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녹색시선] 부캐가 필요해

조용준 논설위원(㈜CA조경기술사사무소)
라펜트l조용준 소장l기사입력2021-01-10
부캐가 필요해




_조용준 ㈜CA조경기술사사무소 소장




K대리는 김공일

그림 그리는 것을 좋아하는 설계사무소 3년차 K대리는 일반인들이 조경을 쉽게 이해할 수 있는 그림 이야기를 만들고 싶어 했다. 업계에서 야근이 많기로 유명한 설계사무소를 다니면서도 자기시간을 쪼개어 ‘조경가 김공일의 하루’라는 이야기와 부캐를 만들었다. 그리고 이 만화는 네이버 디자인 프레스에 최초로 조경을 주제로 한 시리즈로 연재되었다. 작가의 모습을 투영한 김공일의 이름은 ‘공원(park)이라는 단어로부터 언어유희로 만들었는데 이 부캐는 꿈을 실현하기 위한 매개체다.





업무용 부(副)캐릭터

유학을 다녀와 이른 나이에 회사를 차린 34살의 C소장은 프로젝트로 건축가들을 만날 때 마다 스트레스다. 인사를 나누다 보면 항상 ‘저기 나이가 어떻게 되세요?’라는 질문 받기 때문이다. 어려보이는 모습이 혹시 상대방에게 믿음을 주지 못할까라는 걱정이 많다. 그래서 외부업무가 있거나 미팅이 있을 땐, 평소와 다른 오피스 룩을 입고, 느리고 낮은 톤으로 이야기 한다. C소장은 마치 자기가 다른 사람이 되어 연극을 하는 것 같다고 한다. C소장의 업무용 부캐는 설계사무소를 운영하는데 필수템이 되었다. 


조제를 아시나요?

설계사무소 J소장은 최근 인스타그램에서 조제(design_joje)라는 부캐로 활동 중이다. 회사 일만하기엔 그의 열정(?)이 넘치기 때문이다. 그는 예전부터 페이퍼 아키텍트들의 작업을 동경했으며, 비록 실현되지 않더라도 이상과 상상을 통해 꿈꾸는 디자인을 좋아했다. 그래서 그는 조제라는 부캐로 그래픽 실험들과 아이디어 현상들에 참여하고 있다. 그의 부캐 조제는 통속적인 아이디어와 클리셰적인 디자인의 현실 속에서 도피처이며, 창의적 설계의 즐거움을 이어가기 위한 대안이다. 


조제의 작업1 : 이탈로 칼비노(Italo Calvino)의 “보이지 않는 도시들” 중 Zirma라를 도시를 상상하며 만든 작업으로 스케치와 모형을 바탕으로 컴퓨터로 완성하였다.


조제의 작업 2 : 미세먼지 저감을 주제로 하늘공원과 난지한강공원 사이에 더스트 캡쳐와 연결데크를 제안하였다. <2019년 저이용 도시공간 혁신아이디어 공모전 대상수상>



멀티 페르소나 시대에 부캐는 필연적인 결과물이다. 인간이 사회적 동물이라는 교과서적인 이야기를 늘어놓거나 칼 구스타브 융(Carl Gustav Jung)의 분석심리학을 들먹이지 않아도, 이미 우리는 다양한 집단 속에서 각기 다른 역할들을 수행하는 자신을 만난다. 사회적 지위나 가치관에 의해 바뀌는 다양한 정체성의 표현은 도덕적인 위선이 아닌, 현대사회를 살아가는 우리의 일상적인 모습이다.

부캐는 몇몇 연예인과 TV 프로그램을 통해 명명되기 시작하였지만, 이미 자신만의 멀티 페르소나를 구축하며 살아가는 현대인들에게 일상화된 사회적 현상으로, 공감되면서 흥행하였다. 그래서 이는 유산슬, 린다G, 싹쓰리, 마미손과 같은 특정 연예인들이나 또는 MZ세대만의 국한된 이야기가 아니다.

우리는 부캐를 통해 자신을 탐구하고, 자신을 위한 새로운 가치를 찾을 수 있다. 부캐의 자유로움은 본(本)캐의 책임이나 의무에서 벗어나 또 다른 자기의 모습을 가볍게 또는 편안하게 즐길 수 있게 한다. 그리고 이는 영역의 한계를 넘어선다. 개그맨 유재석이 유산슬로 트롯의 즐거움을 선사하며 예상치 못한 흥행을 이끌었듯이, 주니어 조경 설계가의 부캐 김공일은 그의 반복적 일상의 새로운 즐거움이며, 조경을 알리는 주요한 매개체이기도 하다. 생산적인 부캐는 본캐를 확장시킨다. 그리고 우리의 삶에 더욱 풍부하게 만든다. 개인의 삶과 다양한 가치가 중요해진 현 시대에 우리는 부캐가 필요하다. 당신의 부캐는 무엇인가?
글·사진 _ 조용준 소장  ·  (주)CA조경기술사사무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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