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익숙함의 탈피

글_오정학 논설주간(경기도시공사 사업기술처)
라펜트l오정학 논설주간l기사입력2014-12-31
익숙함의 탈피

오정학 논설주간(경기도시공사 사업기술처) 

조경 분야에서 이름난 자재업체 ㄱ사. 한때 동종 수위업체였다. 제품은 찍기 바쁘게 팔려 나갔고 회사는 날로 커져갔다. 그러던 어느 날 이상기류가 발생했다. 늘기만 하던 매출이 계속 줄어들고 있었다. 첫 달엔 “어쩌다 그렇겠지” 싶었고, 둘째 달엔 “다음 달엔 괜찮겠지” 했다. 그러나 그 다음 달도, 또 그 다음 달도 마찬가지였다. 서둘러 원인을 조사했더니 시장의 트렌드 변화 탓이 컸다. 성장기를 지나 성숙기에 접어든 동분야 수요자들의 눈은 이제 많이 달라져 있었다. 선택의 여지가 많지 않았던 그동안에는 ㄱ사 제품에 그럭저럭 만족해했으나 이제는 아니었다. 제품에 맞춰 설계를 하던 설계사들도, 프로젝트와 공간의 성격에 맞는 다른 제품을 찾고 있었다. 

물론 ㄱ사도 그러한 분위기를 모르지는 않았다. 다만 시장지배자였고 기존 생산라인에 투자한 게 많아 굳이 변화를 앞서서 이끌지 않았다. 수십 개 특허가 보여주는 축적된 노하우를 생각하면 함부로 방향을 바꾸기 쉽지 않았다. 그런데, 그게 오히려 발목을 잡은 셈이었다. 새로운 시장개척의 필요성 보다는 기존 시장의 확대에 더 이끌렸기 때문이다. 사내 기술진도 점진적인 제품 개선에만 신경 썼지 혁신은 이루지 못했다. 줄어드는 시장이 아쉬웠고, 그동안의 거래처가 야속했다. 유행은 돌고 도니 기다리면 되지 않을까 싶었지만, 한번 가 버린 수요자는 다시 고개를 돌리지 않았다. 그러는 사이 매출은 반 토막이 났고, 계속해서 줄고 있다. 

일에 있어 익숙함은 현실안주나 매너리즘으로 이어지기 쉽다. 나태하게 하거나 조건반사형 인간으로 만들기도 한다. 이럴 때 외부인의 눈에는 진부하고 상투적인 느낌을 주게 된다. 새로운 발전을 위해선 결국 변화가 필요한데, 그 시작점은 익숙함의 탈피이다. 일상에서 익숙함을 덜어내고 낯선 환경에 스스로를 노출시킬 때, 비로소 새로운 아이디어와 창의력이 용솟음치게 된다. 그래서 많은 이들이 굳이 아늑한 집을 떠나 힘든 여행길에 오르기도 한다. 여행은 익숙함을 벗어나 모든 것을 새로운 각도로 낯설게 보는 힘을 준다. 지금까지 습관화된 일상 속에 갇혀 눈에 띄지 않았던 사물과 행위의 본질을 새롭게 느낄 때가 많다. 그래서 러시아 형식주의자들은 습관화된 일상적 인식의 틀에서 벗어나 낯익은 것들의 숨은 면을 보고자 하는 비친숙화 기법으로 ‘낯설게 보기(defamiliarization)’를 제시했다. 

모든 익숙함도 처음에는 낯설고 새로웠다. 그렇지만 시간이 흐르니 익숙해지고 나중에는 편안해졌을 뿐이다. 누구나 익숙한 것을 좋아하고 추구한다. 오래된 벗과 단골집의 공통점은 편안함에 있을 것이다. 성격과 취향을 잘 아는 친구와 같이 단골 음식점에 있다고 생각해 보자. 그것만큼 편한 것도 없다. 그러나 단점도 있다. 지나친 편안함이 긴장감을 앗아간다. “잡은 물고기에게 미끼를 주느냐?”는 속된 말이 대표적이다. 인간관계가 익숙하고 편안할수록 긴장감을 없애고 친밀감을 준다. 그러나 긴장감이 없이 친밀감으로만 맺어진 관계는 또 다른 문제를 낳는다. 건전한 상호작용을 약화시켜 관계의 질이 동반하락 할 수 있다. 최소한의 긴장감은 사업에서나 인간관계에서나 모두 필요하다. 

앞서의 ㄱ사는 그 뒤 제2의 창업을 부르짖고 있다. 위기의식과 팽팽한 긴장감이 느껴진다. 그러나 홈페이지를 보면 여전히 특정 원자재에 집착하는 경영이념을 볼 수 있다. 아직도 틀을 완전히 못 벗어났음을 의심하게 한다. 왜 스타벅스는 고객에게 커피를 파는 회사가 아니라, ‘고객에게 안락한 공간을 제공하는 회사’일까? 왜 디즈니는 고객에게 테마파크를 파는 회사가 아닌, 고객에게 판타지를 제공하는 회사일까? 왜 어떤 항공사는 비행기로 고객을 목적지까지 이동시키는 회사가 아니라, 고객에게 목적지까지 안락함과 행복을 제공하는 회사‘로 스스로를 규정할까? 비행기로 고객을 목적지까지 이동시키는 회사와 고객에게 목적지까지 안락함과 행복을 제공하는 회사의 사이에는 도저히 건널 수 없는 간극이 있다. 전자는 고정된 수단을 가지고 ‘이동’이라는 기능성에 집중했다. 반면 후자는 경험의 질적 수준에 주목했고, 그 접근방법은 유연하게 정의함으로써 무한한 확장가능성을 보여주었다. 

지금 조경계는 유래 없는 어려움을 겪고 있다. 지금의 어려움은 “내가 전에 해봐서 아는데~”식으로는 먹히지도 않는다. 이 위기는 사상초유의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위기극복을 위해선 이제까지의 틀을 벗어날 수밖에 없다. 그런데 어떤 행동양식에 너무 익숙해져 있으면 매번 같은 생각만 하기 쉽다. 나는 어떤 사람, 내 사업은 어떤 사업이라고 함부로 규정짓게 되면 변화의 가능성은 제한된다. 자신과 사업의 영역을 제한하지 말고 다양한 변화의 가능성을 열어놓자. 그러기 위해 먼저 익숙함에서 벗어나, 낯선 시선으로 스스로를 되돌아보자. 

_ 오정학 논설주간  ·  경기도시공사 사업기술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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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hjhak@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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