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녹색시선] 시속 4㎞의 도시

조용준 논설위원(㈜CA조경기술사사무소)
라펜트l조용준 소장l기사입력2021-06-04
시속 4㎞의 도시




_조용준 ㈜CA조경기술사사무소 소장



도시의 속도가 변화하고 있다. 효율적 이동을 목표로 한 차량 중심의 빠른 도시에서 안전하고 쾌적한 보행 중심의 느린 도시로 변화하고 있다. 뉴욕시는 2017년 브로드웨이 타임스퀘어를 중심으로 한 보행 친화 거리를 조성하였고, 파리시는 최근 보행 및 녹지공간을 대대적으로 확장하는 2030 샹젤리제 개조 계획을 발표했다. 그리고 서울시는 올해 5월 세종대로 사거리~서울역사 구간에 서울광장의 두배가 넘는 보행공간인 ‘세종대로 사람숲길’을 조성하고, 다양한 거리공연 및 온오프라인 걷기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다. 


파리지엥이 외면한 샹젤리제 거리의 변화

파리시의 대표적 상징가로인 샹젤리제는 하루 64,000대 교통량으로 인한 소음과 매연, 그리고 85% 이상이 외국 관광객인 오버 투어리즘으로 인해 파리지앵으로부터 외면되어 온 지 오래다. 이러한 문제점을 해결하고자 올해 초 안 이달고(Anne Hidalgo) 파리 시장은 2㎞ 샹젤리제 거리 일대의 변경 계획을 발표했다. 자동차로 인한 문제를 줄이고, 새로운 도시공간과 활용법을 만들어 내는 것을 포함한 4가지 구체적 실천 전략을 마련하였는데, 주요 방안으로 보행자, 전기차와 개인이동수단(PM: personal mobility)들의 수용, 녹지와 투수면적의 증가, 다양한 초화류 식재, 도로 통합 포장 패턴과 무단차 계획, 광장의 전면 보행화 등을 제안하고 있다. 구체적으로 8차선의 도로를 4차선으로 줄이면서, 자전거 전용도로와 평행 주차공간 및 버스정류장, 그리고 보행공간을 확장하였다. 또한, 개선문~콩코르드 광장 구간을 이용이 과도하게 많은 지역(hyperplace)과 매우 적은 지역(hypervoid)으로 구분하고, 주변 면적 프로그램과 연계해 세부적인 공간 활용 계획(예: 놀이공간, 하천변 물놀이 공간, 아트 조형물 공간, 건물 옥상조경 활용)을 제안하였다. 기존 가로에서는 보행 위주의 선형 공간 구조와 개선문으로 이어지는 상징적 축선이 강조되었다면, 새로운 계획안에서는 실질적 휴식과 만남을 위한 작은 포켓 형태 녹지대, 테마정원, 이동식 키오스크 등 편의시설을 계획하였다. 


샹젤리제거리 예시도 / Vue des Champs-Élysées, vision 2030


샹젤리제거리 예시도 / Vue des Champs-Élysées, vision 2030


세종대로 사람숲길

세종대로 사거리로부터 이어지는 약 1.5㎞ 구간의 가로풍경이 바뀌었다. 기존 9~12차선의 도로가 7~9차선으로 줄어들며 4~12m 폭의 보행가로가 생겨났다. 그리고 새로운 가로를 따라 사계절 가로숲을 테마로 한 수목들이 풍성하게 심겼다. CA조경기술사사무소는 새로운 광화문광장~남대문 역 구간에 통합적 가로 경관 계획을 제안하면서, 단일 수종의 가로수 식재를 지양하고, 느티나무, 팽나무, 느릅나무를 대표수종으로 한 다채로운 식재를 연출하였다. 새로운 가로수들에 기존 은행나무들과 덕수궁 담장길 플라타너스가 어우러져 시간의 깊이가 느껴지도록 계획하였고, 하부에 다양한 높이 관목과 초화류를 식재해 수목의 층위가 다양해졌다. 프로젝트 초기에는 차선을 줄이고 보행로를 넓히는 구조변경 위주로 진행되었지만, 조경 전문가들과 서울시 푸른도시국의 제안으로, 가로변 식재 계획이 추후 보완되어 현재의 세종대로 사람숲길이 탄생하게 되었다.



세종대로 사람숲길 조성 이전 / 서울시 제공


세종대로 사람숲길 조성 이후 / 서울시 제공


작은 녹음이 가치 있는 거리

2000년대 초반의 ‘걷고 싶은 거리 프로젝트’들을 살펴보면 화려한 시설물, 상징물, 바닥 포장의 디자인 요소들이 주를 이뤘다. 하지만 걷기에 쾌적한 환경을 위해서는 나무 한 그루가 주는 그늘과 청량함이 훨씬 효과적일 수 있다. 새로운 가로 조성의 노력이 과도한 시설이나 포장에 집중되기보다 적정한 식재를 통해, 거대한 도시 스케일과 회색 풍경에 균형감을 맞춰주는 방향으로 바뀌어야 하는 이유이다. 또한, 이전과 같이 가로수가 꼭 한 종류의 수목만으로 이루어질 필요는 없다. 가로를 걷는 즐거움은 풍성한 수목과 초화가 주는 계절감과 시시각각 변화하는 풍경으로부터 느낄 수 있다. 좋은 가로는 도시의 여러 가지 구조물이 적절히 숨겨진 채 그 기능을 하며, 가로에 면한 건물 저층부의 풍경과 그곳에 있는 자연이 잘 드러날 때 비로소 만들어지는 게 아닐까?


공공필지와 사유지의 문제
 
가로공간은 필연적으로 크고 작은 사적인 영역들과 맞닿아 있다. 가로환경설계에 있어 개별 사유지들이 세세하게 분석이 되고, 관계들이 재정립되어야 한다. 건물 프로그램의 고려는 물론이고, 경계부 디자인, 동선, 배수 등이 풀어야 할 중요한 문제이다. 그렇기에 공공주도개발 방식에 더한 민간의 참여 없이는 통합된 가로 경관의 조성은 불가능하다. 예를 들어, 세종대로의 경우, 민간필지의 개발이 제외되었기 때문에 불편한 동선, 경계부 단차, 침수 등 일부 구간에 구조적 문제들이 발생한다. 또한, 가로에는 머물거나 휴식할 수 있는 공간들이 필요한데, 공공필지만으로 해결하기보다는 사유지와 연계해 충분한 면적의 공간을 확보하는 것이 중요하다.


다양한 속도로부터의 안전

이제 가로에는 자동차와 사람뿐 아니라 다양한 개인 이동수단(PM)들이 다니기 시작했다. 자전거를 비롯해 전기차, 전동 킥보드 등 이동수단 간 다른 속도에 의한 안전의 문제가 이슈다. 보행자를 비롯해 다양한 이동수단을 고려한 가로 시스템 혹은 설치 기준이 마련되어야 하는데, 아직 턱없이 부족한 실정이다. 보행의 편안함을 제1기준으로 보고, 그 외 이동수단들의 주행 환경은 2차적으로 고려해야 하는 것이 합리적인데, 현재 기준은 그렇지만은 않다. 예를 들어, 서울시의 경우, 자전거 도로 설치 기준을 과도하게 적용하다 보니, 되려 보행에 문제가 되는 경우들이 많다. 예를 들어, 사거리 횡단보도의 경우, 자전거 도로 인지를 위해 보행가로 측에 경계석을 설치하는 경우가 있는데, 이는 차량이 우회전 혹은 좌회전을 할 경우, 보도에 침범하기가 쉽도록 만든다. 또한, 보행가로 레벨에 맞춰 조성되는 자전거 전용도로는 버스정류장 구간에서 보행 방향과 직교되어 안전 문제를 야기한다. 보행이 중심이 되어야 하는 광화문광장의 경우, 자전거 도로 설치가 의무이다 보니, 광장 내 자전거 이용자들의 무분별한 이동이 예상된다. 보행자를 우선으로 하는 제도적인 보완과 대책이 시급하다.

죽은 가로는 주변을 침체시키고, 도시를 어둡게 만든다. 세운상가의 실패했던 1㎞의 공중보행데크는 그 주변 일대를 침체시켰다. 서울시청에서 동대문역사까지 조성된 을지로 일대의 지하가로는 제 기능을 하지 못한 채 활력을 잃어가고 있다. 반면에, 자연이 함께 하는 가로는 건강한 환경을 만들고, 도시에 활력을 불어넣는다. 청계천 물길은 뜨거운 도심을 시원하게 만들고, 끊임없이 사람들의 발길을 이끈다. 경의선 숲길은 주변의 핫플레이스들과 공생하며, 성수동 숨겨진 작은 정원들은 공장지대 삭막한 거리에 이색적인 풍경을 더한다. 보행속도 4㎞의 가로가 많은 도시가 좋은 도시다. 그리고 그 거리에는 자연이 함께하고 있다.
_ 조용준 소장  ·  (주)CA조경기술사사무소
다른기사 보기

네티즌 공감 (0)

의견쓰기

가장많이본뉴스최근주요뉴스

  • 전체
  • 종합일반
  • 동정일정
  • 교육문화예술

인기통합정보

  • 기획연재
  • 설계공모프로젝트
  • 인터뷰취재

커뮤니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