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녹색시선] 파라메트릭한 BIM, 체크슈머가 되자

글_김복영 ㈜림인포테크 대표
라펜트l기사입력2021-08-08

 

파라메트릭한 BIM, 체크슈머가 되자



_김복영 ㈜림인포테크 대표



BIM 모델 작성 시 사용되는 소프트웨어들은 非 BIM 소프트웨어들과 비교해 보았을 때 두 가지의 특징이 있다. 속성정보(Properties)를 담을 수 있으면서 파라메트릭 모델링(Parametric Modeling) 방식을 지원한다는 점이다. BIM의 ‘I’가 정보를 뜻하고 있으니 BIM용 저작도구들이 3D 형상과 함께 정보를 구축하도록 도움을 준다는 것은 당연할 것이다. 그렇다면 파라메트릭 모델링 방식을 지원한다는 것은 무슨 의미일까? 파라메트릭한 BIM, 그 의미와 조경분야에서 활용 가능성을 살펴보고 앞으로의 사용 여부를 결정하는 똑똑한 소비자, 체크슈머가 되어보자. 


파라메트릭 모델링 방식

파라메트릭하다는 것은 파라미터(Parameter), 즉 매개변수로 운용되어 결과값이 어떤 하나의 수치로 고정되지 않고 여러 번 계산되어 나온다는 것이다. 아래 그림에서 좌측의 방정식을 살펴보자. 1+1=2. 단순하게도 값은 한 가지로 나온다. 그에 비해 함수로서의 우측 방정식을 살펴보자. 1+a=?. ‘a’값에 따라 달라지는 결과값을 얻을 수 있다. 이때 ‘a’는 하나의 매개변수로서 함수의 규칙에 따라 다양한 결과값을 만들어 낸다. 

이 개념을 간단한 형태의 의자에 적용시켜 보자. 의자의 다리와 상판의 형상 등이 어느 정도 정해져 있고 폭의 길이도 450㎜로 정해져 있다. 좌측 이미지에서 의자들의 길이는 폭과 마찬가지인 450㎜로 일정하다. 반면, 변수 ‘a’라는 길이를 가지고 있는 우측 의자의 경우 형태는 유사하면서도 다양한 길이의 많은 의자를 만들어 낸다. Revit, ArchiCAD, Vectorworks 등 익숙한 BIM 저작도구들은 라이브러리를 제작할 때 이러한 모델링 방식을 지원하여 유사하지만 다양한 유형의 객체를 작성하도록 도와준다. 수목이라면 수고의 길이를 조정함으로써 규격에 따른 유사한 수형의 다른 패밀리 객체들을 얻을 수 있다.



[그림 1] 일반 모델링 방식과 파라메트릭 모델링 방식
이미지 출처 : 김복영(2021). 조경 BIM 기초입문서. 성안당


구속조건 기반과 번식 기반

앞서 설명한 것과 같은 유형화된 객체, 라이브러리를 만들기 위한 모델링 기법은 BIM 저작도구의 핵심 기술로 회자되지만, 다소 협의적이고 소극적인 방식의 파라메트릭 모델링 기법이라고 할 수 있다. 구속조건 기반(Constraint-based)이라고도 불리는 이 모델링 방식은 말 그대로 조건에 구속된다는 의미가 내포되어 있으며, 매개변수에 의한 변화를 주더라도 매우 정형화된 형상이 나오게 된다.

이와 조금 다른 의미의 파라메트릭 모델링 방식이 있다. 번식 기반(Propagation-based)이라고도 하는 이 방식은 디자이너가 정의한 알고리즘을 규칙으로 하여 단순하면서도 불규칙적인 패턴을 만들어낸다. 점들을 잇는 들로네 삼각형(Delaunay Triangulation), 보로노이 다이어그램(Voronoi Diagram)과 같은 규칙의 실행이 가능하며, 이를 이용하여 현대 건축물 또는 시설물에서 등장하는 복잡하고 비정형적인 형태를 만들어내기도 한다. 이 방식에서는 규칙이 존재하지만 연산을 무한 반복함으로써 어느 하나도 동일하지 않은 곡선의 유기적인 형태를 무수히 많이 생성해낼 수 있다.

일반적으로 번식 기반의 파라메트릭 설계는 형태에 치중되어 왔다. 함수 또는 알고리즘을 사용하기 때문에 Computational Design, Algorithmic Design, Generative Design 등으로도 불리며 자연계의 패턴이나 유기적 형태, 무언가 닮아 있는데 조금씩 다른 다양한 자기 조직적인 형상을 만들어 내는 것이 그 특징이다. 이러한 디자인 경향은 점점 더 복잡한 형태로 진화하고 있다.



[그림 2] 파라메트릭 모델링 기법에 의한 형태 생성 및 이를 활용한 Hourglass Corral
이미지 출처 : Guibas(1994). Basic algorithms and combinatorics in computational geometry(좌). https://www.archdaily.com(우)


최적안을 찾기 위한 파라메트릭 기법의 확장

파라메트릭 기법을 형태에만 국한시킬 이유는 없다. 객체의 다양한 물리적 현상과 생태적, 환경성능적 변수에 대한 규칙을 만들어서 반복적으로 시뮬레이션을 수행하면 그 과정을 통해 최적안을 찾아낼 수 있다. 여기에서 규칙이란 결국 다양한 변수 간의 관계를 의미하므로 파라메트릭 기법을 관계지향적 설계기법이라고도 할 수 있다. 조경설계는 기후, 토양, 수문, 부지의 문화적 특성, 이용자 행태 등을 토대로 지형, 식재, 포장재, 시설물 및 구조물 등 다양한 설계요소를 입체적, 통합적으로 다룬다. 이때 BIM 모델에 포함된 속성정보와 그 변수 간의 관계를 설명하는 알고리즘에 의한 파라메트릭 기법은 설계안에 대한 객관적 분석과 검토를 가능하게 한다.

여러 가지 조건과 변수들을 토대로 설계안을 도출하는 과정에서 대안은 무수히 많이 나올 수 있다. 이 과정에서 최적안을 찾으려고 노력하는 것이 설계가의 의무지만 최적안이 모든 설계조건을 만족시키는 절대적인 것일 수는 없다. 그렇다면 어떤 측면에서 어떤 조건을 얼마만큼 만족시켜야 최적안이 될 것인가? 설계가는 대상지의 특성을 파악하고 본인의 경험과 지식, 합리적 주관에 입각하여 설계 조건에 대한 기준을 마련해야 한다. 이를 토대로 속성정보를 구축하고 변수로 하여 반복적인 시뮬레이션을 수행함으로써 주어진 조건에 합당한 여러 개의 설계 대안을 만들 수 있다. 이 시뮬레이션을 통해 유사하지만 변수에 따라 조금씩 달라지는 설계안에 대해 결과물을 미리 예측하여 의사결정을 하고 객관적인 논리의 근거를 마련할 수 있다. 파라메트릭 기법은 이러한 시뮬레이션 과정을 신속하게, 그리고 무한히 반복할 수 있도록 도움을 준다.

일례로 Fletcher Studio에서 설계하여 2017년 준공된 샌프란시스코의 South Park에 대해 살펴보자. 이 설계안에서는 토지 용도, 공원 이용 및 동선 패턴, 식재 조건과 배수 시스템 등에 대한 대상지 데이터들이 수집되었다. 이는 동선 패턴의 위계, 공원 접근 지점, 사회적 활동 거점, 기존 수목, 보존할 구조물 등과 결합되어 공원을 가로지르는 중심 보행로의 위치와 폭을 결정하였다. 생태적, 환경성능적 변수보다는 동선과 공간 시스템, 형태 디자인에 초점이 맞추어져 진행되었지만 파라메트릭 기법은 이미 설정해 둔 설계개념 상의 조건들과 상충되지 않도록 시뮬레이션을 신속하게 반복하면서 설계 논리를 풀어나가도록 도움을 주었다.


[그림 3] 파라메트릭 모델링 기법을 활용한 South Park
이미지 출처 : https://groundhog.la/projects/south-park  


파라메트릭 BIM 설계 도구들

엄밀한 의미에서 South Park는 BIM 정보모델로 작성되진 않았지만 설계과정에서 다양한 변수들을 정보화하고 일종의 규칙과 알고리즘을 만들어 설계안을 발전시켰다는 측면에서 BIM이 지향하는 파라메트릭 설계방식과 상통되는 점이 있다. 이처럼 조경분야에서의 BIM 개념을 협소하게 보지 않고 설계과정에서 유연하게 그 활용 방안을 넓혀 나갈 수 있을 것이다.

파라메트릭 기법을 활용하여 설계를 진행하려면 기초 데이터의 조사와 축적, 다양한 함수의 관계식들에 대한 연구가 필요하다. 아직까지 매우 요원해보이지만 빅데이터와 인공지능, 스마트건설 기술이 발달하면서 이러한 것들이 언젠가는 설계가의 손에 쥐어질 것을 희망해 본다. 데이터는 점차 정교해질 것이고 BIM 설계도구들은 VR, AR, Digital Twin 등 메타버스를 지향하는 도구들과 매우 부드럽게 연동될 것이다.

현재 BIM 저작도구들은 구속조건 기반의 파라메트릭 라이브러리를 제작할 수 있도록 하는 기능이 기본적으로 장착되어 있다. 더 나아가 설계가들이 직접 원하는 대로 알고리즘을 작성하도록 Visual Progra㎜ing Tool을 개발하여 플러그인으로 장착해 두기도 하였다. AutoCAD의 LISP, SketchUp의 Ruby와 유사하게 Rhino의 Grasshopper, Revit의 Dynamo, Vectorworks의 Marionette, ArchiCAD의 Param-O 등이 배포되어 있다. 이로써 BIM 저작도구들이 조경분야에서 활용되면서 가지고 있는 한계점들을 보완하기도 하고 설계가들이 원하는 특정한 시뮬레이션이 구현하도록 도움을 주고 있다.
 

[그림 4] Grasshopper와 Dynamo에서 수직 이동하는 점을 생성하는 과정

조경 BIM을 위한 저작도구로서 한계가 많은 Revit의 경우도 이와 연동되는 Dynamo를 활용하면 설계에 필요한 코딩을 비교적 쉽게 작성하여 유용하게 사용할 수 있다. 예를 들면 음양수 등 다양한 생태 정보가 포함된 수목을 부지에 모델링한 후 생태 조건에 합당한 식재가 이루어졌는지 확인하는 코딩을 작성하여 활용할 수 있다. 현재도 이루어지는 업무이긴 하지만 수목의 속성을 설계가의 경험과 지식 또는 검색자료에 의존하여 아날로그 방식으로 체크하는 것보다 코딩으로 자동화하여 소요되는 시간과 작업상의 오류를 줄이고 개념전개와 의사결정에 필요한 시간과 노동력을 확보함으로써 보다 합리적으로 설계안을 발전시킬 수 있도록 하는 데에 의의가 있다.     


[그림 5] 일조 조건에 적합한 수종 배치를 체크하는 재식 알고리즘(Dynamo)


디지털 설계도구의 진화와 설계행위의 변화

이상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도면 작성과 시각화에 치중되었던 예전의 디지털 설계도구들은 이제 설계안을 발전시키는 데에까지 그 역할이 확장되고 있다. 단순히 설계안을 입력, 저장, 출력하던 때에서 벗어나 설계가의 개념과 구상을 객관적이고 정량적인 수치와 수학적 함수로 정의하고 다양한 변수들의 조합과 반복 실행을 통해 최적안을 찾아나갈 수 있도록 도움을 주고 있다.

조경설계에서 다루는 대상인 환경과 경관은 각각의 설계요소들이 하나의 시스템으로 작동하므로 그 요소들의 속성과 관계성의 이해, 그리고 설계행위를 위한 판단과 적용은 매우 중요하다. 특히 대도시의 등장, 밀집과 유동성의 가속화, 대규모의 기후변화 등에 따라 대상지의 규모는 커지고 다루어야 할 설계 변수들은 복잡해지고 있다. 설계가들은 이제 설계 변수를 찾아내고 그 객관적 데이터를 토대로 관계성과 규칙을 찾아내어 설계조건들을 검토함으로써 최적안에 대한 가치판단을 하는 결정권자가 되어야 한다. 그러나 무작정 디지털 설계도구를 받아들이고 의존하는 것이 아니라 현 시점에서 과연 어떤 것이 가능하고 어떤 점이 한계인지, 그리고 어떤 기준을 가지고 어떤 특정 소프트웨어를 사용해야 할 것인지 잘 따져보고 움직이는 것이 필요하다.
글·사진_김복영 대표 · 림인포테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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