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년 다니던 LH를 떠나 10월 1일부터 수원시지속가능도시재단의 초대 이사장으로 자리를 옮겼다. 내 몸과도 같았던 회사를 떠난 소회를 느낄 틈도 없이 사무실을 꾸미고 업무계획을 준비하면서 지역사회에 도시재단의 설립을 알려야 하기에 정신없이 바삐 보내고 있다. 도시재단에는 도시(도시재생, 마을르네상스, 주거복지), 경제(사회적 경제, 창업), 환경(학교급식 등) 관련 여러 지원센터를 포함하고 있는데 많은 사람들과 인사를 나누다보니 조금은 낯선 분위기도 있다. 조경전문가가 도시재단의 이사장으로 맞을까? 라고 갸우뚱해하면서 한편으로 어찌하여 조경전문가가 도시재단의 이사장으로 오게 되었을까를 궁금해 하는 것 같기도 하다. 조금은 낯선 대면식을 거치면서 조경직 사원이 도시재단 이사장으로 변신한 것에 자문자답하는 상황이 벌어진 것이다.

필자는 대학에서 조경학을, 대학원에서 도시설계를 전공한 뒤에 대한주택공사에 조경직원으로 입사했다. 본사 조경설계부서에서 첫 직무를 시작했지만, 대학교에서 배웠던 ‘조경’의 일부만 할 수 있는 회사 근무여건에 아쉬움이 끊이지 않았다. 다른 부서에서 그려 놓은 도면(단지계획도)에서 비워진 네모난 놀이터를 채우고 좁은 빈 땅(녹지)에 배식하거나, 다른 부서에서 그려 놓은 도면(토지이용계획도)에서 잘라 놓은 공원을 채워야 하는 상황이 쉽게 받아드려지지 않았다. 당시의 주공은 주택건설과 도시개발을 주요 업무로 했기 때문에 단지계획과 토지이용계획 수립은 매우 중요한 직무였다. 3급으로 승진한 1996년부터는 본사에서 생태조경과 환경친화형 조경기법 개발과 적용에 매달리며, 회사의 주요 직무인 단지계획과 토지이용계획 수립과정에 조경직원이 참여할 수 있도록 업무의 틀을 바꾸는데 온 힘을 쏟았다.

당연히 회사의 경쟁력을 높이기 위한 다양한 사내활동(제안, 청년이사회, 노동조합, 포럼)과 사외활동(시민사회단체, 학회 등)이 이어졌고, 2000년 지자체협력팀이라는 조직을 만들어 도시정책개발의 실무로 변신하며 이 과정에서 박사과정에 입학하여 도시계획을 전공하게 된다. 2001년 주거복지연대라는 시민사회단체를 조직하였고 2005년 살고싶은도시정책을 기획한 뒤 도시포털 구축(06), 도시대학 운영(07), 도시만들기지원센터 운영(08)을 거쳐 2009년에는 도시활력증진지역개발사업이라는 지역발전사업을 총괄 지원하였다. 용산사업(13)과 파주운정새도시(14)과 부천옥길개발(15)을 거쳐 천안시도시재생지원센터(16)에서 퇴사했다. 조경직원이 너무 멀리까지 온 것일까?

조경(Landscape Architecture)은 프레드릭 로 옴스테드가 처음 쓴 용어로 ‘문화적·과학적 지식을 응용하여 토지를 설계·계획·관리하거나 토지의 자연 및 인공 요소를 구성하는 예술’(아메리카조경가협회)이라고 정의되고 있다. 곧 조경가는 토지 위의 나무 등 생물과 주택 등 무생물 그리고 사람과 생물, 사람과 무생물,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를 다루고 조정하는 전문가라는 뜻 아닐까?

경제학(economics)과 생태학(ecology)은 한 뿌리로, 그리스어로 ‘집’을 뜻하는 ‘οἶκος’에서 모두 나왔다. 생태학에 익은 조경가에게 경제학은 멀리 있어 보이나 사실은 그렇지 않은 것이다. 수목학, 원예학, 토양학, 건축학, 도시계획학, 경관계획학, 환경심리학, 미학 등을 배우는 조경학은 사회과학과 자연과학을 넘나드는 다학제 학문으로 이 시대 이 사회의 어려운 의제를 주체적으로 풀기 위해 고민해야 할 몫이 있으며, 학문사이의 경계를 없애고 미래를 준비하는 상상력이 더욱 필요한 이 즈음 4차산업혁명을 이끌 조경가들의 능동적이고도 선구적인 역할이 새삼 기다려진다.

필자는 수원지역의 도시, 경제, 환경 등의 의제를 지속가능성을 중심으로 고민해야 하는 수원시지속가능도시재단의 업무를 시민 등 여러 주체들과 협치를 바탕으로 풀어가면서 수원을 지속가능도시로 가꾸어 가는데 온 힘을 쏟을 것이다. 조경계에서 아낌없이 성원해주기를 부탁드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