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녹색시선] 일상의 즐거움. 수첩속 작은 고래가 있는 조경 [라펜트 조경뉴스]

[녹색시선] 일상의 즐거움. 수첩속 작은 고래가 있는 조경

주명돈 논설위원((주)한국종합기술 상무)

라펜트l주명돈 상무이사l기사입력2016-1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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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의 즐거움. 수첩속 작은 고래가 있는 조경

글_주명돈 상무이사((주)한국종합기술)

내가 살고 있는 아파트에는 모과, 매실, 대추 등 과실나무들이 제법 많이 심겨져 있다. 그래서인지 언젠가부터 나와 집사람은 아파트단지내 잘 익은 과실들을 따서 술(酒)이랑 차(茶)를 담그는 취미가 생겼다. 아파트내 과실들이 신통치 않을 때는 집 근처 농산물시장에 들러 모과, 매실, 인삼, 도라지, 더덕 심지어 와송(瓦松)까지 사서 술과 차를 담그기도 했다.

처음 술을 담글 때는 술병에 담근 날짜와 어떤 종류 인지를 간단히 적어(매실주[2013], 모과주[2014], 더덕주[2015] 등) 세탁실 옆 창고에 보관했었는데, 시간이 지난 지금은 나름 (술)이름을 작명하여 한지에 곱게 적어 병에 붙여 보관하기에 이르렀다. 봉수(鳳秀-桔酒), 예인(藝人-人蔘酒), 홍노설(紅爐雪-木瓜酒) 등 담근 술의 빛깔과 그때의 느낌 등을 담아 제법 그 듯한 이름으로 지어 붙였다. 이번 가을에 담근 모과주는 “떨어진 모과향이 아침 잠(꿈)을 깨운다(落黃, 香飛朝夢寤)”하여 황향(黃香)이라 이름 붙였다.

<모과주>

그러고 보니, 요 몇 년 동안 나도 모르는 사이에 자연과 함께 하는 몇 가지 취미들이 생긴 것 같다. 가을비 내린 새벽녘 운동 삼아 운중천(雲中川-집 앞을 흐르는 하천)을 거닐다 잔디밭에 떨어진 모과를 주워 잘 씻고 말린 후, 며칠 간은 거실에 두어 향기에 고마워하고, 다시 곱게 썰어 집사람은 차를, 나는 술을 담그는 소박한 취미. 그리고 나름 멋진 이름을 지어 주려 노력도 하고. 봄이 오면 베란다에 상추랑 쑥갓을 심고, 초가을 선선한 바람이 불 때면 (아파트)앞마당에 잘 익은 대추를 따 대추차도 만들고, 요즘 건강에 좋다는 아로니아도 베란다에 한주 심고, 그리고 그 아래 푸른 빛 조명도 하나 달아 주고.... 그리고 무엇인가 불현듯 생각이 날 때마다 작은 수첩 속에 생각을 담은 그림과 함께 하는 즐거운 취미.

그래도 조경과 함께 하기에 가질 수 있는 일상의 취미중 하나가 아닐까 한다.

얼마 전 신문을 보니 일상적 세상사와 직장내 과다한 업무로 인한 정신적 스트레스를 호소하는 사람들이 많아지고 있다고 한다. 특히 ‘트럼프’와 ‘최순실’이 뉴스의 절반을 차지하는 현 시국에 불확실한 생활환경, 복잡해진 사회구조, 무한경쟁속의 과다한 업무량 등으로 일상의 즐거움 보다 괴로움으로 생활을 이어가는 사람들이 많아졌다고 한다.

<짜여진 기억>

마음의 괴로움이 넘쳐 나는 불확실성의 시대....

이 글을 쓰면서 오래전 학창시절 조경과를 고래 잡는 과(科)로 잘못 알고 왔다는 농담을 하던 거제도 친구가 생각난다. 그 옛날 의미 없이 주고 받던 농담이지만, 어쩌면 지금 우리는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꿈을 현실로 만드는 조경을 해오고 있지 않았나하는 생각이 든다. 실제 고래 잡는 일이야 있겠냐마는, 우리가 나름 테마파크 등을 설계할 때 한번쯤 고래잡이가 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창덕궁/고래잡이>

<반딧불이테마공원 설계 中-반딧불이> <한국전쟁위령시설 구상 中-참회의 눈물>

힘들고 각박한 세상이지만 그래도 우리는 조경을 하기에 숲길에 떨어진 모과에도 나름의 즐거움을 찾고,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리는 일상의 업무(+여유)속에서도 고래잡이가 되는 꿈의 시간을 가질 수 있지 않나하는 생각이 든다.

내가 대학을 졸업할 때 쯤 외할머니가 내가 하는 일(조경)이 시원찮게 보였는지 조선소(내가 살던 곳)에 일자리를 알아봐 주시겠다고 하신 적이 있었다. 조선소에서 열심히 일하시는 분들에게는 정말 죄송하지만, 나무랑 꽃, 그리고 수첩 속 작은 고래가 있는 조경이 그래도 더 행복하지 않나, 하는 생각을 다시 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