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관일기] 마드리드의 센트럴파크, 레티로 공원

글_강호철 오피니언리더(전 경남과학기술대학교 교수)
라펜트l기사입력2021-08-13

 

세계 도시의 녹색환경과 문화 & LANDSCAPE’ - 238


스페인 편 - 24
마드리드의 센트럴파크, 레티로 공원





글·사진_강호철 오피니언리더

전 경남과학기술대학교 조경학과 교수




2018년 7월 22일. 시간이 참 잘 지나가네요. 벌써 마드리드에서 3일째입니다. 스페인 답사도 이제 막바지에 접어들었네요. 하루하루가 아쉽지만 금방 지나갑니다. 올 여름도 여전히 외국도시에서 땀에 젖어 지내는 신세네요. 물론 힘은 들지만 가장 보람되고 행복한 나날이라 표현하고 싶습니다.













매우 넓은 공원이라 입구도 한두 곳이 아니네요. 입구 게이트의 형태나 분위기도 다양합니다. 비슷하면 이방인들은 공간을 인지하기 어렵고 혼돈할 우려가 있겠지요.



Retiro 공원은 스페인의 전성기 시대인 펠리페 2세가 건립한 별궁에 딸린 정원이었습니다. 이후 펠리페 4세 시대에는 궁전과 정원으로 구성되었지만, 나폴레옹 전쟁으로 파괴되어 현재의 모습으로 전해온다고 합니다. 한동안 왕실의 여름별장으로 이용되었고 19세기 중반에 시민의 품으로 돌아왔습니다.

















연일 맑은 날씨라 시간은 풍족하지만 작렬하는 강한 햇살을 마주하니 잠시 두려움이 생기네요. ‘혹시 이러다 본인 의지와 무관하게 갑자기 쓰러지면 어떻게 되나?’하는 불길한 생각이 가끔씩 들기도 합니다. 그래서 주머니속의 호텔 명함과 신분증을 다시 한 번 확인하게 되지요.

오늘은 오랜 역사를 간직한 숲의 전당으로 목표를 정하였습니다. 이 공원 역시 2002년 한일 월드컵 시즌에 답사하였었지요. 그때가 40대 후반이네요. 엊그제 같은데 벌써 20년의 세월이 지나갔습니다. 하지만 시가지보다는 공원이 발전이나 변화속도가 상대적으로 늦기 때문에 옛날 기억을 기대해봅니다.

공원에 들어오니 옛 기억이 생생하게 살아나네요. 시내 거리를 이동하며 걱정했던 햇살과 더위도 공원에서는 별다른 문제가 없습니다. 공원 곳곳에 시원한 녹음과 쉼터가 즐비하지요. 정형적 땅가름이라 네모반듯한 녹지 구역을 샅샅이 둘러봅니다. 네모난 모든 녹지가 똑같은 모습으로 보이지만 각기 다른 시설과 내용이고 분위기랍니다.























공원의 중앙에는 아직까지 크리스털 궁전 등이 일부 남아있습니다. 역사적 의미가 깊은 사적공원에 해당되지만, 보존되어야할 다양한 유적들과 함께 현대공원이 갖추어야 할 다양한 요소들이 조화롭게 숲속을 메우고 있지요. 도심 한복판에 자리한 무려 143ha(약 43만평)에 달하는 방대한 공원입니다. 1868년 일반시민들의 열린 쉼터로 개방되었으니 그 역사가 상상을 초월하지요. 그래서 유럽의 공원들은 물리적 시설이나 규모를 떠나 공원문화로 정착하며 도시의 상징이자 생활의 한 부분으로 자리하게 되었습니다.























어린이를 위한 공간 배려가 역시 선진국답네요. 이 공원이 일반 시민에게 개방된 역사만 하여도 이미 150년이 넘었습니다. 그에 비하면 수목들이 다소 작다는 느낌이 드네요. 소나무를 제외하면 조성한지 불과 40~50년 밖에 되지 않은 우리나라 도시공원의 나무들과 큰 차이가 없다는 느낌이 듭니다. 우리는 서양보다 큰 규격의 나무를 식재하기도 하고, 토양이나 기후 환경도 좋다고 판단됩니다. 도시공원의 역사가 미천한 우리도 이러한 추세로 꾸준하게 나무를 심고 공원을 조성하여 관리한다면 50년, 100년 후에는 얼마나 멋진 녹색도시로 발전하고 변화될지 무척 기대가 됩니다. 산야를 비교해 보아도 우리나라만큼 변화무쌍하고 아름다운 자연은 지구촌에서 없다고 생각되지요.

알프스나 로키, 히말라야가 하나같이 장대한 스케일을 자랑하지만 설악산이나 오대산처럼 계절마다 변화하는 깊고 오묘한 자연은 쉽게 찾아볼 수 없답니다. 그러나 인위적으로 조성한 도시공원은 우리가 많이 보고 배워야 할 것입니다. 자연과 문화, 예술이 조화를 이루는 물리적 환경은 물론 이용 프로그램 등은 더 많은 도움을 받아야 할 것입니다.



















호수와 분수, 폭포, 실개천 등 물을 이용한 시설이나 공간은 평화롭기도 하고, 때론 역동적으로 생동감을 부여해 주변 분위기를 변화시키기도 하지요. 공원에서도 물은 다양한 모습으로 활용되고 있습니다.

































오늘은 오직 이 공원에서 머물며 뿌리를 뽑습니다. 걷고 걷다보니 중복된 이미지도 나오네요. 공원의 규모가 뉴욕 센트럴파크의 약 40%, 상해의 세기공원과는 비슷합니다. 하지만 이곳이 훨씬 부담이 적고 편안하게 답사할 수 있었답니다.



공원 울타리 안쪽 외곽으로 순환로가 있습니다. 한 바퀴가 4㎞라네요. 많은 시민들이 걷거나 자전거를 즐깁니다. 생활권에 이러한 코스가 있다는 것은 큰 축복이라 생각됩니다.

제가 거주하는 아파트에서 도보 5분 거리에 남강이 흐르고 둔치가 확보되어 있습니다. 공원처럼 가꾼 한강둔치와는 달리 지방하천이라 녹음수가 전혀 없지요. 이곳은 6~9월까지 낮에는 이용 시민이 없습니다. 오직 햇볕이 없는 야간에만 붐빈답니다. 지하수위가 높은 곳에서 잘 견디고 그늘효과가 빼어난 낙엽교목이 절실하지요. 다행스럽게 시청 당국에서 메타세쿼이아 묘목을 식재하여 정성을 쏟고 있기에 큰 기대가 됩니다.













녹음을 이루는 수종은 플라타너스와 마로니에, 양버들이 주류를 이루고, 아름드리 크기의 소나무도 많네요. 그 외 눈에 띄는 수종으로 꽃사과, 무화과, 마가목, 유도화, 뽕나무, 광나무, 회양목, 수수꽃다리, 사이프러스, 아왜나무, 유칼리나무, 아카시나무 등이 보입니다.

공원은 전체적으로 직선적인 땅가름에 교차점마다 설치된 조각분수와 음수전이 기본이네요. 

간간이 들려오는 성당의 종소리와 더불어 잠시 긴장감을 감돌게 하는 순찰차의 사이렌 소리도 들려옵니다. 도시공원은 이제 동서양을 막론하고 애완견을 동반한 시민들의 산책 공간으로 자리매김한지 오래인 것 같습니다. 인공 수로를 따라 흐르는 시냇물소리도 정겹고, 휴일 정오에 공원 숲속에서 펼쳐지는 오케스트라 공연은 대단한 호응과 인기를 실감할 수 있네요. 앞서가는 선진도시의 공원문화가 실로 부럽습니다. 더위도 아랑곳하지 않고 숲속광장은 인파로 가득합니다. 자유분방하면서 질서정연함에 다시 한 번 놀라게 됩니다. 공원 내부의 산책로와 녹지사이는 수벽으로 감싸고 있어 답압에 의한 녹지를 보호하는 한편, 전체적으로 깔끔하고 정돈된 분위기를 자아냅니다. 역사적 의미를 간직한 숙성된 도심의 공원은 실로 보배와 같은 존재임에 틀림없네요. 무엇보다 부럽습니다.

파리나 런던 뉴욕의 공원에서 경험했던 공연을 여기서도 즐기게 되어 행운입니다. 오늘의 밝고 경쾌한 공연분위기는 오래토록 잘 간직하고 싶습니다.































오늘은 온 종일 40여 만평의 공원에서 지냈습니다. 다양한 주제 공간들로 이루어져 지루하지도 않았습니다. 휴대한 황차(국산 반발효 녹차)와 현지의 생맥주로 기력을 충전하며 신명나게 공원 구석구석을 뒤진 하루였네요. 오늘도 건강하고 식지 않은 열정으로 답사에 임해준 나 자신에게 감사의 축배를 올리고 싶습니다.

















마지막 코스는 장미원으로 기억됩니다. 장미보다 주변 환경이 훨씬 돋보이네요. 오늘의 즐겁고 긴 여정은 축배의 잔이 기다리는 공원 야외 카페에서 종료됩니다.
글·사진_강호철 교수 · 경남과학기술대학교 조경학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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