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 장면으로 재구성한 조경사 #1 : 정원과 조형 사이의 줄타기

월간 환경과조경 2014년 1월 309호|환경과조경

 

만 61세에 분연히 일어나 피라미드를 지은 어느 얌전한 스위스 조경가

그의 이름은 에른스트 크라머(Ernst Cramer), 취리히 출신의 조경가로 1898년에 태어나 1980년에 사망했으니 그리 요즘 사람은 아니다. 다만 그가 후학들에게 크게 영향을 미쳤으므로, 그리고 그의 영향이 알게 모르게 한국에도 상륙하였기에 첫 장면을 장식할 이유는 충분하지만 그보다는 그가 61세에 분연히 일어나 던져놓은 중요한 물음이 하나 있기에 그 이야기로부터 시작하려고 한다.

에른스트 크라머는 전형적인 조경 교육을 받고 조경가의 길을 걸었다. 취리히에 자리 잡고 설계사무실을 운영하며 탄탄한 명성을 쌓아갔다. 60세까지는 그랬다. 그때까지 그는 스위스 기계처럼 정밀하고 견고한 정원을 만들었다. 물론 아름다운 정원들이었지만 커다란 특색이 없었다. 지극히 정원다운 정원, 소위 말하는 ‘향토풍’의 정원들이었다. 그러다가 1959년, 만 61세가 되던 해 유럽을 당황하게 만든 작품을 하나 내놓았다. 그해 스위스에서 G59라는 타이틀로 정원박람회가 개최되었는데 주최 측으로부터 “시인의 정원(Garten des Poeten)”을 만들어 달라는 요청을 받았다. 그는 반듯한 장방형의 연못을 설계하고 그 주변에 네 개의 피라미드와 나선형의 지형 조작물을 하나 세웠고, 피라미드와 나선형 지형에 잔디를 입혔다. 그 유명한 ‘잔디 조형물’이 탄생한 순간이었다.

이 작품에 대한 반향이 의외로 컸다. 1964년 뉴욕의 모던아트 미술관의 엘리자베스 바우어 캐슬러 관장은 그의 저서 『Modern Gardens & Landscape』에서 시인의 정원을 소개하면서 “모더니즘 조경의 심볼” 이라 칭송했다. 아직 대지미술(land art)이 시작되기 전이었다. 물론 에른스트 크라머의 영향으로 이런 것들이 시작되었다고는 할 수 없다. 이런 작품들의 탄생이 가능할 정도로 시대가 무르익어 있었을 것이다.

고정희 · 칼 푀르스터 재단 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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