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녹색시선] 정류장(停留場)을 정류원(停留園)으로

조용준 논설위원(㈜CA조경기술사사무소)
라펜트l기사입력2022-09-22
정류장(停留場)을 정류원(停留園)으로




_조용준 ㈜CA조경기술사사무소 소장



20살에 대학 입학으로 처음 상경했을 때, 서울 지리가 익숙지 않아 버스보다는 지하철을 자주 이용하였다. 대학을 졸업하고, 강남에 있는 설계사무소를 다녔다. 서울의 복잡한 교통체계가 익숙해지고 매일 같은 곳으로 출퇴근 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버스 이용이 편해졌다. 자취집에서 오 분만 걸어 나가면 회사주변에 정차하는 147번 버스 정류장이 있었다. 정류장 주변에는 작은 녹지대가 있었는데, 지형처리를 위해 쌓은 조경석과 향나무, 수수꽃다리, 철쭉, 그리고 회양목이 심겨져 있었다. 매일같이 정류장을 이용하는 시민들에게 쓸 만한 공간이었건만, 녹지대의 풍경은 그런 고려가 전혀 없어 보였다.

최근 그 앞을 지나다가 정류장에 들렀는데, 여전히 아무런 변화는 없었다. 아마도 지난 20년 가까이 시민들과 행정가들이 변화의 필요성을 느끼지 못한 모양이다. 이 공간은 그들의 일상에서 무의미한 공간이기 때문일 것이다. 그리고 나는 이것이 도시의 공백이라고 생각한다. 이와 유사한 작은 공간들을 서울 도심 곳곳에서 발견할 수 있는데, 서울은 이런 저이용 공간에 대한 다양한 아이디어와 계획들이 필요하다. 필자는 그중에 하나로 작은 필지들을 가진 정류장(停留場)을 정류원(停留園)으로 바꾸자고 제안한다.


20년 가까이 변함없는 동대문구 버스정류장 주변 녹지대(네이버 거리뷰)

정류장은 현대 도시인이 자주 이용하는 공공공간이며 잠시 들르는 찰나의 공간이다. 버스로 출퇴근 하는 직장인에게는 매일 5~10분 정도 머무는 일상의 장소이기도 하다. 그러다 보니, 버스정류장 쉘터를 활용한 여러 정책과 시도들이 있었다. 버스정류장 유리벽을 활용한 광고 분양, 미디어 설치, 다양한 기술이 결합된 스마트 스테이션(smart station), 버스정류장 녹화 사업, 작가들과 협업(collaboration)을 통한 서울아트스테이션 등이 그 예다. 그런데 이런 시도들은 폭이 좁은 가로 환경 때문에 공간보다는 시설개선에 머물러 있다. 작은 면적이라도 주변을 포함하여 정류장을 개선하다면 풍경을 즐기며 잠시 머물다 가기 좋은 장소로 바뀔 수 있지 않을까.

모든 정류장을 바꾸지 않더라도 노선별로 적정한 여유부지가 있는 정류장 한두 군데를 찾아 정원을 만들면 된다. 노선을 이용하는 많은 시민들에게 새로운 경험을 제공할 수 있다. 버스를 기다리며 쉴 수 있는 다양한 형태의 의자들을 놓고, 그늘을 주는 큰 나무들과 계절을 느낄 수 있는 관목과 초화류를 심는다. 아침저녁으로 출퇴근 하는 이들에게 작은 힐링 공간이 될 것이다. 일부 녹지는 빗물을 모으고 정화하는 저영향설계(LID ; low impact design)기법을 적용하여, 도심 미기후 조절과 기후변화에 대응한다. 

정류장 변화의 가능성은 서울시 푸른도시여가국이 진행했던 72시간 도시프로젝트와 디딤돌 프로젝트에서 찾아볼 수 있다. 학생들과 전문가가 함께 설계부터 시공까지 진행하여 도시의 버려진 작은 공간들을 개선하는 프로젝트이다. 프로젝트 대상지는 여러 자치구에서 제출한 공간들 중에 선정하는데 이 중 몇몇 공간은 버스정류장과 붙어 있었다. 2018년, 2019년, 2022년에 선정되어 개선된 금천구, 양천구, 송파구대상지가 그러했다. 낡은 녹지와 의자들을 개선하여, 시민들이 버스를 기다리며 쉴 수 있는 작은 정원으로 조성했다. 변화 이후 많은 시민들이 녹지공간속에서 버스를 기다리고 휴식하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이 프로젝트들의 경우 한 구역당 약 2000만원 정도의 예산이 들었는데 이는 학생들과 전문가들의 재능기부가 있었다. 


송파구 정류장 (ladiuos : 서울시립대학교 조경과 학생들 + 김지환소장) 사진:김지환


금천구 정류장 (아하모먼트 : 안마당더랩+ 디자인스튜디오도감+ 최동아 박사) 사진:최웅재

현대 도심에서 버스정류장은 보행가로와 대중교통을 잇는 주요한 결절점이다. 정류장 주변의 녹지는 도로변 선형 가로녹지의 일부가 아닌 도시민들이 잠시라도 머물다 갈 수 있는 ‘마을마당’같은 공간이어야 한다. 다시 말해 정류원(停留園)은 기존의 대중교통체계와 결합한 새로운 유형의 커뮤니티 녹지공간으로 바뀌어야 한다. 이런 변화는 서울시가 목표로 하고 있는 녹지생태도시와 새롭게 부각 되고 있는 ’바이오필릭(biophilic)’ 도시 구현을 위한 작은 실천이다.
글·사진 _ 조용준 소장  ·  (주)CA조경기술사사무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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