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경자재의 본질과 특성의 중요성

그림 그리는 조경가_7회
라펜트l정정수 소장l기사입력2013-08-18

기능이 형태에 우선한다.” 는 말은 이미 언급했으므로 공감대는 형성되었으리라 생각한다. 이 말은 얼핏 외형에 관한 이야기로 들릴 수도 있다.

그러나 그 내면에서 찾을 수 있는 기능 이상의 것, 즉 본질이 스스로 그러하게끔 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점을 고찰해야 한다.

 

'자기답다는 것은 아름답다.' 조경을 하는 과정에서 필요로 하는 모든 자재의 본질을 알게 된다면, 누가 시키지 않더라도, 조경공간의 상당부분을 의도적으로 자연에게 맡기게 되는 조경작업이 자연스럽게 이루어지게 된다.

 

그런데 대부분 조경에서 취하는 방법은 사람이 주체가 된다. 그래서 자연도 관리하려 하고, 하물며자연을 보호하기까지 한다.

자연을 사람의 생각의 틀에 맞추어, 거기까지가 올바르다고 알고있음으로써 저지르는 행동이다.

 

따라서 몸이 부지런한 사람이 더 많은 자연을 훼손하고 있고, 그것이 훼손하는지도 모르고 있다는 사실에 더 큰 문제점이 있다. 이제는 그러한 조경공간을 만드는 사람조차도 다시 들과, 산과, 강을 찾아 자연으로 가고 싶어 한다.

 


창포, 수련, 부들은 의도적으로 식재한 것이지만 생이가래, 마름, 고랭이, 택사, 흑삼릉 등은 자연스레 자라고 있다. 2m의 깊이에는 식물이 자라지 않고 수면만 유지하게 했다. 오른쪽은 진승범 소장(이우환경디자인)의 사진으로 벽초지 수목원이다.

 

소나무를 향나무로 만들다니?

(?)다듬어진 소나무를 보면 깊은 한숨이 나올 때가 있다. 모든 것에 우열을 두는 것은 정의롭지 못하지만, 대개의 소나무와 향나무를 볼 때 그 가치의 차이에 따른 우열을 비교하면 소나무가 더 우위에 있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향나무를 다듬던 습관 때문인지, 잘 다듬어 놓은 향나무처럼 소나무마저 동글동글하게 다듬어 놓아, 향나무로 착각할 정도로 만들어 놓고 조형소나무라는 그럴듯한 이름을 붙여서 비싸게 판매하고 있다. 소나무가 갖고 있는 형태의 특성과 근본을 없앤 것이다. 이것은 훌륭한 자식을 칠칠하게 키우려다가 잘못된 지식으로 교육을 시킴으로 해서 칠칠하지 못한 사람으로 만드는 것과 같은 것인데도, 그 사실조차 모르고 있는 것과 같다.

 

향나무가 가정집 정원에 심겨 둥글게 다듬어지기 시작한 것은 일제 강점기로 추정된다. 잘 정돈된 향나무를 비롯해 둥글게 다듬어진 철쭉이 주종을 이루는 일본식 정원을 부러워했던 시절의 사람들이, 해방으로 일제가 본국으로 쫓겨 가고, 우리나라에 우리가 자리를 잡았으나 보고 배운 것이 일본식 정원 외에는 없었으니, 정원을 갖게 된 부유층은 그것을 그대로 모방할 수밖에 없었다고 생각된다.

 

이와 같은 일본식으로 가꾸어진 정원은 지금도 오래된 공공기관을 비롯해 많은 곳에서 잘 다듬어진 정원을 자랑스럽게 생각하기도 하며, 그와 같은 조경방법을 후학에게 그대로 전수하고 있다.

 

당신은 향나무와 철쭉을 둥글게 다듬는 방법을 누구에게 배웠나요?

? 정체성 없는 방법으로 아름다운 우리의 금수강산을 왜색으로 물들이려 하는가?

 

그나마 크게 다행인 것은 다듬어진 향나무가 우리정원에서 점차적으로 사라지고 있다는 점이다. 어느 누가 앞장서서 선도하지 않았어도 우리라고 하는 또 다른 정서는 몇 십 만원하는 값비싼 향나무를 공짜로 주어도 가져가지 않을 만큼 가치를 하락시켜 천덕꾸러기로 만들어 버렸다.

 

이것이 뿌리깊이 자리한 한국인의 본질이란 것을 생각해보면 향나무를 다듬던 습관으로 소나무를 다듬어서는 안 되는 커다란 이유를 알 수 있다.

 

본질이 훌륭한 아이가 잘못된 양육으로 인해 그르치게 되는 이유와 같다. 그래도 소나무를 향나무와 같은 형태로 다듬는 사람들이 있겠지만 향나무처럼 점점 사라지게 될 것이라는 것도 알아야한다.

 


각각 다른 나무가 같은 방법과 같은 형태로 잘 다듬어져 있어서 본질을 잊게 했다. 하나의 정원 속에서도 모든 나무가 부지런한 사람에 의해 매우 잘 다듬어져 있지만, 우리 정서와는 이질적으로 느껴진다.

 

몇 년 전 일본에서 한 손 안에 꼽힐 만큼 규모가 있는 조원회사의 회장과 하루를 같이 했을 때, 그의 야심찬 계획을 들었던 기억이 지워지지 않는다.

 

일본에 있는 자신의 농장에 한국의 조경인을 비롯해 조경학과 학생들을 정기적으로 초청해서 무상으로 며칠 동안 교육할 수 있는 여건을 만들어 주고 싶다. 그것이 삶의 목표 중 하나이다.”

 

얼핏 들어 감사하기 이를 데 없는 계획이지만, 그곳에서 교육을 받고 온 사람이 일본식 조경을 우리나라에 그대로 적용하는 일이 더 많이 생겨날 것에 대한 우려가 앞선다.

 

그 역시 좋은 의도를 갖고 있겠지만, 본인은 결과적으로 대한민국 조경분야를 침범하려는 것과 같다는 생각을 떨치기 어렵다. 이를 단순히 감사히 생각한 나머지 동참하는 한국인이 없기를 간절히 부탁 드린다. 그러나 현재 이 계획이 부분적으로 진행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좋은 일에 도와준다는 안일한 생각으로 도움을 주는 사람들이 없기를 기대한다.

 

우리나라와 일본의 조경은 극명한 차이가 있다. 예로 창덕궁 후원을 견학차 찾은 일본의 한 조원 관계자의 말을 빌려보면이곳은 Garden(정원)으로 만들어 놓은 요소가 없는 것 같은데 무엇 때문에 Garden으로 세계문화유산에 지정되었는가?” 라고 질문했다고 한다.

 

그들의 조원과 우리의 조경이 다른 점을 그의 눈이 적확하게 찾아냈지만, 그의 가슴과 두뇌는 본질을 볼 만큼의 능력은 없었다.

 

미술에서도 본질을 찾는다.

미술 장르에 개념미술(Conceptual art)라는 것이 있다. 개념미술의 한 축은 작품 제작을 위해 사용하는 재료의 특성을 이해하고 그 재료 자체가 작품의 중요한 주체가 되도록 만드는 것이다.

 

조경으로 본다면 사용되는 식물들이 조경공간을 스스로 만들게 한다는 말로 대신할 수 있다. 이처럼 재료가 스스로 그림을 그리게 했던 마네ㆍ모네ㆍ세잔ㆍ고흐ㆍ고갱 등 18C 인상파 미술이 15C 르네상스로부터 이어져오던 표현기법과 크게 차별화되어 인상파를 세계 미술사의 큰 획으로 그어지게 만든 이유이기도 하다.

 

이미 알고 있듯이 파랑과 빨강을 섞으면 보라색이 된다. 그런데 이 두색을 섞다말면 어느 부분은 파랑이 많은 보라가 될 것이고, 또 어떤 부분은 빨강이 많은 보라가 만들어지게 된다. 이 두 가지 색을 섞다만 붓으로 캔버스위에 붓질을 하면 보라색이라고 하기에는 너무 많은 다양한 보라색이 단 한 번의 붓놀림으로 화면위에 표현된다.

 

여기에 두 화풍을 구분 짓는 본질이 있다. ~섞어서 보라색을 만들어 사용하면 15C 르네상스 시대 그림을 표현하는 하나의 방법이 되며, 이와 같은 보라색은 사람이 만든 색이므로 또 다시 비슷한 색을 만들 수 있는 가능성이 있다.

 

반면에 물감의 본질에 의한 특성을 살려 다양한 보라색을 붓놀림에 의해 그림으로 표현했다면, 그 그림을 그린 화가에 의해서도 또다시 그 비슷한 색을 만든다는 것은 100% 불가능하다.

 

이유인즉, 사람은 행위만 하고 물감으로 하여금 색을 만들게 했기 때문이다. 물감의 본질은 기억력을 갖고 있지 않으므로 비슷한 색을 다시 만들지 못 한다. 이상의 내용을 요약하면,

 

"사람이 주가 되어 만든 보라색이냐?"

"물감이 주가 되어 만든 다양한 보라색이냐?"이다.

 

Conceptual art라는 말은 20세기 현대미술에서 만들어진 단어이지만 그 방법은 서양 미술계에서는 이미 18세기에 자리 잡은 장르에 의한 표현기법이라는 데에 거부감이 없다.

 

여기에서 한국미술과 중국, 일본 미술의 일부분을 비교해보면 한국과 중국은 화선지위에 수묵이 한 획으로 그어지면 수묵이 화선지와 만나서 서로 어울리게 한다. 화선지와 수묵에게 그림을 그리게 했으므로 화선지가 수묵을 어떻게 머금을지는 아무도 모른다. 그들이 어울리는 상태를 참고해서 그린만큼 그림에 대한 계획 또한 그들과 함께 한다. 한ㆍ중 양국에 비해 섬나라인 일본은 그들의 연극에서 보는 가부키의 화장처럼 그림도 덧칠을 하는데 틀린 부분은 덧칠해가며 작가의 의도대로 그려나간다.

 

조경하는 방법 또한 이와 같이 극명하게 다른 점이 보여 지는 것이다. 이렇듯 본질에게 맡기는 한 단계 발전된 방법을 우리 미술과 18세기 서양미술에서 찾아볼 수 있다.

 

사람이 주도해서 관리하며 정돈하는 일본식 조경과 비교해 우리는 식물이라는 자연이 상당 부분을 스스로 관리할 수 있도록 조건을 만들어주는 차원의 조경이 필요하다고 강조하고 싶다. 이러한 방법 속에서는 분명히 한국적 조경의 본질을 찾을 수 있기 때문이다.

 


필자의 그림피고지고 또다시 피어나네.” 와 부분사진

연재필자 _ 정정수 소장  ·  환경조경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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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fent@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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