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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16회 올해의 조경인 _ 산업분야: 한현구

월간 환경과조경201312308l환경과조경
살아있는 조경의 역사
한현구 회장의 아버지인 故한태현은 임업시험장에 있다가 산림양묘를 했었다. 당시는 주로 연료로 나무를 사용하여 산들이 벌거숭이가 되었고, 이런 곳에 산림양묘 붐이 일었다. 한현구 회장은 이런 아버지의 영향으로 자연스럽게 조경에 발을 담그게 되었고, 산업화가 되면서 조경에 대한 수요가 급증해 나무 농장이 유행처럼 번지자 묘목 공급을 본격적으로 하게 되었다. 그는 단순히 공급만을 한 것이 아니라 국내산 품종개발에도 앞장섰다. “일본사람이 운영하는 한 농원에 단풍나무가 많았는데, 아직도 기억이 납니다. 아버지와 함께 봄부터 가을까지 수시로 방문해 하나하나 단풍이 든 정도를 표시하고 가장 붉은 종을 채종하여 홍단풍을 처음 개발하였지요.” 이것이 한국사람이 정원수를 만든 최초의 사례라고 한다.
그는 조경수의 변천사에 대해서도 이야기해주었다. 초창기에는 가이즈까향나무, 섬잣나무, 옥향나무, 회양목, 측백나무 정도가 사용되었다. 그 이후 백목련, 철쭉류 등 다양하게 수입종을 들여왔는데 사람들이 그걸 보고 황홀해했다. 조경은 그저 과시용이었던 상황이라고 한다. 한현구 회장은 나무 재배에 비닐하우스를 도입하여 품종을 늘려갔다. 이렇게 한참 품종이 다양해졌던 때가 있었고, 그 다음에는 한국 자생종으로 사회적 관심이 쏠렸다. 최근 공동주택단지가 늘어나면서, 대형목을 주로 사용하는 추세에 대해 그는 “대형목은 사람이 생산할 수 없는 겁니다. 예를 들어 가지가 휘어진 소나무는 100년은 된 겁니다. 그러다 보니 모두 자연에서 공급되고, 결국은 자연 파괴죠. 또 이렇다 보니 조경수 전문업체의 개념이 모호해지고 상황이 어려워지는 겁니다. 자연에서 공급하는 나무는 원가가 없으니까요. 조경수도 고품질, 규격화된 제품으로 유통되어야 합니다”라고 꼬집었다.
박지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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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상백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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