대부터 전해져 내려오며 20세기 초반부터 1970년대까지는 러시아, 중국, 일본 등지로 진출해 지역경제를 책임지는 중요한 존재이다.


제주해녀의 잠수어업은 차가운 물속에서 3~4시간 이상을 버티며 해산물을 캐는 수중작업으로, 전 세계적으로 여성들이 산소통 등 특수 기계를 부착하지 않고 맨 몸으로만 해산물을 채취하는 잠수어업은 한국와 일본에만 있는 문화이다.


해녀들은 일시적으로 몸을 의지하면서 체취한 해산물을 보관하는 도구인 태왁과 망사(시)를 비롯해 빗창(전복 따는 도구), 작은 호미(성계, 문어를 잡는 도구), 작상(물고기 잡는 도구) 등을 지니고 물에 들어간다.


그중 불턱은 해녀들이 옷을 갈아입고 바다로 들어갈 준비를 하는 곳이며 작업 중 휴식하는 장소이다. 둥글게 돌담을 에워싼 인공형 불턱과 자연지형을 이용한 자연형 불턱이 있다. 이곳에서 불을 피워 몸을 덥혔으며 물질에 대한 지식, 물질 요령, 바다밭의 위치 파악 등 물질 작업에 대한 정보 및 기술을 전수하고 습득했다. 해녀 간 상호협조를 재확인하고 의사결정이 이루어지기는 곳이기도 하다. 제주도 해안에는 마을마다 3~4개씩의 불턱이 있었으며 현재도 70여개의 불턱이 남아있다. 1985년을 전후로 해녀보호 차원에서 마을마다 현대식 탈의장을 설치해 불턱의 역할을 대신하고 있다.


최근 제주해녀들은 고령화가 심화되고 있어 세계적으로도 희귀한 해녀문화가 사라지게 될 수 있는 위기에 놓여있다.


불턱의 내부






닻. 배를 특정지역에 정박시키기 위해 줄을 매어 바다 밑으로 가라앉히는 도구이다. 닻을 던지고 다시 배로 끌어당겨 짧은 거리를 이동시키며, 배의 선수나 선미 주위로 움직여 배의 방향을 바꾸기도 한다.



키. 배의 방향을 조종하는 도구이다.



해안마을 전경



밭담과 산담

밭담 ⓒ
wikimedia

밭담은 농사를 짓기 위해 돌을 골라 밭의 가장자리에 쌓은 돌담으로 1,000년의 역사를 가지고 있다.

밭담은 강한 비바람이나 말과 소 등 가축의 침입으로부터 농작물을 보호하고, 농경지의 경계선 역할을 해왔다. 또한 토양의 침식을 방지하고 농업 생태계 유지에도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이러한 밭담은 제주의 지배적인 경관이며 독특한 경관을 형성한다. 2014년 4월 1일 세계 중요농업유산(GIAHS : Globally Important Agricultural Heritage Systems)으로 지정 등재되기도 했다.

산담은 무덤을 두른 담이며, 역시 말과 소가 침입하지 못하도록 막는 역할을 한다. 

산담. 이 묘는 ‘훈장묘’로 약 100여 년 전의 묘이다. 묘에는 세워진 무릎을 꿇고 앉은 동자석과 모자를 쓰고 있는 문인석이 있는데, 제주도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형태가 아니다.

동자석. 망자가 원하는 바를 시중들도록 무덤 좌우에 세워둔 평균 1m이하의 작은 석상을 말한다. 문인석과는 달리 민머리이거나 머리를 길게 땋은 모양, 쪽진 모양 등으로 표현되어 있으며 상반신만 조각된 신체와 앞가슴에 촛대, 술병, 술잔, 꽃, 부태, 표주박, 홀 등의 물건들을 두 손 모아 받들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이것은 죽은 사람을 위한 살아있는 사람들의 지극한 정성의 징표로 보기도 한다.



제주초가



제주 주거경관의 특징은 초가집에서 찾을 수 있다. 초가집 지붕은 제주 섬에서 주로 자생하는 띠를 두껍게 덮고, 띠로 엮은 동아줄을 격자모양으로 동여맨 형태를 취하고 있다. 지붕의 경사도는 강풍으로부터의 피해를 최소화하고 많은 강수량을 짧은 시간 안에 지면으로 흘려보내는데 유리하다.


제주초가는 주위 지형보다 낮은 곳에 돌담을 두르고 건물을 별동으로 배치한다. 안거리(안채) 한 채와 부속채로 이루어진 집을 ‘외거리집’, 안팎거리 두 채의 집으로 이루어진 집을 ‘두거리집’이라 하며, 안거리와 밖거리(바깥채)가 마당을 중심으로 二자로 마주보거나 ㄱ자로 배치된다. 그리고 안거리와 밖거리, 부속채의 목거리를 포함해 세 채로 이루어진 집을 ‘세거리집’, 안거리와 밖거리, 목거리, 이문간 등 네 채 이상으로 이루어진 집을 ‘네거리집’이라 한다. 안거리를 기준으로 밖거리, 목거리는 마당을 중심으로 ㅁ자형으로 구성된다.


제주도의 건물 배치는 육지의 주거건축과는 전혀 다르다. 육지는 남녀의 공간을 구분해 바깥마당, 사랑마당, 안마당으로 마당의 성격에 따라 건물의 배치가 달라진다.


그러나 제주도에서는 외형적으로는 대가족이나, 실제로는 핵가족인 특유한 가족제도를 지니고 있어 공가늘 세대별로 구분하는 안·밖거리형 주거공간을 구성하고 있다. 두 세대는 각각 정지, 장독대 등을 따로 마련하고 침식과 생산 경영은 두 단위로 이루어진다. 주거 단위로 보면 한 가족이나 경제적 단위로는 두 가족인 셈이다. 제주도의 주거건축의 기본형이 세칸집이라면 챗방이 있는 네칸집은 완성형이라 할 수 있다. 챗방은 식사공간으로서 주부의 가사노동을 절감시키고 동시에 식사공간의 위생적인 면을 고려해 분리된 공간임을 알 수 있다.








초가집 전경



옹기와 농기구

옹기


옹기는 자연적인 흙의 성질을 그대로 유지해 ‘공기가 통하고 숨을 쉬는 그릇’이라 불린다. 육지의 항아리는 보통 잿물을 입히고 환을 쳐 문양을 만들지만, 제주의 항아리는 잿물을 입히지 않고 연료인 나뭇재가 떨어져 입혀진 자연유로 처리하므로 독특한 미감을 자아내고 문양도 단순미가 돋보인다.


대형 항아리들은 1940년대에 전남 강진에서 들여와 막걸리를 숙성하는 용구로 사용했다. 현재 성형, 유약, 가마불 등 어려운 제작과정과 줄어드는 수요 등의 이유로 대형 항아리를 제작하는 도공들이 단절되어 가고 있다.


아래는 각종 농기구들이다.


말방애. 탈곡한 보리나 조 등을 찧을 때 사용되는 것으로 연자매(연자방아)를 말한다. 이것은 방애, 가레라고도 불렸으며 제주도는 마을마다 4~5개씩, 또는 30호(戶)에 1개 정도로 설치됐다. 말방애 받침돌인 아랫돌 위에 중수리라는 기둥을 중심으로 윗돌이 회전하면서 탈곡한 곡식을 정미한다. 사람이 주로 돌렸으나 소나 말의 힘을 이용해 돌리기도 했다.



연자매 밑돌



돌절구. 절구통, 돌방에라고도 하며 적은 양의 곡식을 도정하거나 제분할 때 사용한다. 원통형의 현무암을 오목하게 파내어 곡물을 넣고 찧을 수 있다.



보리통. 말고레로 곡물을 찧기 전에 알곡에 수분을 적시기 위해 물을 받은 통이다. 알곡을 방아에서 찧을 때 무거운 웃돌에 짓눌려도 알곡이 깨어지는 일이 없도록 알곡에 물을 축여 사용했다.



부섭과 등돌. 부섭은 숯불을 넣어 간이취사 및 난방을 했던 돌로 만든 화로. 마루 뒤편이나 부엌 바닥에 묻어 사용했다. 등돌은 마을 중앙의 폭낭 밑에 두었다가 청장년들이 힘을 겨루거나 다산과 다복을 축원하기 위해 들어 올렸던 돌이다. 마을 청년들 가운데 누가 더 힘이 센가는 이 등돌로서 가름되기도 하는데 농경 사회에선 노동력의 가치를 가름할 수 있는 것이기도 했다. 또한 마을청년들의 신체를 단련시키고, 마을과 마을 사이의 힘을 과시하는 저울대의 역할도 했다.







돌문화공원

제주 특유의 돌문화를 집대성한 관·민 합작 공원으로, 제주시 조천읍 교래리에 위치하며 부지면적은 326만 9,731㎡(100만 평)이다.


공원 부지 100만 평 중 70%는 돌·나무·덩굴이 어우러져 있는 곶자왈 지대로, 늪서리·큰지그리·작은지그리·바농 오름이 펼쳐져 있다. 공원조성의 제1원칙을 ‘환경 보존’으로 삼고, 제주의 정체성과 향토성, 예술성이 엿볼 수 있는 역사·문화공원이다.


공원은 크게 제주돌박물관, 돌문화전시관, 야외전시장, 제주전통초가공간으로 구성된다. 제1코스(동선거리 560m), 제2코스(970m), 제3코스(780m)를 돌며 관람하게 되어 있으며, 모두 돌아보는 데 2시간 30분 정도 걸린다.


입구





오백장군 군상












돌하르방




두상석 야외전시장. 설문대할망과 오백장군 신화 속에서 한없이 어머니를 그리는 오백아들의 심상을 다양한 형태의 자연석을 이용해 형상화했다. 지난 30여 년 동안 탐라목석원에서 관람객들에게 많은 사랑을 받으며, 제주돌문화공원 조성을 위해 제주 민속유물수집의 근간을 마련해 준 ‘갑돌이의 일생’ 중에서 인물상 부분만 따로 모아 재구성했다.


전설 속 오백장군의 이미지를 형상화한 오백장군 군상






제주돌박물관 입구. 최대한 경관에 해를 입히지 않기 위해 지하에 조성했다.



용암구. 내부는 스코리아로 채워져 있고 외부는 치밀한 용암으로 둘러싸여진 용암의 둥근 물체를 용암구라고 한다. 스코리아는 화산분출물 중 공기구멍이 많고 검정, 갈색, 빨강 등의 암색이며 지름이 4㎜ 이상인 암석덩어리를 일컫는다. 용암구는 유동하는 용암에 의해 스코리아 조각들을 코팅해 이동하면서 둥근 모양으로 만들어진다. 용암표면의 일부가 깨져 내부에 있던 스코리아 조각들이 빠져나와 흡사 용암수형과 유사한 형태를 보이기도 한다. 드물게 용암의 유로에서 이탈한 용암덩어리가 굴러가면서 둥근 모양의 용암구를 만들기도 하는데, 이때는 그 내부도 치밀한 용암으로 치워져 있다.



내용참고_정광중 제주대 부총장 ICOMOS-IFLA ISCCL 국제심포지엄 기조연설 중 일부

글·사진 _ 전지은 기자  ·  라펜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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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j870904@nate.com
관련키워드l문화경관, 해녀박물관, 돌문화공원, 제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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