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농어촌공사 필기시험 ‘논란’···대행사에 100% 의존, 문제검증과정 없어

출제범위 벗어난 문제 대다수, 변별력 없는 수준
라펜트l기사입력2021-12-30

 

지난 11월 13일에 시행한 2021년 5·6급 신입사원 채용 필기시험이 문제가 되고 있다. 출제범위를 벗어난 시험문제가 다수이고, 문제의 난이도도 너무 쉬워 변별력이 없다는 지적이다.


쟁점이 되는 분야는 조경직렬이다. 공사 홈페이지에는 출제범위를 조경계획론, 조경설계론, 조경관리론으로 명시하고 있다. 그러나 시험을 치른 수험생들에 의하면 총 40문항 중 명시된 3과목에서는 10문제가 나오고, 나머지 30문제는 다른 과목에서 출제됐다는 것이다.



한국농어촌공사 홈페이지에 게시된 2021년 5·6급 신입사원 채용 필기전형 출제범위

올 시험을 치른 A수험생은 “2018년도 채용시험을 치른 사람들의 후기만 봐도 분명 3과목만 출제됐다고 한다. 그런데 올해는 다른 것 같다”며 “출제 외 범위에서 나온 문제들도 너무 기초적이어서 변별력이 있나 싶다. 이럴 거면 애초에 전 과목을 출제범위로 기재했다면 좋았을 것이다. 몇 개월 동안 농어촌공사만 보고 출제범위 과목을 집중적으로 공부한 사람도 많을 텐데 화가 난다. 결국 피해를 보는 것은 취준생”이라고 분개했다.


B수험생은 “조경사와 조경식재 문제가 나와도 한두 문제면 이해하겠는데 그게 아니어서 울고 싶었다. 조경기사 시험을 친 지 오래돼 기억이 가물가물한 상태에서 학명문제만 3~4개가 출제됐다. 조경관련 법류의 세세한 수치까지 외운 게 억울하다”고 토로했다.


C수험생은 “시험지를 보고 1분 동안 웃었다. 이걸 풀려고 공부했나 싶었다. 조경기사책 1~2주만 보면 다 풀 수 있는 수준에, 출제범위였던 조경계획, 조경설계, 조경관리는 거의 출제도 안 됐다. 출제 기준이 무엇이었는지 대행사에 묻고 싶다”고 한탄했다.


D수험생은 “열심히 공부한 사람이 붙어야 하는데 조경기사 시험본 지 얼마 안 된 운 좋은 사람이 붙겠다”고 전했으며, E수험생은 “문제 검토가 이루어진 건지 궁금하다”고 의문을 제기했다.


뿐만 아니라 타 분야인 기계분야 6급 역시 “출제자가 출제범위에 포함된 유체기계에 대한 이해가 있나싶을 정도로 안 나왔다. 역류방지 밸브 하나와 그 외 유체역학 부분을 유체기계로 낸 것 같은데... 아무튼 문제도 기초수준으로 나와 만점자가 많을 것 같다”, “해당 대행사의 시험을 3번 봤는데 이곳은 이론에 대한 개념이 없으신 분들이 주먹구구식으로 출제하는 것 같다”고 전했다.


이러한 문제제기는 시험이 치러진 당일 ‘[KRC]한국농어촌공사를 준비하는 모임’ 네이버 카페의 게시글 및 댓글을 통해 제기된 것으로, 시험결과가 나오기 전에 문제점들이 지적됐다는 점에서 문제의 심각성을 더 한다.


한국농어촌공사를 비롯한 공공기관은 직원선발을 위해 채용 대행 용역을 발주, 대행사를 통해 채용시험의 전 과정을 치른다. 대행사는 나라장터 입찰시스템을 통해 선정되며, 매년 낙찰자가 달라진다.


농어촌공사를 비롯한 대다수의 공공기관은 대행사를 통해 채용시험을 실시하고 있으며, 매년 용역발주를 통해 대행사를 선정한다.


선정된 대행사는 서류심사부터 최종합격자관리까지 채용의 모든 과정을 대행하게 된다. 특히 필기시험 문항출제도 대행사에서 하게끔 되어 있다.



한국농어촌공사 「2021년도 신입사원 채용 등 대행용역」 과업지시서 / 출처 나라장터


문제는 대행사가 그해 채용하는 모든 분야의 시험문제를 출제하고 있고, 문제에 대한 검증과정까지 대행사에 의지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번 농어촌공사 5·6급의 경우 전공시험 19개 과목, 직업기초능력 5개 영역을 대행사가 출제했고, 분야도 위의 표와 같이 경상, 법정부터 전문기술분야까지 상이하다.


입찰공고 과업지시서에는 과목별 전문 출제위원 참여해 문항의 적합성 제고 및 난이도 조절을 할 수 있도록 명기돼 있고, 특히 전공시험의 경우 대학 전임교수 등 외부 전문가 활용하라는 내용이 기재돼 있다. 용역사가 제출해야 하는 제안서에 명시해야 하는 것이다. 농어촌공사 관계자에 의하면 농어촌공사입장에서는 문제를 어떻게 출제했고, 어떻게 검수했는지에 대한 일련의 절차를 보고받고 있다.


그러나 농어촌공사 내 검증시스템은 없다. 관계자에 의하면 “보안상 문제 유출의 원인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보안상의 이유로 공사측에서는 시험지 인쇄 장소에는 가되 오타검수도 하지 않고 있다고 한다.


반면, LH의 경우는 공사차원에서 철저하게 검증과정을 거친다, LH 담당자에 의하면 “수능 출제할 때 보안을 지키기 위해 휴대전화를 걷고 출제위원을 감금한 상태에서 문제출제를 하듯 채용관련 공사 담당자 입회하에 각 전문분야 담당자가 참여해 대행사가 출제한 문제를 검토한다. LH측에서 문제를 출제하기도 한다”고 설명했다.


그렇다면 이번 조경직렬 5급의 시험문제가 어땠기에 수험생들의 불만이 쏟아지는 것일까? 한 제보자에 의하면 ‘잔디 관수 시기, 옥상조경시 고려사항, 잔디깎기의 효과, 식생천이 순서, 옴스테드와 관련이 없는 것 고르기, 보르비콩트와 관련 없는 것 고르기, Acer속이 아닌 것 고르기(학명), 협죽도과가 아닌 식물 고르기, 등고선의 특징, 한국 최초 공원설립 민간단체, 극상림 수목의 종류’ 등의 문제였다고 한다.


농어촌공사 기술분야 5급의 응시자격은 ‘기사자격 이상’을 보유해야 한다. 즉 위와 같은 수준의 문제는 변별력이 없다는 수험생들의 지적이다. 또한 조경의 경우 조경기술사 자격에는 20점, 조경기사 자격에는 10점의 점수를 적용한다. 자격 등급에 따라 가산점을 차등 부여함으로써 합격여부가 달라지기도 하는 중요한 시험임에도 문제의 수준이 터무니없다는 비판이 거세다. F수험생은 “취준생들은 현재 이러한 문제를 타개할 힘도 없으며 그저 울며 겨자먹기 식으로 불합리함을 받아들이고 언제까지 해야할 지 모를 도서관-집 생활을 이어나가야만 한다”고 한탄했다.


토목(조경) 직무기술서를 보면 한국농어촌공사는 ‘땅’과 ‘물’을 관리하는 기관으로서 농지를 만들고 공급하며, 저수지관리를 통해 농어촌에 물을 공급하는 등의 사업을 수행하는 농어촌 전문 공공기관이다. 그 중 조경직렬은 국토와 지역에 대한 지속가능한 종합계획을 수립하고, 아름다운 경관과 쾌적한 환경을 조성하기 위해 계획, 설계, 시공, 국제협력, 해외농업개발지원까지 하는 중요한 직무를 수행한다. 기후위기, 탄소중립, 팬데믹 등 전 지구적 환경문제에 당면한 작금에서 국토를 다루는 공공기관인 만큼 보다 철저한 선발과정이 요구된다.



한국농어촌공사 토목(조경) 직무기술서

글_전지은 기자 · 라펜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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