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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튜디오 201, 설계를 다시 생각하다 (3) 분석만 하기

월간 환경과조경20143311l환경과조경

대상지, 그 진부함

또 대상지에 대한 이야기인가? 미안하지만 이제 대상지 이야기는 그만 들어도 될 것 같다. 학교를 다니는 내내 대상지의 중요성에 대해서는 지겹도록 들어왔다. 선생님들은 늘 말씀하셨다. 조경 설계의 시작은 대상지요, 끝도 대상지다. 조경은 대상지를 다루는 행위와 동의어다. 조경가는 항상 대상지를 존중하고 그 안에서 가능성을 발견하기 때문에 다른 분야의 전문가와 차별화된다. 잠깐, 요즘은 건축가나 도시계획가들도 그렇다고? 그럼 그들보다 더더욱 열렬히 대상지를 사랑해야 할 것이다. 이 정도까지 이르면 조경 설계에서 대상지는 숭배의 대상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듯하다. 대상지를 함부로 대했다가는 모두가 정색하는 반면 대상지를 존중할수록 칭찬을 받는다.

대상지를 제대로 알아야 좋은 설계가 가능해진다는 사실은 나도 인정한다. 그런데 솔직하게 말해보자. 아무리 대상지가 중요하다고 해도 대상지에 대한 이해와 좋은 설계는 별개의 문제 아닌가? 대상지라는 것, 좋은 설계의 실마리를 제공해 주지만 결국 원재료에 불과할 뿐 어느 시점부터 분석 도면은 책상 밑에 넣어 두고 그림을 그려내야 하지 않는가? 이렇게 생각했다면 그대는 아직 대상지가 갖는 힘을 충분히 이해하지 못했다. 때로는 대상지 분석이 설계의 전부가 되기도 한다.


(중략)


대상지, 그 풍부함

대상지 분석을 꽤나 해보았다고 대상지를 만만하게 보아서는 절대로 안 된다. 만일 대상지가 진부하게 느껴진다면 그것은 대상지가 진부하기 때문이 아니다. 진부한 대상지는 없다. 다만 대상지를 대하는 그대의 태도와 관점이 진부할 뿐이다. 뛰어난 작가들이 수없이 많은 작품을 쏟아내어도 매번 신선하고 색다른 안을 선보일 수 있는 이유는 부분적으로 그들의 능력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또한 대상지가 들려주는 이야기가 매번 다르기 때문이기도 하다. 대상지를 우습게 여겼다가 그 늪에 빠져 허우적댈 수도 있고, 대상지에 귀를 기울이다가 지금까지 전혀 생각하지 못했던 아이디어를 얻을 수도 있다. 그대가 지금 얼마나 설계를 잘하는지는 모르겠다. 그러나 이것만큼은 장담할 수 있다.

대상지가 가진 풍부함을 제대로 이해하게 될 때 그대는 비로소 훌륭한 디자이너의 자질을 갖게 될 것이다. 대상지가 설계의 유일한 정답이 아니라는 사실을 잊지 않는다면, 한번쯤은 대상지의 풍부함 속에 깊이 빠져볼 것을 권유한다.

김영민  ·  서울시립대학교 조경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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