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속으로] 가치전도를 통한 새로움 창조

『새로움에 대하여』 보리스 그로이스 지음(2017)
라펜트l오정학 과장l기사입력2019-03-26
가치전도를 통한 새로움 창조


_오정학 경기도시공사 과장
(ohjhak@daum.net)


서  명 : 새로움에 대하여
   : 보리스 그로이스 지음 
펴낸 곳 : 현실문화(2017)

 

혁신도시가 전국 곳곳에서 진행되고 있다. 오늘자 조간에서는 S사의 폴더폰이 혁신을 펼쳤다는 기사가 나왔다. 그 옆에는 ‘궁극의 커피혁신’이라는 커피머신 광고도 보인다. 언어적 과잉이 심하지만 어쨌든 혁신은 이제 유행어가 되었다 그렇지만 혁신은 과거부터 있었다. 1970년대의 구호였던 ‘유신(維新)’은 혁신의 유의어인데, 일본에서는 ‘메이지유신’으로 18세기 후반부터 많이 쓰인 용어였다. 두 나라 모두 급속한 발전기에 이 용어가 애용되었는데, 그만큼 ‘혁신’은 근대성 개념과 긴밀히 연결됨을 알 수 있다. 

혁신이 뜻하는 새로움의 강박증은 향후에도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새로움을 추동하는 환경 변화가 심상찮은 까닭이다. 바우만이 ‘액체근대’로 정의했듯이, 지금의 세계는 분명한 것은 아무것도 없고 모든 것이 유동적이다. 불확실성이 점차 심해지는 사회, 하루하루 바뀌어가는 세상 속에서는 즉각적으로 반응할 수밖에 없고, 변화된 환경에 맞는 새로운 것의 요구도가 커진다. 바야흐로 신상과 핫 플레이스만이 대중의 눈길을 끄는 시대이다. 물론 이러한 새로움을 부추기는 숨은 존재 중의 하나가 소비자본임을 간과할 수 없다. 개성과 차별화의 욕망 자극에 ‘새로움’만큼 좋은 무기가 어디 있겠는가. 

보리스 그로이스의 <새로움에 대하여>는 예술과 문화 전반의 변화를 ‘새로움 추구’라는 관점에서 해석했다. 그리고 이러한 새로움이 ‘혁신’으로 추구됨을 간파했다. 그는 새로움을 ‘옛것 및 전통과의 관계에서 새로운 것’으로 정의했는데, ‘가치의 전도’라는 형식을 통해 혁신된다는 것이다. 즉, “가치 있는 것으로 여겨지던 참됨 혹은 우아함이 가치절하 되고, 이전에는 무가치한 것으로 여겨지던 세속적인 것, 낯선 것, 원시적인 것 혹은 속된 것이 가치절상 된다.” 그렇다면, “문화적으로 가치 있는 것으로 여겨지기 위해 예술작품은 어떻게 만들어져야 하는 것일까?”라는 문제의식을 그로이스는 던진다. 

그는 어떤 작품들이 예술작품으로 받아들일 수 없다는 이유만으로 그런 작품이 관심의 대상에서 제외될 수는 없다고 보았다. 이미 문화 속에 그런 작품이 수용되었다면 그러한 문화적 생산의 메커니즘을 진지하게 탐구해봐야 하기 때문이다. 당연히 그 작품의 ‘문화적 가치’가 매우 중요한 기준이 된다. 마르셀 뒤샹의 레디-메이드가 그 대표적 작품이다. 초기에는 일상용품이 아무런 예술적 변형 없이 미술작품으로 여겨지는 것에 대한 논란이 컸다. 변기는 분뇨를 담는 매우 세속적인 사물이다. 뒤샹은 아주 세속적인 변기라는 사물을 세속성과 거리가 먼 미술관에 예술 작품으로 전시했다. 문화적 아카이브와 세속적 공간의 가치 전도가 시도된 것이다. 결과적으로 예술뿐만 아니라 문화 전반에 걸쳐 새로움이 어떻게 생산되는지 그 메커니즘을 보여주었다. 이러한 점에서 뒤샹의 변기는 매우 혁신적인 새로움의 대명사로 여겨지고 있다.  

서울 문래동 철공소의 낡은 문짝에 예술가들의 벽화와 조형물이 덧씌워진 것을 신호로 구시대의 쓸모없던 노동의 공간이 예술공간으로 조금씩 변해갔다. ⓒYONHAPNEWS

그로이스에 따르면, 공간을 포함하여 모든 문화는 위계적으로 구성된다. 이미 구조화된 문화적 축적물들은 위계의 중심이 되는데 미술관, 식물원, 박물관 등의 아카이브들이 그에 해당된다. 이러한 아카이브에 해당되지 않는 영역을 세속적 공간으로 그는 정의한다. 이 세속적 공간에는 특별히 중요하거나 가치가 있다고 여겨지지 않는 사물들이 있다. 이들은 특별히 보존되지 않으므로 시간이 지나면 자연스레 사라진다. 그러나 이 공간은 잠재적으로 새로운 문화 가치를 실현할 수 있는 비축장으로서의 잠재력이 있다. 서울 문래동이나 성수동의 오래된 공장과 낡은 건물들이 대표적이다. 이들은 개별적인 그 자체로는 아무런 가치를 인정받지 못한다. 하지만 그곳만의 일상성과 하류문화라는 특이한 타자성이 시간성과 결합되어 강렬한 서사를 만듦으로서 새롭게 장소화 되었다. 그 결과 도시재생의 유용한 자원으로 재평가 받고 있다.  

새로움에 대한 뒤샹의 제안은 단지 예술활동에 국한되지 않는다. 문래동이나 성수동과 같은 도시공간의 변화 사례는 그것을 잘 보여준다. 새로움은 이미 현대 문화를 포괄하는 핵심어가 되었다. 따라서 야외 여가활동을 포함한 어떠한 문화 활동도 그 대상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이러한 맥락에서 본다면, 공간을 새롭게 계획하려면 가치 전도라는 코페르니쿠스적인 사고의 전환이 요구됨을 알 수 있다. 기존의 문화적 아카이브와 세속적인 것 사이의 가치 전도를 끝없이 고민해 보자. 
_ 오정학 과장  ·  경기도시공사 사업기술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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