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녹색시선] 돌의 세계

조용준 논설위원(㈜CA조경기술사사무소)
라펜트l기사입력2021-03-16

 

돌의 세계




_조용준 ㈜CA조경기술사사무소 소장



“돌의 문양이 미끄럽지 않나요? 마감이 어떻게 되는 거죠? CG를 보면 미끄러울 것 같아요. 아무래도 걱정이 많이 됩니다. 다른 분들은 어떻게 생각하세요? 아니 그리고 이건 실제로 만들 수 있나요? (목소리가 점점 격양되어간다) 어떻게 만드는 거죠? 그리고 기사에서 보니까 말이 많던데... 이대로 하실 건가요? 포장 개념부터 짚고 넘어가죠.” 보행안전을 위한 포장마감 검토회의에서 질문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끝없이 이어진다. 익숙한 모습이다. 준비했던 대답을 말하려는 순간, 테이블에 앉아 있던 다른 사람이 나선다. 저건 돌에 홈을 파서 만드는 것 같네요. 다른 색의 돌을 뚫린 부분에 채우는 거죠.” 그러자 그 옆에 계시던 또 다른 분이 입을 열었다. “제가 이 프로젝트에 대해 조금 아는데, 돌의 마감이 다른 거예요. 돌을 마모하면 색이 짙어지잖아요. 원하는 문양을 그리고, 그 부분의 마감 처리를 달리하는 겁니다.” 그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첫 질문을 했던 사람이 다시 끼어들었다. “그러면 돌을 미끄럽게 마모하나 보네요. 비나 눈이 오면 사람들이 미끄러지겠어요. 이렇게 하면 안 될 것 같은데요. 다들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각자만의 추측과 이야기가 모두 끝난 뒤에야 설계사에게 기회가 왔다. 설계안이 관철될 수 있기를 바라며, 나는 모든 질문에 성의껏 대답했다. 

2년 4개월 전 공모전을 준비하면서, 비록 현상단계였지만, 광화문 포장패턴 디자인을 어떻게 현실적으로 만들 수 있을지를 생각했다. 당선이 될 거란 기대는 하지 않았지만 누군가 우리가 디자인 한 독특한 포장 패턴에 대해 물어본다면 개념부터 시공방식까지 이야기해주고 싶었기 때문이다. 덜컥 당선이 되었을 때, 여러 기사에서는 ‘촛불을 닮은 포장문양’이라며 말들이 많았다. 전통공간의 박석포장, 김환기 작가의 그림, 월드컵 당시 군중의 모습 등 여러 모티브를 가지고 있었지만, 기사는 그들이 생각하는 위주로 편집되었다. 포장에 대한 관심이 많다는 것을 느꼈을 때, 디자인에 대한 확신이 필요했다. 곧바로 머릿속에 있던 몇 가지 옵션을 꺼내어 목업(Mock up)을 했다. 1. 버너마감과 잔다듬, 2. 거친 정다듬과 잔다듬, 3. 혼드 브러쉬와 잔다듬, 4. 버너마감과 거친 정다듬. 회색돌들은 잔다듬을 할 때 자연면 마감의 고유의 색보다 옅어진다. 그리고 버너 마감은 불꽃에 입자가 튀겨져 조금 더 어두워진다. 혼드 브러쉬 마감이 가장 어두워지는데 문제는 물이 묻으면 미끄럽다. 이런 마감 차이가 돌의 미묘한 톤의 차이를 만든다. 그리고 이런 톤의 차이는 돌 자체가 가지고 있는 고유의 색에 따라 그 차이가 다르게 타나난다. 밝은 회색의 포천석부터 익산석, 고흥석, 그리고 어두운 마천석까지. 어두운 돌일수록 좀 더 큰 차이를 만든다. 또한, 보령 그린석과 같이 다양한 크기와 여러 색의 입자를 가진 돌보다는 일정한 톤의 고른 입자의 돌이 가공했을 때 효과가 더욱 크다. 예상하지 못했던 사실은 서로 다른 마감이 비슷한 톤을 가진다 하더라도 빛이 비출 때는 돌의 표면이 달리 느껴지는데, 이 효과가 꽤 괜찮다는 사실이다. 그리고 비가 오면 이런 차이가 진해지는 돌도 있지만 옅어지는 것도 있다. 마치 살아 있는 것처럼, 돌의 문양은 날씨에 반응해서 나타나기도 하고 사라지기도 한다.


도드락 다듬을 하고 있는 석공의 모습

그런데, 이런 독특한 문양이 끝까지 살아남으려면 여러 단계를 거쳐야 한다. 국제현상공모에서 당선된 설계안임에도 불구하고, 발주처의 공감도 필요하고, 디자인 심의도 만족해야 한다. 또한, 보행 안전성도 만족해야 하는데, 서울형 보도 포장 미끄럼 저항 기준에 따라 평지 40BPN, 완경사 45BPN, 급경사 50BPN 이상을 충족해야 한다. BPN(British Pendulum Number)은 영국식 진자 시험기로 산출된 값으로 미끄럼 저항 지수를 의미한다. 일반적으로 화강석은 혼드마감, 버너마감, 잔다듬, 거친 정다듬 순으로 거칠어지는데. 외부공간에서 흔히 쓰고 있는 화강석 버너마감이 일반적으로 45를 넘는다. 여기에 더해 BF(Barrier Free)인증을 받아야 하는 경우, 또 다른 미끄럼 저항계수(C.S.R : Coefficient of Slip Resistance)로 평가하며, 습윤 상태에서 0.4이상을 확보하여야 한다. 원하는 돌과 마감이 있다면, 검증과정을 통해 평가서를 제출해야 한다. 이후에도 수많은 고민과 과정을 거치는 것을 물론이다. 끝이 없는 이야기 대신 이러한 과정에서 나왔던 질문들을 나열했다.  

a1. 이런 문양을 하나 만드는데 얼마나 시간이 걸리죠?
a2. 모든 모양을 다르게 만들 수 있나요? 
a3. 몇 개의 모듈로 만들죠?
a4. 어떤 방식으로 배열을 해야 동일한 패턴으로 보이지 않을까? 
a5. 균질한 재질감을 만들기 위한 방식은 무엇일까?
a6. 이 정도 크기의 돌 무게가 얼마일까?
a7. 일반적인 돌의 크기와 무게가 다른데, 어떻게 시공을 해야 합니까? 
a8. 하루에 어느 정도의 면적을 시공할 수 있을까요? 
a9. 대형차량에도 파손되지 않으려면 돌의 두께는 얼마가 적당하죠?
a10. 시공할 때 포장매지 간격을 얼마로 할 생각이죠?
a11. 포장사이에 몰탈은 어떤 방식으로 채우죠?

그런데 이런 고민과 과정이 우리만의 일일까? 계류에 돌 하나 놓는 것에서부터 다양한 돌쌓기 방식들과 독특한 돌 가공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설계와 시공현장에는 어떤 또 다른 이야기들이 있을까? 일 년 전 인스타그램에서 보았던 #시련의 돌밭이라는 해시태그가 기억난다. 작은 중정공간의 설계 스케치에는 수많은 돌들이 그려져 있었다, 설계가는 ‘보기만 해도 아파보이는 푸른 돌’과 ‘아련한 자연석’을 찾고 있었다. 인스타그램의 텍스트보다 실제 시공된 정원은 더 아름답고 감동적이었다. 설계자만큼이나 고민하며 돌을 놓는 시공자의 사진을 보며, 묘한 부러움을 느꼈다.

야하기 치하루의 ‘돌의 사전’을 보면 자연과 빛이 빚어낸 115개의 특별한 돌의 이야기가 나온다. 동글동글 사탕을 닮은 돌, 별 사탕을 닮은 돌, 고대인들이 가장 사랑한 부적과도 같은 돌, 병사의 피로 만들어졌다고 전해지는 돌, 독특한 이름의 돌들. 아주 특별하거나 신비로운 이야기는 아니지만, 우리가 설계하며 사용하는 평범한 돌들의 이야기 또한 무궁무진 하지 않을까? 디자인을 하며, 어떤 종류의 돌과 마감을 고민했는지, 그리고 그 과정에서 어떤 시행착오들이 있었는지를 공유하고 기록하면 어떨까? 국내 여러 채석장에서 캐진 돌들로 만들 수 있는 공간은 얼마나 다채로울 수 있을까? 그리고 어떤 다양한 디테일들이 가능할까? 설계와 시공과정에서 돌에 대한 이야기들을 하나씩 모아보면, 돌의 사전처럼 꽤 매력적인 책이 만들어지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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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사진_조용준 소장 · (주)CA조경기술사사무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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