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경가, 채식도시를 만들자″

[인터뷰] 고주석 박사(네덜란드 Oikos Design 대표)
라펜트l기사입력2015-10-21

 

정원 붐이 일어나고, 국가정원도 지정됐다. 반면 조경의 전문성 위협, 치열한 영역다툼도 여전히 존재하고 있다. 현재 한국조경은 어떤 모습을 하고 있으며, 어떤 방향으로 나침반을 맞추고 가야할까?


얼마 전, 네덜란드에서 고주석 박사가 한국에 들어왔다. 고주석 박사는 네덜란드에서 오이코스디자인(Oikos Design)이라는 조경회사를 운영하고 있으며, 바게닝겐대학 조경학과에서 후학을 양성한 바 있다. 또 그는 상암동 월드컵공원(밀레니엄 파크)을 비롯해 울산대공원, 디큐브 시티 등 한국의 대표적인 공공공간을 설계한 조경가이이기도 하다.


고주석 박사를 만나 네덜란드 조경과 한국조경의 차이점과 국외에서 바라보는 한국조경의 여러 이슈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누어보았다.

고주석 박사(네덜란드 오이코스디자인 대표)



네덜란드 Landscape는 ‘대지다움’

랜드스케이프(Landscape)는 대지다움(Landscope)이라는 네덜란드의 말이 어원이다. 그만큼 국민 의식에 Landscape가 뿌리 깊게 인식되고 있다.


네덜란드는 간척사업을 했기 때문에 땅을 형성하는 과정에서 토목, 조경하는 사람들이 모여서 국가기반을 구축했다. 그래서인지 네덜란드에서는 ‘Landscape Architect’라 하면 정원, 공원보다는 대형규모의 국가 인프라를 떠올린다. 네덜란드 조경은 지역을 다루고, 해안을 보호하고 물 관리하는 차원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네덜란드 Landscape는 대형 사업이니만큼 잔재주부리지 않고, 큰 틀을 잡는데 주력한다. 조경을 심플하게 하는 것이 특징이다.


대개 대형 프로젝트를 하게 되면 계획만 있고 디자인은 없어지기 마련인데, 네덜란드는 넓은 부지를 계획하면서도 공간의 체험의 질과 디자인적인 면을 고려하면서 계획한다. 스케일이 크고 복합적인 문제를 다루기 때문에 단순히 개인의 취향이나 아이디어만으로는 일이 진행되지 않기 때문이다. 물, 기후 등 여러 요인에 대한 과학적인 데이터를 조사해가면서 디자인하는 방식이 많이 개발됐다.



아파트에 사는 사람들에게는 정원이 무관하다

한국에서 각종 정원박람회가 열리고 있다. 한국의 정원이 어떻게 되어갈지 두고봐야하겠지만 지금 한국이 정원에 초점을 맞추는 것에는 물음표다.


상당히 많은 사람들이 아파트에 살고 있다. 생활의 편의성, 1인가구의 증가 등의 이유로 단독주택보다는 아파트를 선호하는 사람들이 많다.


아파트에 사는 사람들에게는 정원이 무관하다. 정원은 본인의 땅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의 이야기다. 한국에는 그런 경우가 많지 않다. 사람들이 전부 아파트에 살기 때문에 정원에 대한 목마름이 있을 것이다. 정원박람회는 그것을 충족시킬 수 있지만 돌아서고 나면 시민들이 실제 응용할 기회는 없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정원박람회를 여는 것을 교수나 관이 나서서 할 일이 아닌 것 같다. 정원은 시민이 알아서 하는 것이다. 정원은 자기 꿈을 구현하는 공간이니 말이다. 정원박람회는 시민이 주도해서 나서거나, 영국과 네덜란드처럼 원예사업, 조경사업 단체들이 신자재, 신기법을 소개하는 차원에서 여는 것이 맞다고 본다.


조경계가 시민들의 관심을 얻기 위해서 정원을 다루고, 생활 속으로 접근하는 것은 좋다. 그렇지만 장기적으로 봤을 때 한국의 조경가가 꽃 심고 나무 심는 사람으로만 남을까 우려된다. 조경교육을 받은 사람은 공익사업이나 대형작업에 참여해 틀을 잡아줘야 한다.


한국에는 Landscape에 ‘조경’이라는 이름을 붙였고, 일본에서는 ‘조원’, 중국에서는 ‘원림’이라고 부른다. 말을 만들어놓고 말의 틀에 묶여서 조경이 마치 정원처럼, 경관과 겉치레만 다루는 것처럼 되어버렸다. 말에 갇혀 사고를 확장하지 못하고 있다.


조경계 전체의 입장에서 우리의 많은 지식자원을 정원개선 보다 도시환경이나 아파트 조경을 개선하는데 투자하는 것이 낫지 않을까? 도시재생 측면에서 도시환경을 더 잘 고쳐준다면 아파트에 살아도 좋은 환경에서 살 수 있다. 시내에서도 정원에 앉아서 이야기 나누는 것처럼 좋은 공원들을 제공할 수 있다. 조경은 이런 것에 초점을 맞춰야한다. 일반 도시민들이 일상생활에 접근할 수 있는 랜드스케이프를 해야 한다. 



도시가 동맥경화증에 걸렸다

주거형태가 바뀌고, 도시는 고밀도가 되어가고 있다. 1인가구도 점점 늘어나고 있기 때문에 아파트는 계속 유지될 것이다.


우리 도시는 아직도 육식도시다. 그동안 도시계획을 건축적, 토목적으로만 했기 때문에 도시는 동맥경화증에 걸렸다. 


큰길은 많고 샛길이 없으니 여름에는 열섬효과가 나타날 수밖에 없다. 자꾸 무언가를 지으면서 볼륨이 커지고 에너지 소비도 많고 열 발생도 많다. 예전에는 자동차 매연도 많아 도시가 마치 공장 같았다.


나이가 들면 동맥경화가 걱정이 되어서 식단을 바꾼다. 도시도 마찬가지다. 채식으로 식단을 바꿔야 한다.


유럽은 도시문화공원, 공공공간에 신경을 많이 쓴다. 개인공간은 제한되어 있고 바깥공간에 있는 시간이 많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아파트에 갇혀있고, 직장인들은 온종일 사무실 안에 있다. 그러나 아파트에도 정원이 없고 사무실에도 정원이 없다.


한국도 도시중심의 공간구조가 됐기 때문에 공공공간을 잘 조성해야 한다. 도시가 공원처럼 되어야 한다. 도시 안에 공원이 있다는 것이 아니라, 길에 나가도 공원 같고, 운동장에 가도 공원 같고, 관공서에 가도 공원 같고, 서울역 앞에 가도 공원 같아야 한다.


그동안 발전하면서 지하철이나 버스 등 대중교통시설이 좋아졌다. 이 다음단계는 시내 중심대로도 8차선이 안되게끔 가급적 6차선, 4차선으로 줄이고, 택시를 제외하고 자가용이 시내에서 움직이는 것을 불편하게 만드는 것이다. 최소한 차도 가운데 녹지를 넣거나 보행로를 더 만들어야 한다. 기회만 있으면 보행로를 가로공원처리 해야 한다.


관공서 건물로 예를 들어보자. 사실 관공서는 따로 건물이 필요하지 않다. 구청이 하나 필요하다면 그 지역의 고층빌딩에 임대해 들어가면 된다. 소방서나 경찰서도 꼭 큰 길에 있을 필요가 없다. 큰 길은 보행자들이 일상생활에 늘 지나다니는 곳이다. 상업성이 있고, 임대가 많이 나가는 자리니 점포에 내주는 것이 낫다. 동사무소도 꼭 1층에 있을 필요 없다. 1층에는 카페가 있는 편이 더 낫다. 도시의 주인은 시민이기 때문에 도시 구조가 관료위주가 아니라 시민위주로 편리하게 바뀌어야 한다. 이러한 내용에 대한 국민합의가 도출되기까지는 시간이 필요할 것이다.


도시의 모든 것이 ‘Everyday Landscape’가 되어야 한다. 하나의 이벤트가 아닌 매일 매일의 환경이 개선되어야 한다는 말이다. 집에서 나서서 직장에 가는 길, 그 사이의 환경은 부드럽고, 지속성이 있으며, 시각적으로 아름다우면서도 기후변화에 대처하고, 건물의 에너지도 순환시켜줘야 한다. 여름에 노인들이 아파트에 있지 않고 거리로 나와서 앉아있을 수 있고, 노인과 어린이, 다른 세대가 서로 만나서 이야기하는 도시가 되어야 한다. 그런 차원의 담론이 이루어져야 한다.



채식도시를 만드는 것은 조경가


한국이 처음부터 도시를 잘 만들었다면 사실 조경도 필요 없다. 우리처럼 자연경관이 좋은 나라가 없다. 본래의 한강을 잘 가꾸고 서울의 녹지축을 잘 가꾸었더라면 서울처럼 좋은 도시가 없었을 것이다. 그걸 다 망쳐놨으니 조경이 필요한 것이다.


건축도 환경을 구축하는 한 방법이고, 조경도 환경을 구축하는 한 방법이다. 조경은 생태적으로 접근하는데 반해 건축은 엔지니어링적, 물리적, 시각적으로 접근한다. 우리 사회는 소프트하게 가고 있는데 여전히 건축은 하드하다. 인구는 더 이상 증가하지 않고, 달라지는 라이프스타일에 따라 건물은 개조된다. 건축이 할 일이 줄어들고 있다.


건축가들이 할 일이 없어지고, 건축적인 설계접근성에 한계점이 오니 조경을 본인들이 하려고 한다. 물론 조경의 영역이라고 조경가들이 텃세를 부릴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누구든 잘 하는 사람이 하는 것이 맞다. 그러나 같은 공간을 처리하는 데 있어서 조경가가 건축가보다 더 잘해야 한다. 설계를 함에있어 환경문제, 전통성문제, 기후문제, 생태적 문제를 고려하고, 기하학적인 설계 대신 프로세스에 입각한 체험적인 설계를 하는 것이 조경가이다. 같은 보행도로를 내도 딱딱한 보행로 대신 질감과 컬러가 부드러운 길을 낸다면 시민입장에서는 “채소 먹는 게 고기 먹는 것보다 낫구나”하고 조경에 손을 들어 줄 것 아니겠는가. 


네덜란드의 Landscape는 우리나라처럼 경관이 아니라, 하나의 매니지먼트다. 경관을 만드는 것만이 아니라 지속적으로 관리하는 것까지 포함되어 있다. 네덜란드에서는 조경이라는 것이 국민 생활에 기본적인 영향을 끼치는 분야이다. 정부 예산으로 틀을 잡아주고 시민은 아름답게 고쳐나가는 일을 한다.


국민이 조경이나 환경에 관심을 돌리기 위해서 어떻게 하는 것이 좋을 것인지에 대한 생각도 중요하지만, 우리 전문가들은 사회의 중요한 곳에서 어떻게 기여할 것이냐를 더 생각해야 한다. 국토계획이나 녹색구조를 만드는 것, 지역계획에 침투해서 영향을 미치는 것이 중요하다. 우리는 이런 일을 하니까 정부에서 정책방향에 우리를 참여시켜달라든지, 정책방향을 고쳐달라는 이야기를 해야 한다.


우리나라는 특히 건설공사가 적다. 조경은 건설 사업에만 연결되어서는 안 되고, 보존사업에서 늘 일해야 한다. 조경은 경기가 나쁠 때 보존사업에 일하고, 경기가 좋아서 건설 일이 많을 때 건설에서도 일할 수 있다.


조경은 국가가 지향하는 국토관리방향에 부응하면서 지구전체의 문제인 기후, 생태문제 등을 고려해 새로운 탈출구를 찾아야 한다.


(2회에 계속)

글·사진_전지은 기자 · 라펜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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