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와 공존하는 도시를 위한 발코니정원 “조경가의 도리”

[인터뷰] 2022 첼시 플라워쇼 ‘JAY DAY’ 작가 최수연·알리슨 오렐라나 말루프
라펜트l기사입력2022-05-04

 

2022 첼시 플라워쇼(RHS Chelsea Flower Show 2022)에 한국인 최수연 조경가와 알리슨 오렐라나 말루프(Alison Orellana Malouf) 조경가의 ‘제이데이(JAY DAY)’가 조성된다.

‘제이데이’는 코로나19로 인해 재조명된 발코니 정원(Balcony Gardens) 부문에 출품된 작품으로, 규모가 작고 제한된 공간이 건강과 웰빙, 환경을 위한 녹색 공간으로 어떻게 변모할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

인간중심의 공간인 발코니가 도시의 야생동물의 서식지로서도 기능하도록 하는 정원인 ‘제이데이’는 참새목 까마귀과의 조류 어치(Eurasian jay, 학명 Garrulus glandarius)의 특성에 맞게 디자인됐다. 두 조경가는 자신들을 ‘조류를 사랑하는 조경 디자이너 듀오’라고 소개할 만큼 도시의 생물다양성, 특히 새에 관심이 많다.

이들에게서 ‘제이데이’와 그들이 추구하는 도시의 조경에 대해 들어보았다.

2022 첼시 플라워쇼 ‘JAY DAY’ 작가 최수연·알리슨 오렐라나 말루프 조경가

2022 첼시 플라워쇼에 참가하셨습니다. 팀 구성이 독특한데, 어떻게 만나 구성하셨나요?

플락파티(Flock Party)라는 팀명으로 활동하는 저희는 하버드 디자인대학원에서 조경학 석사 프로그램 동기로 만나게 되었습니다. 졸업 후에도 조류에 대한 관심이 겹쳤던 계기를 이어나가, 다양한 새들이 어떻게 도시환경을 활용하는지에 대해 의견과 디자인 아이디어를 나눴으며, 특히 조경가로서 인간만을 위한 디자인이 아닌 새들과 그 외 다양한 동식물들을 포함하는 생물다양성을 추구하는 방향을 고민해 왔습니다. 조경가만의 관점과 전문성으로 다양한 생명체들의 존재와 그들의 니즈들을 드러나게끔 돕는 노력에 관심을 기울이고 그러한 환경을 조성하는 저희 직업상의 도리라 생각하고 있습니다.

Flock Party Studio는 플락파티는 유연하게 정의된 단체이며, 사실상 첼시플라워쇼 진행 상 편의를 위해 만들었다고도 볼 수 있습니다. 코로나 이후의 다양한 사회적 현상들을 고스란히 반영하고 활용한 작업을 하고 있습니다. 화상회의와 클라우드 서버 등을 활용해 스위스와 미국 각자의 위치에서 유연하고 국제적인 원격 콜라보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플락파티 스튜디오의 궁극적인 목표는 새들을 중점에 두고 디자인을 고민하고 초점을 맞추는 것입니다.

2022 첼시 플라워쇼는 저희 듀오가 새를 중점으로 둔 디자인을 선보일 수 있게 하는 첫 시작점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도시생태학과 새들에 유독 관심이 많았던 저희가 이러한 공통관심사를 디자인으로 옮긴 첫 시도며, 생태학적 디자인이 아름답고, 흥미 있고, 가치 있다는 주장의 결실이기도 합니다. 이렇게 권위 있는 쇼에 참여할 수 있게 된 것을 영광으로 생각하며, 이것을 시발점으로 앞으로 더 많은 프로젝트를 함께 이어가길 희망합니다.


두 분께서 특별히 조류, 특히 도시의 새에 관심을 갖게 되신 배경이 궁금합니다.

최수연 저는 아주 어릴 적부터 새에 대한 호기심이 많았습니다. 공원에서 비둘기들에게 먹이를 나눠주고 오색딱따구리의 둥지 짓기를 지켜보는 것이 어린 저에게 정말 큰 즐거움이었습니다. 새를 향한 관심은 직업적으로도 반영되어 한국과 미국에서 조류보호를 추구하는 비영리단체 및 비정부기구에서 경험을 쌓았습니다. 탐조는 저에게 있어 현장을 읽는 과정 중 하나입니다. 관찰되는 새들의 종류와 행동들이 그 대상지의 생태학적 역학을 이해하는데 큰 도움을 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알리슨 오렐라나 말루프 저는 항상 다소 우스꽝스럽기도 한 새들의 다양한 외형과 행동들에 푹 빠져있었으나, 사실 새보다 식물에 더 오랜 시간 관심을 가졌습니다. 새를 향한 관심은 사실 캘리포니아의 다운타운 오클랜드에서 위치가 그리 좋지 않고 식생의 다양성이 떨어짐에도 불구하고 다양한 야생동물이 살고 있던 생배수로 옆 아파트에서 살기 전까지는 그리 깊지 않았습니다. 팬데믹이 지속되면서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고 시간을 보내는 활동으로 탐조를 재발견하게 되었습니다. 새들은 관심을 가질수록 더 잘 눈에 띄게 되는 묘미가 있습니다. 특히나 도시에서 살다보면 생각지도 못한 곳곳에 새들이 있는 걸 볼 수 있습니다. 새들이 어떤 이유로, 무엇을 하려고 거기에 있는 것인지 고민하는 것은 매우 흥미롭습니다.


두 분의 조류에 대한 관심이 ‘JAY DAY’를 탄생시켰다고 생각합니다. 정원에 대한 소개 부탁드립니다.

제이데이는 발코니 정원을 사람들만을 위한 공간에서 도심 속 다양한 야생 생물들을 위한 공간으로 재정립한 일종의 실험적인 프로젝트입니다. 특히 어치를 중점으로 디자인한 원형적 모델로서, 10㎡ 밖에 안 되는 작은 공간을 사람, 새, 그리고 곤충들을 위한 다용성을 엮어 그 잠재력을 극대화했습니다.

식생으로는 새 모이로 흔히 쓰이는 식물을 원예적으로 풀어내고, 어치와 공생관계인 견과나무 중 작은 수목을 골라 심었습니다. 어치는 도토리 등 견과류를 땅이나 고목 수피 틈 위를 덮을 때 사용하는 이끼를 활용하는 점이 특징입니다.

더불어 발코니 바닥 전체를 식생 면적으로 하면서도 거주자의 접근을 용이하게 하도록 쇠살대를 포장재로 사용하고, 사람들에게는 그늘, 새들에게는 가림막을 제공하며 새 모이통과 음수대 등 다양한 요소들을 걸 수 있도록 머리 위 파고라를 구상하였습니다.

제이데이의 디자인은 플라워쇼 형태이면서도 실제 도시민들이 흔히 접하는 발코니 세팅을 원형적으로 고려하려 노력했습니다. 제이데이 정원을 마주한 방문객들에게 기억에 남는 특별한 디자인이면서 동시에 집으로 돌아가 자신들의 발코니에 정원의 다양한 요소들을 스스로 제작하거나 반영하도록 장려하는 것이 저희의 목표였습니다. 그래서 정원 디자인뿐만 아니라 디자인에 대해 설명하는 것 또한 신경을 많이 썼습니다. 정원 전단지 및 프로젝트 사이트에 여러 유익한 정보 및 자원들을 제공했으니 방문객들 스스로도 도심 속 새들의 생태계와 자기만의 정원을 가꾸는 데 도움이 되었으면 합니다.


2022 첼시 플라워쇼 발코니 정원부문 출품작 ‘JAY DAY’ 


두 분은 그래픽디자인과 건축 전공으로 각기 다른 분야에 계시다 조경으로 만나셨습니다. 특별히 조경에 관심을 갖게 되신 이유가 궁금합니다.

최수연 예술과 디자인 과정에서 다루게 되는 표현적이고 창의적인 점들에 저는 항상 관심이 많았으나, 정확히 어떤 것을 디자인하고 싶은지는 명확하지 않았습니다. 학부생 때 그래픽디자인을 전공하고, 다양한 환경단체에서 디자이너 및 홍보팀에서 근무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던 중, 보존지역 선정 및 생활환경 조성의 방법론에 대한 의견 갈등이 개발자와 보존 활동가 사이에서 수없이 반복되는 사례들을 면밀히 살펴보게 됐습니다. 친환경적이고 지속 가능한 디자인 트렌드가 큰 힘을 얻은 요즈음에도 아직까지 이러한 갈등들이 해소되지 못했다는 점이 이해하기 힘들었고, 점차 다양한 동식물들이 공존할 수 있는 디자인에 대한 방향성을 잡게 되었습니다. 조경학은 이러한 목적의식, 그리고 디자인 스킬과 새에 대한 관심을 잘 융합할 수 있는 학문과 직업이라 생각해 전향하게 되었습니다.

알리슨 오렐라나 말루프 저는 공간적 사고방식에 흥미를 느껴 학부에서 건축학을 전공하고 건축사사무소에 근무하였습니다. 저는 자연에서 보내는 시간과 그 안에서 식물과 돌을 관찰하고 알아가는 것에 큰 관심이 있었습니다. 건축가로서 일하는 중, 건축과 환경적 가치관에 관하여 앞서 최수연 디자이너의 생각과 같은 맥락의 갈등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이러한 가치관을 더 옹호하기 위해 제 앞으로의 방향성을 재설정하기 시작했고 그때 조경학이라는 분야가 기다리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최수연 작가님은 스위스 바젤에서 조경가로서 활동하고 계십니다. 미국과 스위스의 조경은 어떠한 차이가 있나요? 그리고 한국의 조경에 대한 생각도 궁금합니다.

미국에서 스위스로 이동하게 된 첫 계기는 순전히 제 배우자의 복잡한 비자 상황과 더불어, 지속 가능한 생활환경 속에서 부부가 된 저희 두 사람의 직업 모두 추구하고자 한 것이었습니다. 두 사람 모두 원하는 일을 하는 동시에 가정을 꾸려가는 것을 지원해 주는 사회적 배경에서 사는 것 또한 저희에게는 필수적이었습니다.

각 나라의 조경 디자인과 조경에 관한 문화적 차이점은 당연히 셀 수 없이 많을 것입니다. 하지만 각 나라에서 추구하는 조경 스타일에는 가장 주목할 만한 차이점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일반적으로 미국의 조경 디자인에서는 포장재, 마감 및 구조물에서 느껴지는 형태적 격식과 디자이너의 트레이드마크를 중요시한다고 생각합니다. 반면, 스위스의 디자인에서는 생태학적 실용성, 그리고 자연적임을 넘어 어찌 보면 단정치 못하다고 할 수 있는 야생적인 분위기, 재료와 스타일을 더 많이 수용하는 것처럼 보입니다.

최근 한국의 조경학은 흥미로울 뿐만 아니라 변혁적인 것 같다고 생각합니다. 국제적인 영향과 아이디어가 쏟아져 들어오면서 아름다운 조경에 대한 논의가 대단히 활발합니다. 제가 특히 주목하고 있는 부분은 한국 조경의 정체성입니다. 경제학, 예술 및 인문학에 이르는 다양한 분야에서도, 한국전쟁 후 놀라운 회복과 발전을 재평가하는 과정을 거쳐 가고 있으며, 또한 이 수십 년간 앞만 보고 달려온 재건 과정에서 누락되거나 잊힌 가치들도 다시 발굴하고 인정하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어쩌면 지금 우리 민족 고유의 조경 디자인에 대한 정체성, 그리고 잃어버린 한국적 조경 역사를 되짚어보고 재발견해야 할 중요한 시점에 와 있다고 생각합니다.


작가님이 추구하시는 조경과 앞으로의 계획은?

플락파티로서 저희는 기본적으로 다종 중심의 디자인을 추구하며 특히 새에 중점을 두고 있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저희는 다른 생물의 관점에서 바라보려 노력하며, 그 생물의 니즈를 저희 주요 클라이언트로서 배치하였을 때의 새로운 디자인 가능성을 탐구합니다. 매가 바라보는 도시의 환경은 어떠한 것이며, 인간인 저희는 그 환경을 또 어떻게 개선할 수 있을까? 나무발바리는 왜 너와로 감싼 목재 집 벽면을 기어 올라가며 그를 위해 무엇을 더 제공하고 디자인을 조정할 수 있을까? 이러한 질문들을 답하는 것이 저희 플락파티의 정체성이며 이를 새로운 디자인의 매개변수로서 활용합니다.

저희는 이러한 맥락에서의 조경 디자인을 작업할 기회를 지속적으로 모색하고자 합니다. 첼시 플라워쇼의 제이데이 정원을 데뷔 프로젝트로 여기며, 플락파티의 사고방식을 담을 수 있는 다양한 플랫폼을 찾기 위한 활동 영역을 확대할 것입니다.

실질적으로 조성된 프로젝트들은 실험적인 프로세스의 한 결과물로서 그다음 실험의 설계를 안내합니다. 생태학자와 조류학자들이 밝혀낸 연구 결과들을 실용적이며 가치 있고 아름다운 디자인으로 지속적으로 공간화하기를 희망합니다.
글_전지은 기자 · 라펜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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