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녹색시선] 세상을 지키는 건 어벤져스가 아니다

글_진승범 논설위원(이우환경디자인(주) 대표)
라펜트l진승범 대표이사l기사입력2019-05-09
세상을 지키는 건 어벤져스가 아니다



글_진승범 대표(이우환경디자인(주))



열풍(熱風)을 넘어 광풍(狂風)이라 불러야 맞을 듯싶다. 지난 4월 24일 개봉한 마블의 히어로 영화 ‘어벤져스:엔드게임’ 얘기다. 사전 예매 230만 장, 최단기간 100만 관람객 돌파시간 4시간 30분, 최다 일일 관람객 166만 명(이 글이 독자들께 읽혀질 때쯤엔 새 기록이 세워졌을지도 모르겠다) 등 국내 영화사상 역대 최고기록을 모조리 갈아치우고 있는 이 기세의 끝이 어디가 될지 자못 궁금하다.

사실 어벤져스의 출발은 그리 화려한 것은 아니었다. 영화가 아닌 만화책을 출판하던 마블사가 빚더미에 허덕이다 궁여지책으로 자신들 히어로 만화의 한 캐릭터인 ‘아이언맨’을 주인공으로 하여 영화를 제작 처음 개봉한 것이 2008년 4월이다. 놀랍게도 결과는 초대박이었다. 전 세계에서 5억 9000만 달러(약 6860억 원)의 수익을 올려 도산위기의 마블을 구해내는 기적 같은 결과를 얻었다. 영화 속에서 어벤져스가 지구와 인류를 위협하는 세력을 몰아내고 세상을 구한 것처럼. 그 뒤를 이어 헐크, 토르, 캡틴 아메리카, 스파이더맨, 앤트맨, 블랙 팬서 등 많은 마블 코믹스 캐릭터들을 주인공으로 한 영화가 쏟아져 나왔다. 이들은 각자의 특기와 초능력을 무기로 지구를 지키고 인류를 구원하는 데 힘썼다. 모두 흥행에 성공이었다. 영화팬들은 기존의 슈퍼맨이나 원더우먼처럼 완벽하고 결점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어 인간계(?)는 범접할 수 없는 캐릭터가 아니라, 구원자로서 쓸데없이 목에 힘주지 않고 묵직한 메시지를 던지려 애쓰지도 않으며 심지어 우리처럼 때론 감상에 젖기도 하고, 때론 허둥대며 실수도 하는 친근한 영웅의 캐릭터에 열광하며 빠져들었다.

기대 이상의 성공에 한껏 고무된 마블은 지금까지의 슈퍼히어로들을 한 팀으로 묶어 영화팬들에게 종합선물세트(?)를 선사하겠다는 야심 찬 기획을 한다. 2012년 ‘어벤져스’의 탄생이 그것이다. 이후 마블의 영화는 승승장구하여 지금 한국은 말할 것도 없이 전 세계의 영화팬을 불러 모으고 있는 ‘어벤져스:엔드게임’에 이르기까지 11년 동안 22번이나 지구를 지키고 인류를 구원하는 성과를 올리게 된다. 물론 현실이 아닌 영화 속 가상 세계에서 말이다.

무엇이 이토록 지구인의 마음을 사로잡았을까. 사전적 의미로 어벤져(avenger)는 ‘복수하는 사람, 원수를 갚는 사람’을 뜻한다. 제목에서 보듯 영화 속 캐릭터들이 그들 나름의 방식과 능력으로 힘을 합쳐 인류의 생존을 위협하는 악의 무리에 맞서 복수하고 원수를 갚아주는 행위를 보며 마치 자신이 한 것과도 같은 대리만족의 경험을 통쾌하게 할 수 있는 통로의 역할을 해준 것이 매우 중요한 이유 중 하나인 것은 분명하리라. 그리고 절대 간과해선 안 되는 한 가지. 어벤져스의 성공은 영화 시리즈의 상영만으로도 37억 3700만 달러(약 4조 2000억 원) 이상의 수익을 올릴 수 있도록 호응해준 영화팬이 있었기에 가능하였다는 점을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 영화 개봉을 손꼽아 기다리며 영화관으로 달려가 준 관람객이 없었다면 오늘의 어벤져스는 존재할 수 없었다.

이제 우리가 처한 현실의 세계로 눈을 돌려보자. 대한민국 조경계와 조경인을 둘러싼 환경은 마블 영화 속 지구와 인류에게 닥친 도전과 위협에 비해서도 크게 달라 보이지 않는다면 지나친 비약일까? 조경은 과연 이 땅에서 지속가능한 학문과 기술이며 문화세계라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는가? 불행히도 이 상태로 계속된다면 누구도 장담할 수 없음을 직시해야 한다. 조경이라는 큰 그릇 안에 우리의 것을 오롯이 다 담지 못하고 생태로, 정원으로, 공공디자인으로, 숲으로, 찢길 데로 찢어져 조경인끼리도 내가 옳으니 네가 그르니 하며 분열에 분열을 거듭하고 있는 작금의 상황보다 더 우려스럽고 심각한 문제는 우리 내부의 무관심과 체념이라 감히 말하고 싶다.

조경인의 조경에 대한 무관심. 필자에겐 매우 심각한 현상이라 여겨짐을 어찌할 수 없다. 1972년 ‘조경(造景)’이라는 이름의 학문과 기술이 이 땅에 탄생된 이후 50년 가까운 세월동안 학계와 업계를 통해 배출된 조경인력이 적게는 9만 명에서 많게는 12만 명으로 추산된다. 이를 기반으로 조경계에는 현재 우리 분야 학문과 기술의 발전을 도모하고 종사자들의 권익을 보호함을 목적으로 하는 크고 작은 10 여 개의 단체(사단법인, 재단법인, 협동조합 등)들이 활동하고 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모든 조경단체가 극소수의 인원만이 관심을 갖고 활동하는 소위 그들만의 리그일 뿐이다. 각각 학계와 업계를 대표하며 가장 오랜 역사를 가진 한국조경학회와 한국조경협회(구 한국조경사회)마저도 연중 1~2회 열리는 총회의 성원을 채우지 못해 안건에 대한 의결 없이 보고로 갈음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라면 믿어지는가? 필자의 기억에는 단 한 번도 총회가 성원을 이룬 적이 없었다(조경학회는 재적회원 3분의 1 이상 출석, 조경협회는 재적회원 과반수 출석이 되어야 총회가 성립됨을 각 정관에 명시하고 있음). 따라서 두 단체 공히 총회의 의결사항을 이사회로 넘겨 의결 후 결과보고로 갈음하고 있는 실정이다(이 역시 정관에 예외규정으로 명시).

조경인의 무관심은 비단 총회 때뿐만이 아니다. 대내외적으로 중요한 문제에 직면하였을 때 조경인 모두의 지혜와 의지를 모아 단합된 목소리로 대처해야 함은 아무리 강조하여도 지나침이 없다. 그러나 그런 중요한 순간에 관심을 갖고 참여해주는 조경인의 수가 부끄러울 정도로 적다는 것이 우리의 자화상이다. 거의 모든 경우가 그렇다.

12만, 아니 양보해서 9만 조경인들은 그 순간 모두 어디에 있는 것인가? 나는 뒷짐 지고 있을 테니 단체장들이 알아서 잘하라고? 착각하지 말자. 단체장은 어벤져스가 아니다. 설령 어벤져스급의 능력을 갖추었다 해도 그에 걸맞는 조경인의 호응이 없으면 그 능력은 무용지물이 되어버리고 만다. 개봉 10일 만에 1100만 명이 찾아주지 않았다면 ‘어벤져스:엔드게임’은 그저 매년 개봉되는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영화 중의 하나로 그쳤을 것이다. 지금의 문화현상이 아닌.

조경을 지속가능하게 하고 조경의 번성을 꿈꾸는가? 관심 갖고 참여하자. 내가 속한 단체에서 나의 목소리를 듣고 싶어 할 때 기꺼이 나의 소리를 들려주자. 단체장들을 어벤져스로 만드는 힘은 우리에게 있다. ‘나 하나쯤이야’가 아닌 ‘나 하나만이라도’라는 생각이 조경인 모두의 가슴에 울려 퍼지길 기원하며 조동화 시인(1949~  )의 <나 하나 꽃 피어>로써 졸고를 맺는다.

나 하나 꽃피어
풀밭이 달라지겠냐고
말하지 말아라
네가 꽃피고 나도 꽃피면
결국 풀밭이 되는 것 아니겠느냐

나 하나 물들어
산이 달라지겠냐고도
말하지 말아라
내가 물들고 너도 물들면
결국 온 산이 활활
타오르는 것 아니겠느냐
_ 진승범 대표이사  ·  이우환경디자인(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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