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컬럼] 2018 각자도생 시대의 조경계: 아브라함으로부터의 메시지

조세환 한양대 도시대학원 명예교수 / 한국조경학회 고문
라펜트l조세환l기사입력2018-12-23
2018 각자도생 시대의 조경계: 아브라함으로부터의 메시지



_조세환 한양대 도시대학원 명예교수 / 한국조경학회 고문



2018년 한 해가 저물어 간다. 왠지 올 한 해 조경 세상이 조용했다는 느낌이다. 작년까지만 해도 울퉁불퉁 소리 내며 굴러가던 조경계 얘기가 언제 부턴가 잠잠해 졌다. 조경계의 불평, 불만의 소리가 귓전에서 사라지고 내면화 됐다는 말이다. 무풍지대에 들어 선 느낌, 그 자체다. 듣기에는 거북하지만 불평과 불만이 터져 나온다는 것은 희망이 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제 조경계는 무엇엔가 기댔던 어떤 희망마저도 사라졌다는 것인가? 그렇다면 큰일이다. 그래서 혹자는 말한다. 조경계는 이제 각자도생의 시대로 접어들었다고. 살아도 혼자 연명하고, 죽어도 혼자 죽는다는 얘기다. 각자도생은 사회적 협력을 포기하고 혼자, 고립무원의 상태에서 스스로 자기의 길을 알아서 찾겠다는, 사생결단의 비장한 결심의 표현이기도 하다. 하지만 조경계의 각자도생은 비장함보다도 왠지 안쓰럽다는 느낌으로 다가온다. 사생결단엔 기회를 만드는 모험이 필요한 법.
 
모험을 걸려면 제대로 걸어야 한다. 적어도 기독교의 아버지, 아브라함처럼 큰 비전을 두고 모험을 해야 한다. 아브라함이 수행한 모험은 혼자 죽거나, 연명하거나.., 이런 쩨쩨한 모험이 아니다. ‘젖과 꿀이 흐르는 땅’, ‘이스라엘의 백성이 풍족하게 먹고 살 수 있는 나라를 세울 수 있는 땅’을 찾아 가는 모험이다. 가슴 떨리는 비전으로 아브라함은 오늘날 이라크의 티크리스∙유프라테스강 지역에서 이스라엘의 땅까지 사막과도 같은 메마른 땅을 수만 리 길 걸어서 찾아 갔다. 비전은 사람의 가슴을 뛰게 한다. 아브라함이 ‘젖과 꿀이 흐르는 땅, 가나안’을 찾아가는 것은 가슴 떨림의 비전을 넘어 목숨을 거는 사명감과 필적된다. 비전이란 그 만큼 절박한 상황의 또 다른 표현이다. 

아브라함의 모험은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신은 아브라함이 모험 떠나는 것에 대한 보답의 일환으로 100살이 넘은 그에게 적자인 아들을 점지해 준다. 그리곤 몇 년이 지나 역설적으로 그 귀하고 귀한 아들을 자신에게 제물로 바칠 것을 아브라함에게 요구한다. 번뇌에 번뇌를 거듭한 아브라함은 마침내 그의 아들을 신에게 제물로 바칠 것을 결심한다. 엄청난 모험이다. 그러나 제단을 세우고 그 위에서 아들의 목숨으로 제사지내려는 순간 신은 생명의 메시지를 내려 보낸다. 아들의 목숨까지도 기꺼이 바치는 아브라함의 진정성을 받아들여 그의 아들의 목숨을 살려줌은 물론 그 아들의, 그 아들의 자손의, 그 아들의, 아들의 자손에 이르는 먼 후대에까지도 번성시켜 줄 것을 약속한다. 오늘날 이스라엘 국민, 전 세계에 펼쳐있는 유대인들이 그들이다. 

성경의 이야기이니 성스럽고 무거운 얘기이긴 하다. 하지만 우리 조경계도 여기서 큰 메시지를 구할 수 있지 않을까. 모험을 찾아 떠날 만큼 큰 ‘비전의 설정’, 또 그 비전을 위해 온 정성을 다 바칠 수 있는 진정성어린 마음이 있어야 하지 않을까. 아브라함이 찾아가던 ‘젖과 꿀이 흐르는 땅’에 해당하는 우리 조경계의 비전은 무엇일까? 적어도 우리도 산림청과 같은, 젖과 꿀을 쏟아내는 조경관련 국가 조직과 예산을 챙길 수 있는 독립된 정부조직을 갖추는 것과 같은 것이 되지 않을까? 이건 너무 지나친 봄날의 꿈에 불과할까.

기회는 잡는 것이기도 하지만 만들어 가는 것이기도 하다. 젖과 꿀이 흐르는 조경의 땅은 찾아가는 곳이 될 수도 있고 만들어 가는 곳도 될 수 있다. 지금 상황의 국토교통부 녹색도시과에서 조경계가 찾아 갈 수 있는 기회의 땅은 있기나 있는 것일까. 산림청에 가서 조경계가 찾을 수 있는 기회의 땅은 과연 얼마나 될까. 애굽 땅(이집트)에서 노예로 살던 이스라엘 민족이 찾을 수 있는 빵 조각은 호구지책마저도 어려운 정도가 아니었는가. 이스라엘 민족이 이집트를 탈출하여 영광스러운 가나안 땅을 찾아 가듯이 조경계도 가나안 땅과 같은 새로운 ‘국토비전’을 세우고, 그 비전 성취를 위해 아브라함처럼 목숨 걸고 사막의 길로 모험을 나서야 하지는 않을까.

비전은 만들어 가는 것이다. 우리 조경분야의 ‘(사)대한환경조경단체총연합’은 조경계의 아브라함 비전을 세우고, 그 비전을 찾아 모험의 길을 떠나기 위해 만들어 진 최고의 조직일 게다. 그래서 직함도 총재다. 최고의 직함이다. 요즘 잘 나가는 임업분야 어디에도 총재는 없다. 기왕지사 말이 나왔으니 관련하여 하는 말이다. 산림청은 어떤가. 산림조성에 최고의 가치를 두고 국토정책을 추진한 시대는 산업화시대였다. 이미 성공적으로 완수되었고 그 시대는 이미 지나갔다. 그래서 도시숲, 정원 등 각종의 이름을 붙이고 제도를 만들며 자꾸 도시로 내려온다.

도시 침공 전략도 많이 발전했다. 이젠 전투 대신에 회유 전략을 쓴다. 산림기술인 등 몇 가지 귀족 작위를 주며 산림제국의 시대를 열고자 한다. 구시대적 발상이다. 아무리 몸부림쳐도 국토관리를 산림 차원에서만 바라볼 수 없는 것이 동시대의 흐름이다. 국토라는 상위 개념을 포괄하는 조경계를 산림기술인이라는 프레임에 걸어 산림제국의 속국화를 꿈꾸는 것, 대단한 비전이지만 시대성에 비추어 모순적 이야기일 뿐이다. 그들에게도 산림제국화라는 구시대적 발상을 넘어서는 새로운 비전이 필요하다. 국토라는 프레임의 조경계와 함께 나아갈 새로운 공유의 비전일 것이다.


2022년은 우리에게 새로운 희망이고 기회의 해다. 한국조경 50년을 맞이하는 해이고, 30년 만에 다시 한국에서 IFLA가 개최되는 해다. 그리고 대선이 있는 해다. 이 기회의 해를 앞으로 다가 올 먼 날의, 가물가물한 어느 지점으로 생각해서는 곤란하다. 그저 IFLA 국제 총회를 치른다는 소극적 관념으로 다가가서는 더더구나 곤란하다. 우리는 ‘조경계의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을 찾을 수 있는 비전과 기회의 시간으로 맞이해야 한다. 그 2022년을 위해 가슴 설레는 새로운 비전을 세우고, 조직을 정비하며, 목표를 세우고, 전략을 수립하며, 재정을 확보하는 등 일련의 일들을 준비해야 할 시간이 지금이다. 그리곤 앞으로 3년의 시간이 남아있다. 

(재)환경조경발전재단은 업계가 중심이 되어 이 비전을 위해 재정을 모으고 관리하는 재단 고유의 기능으로 선회할 필요가 있다. 누군가는 노블레스 오블리주 정신을 발휘하여 재단 육성에 투척해야 한다. 대한환경조경단체총연합은 이 비전을 수립하고 추진해 나가는 등의 협회 기능을 수행하는 최고의 지휘부로 작동해야 한다. 2022년 IFLA를 준비하는 조직도 지금부터 이 시스템 속에서 함께 구축되고 조률 되며 가동되어야 한다. 이처럼 국토의 가치를 높이는 ‘젖과 꿀이 흐르는 조경 땅의 구축’이라는 더 높은 비전을 향해 조경계의 시스템이 다시 한 번 우렁차게 굴러가는 모습을 보고 싶다. 이 모든 것이 어찌 필자의 소망에만 국한 된 일일까. 2019년은 ‘각자도생’의 2018년을 넘어 ‘함께번영의 2022’의 길로 나아가는 출발의 해로 자리매김 되길 고대해 본다.
_ 조세환  ·  한양대 도시대학원
다른기사 보기
chosh3@hanynag.ac.kr

네티즌 공감 (0)

의견쓰기

가장많이본뉴스최근주요뉴스

  • 전체
  • 종합일반
  • 동정일정
  • 교육문화예술

인기통합정보

  • 기획연재
  • 설계공모프로젝트
  • 인터뷰취재

커뮤니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