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속으로] 추모공원과 퀴어축제의 공공성

『공공공간을 위하여』 김동완 편저(2017)
라펜트l오정학 과장l기사입력2018-10-18
추모공원과 퀴어축제의 공공성


_오정학 경기도시공사 과장
(ohjhak@daum.net)


서  명 : 공공공간을 위하여
   : 김동완 편저
펴낸 곳 : 동녘(2017)


안산에서는 세월호 추모공원 조성을 두고 찬반 대립이 극심하다. 추모공원은 세월호 특별법에 따라 2015년부터 논의되어 왔다. 그동안 시민과 전문가로 이루어진 50인 위원회에서 대상지를 검토한 뒤에 추진했지만 워낙 찬반대립이 뜨거운 상황이다. 설문조사 등에 나타난 지역 여론은 추모공원 대상지가 되는 것을 매우 싫어한다. 그런가 하면 올 한 해 동안 서울을 비롯하여 주요 대도시에서 열린 퀴어 축제 역시 일부 종교계 중심의 반대시위로 시끄러운 상황이 연출되었다. 반대시위는 서울을 비롯해서 전국의 대다수 퀴어 축제장마다 벌어지고 있다. OECD 국가의 경우 부분 인정까지 합치면 2/3 이상이 동성간 결혼을 인정하고 있어 퀴어축제는 세계적인 조류로 보이지만, 국내에서는 전통적 규범을 내세우는 반대자들의 목소리가 꽤 높다. 결국 이 행사를 둘러싼 잡음은 상당 기간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이 두 사건은 얼핏 아무런 연관성이 없어 보인다. 그러나 자세히 살펴보면 몇 가지 연결고리를 찾을 수 있다. 중요한 것은 사회적 소수자에 대한 다수자의 공간적 기득권 주장이다. 추모시설 대신에 인근 거주자의 좀 더 편안한 공원 활동을 보장하라는 주장과 성소수자의 공개적인 행사를 못 봐주겠다는 생각은 결국 다수의 질서체계에서 벗어나는 것에 대한 거부인 까닭이다. 반대여론을 살펴보면 추모공원은 좀 더 외진 곳으로 가고, 동성애자는 굳이 과시적인 퍼레이드를 하지 말 것을 요구한다. 특히 퀴어 퍼레이드의 경우 도시 공공공간을 일정시간 점유한다는 점에서 최근 몇 년간 사회적으로 급격히 이슈화되어왔다. 왜 공공공간을 점유해서 타인에게 피해를 주느냐는 반감을 드러내는 이들이 많기 때문이다. 

도시공원과 가로는 현대 도시의 대표적인 공공공간이다. 따라서 이 사건들은 ‘공공공간’이 갖고 있는 ‘공공성’의 의미를 되짚어보게 한다. 공공공간은 어떤 목적으로 조성해야 하고, 누가 어떻게 사용할 수 있을까? <공공공간을 위하여>는 이러한 의문에 대한 이해를 돕는다. 이 책에서 사회학자 김동완 등 일곱 저자들은 “우리가 엄연히 공적이라 인식하는 공간이 본질적으로 행위의 자유, 발언의 자유, 마주침과 소통의 기회를 제한하는 이유가 무엇인가”라는 질문과 함께 “어떻게 광장을, 우리의 공적 공간을 지속시키고 확장할 것인가?”라는 의문을 제기한다.
    

2018년 서울퀴어문화축제는 19회째로서 미국과 유럽연합을 비롯한 13개국 대사관들도 부스를 설치했지만 찬반 양측의 대립은 여전했다. ⓒ연합뉴스

이 의문을 풀고자 김동완이 주목한 역사적 사례는 고대 그리스의 아고라였다. 가장 최초의 공공공간인 까닭이다. 아고라가 공공공간일 수 있는 것은 아고라라는 공간 그 자체보다 그곳에서 벌어지는 활동 때문으로 볼 수 있다. 그곳은 정치적 공간인 동시에 교역이 이루어지는 자유시장이었다. ‘유쾌한 번잡함’과 ‘상호전시’의 장소였고, 낯선 이방인을 만나고 교류하는 타자와의 조우가 이루어지는 장소였다. 그리스의 아고라 사례는 공공성을 결정짓는 것은 ‘공간’ 그 자체가 아니라 그곳을 이용하는 인간의 ‘행위’에 있음을 보여준다. 이때의 행위란 철학자 한나 아렌트의 말을 빌면, 공동체를 위한 정치성이며 복수성(複數性)이다. 본래 公共은 의미적으로 정부(公)와 시민(共)이 통합된 개념이므로 때로는 정부가 관여하지 않고 민간이 스스로 처리하도록 할 때 공공성이 한층 더 분명히 구현될 수 있다. 김동완의 문제제기는 이러한 점에서 충분히 그 의미가 인정된다. 

김동완은 그리스 아고라 사례와 아렌트의 이론 등을 밑절미로 삼아 동질적이지 않은 이질성, 단일하지 않은 복수성, 비어있지 않은 가득 찬, 행태가 아닌 행위, 기호·이데올로기가 아닌 실제·삶, 행정과 규율이 아닌 정치와 민주주의, 영토·경계가 아닌 반영토와 반경계를 “날것으로서의 공공공간”으로 규정한다. 그렇지 않은 곳은 이름은 공공공간이지만 사실은 규율과 통제가 국가적 통치기획의 일환이자 상업적 공간일 뿐이라는 주장이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우리가 대표적인 공공공간으로 알고 있는 상당수의 도시공원도 공공성을 의심해 볼 수 있게 된다. 

특히 저자들은 “플라자, 플레이스, 거리, 파크 등의 이름을 달고 만들어진 상업공간이나 문화공간은 개발 주체가 누구이건 간에 세심하게 통제된 광경이고 기호와 이미지의 집합이다”고 비판한다. 이는 공론장 연구를 통해, “상업문화는 시민들을 단순한 소비자로 전락시켜 그냥 보고 듣고 느끼며 즐기는 것만을 추구하게 길들이고 비판의식을 방해 한다”고 경고한 철학자 하버마스의 견해와도 비슷하다. 또한 “공간의 사유화는 시민을 사적인 개인으로 분리시키고 공론장의 형성 자체를 방해해 시민이 함께 권력을 감시하고 비판할 가능성을 줄인다”는 사회학자 바우만의 견해와도 연결된다. 결국 공공공간은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이용자인 시민이 자발적으로 만들어간다는 생각을 갖게 한다. 고대 그리스에서 민주주의가 발달한 것은 아고라 때문이 아니라 시민의식이 있었기 때문이며, 그런 시민들이 아고라를 자유롭게 전유하고 또 재전유하며 정치적인 행위를 하였기 때문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본다면, 세월호 추모공원의 조성 여부와 퀴어 축제의 향방은 한국 공공공간의 앞날을 보여주는 상당히 흥미로운 이정표가 아닐 수 없다. 이에 대한 다양한 시민논의가 어떻게 표출되고 결집될 것이며, 침묵하는 다수의 시민들은 과연 어떻게 개입할까? 공공공간의 시설과 활동은 고정되지 않으며, 시대에 따라 끊임없이 변화해왔다. 따라서 지금 우리가 갖고 있는 공공공간이 결코 유일하다고는 볼 수 없다. 장기미집행 공원의 해법으로 민간개발방식이 적극 도입되고 있다. 경제적인 효율성은 높겠지만 어느 정도의 공공성 훼손은 불가피할 것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한국의 도시공원은 공공성의 측면에서 과연 또 어떻게 위기를 극복하고 진화할 수 있을까?
_ 오정학 과장  ·  경기도시공사 사업기술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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