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미생태문화] 잉카의 나라 페루, 리마 역사, 문화, 생태

남미생태문화 탐방, 세상에 없는 경험, 우연히 발견한 즐거움 - 14
라펜트l박미옥 교수l기사입력2017-02-24
Human Nature & Culture 남미생태문화 탐방기
세상에 없는 경험, 우연히 발견한 즐거움 - 14

잉카의 나라 페루, 리마 역사, 문화, 생태




글·사진_박미옥 오피니언리더

나사렛대학교 교수


 



잉카의 여왕, 태양의 딸

우리 일행은 남미 최대 영토의 브라질에서 두 번째로 큰 아르헨티나를 거쳐 세 번째로 넓은 잉카의 나라 페루 일정을 시작하였다. 남미 고대 문명인 노르테치코 문명과 잉카제국의 심장, 페루.

앞의 두 나라는 각 나라의 수도와 두 나라에 걸쳐 있는 이구아수폭포와 이구아수국립공원이 답사 목표였다면, 페루는 수도 리마를 포함한 해안저지대와 사구, 안데스 고산지대와 잉카 유적, 아마존 열대우림 등 페루 전 지역에 분포한 페루만의 생태와 역사와 문화가 목적이었다.


페루 ( PERU )

페루 국장, 국기, 위치

지난 글에서 소개한 아르헨티나가 남미의 유럽이라고 불릴 정도로 유럽스러운 나라라고 한다면, 페루는 가장 남미다운 남미, 원주민 문화가 고스란히 남아있는 남미라고 할 수 있다. 페루는 남미 고유의 역사, 민족, 언어 등을 아직까지 간직하고 있다. 페루는 원주민과 유럽인, 아프리카인, 아시아인 등 다민족 다인종 국가이지만 원주민인 케츄아 인디오의 비율이 훨씬 높은 나라이다. 공식 언어는 스페인어이지만 원주민 대다수가 오리지널 인디오로 고유의 언어인 케츄아어를 주로 사용하며 아이마라어도 공식 언어이다. 페루 원주민의 혈액형은 100퍼센트 O형이라는 근거가 불분명한 말이 있으며, 2012년 기준 원주민 인구는 50,000명이다.
 
페루(Peru)란 말은, 페루 역사가 잉카 가르실라소 데 라 베가(Inca Garcilaso de la Vega, 1539-1616)의 연대기에 따르면, 16세기 초 파나마의 산 미겔만 근처에 살았던 지방 통치자의 이름 Biru에서 유래한다. Biru는 다른 한 편으론 ‘강’을 뜻하기도 한다.

1522년 프란시스코 피사로가 탐색하였을 때 Biru(Peru)란 이름을 붙이게 되었고, 1529년 옛 잉카의 땅을 이르는 Capitulaction de Toledo(페루 주)라는 이름으로 법적 승인을 받게 된다. 스페인 식민시대에는 페루 부왕령이었고, 1821년 지난 글에서 소개한 남미 독립영웅 호세 데 산 마르틴의 도움으로 독립전쟁 이후 1824년 페루 공화국으로 독립하여 오늘에 이른다.

우리나라와 페루 수교 50주년 기념 우표. 성산일출봉과 마추픽추를 상징으로 도안

‘페루’하면 잃어버린 도시 마추픽추를 떠올린다. 아마존, 이구아수와 함께 남미의 상징이며 신비로운 신화와 전설을 지닌 마추픽추, 여전히 신비에 싸인 잉카의 잃어버린 도시이다. 마추픽추에 대해서는 다음 글에서 소개한다.

페루는 브라질, 아르헨티나에 이어 남미에서 3번째로 큰 면적으로서 인구 약 3천만 명에 이른다. 국토의 한복판을 안데스산맥이 남북으로 지나면서 서쪽으로는 태평양 연안의 길고 좁은 평야(costa)와 해안사구, 안데스 산지의 고산 평원(sierra), 동쪽으로는 아마존 분지와 열대우림(selva) 등 다양한 지형과 열대, 온대, 냉한대기후대가 공존한다. 해발고도 5,100m 위치에 있는 “라 린코나다(La Rinconada)"는 세계에서 가장 높은 마을이라고 한다. 남쪽으로 볼리비아와 국경을 이루는 티티카카호수가 있는데 이 호수는 배로 운항이 가능한 호수 중에서 지구상에서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한 호수로 알려져 있다.


안데스산지의 만년설을 지나는 비행기


안데스산지 고산 평원 위를 흐르는 사행하천과 마을


고대문명, 노르테치코와 잉카

노르테치코 문명의 피라밋 (http://www.realmofhistory.com/)

올멕 문명과 노르테치코 문명

남미의 고대문명 하면 흔히들 페루일대의 잉카문명(타완팅스유)과 멕시코일대의 마야문명, 아즈텍문명 등을 떠올린다. 그런데 이들은 고대문명이라고 하기에는 시기적으로 13-15세기로서 중세에 가깝다. 이미 BC9천년부터 인류의 흔적이 나타나며, 일정한 세력을 지니고 사회적으로 등장한 가장 오래된 고대 문명은 기원전 3000~1800년경 사이에 태평양 연안을 따라 번성했던 노르테 치코 문명(Norte Chico, 또는 카랄/카랄-수페 Caral-Supe)으로서 카랄 협곡에 있는 거룩한 도시 카랄에서 비롯된 이름이다. 노르테 치코 문명은 메소포타미아의 수메르 문명에 비해 천 년 후에 발생했으며, 이집트와는 같은 시기, 메소아메리카의 올멕 문명보다는 2,000여년 가까이 앞선 시기이다. 뒤를 이어 쿠피스니케, 차빈, 파라카스, 모치카, 나스카, 와리, 시칸, 치무 문화의 흔적들이 나타난다. 
우리에게 잘 알려진 나스카 라인이나 여러 유적들이 대부분 잉카보다 훨씬 이전의 고대문명의 흔적이며 단지 문자가 아닌 신화나 설화 등 원주민들의 구전으로 전해져오고 있다.

왠지 신비롭게 느껴지는 태양의 나라, 잉카 제국은 13-15세기를 전후하여 이전의 고대문명에 비해 훨씬 강력한 집권세력에 의해 남아메리카에서 가장 광대한 제국을 건설하였다. 페루 안데스를 중심으로 북으로는 콜롬비아 남으로는 칠레 중부에까지 이르렀던 잉카문명은 농업에 기반을 두었으며 관개와 계단 농법 같은 기술을 이용하였고, 낙타과동물(라마, 알파카, 비꾸냐)을 기르고 물고기도 잡았다. 화폐나 시장의 관념이 없었으므로 이들 사회는 호혜와 분배를 기초로 한 사회 구조를 이루었다. 1532년 프란시스코 피사로가 이끄는 스페인 정복자들이 잉카 황제 아타우알파를 패퇴시키고 마침내 1572년 잉카제국을 정복하였다. 이후 약300년동안 스페인의 지배에 놓이게 된다. 잉카문명에 대해서는 다음에 자세히 소개한다.


리마 (Lima), 왕의 도시

리마거리


리마의 일정을 시작한 쉐라톤 호텔

페루의 수도 리마는 인구 885만(2015년 기준)으로 라틴아메리카에서 멕시코시티에 이어 제2의 도시이다. 1535년 1월 18일 잉카를 정복한 스페인 정복자 프란시스코 피사로(Francisco Pizarr)에 의해 쿠스코 대신 수도로 건설되었으며, 식민지 시대에 페루 부왕령의 수도였다. 리마라는 이름은 시내를 흐르는 리마크 강(rio Rimac)에서 유래되었다는 설이 있으며, 원래 이름은 “La Ciudad de los Reyes"(왕의 도시)이다. 리마크는 해안지역에서 사용하는 케추아어로 이야기꾼(talker)을 의미한다.

리마는 1542년 페루 부왕령의 수도로 지정되어, 누에바 에스파냐 부왕령의 수도 멕시코시티와 함께 라틴아메리카 스페인 식민지의 중심이 되었다. 

이 일대는 일년내내 비가 오지 않는 사막지대이다. 다만 4월에서 12월까지 태평양 한류의 영향으로 자욱한 안개가 사막을 가득 채우는데 이를 ‘잉카의 눈물’이라고 한다. 


리마의 주택가


아르마스광장

16세기부터 17세기를 통해서 리마는 은광산에서 캔 은을 유럽에 수출하는 중계지였으며 나아가 스페인의 남미 식민지 지배 거점도시로 번창하였다. 그 영향으로 1551년 남미에서 가장 오래된 산 마르코스 대학이 설립되었다.

1821년 아르헨티나의 독립을 주도했던 남미 독립의 아버지 호세 데 산 마르틴장군이 리마로 진격하여 독립을 선언하였다. 1879년에는 남쪽 칠레와의 전쟁에서 크게 패하여 수도 리마를 칠레군이 점령, 약 2년간 지배했던 아픔이 있다. 이 전쟁을 태평양전쟁이라하며 다음 글에서 자세히 소개한다.

현재 리마지역에 아메리칸 인디언이 거주하고 있었다고 추측되며, 대지의 신 파체카마크를 믿는 이치마 문화가 형성되었다. 3세기부터 8세기 무렵에 걸쳐 루린 계곡의 파체카마를 중심으로 발전하였고, 잉카시대에 들어서면서 거대한 태양 신전과 달의 관이 건설되고 종교적인 중심지 역할을 한다.

리마에는 몇 차례 큰 지진이 발생했었는데, 도시 중심부에는 식민지 시대에 지어진 건물이 많이 남아있다. 중앙지구와 해안 신도시로 양분되어 1988년 12월 9일~1991년 12월13일 세계문화유산에 등록되었다.


리마 시청

시청 앞 조형물. 사자는 스페인, 날개달린 동물(콘도르)와 퓨마는 잉카를 상징 

리마의 정치, 사회, 문화의 중심은 중심가인 센트로 복판에 있는 아르마스 광장(Plaza de Armas) 즉 현재의 마요르 광장(Plaza de Mayor)이다.

아르마스 광장은 잉카제국을 정복한 프란시스코 피사로가 1535년 광장과 함께 새로운 도시 리마를 건설하여 새로운 수도로 삼았는데, 에콰도르에서 칠레까지 이르는 페루부왕령의 수도로서 가장 중요한 도시였다.

마요르 광장의 북쪽에는 대통령궁(Palacio De Gobierno)은 피사로가 잠시 머물러 있었다고 하여 ‘피사로의 집’으로도 불린다. 동쪽으로는 대성당과 리마 대주교궁이 있으며, 서쪽으로는 시청사가 있다.

동쪽의 리마 대성당은 잉카제국을 정복한 프란시스코 피사로가 초석을 놓아 1622년 완공하였는데 1687년과 1746년의 대지진에 일부 피해를 입어 1755년에 복수하여 오늘에 이른다. 대성당에는 피사로의 시신이 안치되어 있다.

마요르 광장 중앙에는 분수대가 설치되어 있다. 원래 이곳엔 피사로의 동상이 있었다고 하며 후에 동상을 철거하고 분수대를 설치했다고 한다.

페루인들은 노란색을 좋아한다고 한다. 아마도 황금을 상징하는 색이기 때문일 것이다. 시청사와 그 주변 건물 역시 노란색이다.

리마 아르마스 광장 (마요르 광장) 대통령궁과 시청사


리마 마요르광장 대통령궁


마요르 광장 중앙 분수대. 원래 피사로 동상이 있었다고 함


리마공항과 비행기


리마 산마르틴 광장 산마르틴장군 동상


센트로
글·사진 _ 박미옥 교수  ·  나사렛대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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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coflower@korn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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