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정수의 자연예찬] 딸기-씨가 겉에 있는 속씨식물 

글_정정수 오피니언리더(JJPLAN 대표)
라펜트l기사입력2022-02-17

 

정정수의 자연예찬
딸기-씨가 겉에 있는 속씨식물 



_정정수 JJPLAN 대표,
ANC 예술컨텐츠연구원 원장



지구를 녹색별로 만들면서 살아가고 있는 모든 식물들은 번식을 위해서라면 놀랄만한 노력을 한다.

동물과는 달리 제자리에서 움직이지 못하는 식물들은 생명에 대한 존엄한 가치를 인간들에게 보여주면서 아름다운 삶을 산다.

만지면 ‘툭’하고 터질 것만 같은 봉선화는 씨앗이 익으면 어미그루로부터 씨앗을 튕겨서 멀리 보내는 방법으로 영역을 넓힌다.

선조들은 옥수수, 수수 등 곡식의 씨앗(종자)을 보관하기 위해 실외 처마 밑에 매달았다. 이렇게 보관된 종자에게 눈비는 피하게 되지만 추위는 피할 수 없는 환경을 만들게 된다. 겨울을 경험하게 함으로써 다음 해에 쉽게 발아할 수 있는 조건을 만들어주는 지혜로운 방법을 선택한 것이다. 이렇듯 씨앗과 계절의 관계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속씨식물인 딸기의 씨앗이 겉으로 배치되어 있다. 큰 나무처럼 높은 곳에서 열매를 맺지 못하고 땅바닥에 붙어 자라는 딸기는 작은 동물의 작은 입에 의해 갉아 먹혀야 동물에 의해 번식할 수 있다. 다른 과일처럼 씨앗이 속에 있으면 작은 동물의 입에 과육만 빼앗기고 씨는 안쪽에 남게 될 것이니 문제 해결을 위해 딸기가 원하는 기능에 맞는 디자인으로 거듭났을 것이다. 게, 새우 등 갑각류들의 뼈가 겉에 있는 것과 같다.

꽃을 좋아하는 사람들 중에 꽃씨를 잘 보관했다가 이듬해 봄이 되면 꽃을 볼 수 있겠다는 희망을 가지고 씨를 뿌렸지만, 발아에 실패한 경험이 있을 것이다. 그런데 그 옛날의 할머니들께서는 냉장고가 없던 시절에도 불구하고 꽃씨를 실외에 보관했다가 울타리 밑에 꽃을 키워보는 즐거움을 만드셨다.

현대의 환경에서는 씨앗을 냉장고에 넣어 보관함으로써 발아시킬 수 있는 ‘냉암소 보관’이라는 조건을 충족시킨다. 예를 들어 산수유 씨가 자연에서 2년 만에 발아한다면, 냉장보관을 하면 1년 만에 발아시킬 수 있다. 산수유 씨를 몇 개월간 냉장보관하고, 몇 개월간은 실온에 꺼내놓고 기다린 후에 다시 냉장보관 했다가 봄에 심으면 산수유 씨앗은 두 번의 추위를 나누어 경험했으므로 2년이 지난 줄 알고 발아를 한다.

산수유 씨앗에게는 냉장고가 타임머신이다. 그러나 이 씨앗은 1년이라는 시간을 앞당기는 타임머신에 탔다는 사실을 전혀 모르는 것처럼 인간도 이 같은 경험을 했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단감의 씨앗을 결대로 쪼개면 숟가락 모양의 예쁜 배아의 모습을 볼 수 있다. 한 개의 씨앗이 가지고 있는 모든 기운은 배아를 향하고 있다.

씨앗은 싹트는데 필요한 조건이 충족되지 않으면 몇 년이고 기다린다. 몇 백년을 발아의 기회를 기다린 연꽃 씨도 있다. 고려 때의 것으로 추정되는 함안에서 발견된 8개의 연꽃 씨 중 3개는 2010년에 꽃을 피워 ‘아라’라는 이름으로 700여 년 만에 세상을 보기도 했다.

커다란 굴삭기가 땅을 파다가 몇 백년간 흙 속에 묻혀 있던 절터를 발견하기도 한다. 부서진 절터 위로 수 백 년 동안 흙이 덮여 땅속에 있다가 흙을 들춰내니 사지(寺址)가 발견된 것이다.

이렇게 파헤쳐진 공사장 흙더미 위에 1개월이면 풀들이 흙 표면을 덮는다.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은 이 풀들 중 대부분은 어디에서 날아온 풀씨가 아니라 발아하지 못하고 흙 속에 묻힌 채 기회를 엿보던 씨앗이 발아의 기회를 맞아 세상을 본 것이다. 얼마나 기쁠까? 이처럼 생명력이 끈질긴 식물의 습성을 이해해야 한다.

전원생활의 최대의 적은 잡초라고 불리는 풀이다. 잡초의 근원이 되는 것은 씨앗이며, 씨앗부터 잡아야 잡초를 이길 수 있다. 잡초를 제거하는 원초적 방법은 잡초가 꽃을 피우고 씨앗을 맺기 전에 뿌리부터 제거하는 것이다.

아름다움을 추구했던 전원 속에서 잡초 걱정 없이 전원생활을 즐길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은 잡초를 잡을 수 있는 시기를 놓치지 않는 부지런함과 지혜에 있다. 이것이 잡초에 대한 어려움을 덜어주게 된다.

잔디와 꽃을 위해 잡초를 죽이는 일은 또 다른 생명 연장을 위해 자연을 파괴하는 일이다. 그러나 자연에서의 죽음은 순환이라는 연결고리로 또 다른 생명을 키운다.


양다래는 만목의 형태를 가진 덩굴식물이다. 높은 곳에 매달리는 이 열매는 씨의 위치로 보아 딸기보다는 큰 동물을 이용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해준다.

2월인 요즘엔 딸기가 제철인 것처럼 많이 나온다. 그러나 이 과일들은 태양 빛이 변화하는 계절이 만드는 게 아니라  인간이 필요한 시기에 하우스에서 만들어 경쟁적으로 출하하고 있다. 5월의 태양 빛을 듬뿍 받고 익어가는 딸기가 그립다.
 
인위적인 것보다는 자연적인 것이 이롭다는 것을 우리는 잘 알고 있다. 세상의 모든 아름다움은 자기다움이다.
글_정정수 대표 · JJPLAN
다른기사 보기
관련키워드l정정수, JJPLAN, 자연예찬

관련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