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원 아카이브, 공원의 미래를 생각하게 하다

[인터뷰] 이정아 서울시 서부공원녹지사업소 주무관
라펜트l전지은 기자l기사입력2020-05-29
장소는 항상 그 자리에 있다. 다만 시간이 흐름에 따라 그 형태와 이름이 바뀔 뿐이다.

서울 마포구에 위치한 ‘월드컵공원’의 이름도 마찬가지였다. 60년대에는 ‘꽃섬’이었고, 70~80년대에는 쓰레기 매립지 ‘난지도’, 90년대에는 안정화 공사를 거쳐 2002년 ‘공원’이 됐다. 40년의 세월이 흐르면서 그곳을 찾았던 사람들도, 그곳에서 일어났던 일들도 함께 흘렀다.

월드컵공원은 난지도 쓰레기매립지가 공원으로 탈바꿈한 사례로, 평화의 공원, 하늘공원, 노을공원, 난지천공원, 난지한강공원 5개 공원으로 구성된다.

난지도 쓰레기매립지는 침출수와 유해가스를 처리하는 시설이 없이 각종 쓰레기를 그대로 쌓아놓았던 것으로, 수도권에 짓기로 했던 매립지 건설이 늦어지면서 1978년부터 1993년까지 15년 동안 서울의 모든 쓰레기를 받아들여야 했다. 그 결과 매립량 9200만 톤, 높이 약 100m에 이르는 두 개의 큰 산이 됐다.

포화상태가 된 쓰레기를 그대로 두고 환경을 복원하자는 커다란 틀 안에서 공원조성 프로젝트가 세워졌다. 비슷한 시기에 추진된 선유도공원과 기본적인 맥락을 같이 한다. 정수장 부지였던 곳으로 산업시설의 유적을 문화사적 가치가 있다고 보고 공원으로 만든 선유도공원처럼, 15년간 서울의 급변하는 산업사의 지층을 이루는 쓰레기에서 서울의 근대사를 들여다본다는 의미에서 쓰레기산을 그대로 두게 된 것이다.

월드컵공원이 가지는 이 거대한 이야기 줄기뿐만 아니라 세세히 뻗어나가는 이야기들도 분명 존재할 것이다. 서울시 서부공원녹지사업소는 그 기억을 되찾고자 ‘월드컵공원 아카이빙 사업’을 실시하고 있다. 총 3단계로 이루어지는 사업으로, 올해는 2단계에 돌입했다. 월드컵공원이라는 장소의 기억을 더듬는 일이 우리에게는 어떤 의미가 있을까?


이정아 서울시 서부공원녹지사업소 공원여가과 주무관. 그림은 영재발굴단에 출연한 임이삭 군이 월드컵공원의 이야기를 듣고 그린 그림


아카이빙의 시작

이 사업은 오래된 상자에 묵혀있던 1만 장의 사진을 발견하면서부터 시작됐다. 월드컵공원 내 위치한 서부공원녹지사업소 건물은 과거 쓰레기 매립지 시절부터 있었던 건물로, 그 장소의 과거가 고스란히 사진으로 남아 있었던 것이다. 이 사진을 정리해야겠다는 생각으로 시작된 것이기에 기록연구사가 있는 것도, 아카이빙의 절차를 따르는 것도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진으로부터 과거를 더듬어가는 이 작업은 의미가 있다.

월드컵공원은 사연이 많다. 쓰레기 매립지이기도 했고, 비위생매립을 했다는 오명도 있었다. 이곳을 생태공원화한 사례 또한 세계적으로 유일무이하기에 국내는 물론 해외에서도 견학생들이 많이 찾는 곳이기도 하다.

공원에 대한 자료들은 단편적 지식에만 그친다. 견학생들에게 설명하는 데도 한계가 있었다. 이 장소에 대한 깊이 있는 지식에의 목마름이 항상 있었다. 시민들에게 보다 나은 정보를 제공하고 싶다는 마음에서 시작된 사업이다.
월드컵공원을 바라볼 수 있는 시각은 매우 다양하다. 도시재생에 대한 관점, 서울시의 폐기물정책에 대한 부분, 민선으로 전환되며 생긴 시민 서비스 차원에서의 공원이라는 공간, 조경적 관점 등 다룰 수 있는 이야깃거리들이 많다. 이 기억이 모두 잊히기 전에 정리하는 것은 우리에게, 또 후대에게 중요한 일임은 분명하다.


발견된 1만 장의 사진은 날짜와 공간별로 분류코드화 되어 보관하고 있다.


사람들의 기억

매립지 당시 현장 사진을 기록물로 찍어놨던 사진들이 1만 장의 사진이 있었으나 이 사진들이 무엇을 의미하는지에 대해서 알아야 할 필요성이 있었다. 이 사진들을 해석하기 위해서는 당시 관련자들의 기억이 필요했다. 그래서 1단계 사업으로 매립지를 공원으로 조성하는 과정에 참여했던 설계자‧기획자 등 8명의 인터뷰를 진행했다. 당시의 생생한 기억을 듣는 오디오 아카이빙을 진행한 것이다. 이 과정에서 2002년 월드컵을 앞두고 급박했던 상황, 개발론과 환경론 사이에서의 비하인드 스토리, 그 이전 이곳에 살았던 사람들의 이야기 등 다양한 이야기를 확인할 수 있었다고 한다.

설계자분들이 가장 흥미로웠다고 입을 모으신 건 ‘하늘공원의 설계방향’이었다. 하늘공원의 주된 디자인을 설정하기 위해 고심하다가 풀리지 않는 설계에 ‘모르겠다’하고 X표시를 쳐놨던 것이 어느 순간 생태지표종인 나비모양으로 보이기 시작하며 설계의 실마리가 풀렸다고 한다.
하늘공원의 도면을 보면 직사각형의 부지에 주 동선으로 엑스자축을 가지고 있다. 친환경 생태공원화를 목표로 하는 만큼 나비가 의미가 있었던 것이다. 식재는 나비의 날개 패턴을 따라 키가 큰 수종인 억새, 해바라기, 띠 등을 식재하고, 아닌 부분은 억새보다 키가 작고 척박한 지역에 잘 자라는 수크령, 상록패랭이, 새덤, 사초류 등로 계획됐다.

처음 공원을 계획할 때는 ‘상암동 새천년 개발계획’의 일환으로 ‘밀레니엄공원’으로 조성될 예정이었다. 그러나 월드컵 경기장을 상암동에 유치하기 시작하면서 2002년 5월에 개원일이 정해지고, 공무원, 용역사 구분 없이 다 같이 골방에서 밤을 새며 머리를 맞대서 나온 결과물이 지금의 공원이다.


하늘공원의 조감도를 보면 주동선이 X자로 나비의 형태를 하고 있다. / 서울시 제공

난지도에 모이는 쓰레기들은 지금 시점에서 바라본다면 이해가 되지 않는 부분이 많을 것이다. 검정비닐봉지에 버려진 쓰레기들과 함께 온갖 가전제품들이 한데 뒤엉켜있는 모습이니 말이다. 당시만 해도 폐기물을 분리 배출한다는 정책도 없었을 뿐더러 쓰레기봉투 자체도 없었기에 그렇다. 아카이빙 과정에서 이러한 환경에서만이 나타는 독특한 생활상이나 이야기들도 드러났다.

“서울의 노른자 땅이자 한강이 바로 옆에 있는 마포구에 어떻게 쓰레기를 묻을 생각을 했나요?” 해외의 견학생들이 자주 하는 질문이고 한다. 이 지역은 땅이 고르고 토양이 좋아 수수나 땅콩, 조를 경작하기에 좋았던 땅이고, 훨씬 더 과거로 돌아가 보면 겸재 정선의 그림에 나타난 대로 풍수와 지리가 좋았던 곳이기도 하다. 그럼에도 어떻게 이곳이 쓰레기섬이 됐을까? 난지도는 버려진 땅이었고, 당시의 마포구는 서울에서 외곽지역에 속했다. 무엇보다도 땅의 레벨이 서울시 전체보다 낮았기에 비가 오면 홍수가 나는 안 좋은 땅으로 여겨졌던 곳이기도 하다고.

70, 80년대 쓰레기 매립지 시절에는 ‘넝마주이’라 일컬어지는 폐품수집으로 생계를 유지하던 사람들이 있었다. 원주민들도 있었고, 생계를 유지하기 위해 외부에서 유입된 사람들도 있었다. 이 당시 ‘앞벌이’, ‘뒤벌이’라는 독특한 생활상이 나타나기도 했는데 이권에 따라 먼저 줍는 사람과 나중에 줍는 사람으로 나뉘었다. 앞벌이는 부자 구에서 오는 쓰레기더미를 먼저 주울 수 있었고, 세탁기나 냉장고, 청소기 등 무게가 나가 더 많은 돈을 벌 수 있는 것들을 주워간다. 그 뒤에 ‘뒤벌이’가 남은 것들에서 수거를 하는 형태였다. 사회적으로 잠재적 우범자로 간주되던 이들은 경찰의 관리 아래 근로재건대라는 이름으로 관리됐으며 그들의 활동대상지로서의 역사도 있다.

서부공원녹지사업소 건물은 매립지 당시부터 있던 건물이기도 하고, 당시 근무하셨던 분들이 월드컵공원관리사무소로 복귀하신 분들도 계신다. 그때의 기억을 가지신 분들의 대부분은 퇴직하셔서 연락이 닿기 어렵거나 40년이 지나 기억이 많이 흐려지기도 했다. 지금이 아니면 아카이빙을 할 수 없었을 것이라 생각한다.
인터뷰를 진행하면서 수많은 비하인드 스토리를 들었다. 올해는 사진과 이야기를 토대로 행정 문서를 통한 팩트 체크 과정을 거치고, 공개할 수 있는 내용을 추려 내년도 이어지는 3단계 사업에서 시민에 공개될 예정이다.

지난해 생태동화작가, 여행작가와의 협업으로 기존의 공원 이야기에 박물관, 도서관에 소장된 자료, 인터뷰자료 등을 보충한 기초자료를 만들었다. 이를 기반으로 올해 공원 해설사를 위한 ‘월드컵공원 전문해설을 위한 워크북 제작’이 진행된다. 2018년부터 공원에서 활동해온 해설사에게 보다 깊은 이야기를 교육함으로써 공원을 찾는 이들에게 더 나은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이 목적이다.

몇 년도에 사업이 시작됐고, 쓰레기가 몇 만 톤이 묻혔으며, 어떻게 이용되고 있는지 등의 딱딱한 이야기 외에도 이야깃거리를 풍부하게 할 수 있는 소재들을 발굴한다면 보다 깊이 있고 흥미로울 것이다.

미래 공원을 위한 기반

세계적으로 쓰레기매립지 안정화기간을 30년으로 보고 있으며, 그 때 또한 머지않았다. 공원 조성 당시에는 지표침하가 한 해에 8m까지 가라앉기도 했다. 지금은 커봐야 3㎝, 아니면 1㎝ 내외이다. 생물종은 당시 400종에서 1500종으로 늘었다. 이밖에도 침출수의 양, 가스의 농도, 사면의 토양유실 등을 1년 내내 모니터링 하고 있다. 월드컵공원은 쌓여있는 쓰레기 위에 공원을 조성한 것으로 세계적으로고 유일무이한 사례이기에 30년이 되는 해 안정화가 됐다고 발표할 수는 없겠지만 점차적으로 안정화가 되고 있음은 분명하다.

내후년이면 월드컵공원 개원 20주년이다. 공원의 미래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시민들의 눈높이는 높아만 가고, 공원관리가 아닌 공원경영 시대가 도래하면서 공원운영방식에도 변화가 찾아오고 있다. 그렇다면 더 나은 미래 공원의 모습과 효과적 운영을 위해 제2의 리모델링 등을 고민해야 할 것이다. 이 아카이브가 미래 공원을 향한 고민의 기초자료가 됐으면 한다.
결국 이 사업의 목적은 더 나은 공원 서비스를 시민에게 제공하기 위함이다. 녹지가 있는 휴식처로서만 여겨지던 공원이 최근 들어 문화나 교육 등의 혜택을 누릴 수 있는 다목적 이용공간이 됐듯 미래의 공원 청사진을 그리고 대비하기 위해서는 기록이 중요하다. 문서 한 장이라도 잘 기록돼 있다면 공원의 가치와 기억이 고스란히 남아 후대가 활용할 수 있는 것이다. 이것이 아카이빙의 목적이자 중요성일 것이다.

공원 아카이빙 사업은 공무원의 법정업무로 지정돼 있지 않아 인정받을 수 있는 사업도 아니고, 예산 또한 따로 책정되지 않아 다른 사업 예산들에서 아주 조금씩 할애하고 나머지는 직원 5명과 파트너사의 열정으로 채워야 하는 사업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진행하는 것은 문화비축기지 개원 당시 실시했던 아카이빙 작업의 중요성을 익히 알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서부공원녹지사업소에서 관리하는 공원은 총 7개로, 월드컵공원을 비롯해 선유도공원, 서서울호수공원, 여의도공원, 문화비축기지, 경의선숲길공원 등 푸른수목원을 제외하고는 전부 재생공원이다. 공원이 담고 있는 이야기가 많고 가치가 있는 공원이다. 이정아 주무관은 현재 진행하고 있는 아카이브 작업도 중요하지만 현재의 기록을 어떻게 할 것이냐가 숙제로 남아있다고 전한다. 아카이빙 사업을 하면 할수록 ‘기록은 기억을 지배한다’라는 말에 깊은 공감이 된다고.

장기적으로는 아카이빙 업무가 법정사무로 지정되길 원한다. 공원의 문화를 만들고 공원을 운영할 때 꼭 필요한 업무라는 것을 인정받아야 지속적으로 일이 진행이 될 수가 있을 것이다. 지금은 열심히 해보자라는 직원들의 의지로 진행이 되지만, 점차적으로 아카이브의 중요성이 알려져 직원이 바뀌어도 진행되는 업무가 됐으면 한다.
아카이브 사업을 시민들에게 양질의 공원서비스로서 제공하기 위해 서부공원녹지사업소는 추후 ‘서울기록원’과 협의할 계획을 가지고 있다. 아울러 개원과 동시에 시작한 서울억새축제 20주년인 내년에 사진과 이야기를 엮은 전시회를 열어 알리는 것 또한 직원들의 희망사항으로 남아있다. 이러한 노력들이 공원을 기억하고, 더 나은 공원으로 향하게 하는 초석이 될 것으로 기대된다.



글·사진 _ 전지은 기자  ·  라펜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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