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의 순환과 시간의 흐름···조경과 건축이 만드는 생태적 가치 ‘시간의 정원’

국립현대미술관 과천관 옥상, ‘시간의 정원’으로 거듭나
라펜트l기사입력2022-06-29

 



조호건축(이정훈)의 '시간의 정원(Garden in Time)' / 국립현대미술관 제공


‘자연 속 미술관’인 국립현대미술관 과천관 옥상이 자연과 예술이 만나는 새로운 시공간으로 재구성됐다. 황지해 정원디자이너가 조성한 ‘원형정원: 달뿌리-느리고 빠른 대화’와 함께 어우러진 이정훈 건축가(조호건축)의 ‘시간의 정원(Garden in Time)’이다.


‘자연의 순환’. ‘시간의 흐름’을 공감각적으로 가시화한 작품을 통해 생태적 가치를 조경에 이어 건축으로 확장해 공동으로 모색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과천관의 숨겨진 명소인 3층 옥상에 조성된 ‘시간의 정원’은 열린 캐노피 구조의 지름 39m 대형 설치작이다. 옥상에 들어선 순간 관람객은 거대한 구조물을 따라 360도를 돌면서 작품을 만나게 된다. 일정 간격으로 늘어선 파이프의 배열은 자연과 어우러진 야외 공간에 리듬감을 더하고, 점점 높아지는 구조물의 공간감을 따라 관람객을 가장 아름다운 풍광이 펼쳐지는 곳으로 이끈다.


이곳까지 걸어가는 과정에서 관람객은 다양한 조각적 풍경을 마주하게 된다. 2층에 조성된 황지해 정원디자이너의 원형정원이 한눈에 내려다보이고, 탁 트인 외곽의 청계산, 저수지 등 주위 수려한 자연풍광이 펼쳐진다.


과천관을 둘러싸고 있는 드넓은 산과 물, 자연을 눈으로 감상하는 것에서 나아가 빛, 그림자, 바람 등 공감각적 경험을 통해 입체적으로 감상할 수 있는 새로운 경험도 제시한다. 구조물은 마치 해시계와도 같아서 시간의 흐름에 따라 기둥이 만들어내는 다양한 그림자의 변화를 볼 수 있다. ‘시간의 정원’을 통해 새롭게 재편된 옥상정원은 관람객이 전시 작품을 감상한 후 여운을 누리는 쉼의 장소이자, 미술관 관람 경험의 가치를 높이는 장소로 기능할 것이다.



작품을 설명하는 이정훈 건축가


시간에 정원이 있다면 어떤 형체일까? 기하학적 공간 속 시간이란 자신을 무한히 소거함으로써만 존재할 수 있다. 절대 공간이 지닌 엄숙함 속에 자신을 무한히 숨겨야만 자신이 존재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면에서 자연은 공간 속에 시간을 드러내주고 그 존재를 각인하는 매개체가 된다.


시간에 물성이 있다면 어떤 형태일까? ‘시간의 정원’에서 시간은 공간을 가로지르며 새로운 형체로 자신을 드러낸다. 빛에 의한 그림자로, 그것들의 총합의 입체로 자신을 증명한다. 계절과 날씨에 따라 작품에 투영되는 빛과 그림자의 변화는 ‘자연의 순환’, ‘순간의 연속성’, ‘시간의 흐름’을 시각화하며, 자연의 감각과 예술이 공명하는 시공간을 펼쳐낸다. 자연의 무한한 변화 속에 시간은 빛과 그림자의 연속으로서 정원에 자신을 펼쳐낸다. 순간이 아닌 연속으로서 시간의 존재를 오롯이 감상할 수 있다.


나무와 함께 성장하는 핸드레일


이정훈 건축가는 해당 작품의 영감을 ‘핸드레일’에서 얻었다. 3층 옥상은 버려져 있던 공간으로, 법적 기준이 바뀜에 따라 핸드레일이 이중으로 설치돼 있었다. 90㎝ 높이의 건축 파라펫 위에 30㎝ 가량 스테인리스 핸드레일이 이중으로 덧붙여진 형태였다. ‘만약 이 핸드레일이 시간을 두고 자라 공간이 입체적으로 성장한다면 어떠한 형상으로 드러나게 될까?’에 대한 상상이 ‘시간의 정원’으로 구현된 것이다. 법적 규정에 의해 핸드레일이 어쩔 수 없이 진화했다면, 삼차원적으로 성장 핸드레일은 기존 공간에 깊이를 더하는 형태로 진화했다.


이는 2층에 조성된 황지해 작가의 ‘원형정원’으로부터의 영감이기도 하다. 원형정원의 식물이 기존 핸드레일까지 올라와 뒤엉켜있는 모습을 본 이정훈 건축가는 “핸드레일이 법적 규정에 따라 자라난 것이 마치 2층 원형정원에 식재된 나무와 함께 성장하는 느낌이었다”고 말했다. 이 두 가지를 포착한 뒤, “원형정원의 식물들이 자라 건축이 주는 프레임을 타고 올라와 그늘을 만드는 것을 상상했다. 건축이 조경을 이길 수는 없다고 생각한다. 건축이 만든 구조물이 시간이 흐름에 따라 다시 조경이 되는 상상이다”라고 설명했다.



나무손잡이로 조성된 부분이 첫 번째 핸드레일이고, 그 뒷편에 조금 더 높게 설치된 철제 구조물이 두 번째 핸드레일이다. 그리고 2층 원형정원의 나무가 
그 핸드레일을 타고 올라온 모습이다.



열림과 닫힘으로 만드는 시퀀스


‘시간의 정원’에서 중요한 감상 포인트는 동선에 따른 시퀀스이다. 과천관 주변의 청계산, 관악산, 저수지의 수려한 경관의 심상을 극대화 하는 장치로서 작용한다. 이는 기존 과천관 건축물을 설계한 건축가가 자연경관을 감상할 수 있도록 의도한 축을 따른 것이기도 하다.


‘시간의 정원’은 크게 외경과 내경의 원으로 구성되는데, 외경의 원은 옥상에서 내려다보이는 미술관 지붕면을 최대한 가리고 전면의 청계산과 관악산을 극적으로 보여주는 라인이다. 입구부터 높이 2.2m로 낮으며, 닫힌 구조에서 시작해 걷는 과정 속에서 점점 옆이 열리기 시작해 전면에 펼쳐진 조망점에서는 양 옆이 모두 열리고 위로는 4m이상 열림으로써 과천관 주변의 수려한 자연경관이 압도적으로 다가온다. 내경의 원은 외경과 반대로 열린다. 진입 축에서는 2층의 원형정원이 바로 눈에 들어오며 동선의 전개에 따라 닫힌 구조로 바뀐다. 내경과 외경의 열림과 닫힘 구조가 반대로 전개되면서 원형정원과 주변 경관의 시퀀스가 달라지는 것이다. 이정훈 건축가는 “옥상에 들어서자마자 경관이 한 눈에 들어왔고, 이를 너무 쉽게 보여주는 느낌이었다”고 소회했다.



동선의 이동에 따라 주변 경관이 점점 열린다. 조금씩 높아지는 천장은 마치 한옥의 처마와 같은 느낌을 주기도 한다.


이러한 시퀀스를 가능케 하는 것은 두 개의 방향성을 가치는 원을 하나의 구조체로 엮고, 그 자체로 힘을 전달할 수 있는 구조에 있다. 외경은 하단을 지지하는 기둥 없이 외경의 호를 크게 열어젖혀진 캔틸레버로, 외경과 내경을 연결하는 루버 프레임 위에 일종이 돛을 올려 인장력을 확보했다. 서서히 올라가는 지붕은 구조물 자체의 형태로도 아름답고, 긴장감을 형성하며 동시에 인장재로서도 활용되는 것이다.


기둥의 간격 역시 기존의 핸드레일의 간격으로부터 도출됐다. 너무 좁으면 창살같아 보이고, 너무 넓어도 안 되기에 사람의 머리가 옆으로 들어가기에 충분한 넓이로 설정돼 가까이에서 감상하기도 용이하고, 조금 떨어져서 보면 프레임처럼 보이기도 한다.



기존 핸드레일의 간격에 의해 구조물 기둥의 간격을 배치해 가려줌으로써 너무 많을 수 있는 선을 줄였다.



디지털 기반의 수공예적 구조물


또 다른 특징은 디지털 기반의 수공예적 구조물이라는 점이다. 지속적으로 관람객에게 개방돼야 하고, 도면과도 약간의 오차가 있던 현장의 여건상 현장에서 조립, 용접하는 것이 아닌 공장에서 제작 후 현장조립과정을 거쳐야 했다. 특히 곡선을 그리며 올라가는 지붕구조이기에 원형의 금속파이프는 밀리미터 단위의 차이를 보이며 각기 다른 각도로 배열돼야 했다. 이러한 정교한 시공을 가능케 한 것은 현장 3D 스캐닝을 바탕으로 BIM 설계를 했기 때문이다. 기존 공간의 완벽한 스캔이 현장에서 변형해야 하는 파이프 간 조합 오차율을 제어할 수 있었고, 현장 공사기간도 단축할 수 있었던 것이다.



‘시간의 정원’에서 바라본 ‘원형정원’



‘시간의 정원’에서 바라본 ‘원형정원’.


한편, 이번 ‘시간의 정원’은 국립현대미술관의 ‘MMCA 과천프로젝트 2022: 옥상정원’의 일환으로 조성됐다. MMCA 과천프로젝트는 국립현대미술관이 지난해부터 과천관 특화 및 야외공간 활성화를 위해 실시하고 있는 중장기 공간재생 프로젝트다. 2026년 과천관 개관 40주년을 앞두고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들과 협업하고 미술관을 재생해, 예술적 경험의 무대를 곳곳에 펼쳐나가고 있다.


지난해 과천관 3곳의 순환버스 정류장에 조성된 ‘예술버스쉼터’에 이어, 올해는 공간재생 두 번째 프로젝트로 최고층인 3층의 ‘옥상정원’을 새로운 감각의 공간으로 제시한다.


설치작 외에도 후보에 올랐던 4팀(김이홍, 박수정 & 심희준, 박희찬, 이석우)이 해석한 옥상정원 제안작도 프로젝트 기간 중 옥상정원 입구에 마련된 아카이브 영상을 통해 공개된다. 또 국립현대미술관 유튜브 채널에서도 볼 수 있다,.


‘시간의 정원’은 6월 29일부터 2023년 6월 25일까지 국립현대미술관 과천관에서 만나볼 수 있다.

글·사진_전지은 기자 · 라펜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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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j870904@nate.com
글_주선영 기자 · 라펜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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