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주에서 통일신라 도시유적 확인

도로, 우물, 담장, 적심건물지, 제방시설 등 갖춰
라펜트l박소현 기자l기사입력2013-06-20


건물지 전경(도로, 담장, 우물)

 

통일신라시대의 도로, 우물, 담장, 적심(積心)건물지, 제방시설 등을 갖춘 도시유적이 확인됐다.

 

영남문화재연구원은 문화재청의 허가를 받아, 경주 동해남부선 연결선 건설공사 구간 내 유적발굴조사를 진행했다. 그리고 지난 12, 유적에 관한 현장설명회를 개최했다. 현장은 경상북도 경주시 건천읍 방내리·모량리 일원.

 

도로는 그 폭이 5~8m, 10여 곳에서 확인됐다. 이는 모두 남-, -서 축으로 이루어졌다. 도로에 의해 구획된 하나의 방() 120m×120m의 규모로, 방 내에는 담장과 우물, 적심건물지로 구성된 가옥이 조성됐다.

 

, 하천(大川)과 인접한 북쪽경계 지점에서는 도시의 경계가 확인 가능했다. 동서로 연결된 길이 30m, 5m의 석축 제방이 발견됐기 때문이다.

 


통일신라 석축 제방

 

문화재청은 경주시내 왕경지역 바깥인 방내리·모량리 일원에서 도로에 의해 방형으로 구획된 도시를 확인한 것이 이번 조사의 가장 큰 성과라고 밝혔다.

 

그 동안은 방제(坊制)에 의한 도시의 조성이 경주시내에만 존재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번에 외곽지역에서도 확인돼, 신라 왕도의 발달사를 추정할 수 있는 자료로 활용할 수 있게 됐다.

 

발굴지역·유물

유적의 중심 시기는 도로에서 출토된 유물에 의해 8세기경으로 판단됐다. 도로와 건물지의 중복이 많고, 건물 조성 시 이용된 축성토에서 5세기의 유물이 다수 출토됐기 때문이다. 문화재청은 5세기경부터 마을이 조성돼 6세기, 7세기를 거쳐 8세기경에 경주왕경과 같은 도심으로 발전했을 것으로 추정했다.

 

발굴지역 일대는 신라 6부의 하나인 모량부(牟梁部)의 옛 지역으로 추정되는 곳이다. , 신라왕경으로 진입하는 서북방면의 주요 교통로이다. 사적 제43호인경주 금척리 고분군(慶州 金尺里 古墳群)’과 사적 제25호인경주 부산성(慶州富山城)’이 조사지역과 인접해 있다.

 

유물로는 다수의 수막새(蓮花文막새, 獅子文막새), 암막새(飛天文막새)를 비롯해, 고배(高杯), 인화문(印花文)토기, 청동접시, 수레굴대[車軸], 탑상전(塔像塼), 치미(鴟尾, 용마루 장식기와), 청동거울 등이 출토됐다.

 

특히, 유물들 중 우물주변 진단구(鎭壇具, 건물을 지을 때 땅의 신에게 제사지내기 위해서 지하에 묻는 매장품)로 이용됐던 청동접시의 바닥에자가 새겨져 있는 것이 발견됐다.

 

영남문화재연구원 관계자는 이번 발굴조사 결과가 문헌에서 기술된 1360방과 360(현재의 통설)의 차이를 정리할 수 있는 계기가 될 것으로 본다. 또 삼국유사의 사료적 가치에 대한 재평가가 이루어질 수 있을 것으로 판단된다고 전했다.

 

*문헌(三國遺事 辰韓條 : “신라의 전성기엔 京中에 178936, 1360, 55리와 35개의 金入宅이 있었다”)

 


_ 박소현 기자  ·  라펜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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