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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튜디오 201, 설계를 다시 생각하다 (2) 말로 때우기

월간 환경과조경20142310l환경과조경

개념과 형태의 경계에서

여기 곤란에 처한 두 학생이 있다. 그림을 꽤 잘 그리는 박군은 설계 과제를 하면서 다른 친구들처럼 스트레스를 받지 않는다. 크게 고민하지 않아도 트레이싱지 위에 선을 그리다보면 그럴듯한 형태가 나타난다. 선생님에게 과제를 보여주면 대부분 처음에는 기분 좋은 칭찬을 듣는다. 그런데 선생님이 어떻게 이러한 공간을 만들었는지를 물어볼 때부터 문제가 발생한다. 딱히 대답할 말이 떠오르지 않는다. 무작정 그리다보니 그런 형태가 나왔는데 굳이 이유를 설명하라고 한다. 그냥 마음에 들어서라고 대답했다가 태도가 불량하다느니, 개념이 없다느니, 생각을 좀 하라느니 온갖 욕을 먹는다. 어차피 디자인이라는 것, 예쁘면 되는 것 아닌가? 왜 굳이 설계를 논리적으로 설명해야 하고, 개념이 뒷받침되어야 하며, 어려운 이론이 필요한 것일까?

공부를 잘하는 김군은 설계 수업이 중반으로 넘어가면서 고민에 빠진다. 대상지 분석이나 개념을 제시할 때까지는 선생님들이 가장 사랑하는 제자였다. 해박한 지식, 탄탄한 논리, 뛰어난 언변, 참신한 개념으로 매번 칭찬만 들어왔다. 그런데 그림을 그려야 하는 순간부터 손이 움직이지 않는다. 몇 주째 공간을 그려가지 못하고 구상을 말로만 설명하고 있다. 선생님은 한숨을 쉬며 언제까지 말로만 때울 거냐고 묻는다. 공간을 만들어내지 못하는 개념은 의미가 없다는 말도 덧붙인다. 김군도 그것을 모르지 않는다. 그런데 도저히 개념에서 형태로 넘어갈 수가 없다. 책을 아무리 보아도 설계를 잘한다는 친구나 선배들에게 물어보아도 여전히 길은 보이지 않는다. 설계는 천성적으로 그림에 재능이 있는 아이들만 해야 하는 것일까?

김영민  ·  서울시립대학교 조경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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