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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각, 밖으로 나오다

월간 환경과조경20107267l환경과조경

Sculpture, Get Out of the Inside

유럽인들에게 조각 작품은 집안의 가구 위의 장식품으로, 조상의 모습을 더 오래 기리기 위한 초상조각으로, 묘지의 장식으로, 건축물의 외관 혹은 내부 장식으로 생활 속 곳곳에 자리 잡고 있었다. 더욱이 작품이라 해서 만지지도 가까이 가지도 못하게 하는 것이 아니라 초상조각의 뺨 부위는 손때가 묻어 반지르르하고, 우리의 기준으로는 집안의 중심부에 소중히 모셔놓을 만한 예술성 높은 작품을 테이블 받침으로 사용하는 경우도 목격하였다. 또한 유럽을 여행해 본 사람은 누구나 보았을 것이지만, 내게 특히 인상 깊은 것은 도시의 곳곳에 자리 잡은 각 시대의 출중한 인물을 기념하는 수많은 조각상들, 조각으로 매우 화려하게 장식된 생활용품, 역사를 자랑하는 건축물에 어김없이 빽빽하게 조각되어 있는 여러 양식의 장식물들을 너무나 흔하게 볼 수 있다는 것이다. 그들에게는 이미 조각 작품이란 단지 감상만을 위해 모셔놓는 것이 아니라 생활 속에 깊게 자리 잡은 더불어 사는 어떤 것이었다.

 

미술사에서는 건축의 장식품에서 독립하여 순수하게 감상만을 위해 조각이 존재하게 되는 순간을 진정한 예술로서의 조각의 탄생이라 일컫는다. 다른 사용의 목적을 가지지 않는 감상만을 위한 예술은 분명 순수예술이리라. 하지만 이로써 조각이 독립을 선언하여 독창적인 영역을 확보한 대신에 조 각이 자리 잡던 영역의 넓이는 매우 축소되게 되었다. 왜냐하면 그 이후 조 각은 건축에서 해방되었다기보다는 오히려 미술관의 실내에 갇히게 되었고, 거리의 서민들이 오며가며 만지고 감상하던 손에 닿을 만큼 친근한 것에서 미술관이나 화랑에 가서 품위 있는 태도로 즐겨야하는, 쇼윈도 안의 고급스러운 보석처럼 아무나 손에 넣을 수 없는 무엇으로 그 영역을 스스로 제한하게 되었다. 이후 엘리트 미술이 사조를 이끌어가고 새로움의 추구가 커다란 이슈로 등장하며 상업주의와 손잡던 시절에 예술은 자연스러움을 상실하고 자신의 존재이유를 애써 역설하며 ‘추(醜)의 미’까지 들먹거리게 되었다. 필자의 견해로는 이것은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추의 미라니… 보는 사람을 감동시키고 마음을 편안하게 하는 것이 곧 미의 근본이라고 생각하는 나로서는 불쾌감을 주며 충격과 전율에 휩싸이게 하는 것도 아름다움이라고 주장하는 현란한 이론가의 변을 이해하기 어려웠다. 이러한 시각에서 보면 조각이 다시 소장의 개념에서 벗어나 환경의 일부로서 인간을 감싸 안는 것은 예술이 주는 편안함에 몸을 맡기고 싶은 사람들 의 욕구의 반영인 것 같다.

 

현재 우리나라의 환경미술은 건축법안의 미술장식품에 관한 조례에 근거하여 공공주택이나 일정규모 이상의 건축물에 설치를 의무조항으로 만든 후부터 활발하게 발달하기 시작했다. 우리의 환경에 조각, 그림 등이 가깝게 접근하게 된 계기가 의무조항에 의해서라는 것이 다소 유감이긴 하지만 작품생활을 하는 나로서는 결과적으로 반가운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동안 양산되어온 환경미술은 외부환경에 놓인다는 특성상 주로 내구성이 강하고 쉽게 변질되지 않는 석재나 청동주물, 스테인리스스틸 등 고전적 재료로 만든 조각들이 주류를 이룬다. 필자도 이러한 환경조형물 제작을 의뢰받아 설치한 경험을 가지고 있는데 번번이 만족스럽지 못한 느낌을 안겨 주었다. 그렇게 된 원인을 몇 가지 생각해 보았다.

 

첫째, 작품이 놓일 공간이 이미 설계되어 주어진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작품이 놓일 건축물이나 환경의 전체적 조망을 고려했을 때 조각가의 머리에 떠오르는 작품이 구상이 되었다면 실제 작품이 놓일 공간은 이리저리 용도를 앞세운 공간설정에 밀려 터무니없이 협소하게 할애되어 최소한의 감상거리도 확보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특히 상업지역에 지어진 건물 앞의 작품은 대접받지 못하고 마지못해 내어준 공간 한쪽에 불편하게 자리 잡고 있는 경우를 거리를 지나며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다.

 

둘째, 작품이 놓일 환경의 전체적 설계 작업에서 조각가는 제외된다는 것이다. 건축물이든 공원이든 애초에 조각 작품의 설치가 계획되었다면 어떤 테마, 또는 분위기의 환경 또는 건축물을 만들 것인가를 구상할 시점부터 조각가가 참여하여 작품의 규모, 재료, 외관의 형태 등이 고려되어 설계된다면 정말 이상적일 것이라 생각된다.

 

그렇다고 우리나라의 환경조각에 대해 비평이 그칠 날이 없는 사실에 대해 작가들에게도 책임이 없는 것이 아니다. 주어진 공간을 이용하여 거기에 어울리는 작품을 구상하고 제작하는 융통성이 발휘되지 않는 환경조형물도 많기 때문이다. 필자는 작품이 일단 공공장소에 나아가는 순간, 환경 여건, 감상자의 질적 수준, 건축물과의 조화를 고려하여 작품이 만들어져야 된다고 생각한다. 물론 개인마다 취향과 보는 시각이 달라서 다소 환경을 지배하며 아방가르드적인 냄새를 풍기는 작품들도 선호하는 사람이 있지만 그것도 주어진 환경이 그것을 수용할 만큼의 수준이 형성되었는지 확인하고 결정할 일일 것 같다.

 

김태덕  ·  조각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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