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포럼] 우리시대 아파트 풍경 유감

성종상 서울대 환경대학원 교수, (재)환경조경나눔연구원 운영위원
라펜트l기사입력2016-04-19

 

(재)환경조경나눔연구원 미래포럼

‘조경인이 그리는 미래’ Series No.11


우리시대 아파트 풍경 유감

 : 더불어 사는 삶터의 진정한 회복을 위하여




성종상 서울대 환경대학원 교수

(재)환경조경나눔연구원 운영위원



돌이켜 보자면 우리는 참으로 숨 가쁘게 달려왔다. 통상 반만 년이라고 하는 우리나라 역사는 물론 세계 어느 나라 역사로 봐도 우리 근현대사처럼 급박한 변화를 거친 경우를 달리 찾아보기가 어렵다. 일제 식민지와 동족전쟁, 그리고 급속한 산업화라는 대변혁의 소용돌이 속을 불과 백년도 안 되는 짧은 기간에 겪어 왔다. 그 과정은 참으로 힘든 고난과 역경이었지만 우리는 끝내 잘 이겨내어 오늘날 세계의 반열에 당당히 자리 잡고 있으니 참으로 대견스럽기만 하다. 경제적으로는 이미 세계 10위권에 진입하였고 문화적으로도 영화, 음악, 한식 등의 한류가 지구촌 곳곳에 신선한 반향을 불러일으키고 있는 중이다. 외견상으로는 분명 선진국의 대열에 들어선 셈이다. 하지만 조금만 차분히 우리 삶을 들여다보노라면 선진국이네하고 마냥 자랑만 하기는 어렵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을 수가 없다. 그 중에서도 필자가 주목하고 싶은 것은 우리네 삶의 풍경, 특히 더불어 살아가는 삶의 모습이다.

우리는 흔히 주위 사람과, 그리고 자연과 조화롭게 더불어 살아가야 한다고, 그런 삶을 살고 싶다고 말한다. 하지만 따지고 보자면 그런 삶 – 곧 사람과 자연과 사이좋게 지내는 모습을 우리 시대 도시인의 삶에서 그다지 쉽게 목격할 수 없다는 것이 숨길 수 없는 사실일 것이다. 대도시 내 첨단 기법과 소재로 만든 고급 아파트단지일수록 이런 현상이 더욱 분명해진다는 점에서 동시대 우리 주거문화의 현주소를 여지없이 찾아 볼 수가 있다. “인간은 환경의 동물이다”라는 말에는 인간에게 있어서 환경이 얼마나 중요한가가 단적으로 잘 드러나 있다. 환경결정론이니 환경가능론이니 하는 이론에도 사람의 행동과 의식에 환경이 크게 중요하다는 주장이 깔려 있다. 이와 관련하여 물적 환경을 다루는 조경가로서 이 기회에 함께 생각해 보고 싶은 점이 있다. 삶의 환경을 다루는 전문가로서 우리는 더불어 사는 삶터로서 환경을 만드는 데에 과연 얼마나 기여했던가라는 질문이다. 이 질문에 답하기 전에 필자의 기억에 남아 있는 좀 오랜 전에 겪은 경험을 이야기해 보려고 한다.

독일 남서부 도시 프라이부르크는 흔히 세계의 환경수도라고 불린다. 환경분야 전문가들은 물론 일반인들조차도 앞을 다투어 방문하고 있는 것을 보면 인구 20여 만 명인 이 도시는 이미 한국인에게도 두루 알려져 있는 듯하다. 대체로 태양에너지나 탄소제로, 혹은 자전거나 트램 교통 등의 기술적, 가시적 부문들에서 앞선 선례로 소개되고 있다. 그러나 보봉을 건강한 환경 속에서 함께 더불어 사는 세계 최고의 생태마을로 자리 잡게 한 가장 중요한 요소는 단연 녹색과 자치참여이다. 보봉 단지 서측 끝에는 작은 시내가 흐르고 그 건너편에는 몇 개의 작은 건물과 이런저런 오픈스페이스로 이뤄진 마을 커뮤니티 공간이 있다. 토끼, 말 등 가축을 기르는 작은 농장과 승마장 옆에는 모래놀이터와 잡초밭과 함께 아이들의 놀이시설이 마련되어 있다. 한데 목재로 만들어진 놀이시설이 한 눈에 봐도 뭔가 이상했다. 목재들의 크기나 모양이 뒤죽박죽이고 마감도 거칠고 엉성해 보였다. 세계 최고 품질을 자랑하는 독일산 제품이라고 하기에는 한참 미달이었던 것이다. 마을회관 앞에서 아이와 놀고 있던 어른에게 물어보고서야 그 까닭을 알고 놀라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 놀이시설들은 모두 아이들이 직접 만들었다고 하는 것이었다. 당연히 어른들의 보호와 지도가 없지는 않았겠지만 아이들이 놀고자 하는 시설을 함께 의논하고 자기들 손으로 직접 만들었다는 사실을 들으면서 필자는 기성 놀이시설물로 채워넣기식으로 만드는 우리 놀이터를 절로 떠 올렸다. 굳이 만드는 과정에서의 협동이나 타협, 그리고 창의적 두뇌 활동 촉진효과 등을 언급하지 않더라도 자신들이 원하는 환경을 스스로 만들어가는 독일 아이들의 행복한 얼굴을 보노라니 절로 우리 아이들에게 미안한 마음이 가득했던 기억이 지금도 새롭다. 하기야 우리는 평생 살 집조차도 장사꾼들이 지어주는, 성냥갑처럼 꼭 같은 아파트를 지금도 가장 선호하고 있지 않은가?


Freiburg, Vauban 어린이놀이터와 어린이놀이터에 노는 아이들 Ⓒ성종상 2008

독일의 북부 슐레스비히 홀스타인주의 주도 킬(Kiel) 시에 있는 킬 하세(Kiel Hassee)라는 주거단지는 알 만한 사람은 아는 생태마을이다. 지금부터 30년 전에 건설되었으니, 독일에서도 초창기에 해당되는 그곳은 불과 20여 가구 남짓한 작은 단지이다. 한국에서도 적지 않은 이들이 방문하여 이 단지에 적용된 생태 개념과 기술, 재료와 공법 등을 보고 온 걸로 안다. 한데 2003년 여름 방문했을 때 필자는 좀 특별한 정경을 목격한 적이 있다. 단지 중앙에는 비포장의 원형 광장이 있는데 그곳에 여러 주민들이 모여 있었다. 대체로 자전거를 타고 있는 가운데 자동차도 두어 대 서 있는데 가까이 가보니 차 트렁크에 피자와 빵 같은 것이 실려 있었다. 무슨 일이 있는지 물어보니 옆에 있는 작은 여자 아이를 가리키면서 오늘이 그 아이 생일이라서 모인거라 했다. 낮에는 근처 강변에 가서 피크닉을 하며 지내다가 저녁에 돌아와 단지 한쪽에 있는 바비큐 장에서 캠프파이어를 하며 마무리할거라고 했다. 인구 25만인 도시 내 주거단지에 살고 있는 사람들이 이웃집 아이의 생일을 축하해 주기 위해 음식을 마련해서 강변과 바비큐 장에서 하루 종일 함께 시간을 보낸다는 현장을 목격하고서 필자는 참 많이 부러웠다. 바로 앞집에 누가 사는 지조차 알지 못하고 층간 소음 등으로 인해 심각한 갈등 관계로 치달리는 것이 우리들 아파트 단지의 현실인데... 그곳에서 목격한 모습이 예전의 우리 삶에서 쉽게 볼 수 있었던 것이라는 생각에서 필자의 마음은 더욱 무거웠다. 어릴 적에 필자가 살았던 동네에서 유독 중시되었던 것은 관계였다. 사람들간의 관계는 물론 주위 자연과의 관계를 좋게 유지하는 것이야말로 한 동네에서 살아가기 위한 가장 중요한 덕목이었다. 각 개인의 정체성은 가족 안에서는 물론 이웃 사이에서의 관계에 의해 형성되었다. 그러니 앞뒷집 아이의 생일 챙기기도 자연스러운 일상 수준의 일이지 않았던가?

Kiel Hassee 생태단지 중앙광장에 모인 주민들 Ⓒ성종상 2003

개발과 건설의 급물결로부터 어느덧 벗어난 현 시점에서 우리는 이제라도 우리네 삶의 모습을 되돌아볼 필요가 있다. 우리 도시의 가장 대표적 유형인 아파트는 단연 성찰의 첫 번째 대상이 될만하다. 좁은 땅에 많은 인구가 사는 한국에서의 효용과 가치를 부인하지는 않더라도 아파트라는 주거 유형의 특징이자 장점으로서 더불어 사는 공동체적 가치 구현이라는 점을 재인식해 볼 필요가 있다는 것이 필자의 생각이다. 단순히 집을 수직으로 쌓아놓은 데서 오는 토지이용상의 효율 혹은 부동산적 차원을 넘어 더불어 살아가는 공동체적 장으로서의 의미와 효용을 충분히 발휘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입주민들이 함께 만나고 사용하는 외부환경에서 그러한 공동체적 효용은 각별히 중요하다. 사진발이나 도면발이 아닌, 실제로 주민들이 자연스럽게 만나 소통하고 삶을 함께 나눌 수 있는 공간과 환경을 만들어야 한다. 주민들의 일상 삶을 함께 나누고 서로간의 관계를 끈끈하게 이어주는 데에 유효적절한 물적 환경이 되도록 기획하고 만들어야 하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온갖 보기 좋고 화려한 프로그램을 집어 넣으려하는 대신에 그 장소와 그 속에서 살 사람을 먼저 생각하되, 보다 창의적이고 유연한 사고와 접근이 필요할 것이다. 경제성에 주도되고 폐쇄성과 익명성이 오히려 장점으로 과도하게 포장되는 우리 아파트를 보다 더불어 살만한 삶터로 만드는 일에 조경가들의 진지한 성찰과 고민이 필요하지 않을까? 우리네 공동주택단지에서의 더불어 사는 삶의 가치와 관계가 더 무너지기 전에...

라펜트는 (재)환경조경나눔연구원 미래포럼과 함께 조경의 미래방향을 모색하는 '조경인이 그리는 미래'를 매달 1회씩 게재하고 있습니다.  

 

미래는 현재의 선택과 행동을 통해 향방을 결정할 수 있습니다. 조경의 미래를 함께 고민하는 논의의 장으로서 조경인 모두의 관심과 함께 연재가 이어가기를 기대해봅니다.

 

*5월 필자는 서영애 대표(기술사사무소 이수)입니다.


글_성종상 교수 · 서울대 환경대학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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