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목설계업계에 분란 일으킨 건진법
회사, 임원, 노동조합 서로 다른 이유로 비판해기술사신문l이석종 기자l기사입력2014-08-10
지난 5월23일 건설기술진흥법이 시행되고 나서 토목설계업계는 때아닌 내홍을 맞고 있다.
국내 발주량은 눈에 띄게 줄었고 해외에서는 좀처럼 수익을 낼 수 없어서 회사임직원이 똘똘 뭉쳐 난국을 헤쳐나가기도 어려운 판에 회사, 임직원, 직원들간에 알게 모르게 균열이 생기고 있는 것이다.
그 원인은 다름 아닌 건설기술을 진흥하겠다고 국토부가 야심차게 준비한 건설기술진흥법이다.
▲ 건설기술을 진흥하기 위해 제정한 건진법은 토목설계 업체, 임원, 노조에게서 모두 환영받지 못하고 있다
자격증 취득해도 근무연수 채워야 진급!
우선 노조갈등문제다. 건설엔지니어링노동조합연대회의(이하 노조연대)는 여러차례에 걸쳐서 성명을 내면서 경력,자격,학력을 지수화한 건설기술자역량지수를 옹호하는 한편 특급 기준점수를 상향하지 말라고 국토부에 강력하게 주장하고 있다. 이번달 들어서는 국무조정실에 탄원서를 제출하기 위해서 14일까지 건설엔지니어링 업계에 연명부를 돌려 'ICEC 특급기준 78점'를 적극적으로 저지하겠다는 의지다.
우선 노조갈등문제다. 건설엔지니어링노동조합연대회의(이하 노조연대)는 여러차례에 걸쳐서 성명을 내면서 경력, 자격, 학력을 지수화한 건설기술자역량지수를 옹호하는 한편 특급 기준점수를 상향하지 말라고 국토부에 강력하게 주장하고 있다. 이번 달 들어서는 국무조정실에 탄원서를 제출하기 위해서 14일까지 건설엔지니어링 업계에 연명부를 돌려 'ICEC 특급기준 78점'를 적극적으로 저지하겠다는 의지다.
노조연대는“건설경기 불황에도 불구하고 기술사 자격을 소지한 임원들은 PQ평가에 중요하다는 이유로 자격증 하나만으로 고용이 유지되고 고액 연봉을 취하고 있다”며, “실제 업무를 주로 실시하는 일반 기술 인력은 저임금에 장시간 노동에 시달리다가 위기 시 1순위 해고대상이 되고 있다”고 주장했다.
같은 사무실 같은 부서에서 근무하는 임원들(대부분의 임원들은 기술사다)이 실력이나 기여도와 무관하게 고액연봉을 취하고 있다는 의미의 주장을 하고 있는 것이다.
노조연대의 이런 방응에 대해 기술사들은 좀 답답해하는 편이다. 토목설계업계의 한 기술사는 "노조연대의 주장을 읽고서 깜짝 놀랐다. 기술사 가지고 있는 게 무슨 죄냐? 예전과 다르게 기술사 딴다고 바로 승진시켜서 임원 되는 것도 아니다. 요즘은 기술사 따도 그냥 기술사 수당정도만 나오지 특진도 거의 없다. 내가 임원이 된 것은 근무연수를 채워서 임원이 된 것이다."라고 말했다.
이어서 "나도 노조원이었고 지금도 여전히 임금 노동자인데 우리가 임원이라고 해서 마치 회사의 임금을 축내는 것처럼 이야기 하는 것은 옳지 않다. 그리고 임원 되면 연봉제로 전환되어 야근비도 없고 오히려 연봉이 줄어드는 경우도 생긴다. 또한 일이 많지 않다보니 회사가 전략적으로 기존의 PQ만점자를 사책, 분책으로 올리기 때문에 40대 중반의 기술사들도 PQ만점 나오는 사람이 별로 없다. 그리고 기술사 있는 임원들은 비상주 감리현장을 많이 맡고 있어서 한 달에 몇 번씩 지방현장에 가야만 한다. 사실 분책, 사책, 비상주 감리 과업에 대해 날인한 것에 대해서 책임을 져야 해서 그에 대한 부담도 만만치 않다"고 말하며 "설계하는 팀원 모두가 똑같은 역할을 할 수는 없지 않는가?. 팀원들 각자의 역할이 있는 것이고 그 중에 임원은 대외협의 및, 중요한 기술적 결정을 하고 또한 팀이 한 일에 대해서 책임지는 역할을 하는 것이지 않겠는가? 기술사가 있다는 이유만으로 마치 근무연수를 초월해서 승진하고, 경력도 없는데 사책ㆍ분책하고, 일도 제대로 안하면서 월급만 축내고 있다는 노조의 주장을 접하고 솔직히 서운한 마음이 들었다"고 말했다.
이렇게 건진법 역량지수는 토목설계회사의 한 팀의 임원과 팀원사이를(결국 기술사보유자와 기술사 미보유자를) 갈라놓게 되었다.
공무원이라고 업계 경력보다 1.1배 우대?
기술사 보유자 미보유자를 갈라놓은 것이 특급 기준 점수라면, 퇴직공무원 출신 임원과 토종기술자 출신 임직원들 사이에 미묘한 기류가 흐르게 한 것은 경력인정에 관한 내용이다.
지난 5월23일 시행을 앞두고 예고된 건진법에는 발주처 감독 경력을 1.3배 인정하는 것으로 되어있었으나 기술사회가 강력하게 반발하자 국토교통부는 1.1배로 축소하기는 하였지만 토종기술자들은 이 부분에 대해서 할 말이 많은 눈치다. 설계 감독이 어떻게 설계경력이 될 수 있냐는 것이다. 설계 감독은 설계사에서 작성해온 검토내용을 보고받고 그중에서 한 가지를 발주처 입장에서 선택하는 업무를 하는 것이어서, 이 업무를 기술적인 설계업무로 볼 수 없다는 것이다.
하지만 토목설계업계 임직원들은 말을 아끼는 편이다. 자신이 속한 부서의 부서장이나 본부장이 다름 아닌 퇴직공무원출신인 경우가 많기 때문에 함부로 이야기를 꺼냈다가 큰 낭패를 볼 수 있기 때문이라고 한다.
노조연대는 이 부분에 대해서 "평생을 통해 쌓아야할 엔지니어링경력을 단지 공무원이라는 이유만으로 단시간 내 극복하고 있는 것은 명백한 특혜"라며 반발하고 있다.
값싼 노동력으로 근로자 착취 말고 설계비를 현실화해야!
한편 토목설계ㆍ감리 업체들의 모임인 건설기술관리협회는 전혀 다른 측면에서 건진법에 불만이 많다. 건설기술관리협회는 사업수행능력 평가기준, 하도급관리지침, 중복도, 종합평가 등 건진법의 4개 조항에 대해서 강력하게 반발하고 있다.
건설기술관리협회는 책임기술자뿐만 아니라 참여기술자까지 중복도를 평가하는 평가기준, 80%이상의 금액으로 하도급을 주어야 하는 하도급 관리지침, 10건 이상이면 실격 처리하는 중복도, 하도급실적 10%이상-고용유지 100%-인당생산성 1.3억 원으로 규정한 종합평가제는 '인건비 부담만 가중시키는 핵폭탄 같은 제도'라며 국토부장관 및 감사원장, 국민권익위원장, 청와대 등지에 청원서를 제출하려고 준비하자 국토부가 한발 물러나 협상에 들어간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회사입장을 대변하는 건설기술관리협회의 주장에 대해서 상당수의 엔지니어들은 '오죽했으면 국토부가 그런 규제를 만들었겠냐?'며 국토부를 옹호하는 분위기다. 지금까지 수십년동안 토목설계 업계는 야근이 많기로 유명했고 알고 보면 회사가 기술자들의 노동력을 싸게 이용해서 돈을 벌었다는 것은 업계전체가 인정할 수밖에 없는 사실이다. 어느 한 설계엔지니어는 "국토부가 중복도를 강화하면 업계에서는 중복도를 풀어달라고 하지 말고 지금까지 10건 이상 중복해서 일해도 남는 게 없으니 설계비를 올려달라고 국토부에 주장해야 되는 것 아닌가? 중복도를 완화한다는 것은 결국 기술자들이 똑 같은 월급을 받고 일을 더 많이 해야되는 것 같아 별로 기분은 좋지 않다"고 말했다.
이번에 새로 제정된 건진법은 설계업계의 모든 구성원으로부터 환영받지 못하고 있다. 하지만 기술격자등급문제, 퇴직공무원 취업문제, 설계업계 기술자들의 과다한 노동문제, 하도급문제 등 물밑에 있던 토목설계업계의 문제점들을 공론의 장으로 끌어냈다. 이런 문제들을 건강한 토론을 통해 잘 마무리하면 건설기술이 진흥 될 것이고 그렇지 않고 상처만 남기고 다시 물밑으로 가라앉는다면 우리나라 설계업계의 미래는 어둠속으로 빠져들게 될지도 모르겠다.
- 글 _ 이석종 기자 · 기술사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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