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녹색시론] 조경이 도시재생을 왜 하겠다는 건데요?

김영민 논설위원(서울시립대학교 조경학과 교수)
라펜트l기사입력2021-06-17
조경이 도시재생을 왜 하겠다는 건데요?


_김영민(서울시립대 조경학과 교수)





지난 7년

“도대체 조경이 도시재생을 왜 하겠다는 것인데요?”

2014년 일명 도시재생 특별법*이 만들어진 직후 조경도 도시재생에 적극적으로 참여를 해야 한다고 했을 때 대부분은 이런 질문이 돌아왔다. 이런 부정적인 반응은 의외로 다른 분야가 아닌 조경 내부의 반응이었다. 물론 이러한 반응에 근거가 없는 것은 아니었다. 교수님은 정책적 지표나 법률을 보면 조경이 개입할 여지가 없기 때문에 도시재생은 조경과 거리가 멀다고 생각하셨고, 공무원들은 도시재생은 새롭게 별도의 부서가 추진하는 사업인데 조경에서 이런저런 간섭을 하면 오해가 있을까 주저했다. 실무에서도 당시 판교, 위례 등의 2기 신도시가 세팅되어 대형 조경 프로젝트가 발주되는 상황이라 자잘한 도시재생 따위는 신경 쓸 여유가 없다는 반응이었다.

이러한 판단과 선택이 잘못되었다고 할 수는 없다. 최근 정치적으로 도시재생이 오히려 공격을 받으면서 거리 두기가 오히려 좋은 선택이었다고 하는 이들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지난 7년간 도시재생은 과거처럼 비주류의 담론이 아니라 새로운 도시 만들기의 패러다임이 되었다. 대도시는 물론 지방 소도시들이 도시재생의 패러다임 아래에서 바뀌기 시작했으며, 학계에서도 도시재생은 가장 핫한 키워드가 되었다. 도시재생 제도화에 별다른 기여를 못 했고, 관망만 하던 조경은 재생을 통한 도시 만들기의 담론에서 소외될 수밖에 없었다. 예상치 못했던 부작용도 부메랑처럼 돌아왔다. 공원도 재생의 부분이 되면서 프로젝트 기획의 기회조차 잃어버린 것이다. 수많은 재생형 공원들이 건축가와 도시계획가에 의해 건축공모전으로 기획이 되었고, 공원 프로젝트에 정작 조경가가 배제되는 경우도 생겼다.

물론, 도시재생에서 조경의 참여가 전혀 없었던 것은 아니다. 도시재생에 처음부터 관심을 두고 참여한 조경가들도 있으며, 조경의 역할이 필요하다고 생각한 건축가나 계획가들도 있었다. 그리고 도시재생에서 두각을 드러내는 조경 베이스의 회사들도 있다. 하지만 이는 조경, 즉 조경계가 잘한 결과가 아니라 개개인의 역량과 노력의 성취였다. 이미 도시재생의 흐름이 본격적으로 시작된 지 7년이나 지났지만, 여전히 우리는 처음 우리가 스스로 던졌던 질문에 대답을 해야 한다. 조경이 도대체 도시재생을 왜 하겠다는 것인가?

*정식명칭은 도시재생 활성화 및 지원에 관한 특별법으로서 2013년 12월에 제정되었다. 


도시재생 수단으로서 공원녹지

지난 5월 조경학회가 도시설계학회와 도시정책학회와 함께 ‘도시재생 수단으로서 공원녹지와 시민참여’라는 제목의 웨비나를 개최하였다. 다소 딱딱하게 느껴질 수 있는 제목이었지만, 조경과 도시재생의 관계를 압축해서 정리한 매우 현실적인 제목이라고 생각했다. 제목은 명확하게 일단 조경의 역할은 도시재생의 방편을 제공하는 것이라고 명시하고 있었다.

광운대 도시계획부동산과 박태원 교수, 음성군 시장통 도시재생 센터장인 청주대 환경조경학과 박재민 교수, 그리고 조경 쪽에서 가장 도시재생과 시민참여의 실무 경험이 많은 김도훈 소장의 발표가 있었다. 발표에서 흥미로운 점은 도시전공인 박태원 교수는 덤덤하게 자신의 프로젝트를 소개하며 공원의 역할을 설명했지만, 조경전문가들은 발표의 내용의 상당 부분을 도시재생에서 왜 조경이 필요한지를 설명하는데 할애했다는 것이다. 도시전문가에게는 이미 도시재생이 제도화될 때 그러한 고민은 일단락되었던 반면, 다른 분야만큼 치열하게 도시재생과 조경의 관계를 탐색하지 못했던 조경전문가들은 한발 늦게 정당성 자체에 대해 고민을 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나는 이 고민이 단순히 뒤처져 뒤늦게 하는 고민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여전히 도시재생은 진행 중이고 완벽하지 않다. 분명 정치적 아젠다의 성격이 강했던 도시재생은 정치적 상황에 쉽게 흔들릴 수 있으며 예상치 못한 문제를 드러내고 있다. 오히려 도시재생에 대한 본질적인 차원 고민이 다시 필요한 때이고, 지금 그 고민을 조경전문가들이 한다는 사실에 새로운 조경의 가능성을 엿볼 수 있다.


음성군 도시재생 뉴딜사업 구상도 충북도시재생지원센터(링크)


음성읍 시장통 도시재생 어울림센터 당선작 이상건축


같은 도시재생, 그러나 서로 다른 스케치

나는 도시재생에서 조경이 필요한 이유를 제대로 설득하기 위해서는 지금까지 건축과 도시가 리드해온 도시재생에 조경이 어떻게 기여할까를 고민하기보다, 오히려 지금 우리의 도시재생이 드러내는 한계와 문제점을 조경의 시선에서 고민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다른 많은 도시만들기의 이론과 기법처럼 도시재생의 개념도 미국과 유럽에서 수입되었다. 그런데, 문제는 단어는 같지만, 실제로 우리의 도시재생과 그들의 도시재생이 다른 방식으로 작동한다는 것이다. 단순히 도시환경의 물리적, 문화적 맥락의 차이가 있는 정도가 아니라 시민참여의 정치적 모델 자체가 다르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무엇이 다른지 미국과 우리나라의 도시재생 현장의 모습을 스케치해서 비교해보자.

전문가들이 도시재생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시한다. 도시재생에 대한 정책이 마련되고 법률로 정리되어 예산이 책정된다. 이를 위한 전담부서가 만들어지고 예산을 집행할 적절한 대상지를 선정하여 전문가와 함께 도시재생 계획안을 만든다. 물론 도시재생이니만큼 처음부터 주민과 함께한다. 전문가와 관이 주민들을 모아 교육을 하고, 여러 차례의 워크숍을 통해 갈등도 있지만 결국 주민의 의견을 잘 수렴한 사업을 진행한다. 많은 논문과 세미나에서 보이는 아름다운 우리의 시민참여형 도시재생의 모습이다.

그럼 유명한 재생공원 하이라인(Highline)의 사례를 보자. 뉴욕시가 오래된 고가 철거에 대한 사업을 설명한다. 두 명의 주민이 고가를 철거하지 말자고 주장하지만, 소수의 의견이라 묵살된다. 이 두 명은 고가 살리기 운동을 벌이고 다른 주민들을 설득한다. 돈을 모아 공원을 만드는 계획안을 세우며 시를 설득한다. 시는 공원으로 만들면 무엇이 좋은지 충분히 설득되지 않는다고 한다. 결국, 시와 주민들은 고가 철거를 놓고 소송을 벌인다. 대법원까지 간 소송에서 시가 승리하여 고가를 철거하라고 판결을 내린다. 그런데, 여론의 변화를 느낀 시는 소송까지 해서 이겼지만, 주민들의 의견을 따라 공원화를 결정한다. 엄청난 갈등 표출은 물론 일관성도 없어 보이는 이 좌충우돌의 과정은 아름답기는커녕 난장판 같다.


하이라인을 기획하고 추진한 Friends of the High Line Joan Garvin, Friends of the High Line


Friends of the High Line이 주민참여를 통해 진행하는 청소년 프로그램 Friends of the High Line


민본주의의 덫

우리의 도시재생은 전문가와 관이 앞장을 선다. 하지만 많은 경우 미국과 유럽의 도시재생은 주민들이 전문가와 관에 맞선 투쟁의 결과였다. 송호근 교수는 서양과는 사뭇 다른 우리의 시민 개념의 기원을 추적한다. 일제강점기를 겪은 우리는 수입된 시민의 개념을 통해 시민이 되었다. 자발적으로 시민이 되지 못했던 우리에게 혁명을 통해 피로 성취한 서양의 시민 개념이 익숙하지 않은 것은 당연하다. 우리는 예부터 민본사상을 최고의 정치로 여겨왔다. 그런데 백성이 정치의 근본이 되어야 한다는 익숙한 전통적 유교의 정치철학은 민주주의의 철학과 근본적으로 다르다. 그 다른 지점은 정치의 주체이다. 어디까지나 민본사상은 사대부가 주인이 되어 백성을 다스리지만, 민주주의에서는 시민이 주인이 되어 스스로 모든 것을 결정해야 한다. 주인이 된다는 것이 꼭 좋은 것만은 아니다. 권리만큼 책임도 따른다. 그리고 남이 해주지 않기 때문에 무엇을 바꾸려 해도 막막하고 힘이 배로 든다. 그래서 누군가 내 이야기를 듣고 해주면 마음 편하다. 하지만 책임이 없다면 권리만 주장해서는 주인이 될 수는 없다. 책임을 지는 일은 전문가와 관리들에게만 맡긴다면, 끝내 그 어렵고 싫은 일을 정작 한 사람에게 왜 잘못했냐고 따질 권리는 없어진다.

아른슈테인 교수는 참여의 사다리 비유를 통해, 공청회나 주민설명회를 통해 관이 주도하는 낮은 단계의 참여는 일종의 기만이며 결국 시민들이 스스로 무엇인가를 할 때 진정한 시민주도(Citizen Control)의 참여가 이루어진다고 설명한다. 우리의 도시 만들기에서 시민주도의 참여 형태도 물론 존재한다. 아이러니한 점은 가장 시민이 주인 되어 적극적으로 도시를 만드는 모델은 오히려 도시재생이 아니라 많은 전문가가 부작용을 지적했던 도시재개발이라는 것이다.


뉴욕시의 도시계획안에 맞서 도시재생 담론에 크게 기여한 제인 제이콥(Jane Jacobs) Fred W McDarrah / Getty Images(링크)


게릴라 가드닝을 통해 도시재생을 주도한 리즈 크리스티(Elizabeth "Liz" Christy) Donald Loggins(링크)


인큐베이팅 모델, 그리고 조경의 가능성

그렇다고 오해는 하지 말자. 민주적 시민의 개념이 서양에서 탄생하였으며 우리의 시민 개념이 서양과 다른 것이 사실이지만, 나는 우리의 시민이 미성숙하여 서양의 높은 시민의식을 목표로 발전해야 주장에는 동의할 수 없다. 다르다는 것이 틀리다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또한, 시간적 순서상 앞선다고 따라야 할 가치로서 정당성을 담보하지는 않는다. 유럽과 미국이 산업화를 통해 먼저 기술과 경제를 발전시켰지만, 우리는 그들과 전혀 다른 방식으로 단기간 내에 그에 필적할 경제적 성장을 이루었다. 결국, 우리의 도시재생 모델도 서양의 도시재생을 바람직한 목표로 설정하고 나아가야 할 것이 아니라 우리만의 모델을 만들어야 할 필요가 있다. 그러나 우리가 생활과 밀접한 도시환경을 바꾸는 단계에서 주인의 역할을 해본 적이 없는 것도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그래서 일종의 인큐베이팅이 필요하다. 도시재생의 과정에서 전문가는 도시만들기의 주체가 아니라 오히려 도시재생의 주체인 시민을 인큐베이팅하는 선생이자 조교의 역할을 하는 것이 바람직할지도 모른다.

웨비나에서 김도훈 소장은 1개의 건물과 100개의 작은 공원의 가치를 도시재생에 비교하였다. 만일 공간을 만드는 것보다 관리운영의 능력을 키우는데 도시재생이 초점을 맞추어야 한다면, 100개의 소공원이 더 바람직할 수 있다고 조심스럽게 주장한다. 지금까지의 도시재생은 같은 예산이 있다면 1개의 건물을 세우는 데 초점이 맞추어져 왔다. 왜냐하면, 확실한 성과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시민의 주도적 역할을 인큐베이팅하려고 한다면 멋진 건물은 한계가 많다. 우선 건물 설계에서 의견을 주는 것은 가능하지만, 결국 건물의 설계와 시공은 전문가의 몫이다. 주민들은 누군가 다 만들어놓은 밥상에 마지막에 앉아 주민 운영이라는 명목으로 숟가락과 젓가락 정도를 놓을 수 있을 뿐이다. 그러나 작은 공원이나 정원들은 처음부터 직접 구상하고 만들어갈 수 있다. 실패하더라도 부담이 적다. 충분히 결과에 책임을 질 수 있으며 잘못되었다면 스스로 고쳐갈 수 있다.

전문가가 만들어낸 멋진 건물처럼 멋진 공원은 아닐 가능성이 크다. 하지만 최소한 내가 이용할 공간을 내 손으로 만든 공간이다. 내가 먹고 싶은 음식을 주문한 것이 아니라 직접 요리해서 공동체의 가족들과 나누어 먹는 셈이다. 처음에는 조금 간이 안 맞을 수도 있고 살짝 탄 부분이 있을 수도 있다. 하지만 괜찮다. 점점 괜찮아질 것이니까. 결국, 중요한 것은 다음 선거에서 공적으로 내세울 수 있는 멋진 사진이 아니고 그 과정의 경험이다. 그리고 그 경험은 전문가처럼 숙련되고 효율적으로 되기 위한 경험이 아니라, 내가 주인이 되는 경험이다. 도시재생에서 조경이 갖는 가치는 멋진 녹색 공간을 만드는 데에도 있겠지만, 내가 우리 동네의 주인으로 권한과 책임을 동시에 질 수 있고, 지어야 한다는 것을 체험하는 가장 좋은 매체라는데 있다고 생각한다.


1개의 건물 vs 100개의 소공원 김도훈, 조경하다열음연구소 – 조경학회 웨비나 발표자료


경기정원박람회와 연계된 도시재생 김도훈, 조경하다열음연구소 – 조경학회 웨비나 발표자료

박태원 교수는 웨비나의 마지막에 지금은 도시재생의 위기가 아니라 도시재생이 그 의미의 본질을 찾아가는 도시재생 2.0이 시작되는 단계라고 생각한다고 했다. 전적으로 동감한다. 그리고 도시재생의 2.0을 만드는 과정에서 조경은 그 이전의 도시재생이 잊고 있었던 소중하고 유용한 도구이자 틀이 될 수 있다.

_ 김영민 교수  ·  서울시립대학교 조경학과
다른기사 보기
ymkim@uos.ac.kr

네티즌 공감 (1)

의견쓰기
한국 유교 최고 제사장은 고종황제 후손인 황사손(이 원)임. 불교 Monkey 일본 항복후, 현재는 5,000만 유교도의 여러 단체가 있는데 최고 교육기구는 성균관대이며,문중별 종친회가 있고, 성균관도 석전제사로 유교의 부분집합중 하나임.



@

일제강점기 강제포교된 일본 신도(불교), 불교, 기독교는 주권없음. 강점기에 피어난 신흥종교인 원불교등도 주권없음.

주권없는 패전국잔재 奴隸.賤民이자, 하느님.창조신을 부정하는 Chimpanzee계열 불교일본서울대Monkey와 추종세력들이 학교교육 세계사의 동아시아 세계종교 유교,윤리의 종교교육 유교, 국사등과 달리, 일본강점기때 일본이 유교를 종교아닌 사회규범으로 했으니까, 유교가 종교아니라고 최근 다시 왜곡하는데,이는 일제잔재 대중언론에 포진하여 루머수준으로 유교에 도전하는것임.한국은 미군정때,조선성명복구령으로 전국민이 조선국교 유교의 한문성명.본관을 의무등록하는 행정법.관습법상 유교국임은 변치않으며 5,000만이 유교도임.

@

인도에서 불교도는,불가촉賤民.조계종승려賤民한국과비슷.강점기 하느님에 덤비며(창조신내리까는 부처처럼)유교부정,불교Monkey일본.하느님보다높다는 성씨없는 일본점쇠賤民.후발천황(점쇠가 돌쇠賤民.불교Monkey서울대 전신 경성제대설립)옹립.한국은 세계종교유교국.수천년 유교,하느님,조상신,공자 숭배.해방후 조선성명복구령 전국민이 행정법.관습법상 유교국복귀. 동아시아(중국,한국,베트남,몽고) 세계종교국중 하나인 한국이 불교Monkey 일본의 강점기를 겪으며 대중언론등에서 유교가 많이 왜곡되고 있음.

http://blog.daum.net/macmaca/3131

@ Royal성균관대(조선.대한제국 유일무이 최고교육기관 성균관승계,한국 最古.最高대).Royal서강대(세계사반영,교황윤허,성대다음예우)는 일류,명문.주권,자격,학벌없이 대중언론항거해온 패전국奴隸.賤民불교Monkey서울대.주권,자격,학벌없는 서울대.추종세력 지속청산!

http://blog.daum.net/macmaca/733

http://blog.daum.net/macmaca/2967


2021-06-17

가장많이본뉴스최근주요뉴스

  • 전체
  • 종합일반
  • 동정일정
  • 교육문화예술

인기통합정보

  • 기획연재
  • 설계공모프로젝트
  • 인터뷰취재

인포21C 제휴정보

  • 입찰
  • 낙찰
  • 특별혜택

커뮤니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