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은관문화훈장 수상자, 안봉원 소장을 만나다
문화재청(청장 이건무)은 지난 12월 8일(월) 정부대전청사내 대회의실에서 2008년도「문화훈장」과「대한민국 문화유산상」수상자를 선정, 시상식을 거행했다.「문화훈장」과「대한민국 문화유산상」은 문화유산의 보존·연구·활용 분야 유공자를 대상으로 추천을 받아 각 분야별로 구성된 심사위원회의 심의를 거쳐 최종 선정되었다.
그 중 문화훈장(금관, 은관, 보관, 옥관, 화관 중)은 15년 이상의 수공실적이 있는 자로 국적과 생존에 관계없이 대한민국문화재보호로 국가발전에 기여한 공이 현저한 사람에게 수여된다. 이번 문화훈장 시상식에서 조경인의 눈길을 끈 부분은 은관문화훈장에 조경학자이자 前 문화재위원회 천연기념물분과 위원장인 안봉원 소장(문화유산환경연구소)이 선정이 되었다는 점이다.
그는 창경궁 복원 이외에도 다수의 문화재 원형복원 및 주변 환경정비를 추진한 경력 등을 인정받아 올해 은관문화훈장을 수상하게 되었다. 조경인의 더 큰 가능성을 보여준 안봉원 소장을 만나봤다.
창경궁, 경복궁을 비롯한 다수 문화재 원형복원에 힘쓴 공로 인정 받아
Q. 우선 ‘은관문화훈장’ 수상을 진심으로 축하드린다. 수상하신 문화훈장에 대해 간략한 설명을 부탁드린다.
A. 문화재청에서 문화유산의 보존,관리,활용에 현저한 공로가 있는자에 대하여「문화훈장」과「대한민국 문화유산상」을 포상하는 제도로 학술,연구분야, 보존,관리분야, 그리고 봉사,활용분야 등 세 분야로 나뉘는데 본인은 문화훈장 중 학술,연구분야에서 은관문화훈장을 수상하였다.
Q. 어떠한 공로를 인정받아 문화훈장을 수여하게 됐는지 말씀해주십시오.
A. 본인은 1987년도부터 2003년도까지 16년간을 문화재위원으로 재임하면서 주로 천연기념물의 지정과 보존에 관한 역할을 담당했으며 이외에 국립중앙박물관건립, 전통문화학교설립추진 등 여러 분야에 위원으로 활동한바 있다. 특히 1997년에 문화유산의해 조직위원으로 있으면서 문화유산헌장을 제정하는데 관여한바있다.
또한 자연유산 보존의 중요성을 절감하고 이 분야 전문가들과 함께 사단법인 자연유산 보존 협회를 창설하고 초대회장을 역임하면서 자연유산에 관한 학술연구를 다수 수행한바있으며, 특히 1999년도에 전국에서 우량 청소년100명을 선발하여 자연문화재 여름학교를 최초로 개설하여 청소년들에게 문화재에 대한 올바른 지식을 갖도록 교육한바 있다. 이 교육제도는 그 후 계속되어 현재도 실시하고 있다.
현재는 문화유산 환경연구소를 설립하여 관계전문가들과 함께 전통조경과 명승 등에 관한 연구를 수행하고 있다. 그간 문화재와 관련하여 연구해 온 것은 첫째 문화유산의 환경정비 및 복원, 둘째 명승자원조사, 셋째천연기념물 수림지 조사연구 등 세 분야로 말할 수 있다.

Q. 인정된 업적 중에는 창경궁의 정비복원이 상당부분 기여한 것으로 알고 있다. 유적지 복원 당시 중점을 둔 사항이 있으시다면?
A. 창경궁은 1418년 세종즉위년에 창건하여 600년의 유구한 역사를 간직한 궁궐인데 일제가 우리나라를 침략하고 우리민족의 문화 말살정책을 행하면서 이 창경궁에도 1909년에 동물원과 식물원을 개설하고 자기나라 국화인 벚나무를 대량 식재하였으며 명칭도 창경원으로 격하 하였으며 이외에도 춘당지옆에 수정이란 대형식당을 건립하고 경내에 각종 편이 시설을 설치하였다. 8.15 해방후에도 창경원은 서울의 유일한 관광명소가 되어 수많은 사람이 찾는 곳이 되었다. 하지만 역사문화의 인식이 부족하여 이곳에 각종 놀이시설과 케이블카, 연지내 보트놀이 등 다양한 시설이 추가로 도입되어 고궁의 모습은 완전히 소멸되고 소란스럽고 혼잡한 유원지로 변모되었다.
창경궁이 복원되기 시작한 것은 1983년에 동물원이 과천 서울대공원으로 옮기면서였고, 이해 창경원에서 창경궁으로 명칭도 복원하였다. 1984년도에 본인이 궁궐조경의 정비복원계획을 수립하고 시공 감리를 담당하였으며, 1986년도에 준공을 보아 현재 창경궁의 모습으로 정비 복원하였다. 수많은 사람이 무절제하게 이용했던 창경궁 인접의 종묘도 정전(正殿) 후면의 녹지가 완전히 나지화 된 것을 복원하였다.
이 외에도 구 총독부청사가 철거되어 1996년 경복궁 내에 있는 조경수를 전수 조사하여 궁궐양식에 부적합한 수종은 제거하고 궁궐에 적합한 수종으로 조경계획을 수립한바 있다. 창경궁 복원뿐 아니라 모든 문화유적지의 정비복원은 철저한 고증을 거쳐 원형대로 계획설계 하는 것이 가장 중요한 요체가 된다. 창경궁 역시 수많은 고증자료를 수집하여 설계하고 또 시공 감리까지 한 바 있다.
앞으로도 문화유산 보존, 복원에 매진할 것
Q. 창경궁 복원 당시 힘들었던 점이나 보람을 느꼈던 때가 있었다면 언제였는지, 왜 그런 생각을 하게 됐는지 말씀해주십시오.
A. 우선 일제의 문화말살정책이 얼마나 심각하였다는 것을 실감하였고 또한 해방 후에도 1983년까지 38년간이나 역사의식이 없어 이곳에 전동놀이시설과 케이블카를 설치하는 등 더 많은 시설을 추가하여 이곳을 유원지로 계속 이용하여 부끄러운 역사를 갖게 하였다.
이 모든 것을 1986년도까지 다 정비하고 원형 복원한바 있으나 한 가지 아쉬운 점은 식물원의 온실이 3개동이 있었는데 그 중 2개동은 철거하였고 중앙에 있는 온실을 불란서식 건물과 정원이 최초로 도입된 것이라 하여 철거여부가 논란이 된 바도 있었으나 현재 까지 그대로 남아있다.
Q. 앞으로의 계획이 있다면.
A. 현재도 사단법인 문화유산환경연구소를 설립하여 소장으로 있다. 앞으로도 더 많은 연구를 통해서 문화유산 보존에 최선을 다할 생각이다.
Q. 후학들에게 전하고 싶은 말씀이 있다면?
A. 문화유산을 바로알고 가꾸는 것은 우리 국민 모두의 책임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이 문화유산을 보존하고 가꾸는데 있어 특히, 조경을 전공하는 학도들로서 전통조경, 궁궐조경 등에 더 깊은 연구를 하여 정확한 문화유산의 환경정비 및 복원에 임하여야 될 것으로 사료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