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강운의 곤충記] 날개를 달고 어딘들 가지 못할까마는···

글_이강운 오피니언리더(홀로세생태보존연구소 소장)
라펜트l이강운 소장l기사입력2019-04-17
날개를 달고 어딘들 가지 못할까마는…



_이강운 홀로세생태보존연구소 소장
(사)한국환경복원기술학회 부회장



3억5000만 년 전부터 지구의 주인공으로 살아온 곤충은 사는 곳을 까다롭게 따지지 않는 편이다. 다른 동물에서는 볼 수 없는 유일하고 특별한 기관인 날개 덕분에 이동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천적이 많아지거나 먹이가 부족한 불리한 환경이 되면 얼음으로 뒤덮인 북극과 밀림이 우거진 아마존, 찜통더위의 사막까지 이동해 극한의 적대적인 환경을 극복하고 서식지로 빠르게 삼는다. 날개로 빠르게 이동하고, 짧은 시간 내에 적응하고, 시간이 부족하면 휴면을 통해서 생체 리듬을 조절하며 번식을 하는 강인한 생명체라는 진면목을 보여준다. 


붉은점모시나비. 멸종위기종Ⅰ급이며 전 세계적으로 보호받고 있는 나비다.
 홀로세생태보존연구소 제공

붉은점모시나비는 곤충 가운데 보존 등급이 가장 높은 멸종위기종Ⅰ급으로 전 세계적으로 보호받고 있는 나비다. 서식지외보전기관인 홀로세생태보존연구소와 환경부는 붉은점모시나비 복원을 위해 2011년부터 2015년까지 총 120쌍, 240마리의 붉은점모시나비를 원 서식지인 강원도 삼척에 방사했다. 방사 후 과연 얼마만큼 복원이 됐고 안정화됐는지 확인하기 위해 2016년도 5월말에서 6월초까지 모니터링을 실시했다. 생물 이동경로와 개체군 크기를 측정하는 MRR(Mark-Release-Recapture, 표식-방사-재포획) 방법으로 조사한 결과 이동 거리에 대한 기존의 자료와는 엄청난 차이를 보여주는 결과를 확인했다. 
 

방사 후 재포획 된 14번 붉은점모시나비
 홀로세생태보존연구소 제공

높은 산에서 사는 까닭에 '알파인 버터플라이(Alpine butterfly)' 라고 불리는 붉은점모시나비는 바람 찬 정상 부근의 넓고 푸른 들판이 자기가 사는 곳이다. 그런데 들판 너머가 궁금했는지, 지금 사는 곳이 답답하게 느껴져 좀 더 큰 세상과 만나고 싶었는지 하늘에 길을 만들어 이동을 했다. 강원도 삼척 추동리에서 채집해 14번 번호를 붙인 개체는 5.6km 떨어진 지각산에서 다시 채집이 됐다. 최대 1.5km를 이동한다는 기존 결과보다 훨씬 먼 거리인 약 6km의 머나먼 땅까지 이동했으니 참 멀리도 날아갔다. 
 

붉은점모시나비의가 이동한 지역 간의 거리
 홀로세생태보존연구소 제공

물론 해외까지 진출하는 외래종과 비교해보면 그렇게 먼 거리가 아니라고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아주 특별한 서식지에 살기 때문에 대부분 현재 살고 있는 지역을 떠나지 않고 머무르는 정주성(定住性) 나비가 무려 6km에 이르는 먼 길을 과감하게 이동한 것은 매우 드문 일이다. 철새들은 체온을 유지하고 먹이를 찾기 위해 철따라 대양을 건너고 대륙을 넘나든다. 그러나 체온 조절이 가능한 변온동물인 곤충이 위험을 무릅쓰고 이동하는 이유는 특별할 수밖에 없다. 이동을 통해 서식지를 확장해 유전적 다양성을 높이고, 질병을 피하기 위한 최고의 생존 전략이면 좋을 듯 싶은데 붉은점모시나비는 다른 이유가 있는 것 같다.


외래종인 등검은말벌, 외래종인 꽃매미
 홀로세생태보존연구소 제공

날개 달고 어딘들 가지 못할 것이며 어딘들 살지 못하겠는가만은 이미 상당히 많이 진행된  ‘기후 변화’라는 선택 압력이 붉은점모시나비를 북쪽, 찬 곳으로 이동하게 한 이유로 보인다. 생존을 위해 저온에 적응한 한지성 나비라 태생적으로 더위를 견딜 수 없는데 온난화에 따라 나타난 따뜻한 겨울과 뜨거운 여름에 대한 두려움으로 이동을 감행한 것 같다. 


날개 편 애기뿔소똥구리
 홀로세생태보존연구소 제공

식물을 먹는 초식성이나 다른 동물을 잡아먹는 육식성 곤충에 비하면 구하기 어려운 식재료인 똥을 먹는 분식성 곤충은 고달프다. 똥은 쉽게 썩고 시간이 지나면 굳어버려 먹을 수 없게 되니, 자원도 부족하고 그 질도 현격하게 떨어진다. 냄새로 먹이를 찾고 수색 범위를 확대하며 재빨리 먹이원에 접근할 수 있는 방법은 빠른 비행이다.


애기뿔소똥구리 몸길이 대비 뒷날개 비교 홀로세생태보존연구소 제공

초식성이나 육식성 곤충에 비해 애기뿔소똥구리 뒷날개는 잘 발달되어 있어 빠르게 멀리 날아 갈 수 있다. 일단 똥에 접근한 후에도 똥을 두고 치열한 경쟁이 벌어진다. 경쟁자가 접근하지 못하도록 똥을 둥글게 말아 지하의 방에 옮겨 묻는다. 소똥구리 종류들은 날개를 크게 하고 먹이를 감추는 고도로 진화된 행동으로 귀한 자원인 똥을 온전하게 차지하고 효과적으로 이용하고 있다. 


모시나비 짝짓기
 홀로세생태보존연구소 제공

보편적으로 곤충의 날개는 비행을 위한 기관이지만 비행 이외에 여러 가지 기능이 있다. 날개에 무늬와 색을 입혀 다채로운 색상을 만들고 여러 가지 패턴으로 동족을 구별하고 짝짓기 할  배우자를 연결해주는 열쇠가 된다. 수컷 앞날개에 있는 냄새비늘(androconium)은 암컷이 더듬이로 더듬어 수컷을 받아들일지를 결정하는 짝짓기 최후의 관문이다. 더듬이처럼 감각기 역할을 하는 잠자리 날개의 가시 털도 있다.


산제비나비 앞날개 냄새비늘과 앞날개 냄새비늘(SEM)
 홀로세생태보존연구소 제공


날개띠좀잠자리(SEM) 홀로세생태보존연구소 제공

청날개애메뚜기는 두꺼운 앞날개와 직선으로 곧게 뻗은 날개의 맥을 이용해 소리를 내는 도구로 쓴다. 참나무산누에나방과 밤나무산누에나방은 천적으로부터 자신을 지키는 경고 수단으로 커다란 뒷날개를 활용한다. 뱀눈박각시는 이름 그대로 뒷날개에 뱀눈 모양의 무늬가 있어 자극하는 순간 앞날개가 펼쳐지면서 가짜 눈이 밖으로 불쑥 튀어 나온다. 충분히 포식자를 놀래 켜 달아나게 할 수 있는 용도가 있다.  


청날개애메메뚜기 앞날게 스크래퍼 (scraper) SEM 촬영
 홀로세생태보존연구소 제공


(위에서 차례로) 참나무산에나방, 밤나무산누에나방, 뱀눈박각시 홀로세생태보존연구소 제공

식물도 스스로 이동을 위해 날개를 단다. 구조적으로 날개를 갖고 있지는 않지만 동적 양력을 이용해 씨앗을 퍼뜨린다. 일종의 회전날개를 이용해 멀리 떨어진 곳으로 이동하는 단풍나무속의 종자가 유명하다. 이처럼 비행은 동력을 갖고 새로운 환경으로 빠르게 분산할 수 있고 불리한 환경으로부터 도피할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이다. 


고로쇠나무 열매 홀로세생태보존연구소 제공

이동을 위한 가장 좋은 수단인 항공기의 노선은 세계를 실핏줄처럼 연결하고 있다. 제한된 시간과 공간을 극복하고 사람이든 화물이든 아마존 열대우림에서 에베레스트 꼭대기까지 구석구석 어디든 보낸다. 하지만 편리함과 동시에 세계가 하나로 다 같이 묶여 있기 때문에 치료약 없는 질병이나 천적 없는 생물이 퍼지면 단 한 번에 공멸의 길로 갈 수도 있다. 외래종 불개미로, 항아리곰팡이병으로, 사스로, 난데없는 바이러스로 모든 생물과 인간을 단 한 번에 멸종시킬 수 있다는 사실을 생각하면 끔찍하다. 


※참고문헌
- Kang-Woon Lee. 2017. MRR monitoring of Endangered Butterfly Parnassius bremeri (Lepidoptera: Papilionidae) in Samcheok and Habitat Evaluation. Wonju Regional Environment Office.
- Kim, D. S et al. 2012. The Analysis and Conservation of Patch Network of Endangered Butterfly Parnassius bremeri(Lepidoptera: Papilionidae) in Fragmented Landscapes. Korean Journal of Applied Entomolog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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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글은 동아사이언스의 동의를 얻어 발췌한 기사이며, 이강운 소장의 주요 약력은 홀로세생태보존연구소 소장 / 한국환경복원기술학회 부회장 / 한국서식지외보전기관협회 회장 / 국립안동대학교 식물의학과 겸임교수 / 저서로는 <한국의 나방 애벌레 도감(Caterpillars of Moths in Korea)>(2015.11 환경부 국립생물자원관), <캐터필러>(2016.11 도서출판 홀로세)가 있다.
이메일 : holoce@hecri.re.kr       
글·사진 _ 이강운 소장  ·  (사)홀로세생태보존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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