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유정원’은 어떻게 설계돼야 할까?

한국정원디자인학회 ‘제6기 정원디자인 아카데미’ 개강
라펜트l기사입력2020-07-29

 


이혁재 제6기 정원디자인 아카데미 원장

이혁재 제6기 정원디자인 아카데미 원장은 “치유정원은 정신적으로나 육체적으로 자극적인 환경으로 설계돼야 한다”고 설명했다. 왜 그럴까?

‘제6기 정원디자인 아카데미’가 지난 27일(월) 개강했다. (사)한국정원디자인학회에서 실시하는 이번 아카데미의 주제는 ‘치유정원’이다.

이날 이혁재 원장은 ‘테라피가든’에 대해 강의했다. 보통 ‘테라피가든’과 ‘힐링가든’을 혼용하고 있으나 테라피가든이 보다 상위개념이라고 이해하면 된다.

이 원장은 치유정원에 대해 “일반적으로 자연과 닮은 편안한 공간으로 디자인한다고 생각하지만 그렇지 않다. 식물을 만져보거나 향을 맡고 시각을 화려하게 사로잡는 등 감각적으로 풍부한 경험을 제공할 수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라고 말했다. 치유대상자는 치유정원에서 식물과의 상호작용을 통해 스트레스를 경감시키고 다양한 지각에 대한 상승효과를 얻을 수 있다.

따라서 “조경가로서의 자질발휘를 위한 미적 공간이라기보다는 이용자의 특수한 요구사항에 부합하며 이용자 특성에 대한 배려가 필수적인 실용공간이어야만 한다”고 강조했다.

치유정원의 목적으로는 크게 네 가지를 들었다. ▲원예치료프로그램이나 정원활동을 통해 ‘치료의 효과를 극대화하는 정원’ ▲정원에서 마주치는 사람들과의 관계를 통해 자신감을 얻고 타인에 대한 이해를 도모하는 ‘개개인을 고양시키는 정원’ ▲정원을 휴식, 질병회복, 즐기는 공간으로 이용하는 ‘효과적인 회복을 위한 정원’ ▲정원이 미학적 공간으로 계획돼 치료자나 일반인이 휴식을 취할 수 있는 ‘쾌적성을 제공하는 정원’이다.

치유정원은 분류에 대한 개념들이 정립이 되진 않으나 향기요법, 꽃요법, 원예요법, 약초요법, 예술요법을 활용한 정원이나 소리정원, 키친정원 등 다양하다.

치유정원은 식물자체가 주위환경에 미치는 영향을 통해 치료효과를 얻는 ‘객체적 치유’와 직접 정원활동에 참여하거나 거니는 것으로 치료효과를 얻는 ‘주체적 치유’ 방법으로 구분할 수 있다. 후자는 활동과 예술성을 강조한 정원으로 이번 아카데미에서는 이 방법을 택하게 된다.

이 원장은 한 정신병원 옥상에 정원을 조성하고 자유롭게 접근하도록 했으나 환자가 자살한 사례를 들면서 “옥상이라는 장소의 특수성이 있기도 하지만 정원에는 시설물이 있기도 하고 외부로 나갈 수 있는 계기가 되기 때문에 위험성을 내포하고 있다. 치유정원은 사고로 이어질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그 대상과 목적이 보다 확실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아울러 학회가 실시한 ‘수직정원이 인체에 미치는 심리적·생리적 영향’에 대한 연구결과를 공유하기도 했다. 실험은 일반인 각 50인을 대상으로 이루어졌으며, 설문조사와 혈압, 심박수, 아밀라아제 측정도구를 활용했다. 수직정원은 단순한 디자인, 자연적 디자인, 꽃을 섞는 등 다채로운 디자인으로 실시됐다.

특히 생리적 결과에 대해 공법 차이와 상관없이 수직정원이 존재하는 곳에서의 휴식할 경우 인체가 부교감신경계 우위로 변화되어 편안한 상태로 변화한다는 것과 최고혈압이 4정도 저하됐는데, 이는 고혈압 환자에게는 큰 수치로 유의미한 결과를 얻었다. 정원에 머무는 시간에 따른 변화 측정 결과 일정시간 이후에는 수치가 유지되기 때문에 체험시간은 약 10분 전후가 적절하다는 결론을 도출했다.

정원 디자인에 대해서는 단순한 디자인이나 자연과 가까운 디자인보다는 다채로운 디자인 공간에서 보다 더 편안함을 느끼고 스트레스를 낮춘다는 것을 밝혔다. 

정원의 치유적 기능은 오래전부터 있어왔지만 정원자체가 귀족들의 전유물이었기 때문에 일반사람들이 접하기 어려웠으나 플로란스 나이팅게일 이후로 정원에 대한 관심도가 일반인들에게도 공개됐다. 나이팅게일은 『Notes for Nursing(1860)』에 ‘아름다움이 마음뿐만 아니라 신체에도 영향을 준다’고 기술한 바 있으며 사물의 다양한 형태, 화려하고 발랄한 색감은 질병으로 인한 환자의 고통을 실질적으로 낮춰준다고 말하고 있다. 빈센트 반 고흐도 그의 작품 ‘아이리시’와 함께 정신요양원에서 가족에게 보낸 편지에 ‘정원에 만개한 꽃들과 그 안에서의 작업이 건강에 매우 도움이 되고 심신의 안정을 찾을 수 있다’고 전하고 있다.

정원의 치유효과가 최초로 드러난 것은 사이언스지에 실린 미국의 의사 Ulrich의 논문으로, 수술 후 회복기의 환자 중 창밖으로 정원이 보이는 병실의 환자들이 진통제를 맞는 횟수가 적고 회복속도도 빠르다는 것을 밝히면서부터다. 이후 많은 학자들에 의해 치유정원의 효과에 대한 논문들이 발표됐으며, 이 원장 또한 어떠한 정원디자인이 치유에 효과적인가를 밝히기 위한 연구를 논문으로 작성하기도 했다. 큰 나무가 많은 공간보다는 바닥에 잔디나 꽃으로 식재된 곳이 효과가 더욱 크다는 결론을 얻기도 했다.


홍광표 (사)한국정원디자인학회 회장

홍광표 (사)한국정원디자인학회 회장은 ‘K-Garden 전통의 창조적 계승’ 기조강연에서 삼국시대부터 조선시대까지 한국정원의 특징에 대해 살펴보고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사례들을 소개했다.

홍 회장은 “전통조경이라는 말을 잘못 이해하게 되면 고정원으로 이해하기 쉬운데 옛날 정원이 아니라 과거로부터 계승돼 내려져오는 것을 일컫는 것이며, 따라서 전통을 현대의 반대어로 생각해서는 안 된다”며 “K-Garden은 한국성이 기본철학으로 자리 잡아야 하지만 과거의 재료, 공법을 답습하는 것이 아닌 창조적으로 계승하는 것이다. 발상의 전환과 진화된 한국성을 정원으로 표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편 개강식에서 홍광표 회장은 “정원에는 휴식, 감상, 치유 세 가지의 기능이 있다. 현대에 올수록 치유정원에 대한 요구가 지속적으로 늘고 있으며, 신체적 문제도 있지만 정신적 문제를 정원이 어떻게 치유할 수 있을까에 대해 고민도 필요한 시기이다. 이번 아카데미가 치유정원이 가지고 있는 본래적 의미를 정원에 어떻게 담을 것인가를 고민해보는 시간이었으면 한다”고 개회사를 전했다.

이혁재 원장은 “정원디자인 아카데미 커리큘럼에는 실습을 포함하고 있기에 직접 정원을 만들어봄으로서 정원에 대한 이해부터 설계, 시공하는 것까지 차근차근 배우는 시간이 됐으면 한다. 실습은 아카데미가 유지될 수 있는 이유이기도 하고, 아카데미 출신들이 정원작가로 활동하시는 사례가 많은 이유이기도 하다”고 설명했다.

제6기 정원디자인 아카데미는 7일 과정으로 7월 27일(월)부터 8월 2일(일)까지 매일 학회 실험실과 평화의공원에서 실시된다.



글·사진_전지은 기자 · 라펜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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